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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다리
작가 : 천상인
작품등록일 : 2018.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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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다리 1부
작성일 : 18-08-15     조회 : 492     추천 : 0     분량 : 1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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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다리 1부

 

 

 

 “강아지는 찾으셨어요?”

 

 지난 4년 동안 인터넷을 통해 들어야만 했던 노랫소리가 아닌 아영의 실제 목소리가 승수의 타들어간 가슴에 단비처럼 내렸다.

 

 “네 당연하죠.” 승수의 목소리에 싹이 돋는 듯 했다.

 

 “다행이네요.” 스마트 폰을 바짝 당기며 아영이 말했다.

 

 “집에 가니 녀석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호호 그럴 줄 알았어요. 강아지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거든요.” 전화기 속의 그녀 목소리를 마치 순한 파도가 밀어내는 듯 했다.

 

 “하하 그걸 다 기억하세요?”

 

 승수는 4년이란 세월을 뛰어 넘어 지금 그 다음날의 안부를 묻는 그녀가 신기하기만 했다. 역시나 삶이란 시작에서 끝으로 가는 과정일 뿐, 죽지 못해 견뎌낸 그 많은 세월이 승수로 하여금 꿈보다 더 허망하다고 느끼도록 해주기에 충분한 대목이었다.

 

 “흔한 경우가 아니었잖아요.”

 

 “그럼 혹시.”

 

 승수는 자신도 기억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있다면, 방금까지 마신 술의 세배 정도는 더 마셔야 가능할 것 같았다.

 

  강아지를 찾았다는 승수의 쾌활한 어투 때문이었을까. 아영은 왠지 모르게 가슴 속에 깊이 박혀 있던 그 무엇인가가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제주에 계신다면서요?”

 

 “네 벌써 일 년이 다 되었네요.”

 

 “저 아영씨 노래 다 외우고 있는 걸요. 하트 뿅뿅 그리고 뭐더라.”

 

 “어머 그러세요?”

 

 자신의 노래를 기억한다는 승수의 말에 아영의 목소리는 파도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대가 좋아, 녹아, 그리고 또,”

 

 “호호 옛날 일인걸요.”

 

 아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쾌활했으나 마음 어딘가 쓰라려 오는 건 승수였다. 대한민국에서 그 어떤 영역에서든 무명으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조건 최고가 되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곳이 승수와 아영이 살고 있는 이 좁은 나라였다.

 

 “저 이번 겨울에 저희 사장님이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해서요. 아영씨 한 번 만나보면 어떨까 해서요.”

 

 “아 그러세요?”

 

 아영은 4년 전 그날 밤 자신이 경찰서에 신고했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지만, 그의 모습은 가 닿을 수 없는 수평선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4년 전 승수가 처음 투다리로 왔던 날은 다른 날 보다 많이 취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술이 취해도 무턱대고 낯선 호프집에 혼자 들어갈 만큼 그리 대단한 숙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20대가 아닌 30대 후반의 몸 또한 그리 튼튼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날 그 정도 취했으면 쓰러져 자야 했던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날 투다리를 지날 때, 승수로 하여금 이성을 잃고 호프집 안으로 들어가게 만든 것은 순전히 그녀 때문이었다. 아담한 키에 골짜기와 봉우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몸매, 거기에 얼굴 생김새까지 마음에 들었던 그녀가 길가에 쓰레기봉투를 내어 놓고 호프집으로 들어가자, 승수는 그 어떤 마법에 걸린 듯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승수가 호프집 안으로 들어서자 몇몇 테이블이 무거움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주방이 붙은 제일 안쪽 테이블엔 그녀가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승수가 앉은 오른쪽 테이블엔 낯선 여자와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뭐로 드시겠어요?”

 그녀가 큼직한 메뉴판을 들고 그에게로 오자, 승수는 시간이 그대로 멈추어 그녀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액자 속에 영원히 갇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술이 취한 승수는 술이 술을 먹는다는 말처럼 술이 더 먹고 싶었을 뿐, 그녀를 따라 들어왔기에 당연히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내민 메뉴판을 꼼꼼히 살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 그 누구의 가슴에 가 닿지 못하고 허공 속에서 쓸쓸히 작열하던 그의 말을 그녀는 받아 줄 것만 같았다. 승수는 자신의 말이 그녀에게 가 닿아 그녀의 말과 뒤엉켜 뒹굴어 주기를 바랐다.

 

 “글쎄요?”

 “요건 어때요?”

 “그건 제가 안 먹어봐서 잘 몰라도, 고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먹을 만할 거예요.”

 승수가 민치 꼬지를 가리키며 맛있냐고 묻자, 그녀는 약간 미소 띤 표정을 하며 말했다. 아영의 목소린 낮고 가늘었지만 승수의 목소리와 호응하기에 충분했다.

 

 500 호프 한 잔을 반쯤 들이킨 승수는 안주 대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아영을 바라보았다. 순간 승수는 우습게도 그녀에게서 서운함을 느꼈다. 왁스칠 된 나무에 부딪힌 조명 빛이 흘러내리며 승수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모습은 뚜렷하지 않았다. 승수는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 켰다.

 

 “저기요!” 아영이 곁으로 걸어오자 승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화려한 빛 아래 자신의 치부가 세세히 들어나는 기분이었다.

 

 “500 한 잔 더 주세요.”

 

 “네” 아영은 의무적으로 말했지만 승수는 그녀의 메아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값 비싼 그 무엇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가 호프 잔을 내려놓고 돌아서자 승수는 영혼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 어떤 지옥불이 있다 한들 타 들어가는 영혼의 갈증에 비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저기요 음악 좀 바꿔 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칙칙해서 술맛이 다 떨어지네요.” 20대 시절 비를 맞으며 시내를 싸돌아다니며 즐겨 부르던 비와 외로움은 그의 인생, 배경 음악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음악이 순간 목구멍에 걸린 술처럼 거슬린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음악 좀 바꿔 달란 말예요!” 취기가 오른 승수의 목소리가 약간 올라갔다.

 

 “아 죄송해요. 알겠어요.” 승수가 언짢았지만 아영은 친절하게 시디를 바꾸었다.

 

 “아 이집은 왜 이리 칙칙해! 술맛 다 떨어지게.”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한동안 듣고 있던 승수가 재차 또 큰 소리를 쳤다. 그 음악 또한 승수가 20대 시절 즐겨 듣던 노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수는 마치 초등학교 시절 자신이 좋아 하던 여자 친구의 치마를 걷어 올리는 장난을 치거나 여자친구가 놀고 있는 고무줄을 끊고 달아날 때처럼 이상하게 아영이에게 시비를 걸고 싶었다.

 

 “아이 참 손님 왜 그러세요?”

 

 “왜 그러긴요. 음악이 칙칙하다니깐요. 기분 좋게 술 먹으러 왔다가 울고 가게 생겼네요.”

 

 “손님 이미 많이 취하신 것 같거든요.”

 

 “제가요? 저 아직 안 취했거든요.”

 

 “어머머” 아영은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잡았다.

 

 “얼른 음악 바꿔 주세요. 밝은 걸로다가.”

 

 “아이 참 손님!” 이건 먹든 안주를 바꿔 달라던 손님보다 더한 진상이 아닌가. 아영은 난감해졌다.

 

 “안 바꿔 줄래요?” 승수는 얼굴을 쪼개며 말했다.

 

 “손님 술 드시로 온 거예요? 음악 들으려고 온 거예요?”

 

 “음악이 좋아야 술 맛이 나죠. 이건 음악인 건지 넋두리인건지.” 어떻게 아영과 말 한 마디 더 석어 보려는 승수 스스로도 우스웠다.

 

 “손님 자꾸 그러시면 경찰서에 신고 할 거예요.”

 

 “뭐라구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이 참” 아영은 프런트의 전화기를 집어 들며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전 죄 없으니깐”

 

 

 

 도로 건너편에 있던 파출소에서 이 순경이 달려 온 것은 아영이 신고한지 이분도 채 되지 않아서 였다.

 

 “저기 이 아저씨 술 많이 취한 것 같아요.” 아영이 이 순경과 승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 아가씨가 정말 제가 뭐가 취했다는 겁니까?”

 

 “아이고 형님 많이 되셨구만요. 집에 모셔다 드리게요.” 이 순경이 승수의 팔을 잡았다.

 

 “이거 놔라 나 안 취했다. 이것들이 대 작가를 뭐로 보고.”

 

 “아이고 형님. 아직도 그 대 작가 타령이십니까?”

 

 

 

 집으로 돌아 온 승수는 문득 투다리에 무엇인가를 빠트리고 온 기분이 들었다. 아롱이와 다롱이가 승수의 볼을 핥으며 꼬리 쳤지만 마음 한 구석이 밑도 없이 뻥 뚫린 허전함을 견딜 수 없었다. 승수는 다롱이를 앞 세워 어둠의 골목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골목 끝에 투다리가 있고 그곳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평생토록 끝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월을 관통해 온 승수였다. 제발 그 끝이 저 투다리에 있으면 하고 승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

 “다롱아 좀 천천히 가면 안 되겠니?” 9살 적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승수 또한 엄마를 따라 시장으로 갈 때면 언제나 엄마보다 앞서 꼬리치는 강아지 마냥 재롱을 떨었다. 그랬던 승수가 지금 조그만 다롱이의 보폭을 따라 잡지 못하는 것은 비단 술이 취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신이 난 다롱이 꼬리를 간신히 쫓아 투다리에 도착하자 아까의 이 순경이 박 순경과 함께 또 다시 출동해 술 취한 손님을 부축하고 있었다. 승수는 그 틈을 도둑처럼 비집고 들어가 아까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다롱이가 폴짝 뛰어 승수 옆에 앉았지만 혼내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승수는 아까의 흔적을 치워내고 말끔히 청소된 테이블처럼 아영의 기억 속에도 아까 언성 높이던 자신이 지워지고 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앗 형님 또 오셨네요.” 승수를 알아 본 이 순경이었다.

 

 “마 나 안 취했다니깐. 보면 몰라? 니들은 또 여기 왜 왔니?”

 

 “헤헤 형님 또 오실 줄 알고 보초 서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이 순경이 익살 좋게 말했다.

 

 “가만히 보니 이 집 너무 하구만 아니 국민의 안녕을 책임져야 할 느그들을 종 부리듯 하구만 너희는 국민의 종이지 투다리의 종이 아니다. 얼른 가서 국민의 안녕을 책임지거라.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와 형님 말씀 한 번 거시기 하네요.”

 

 “내 딱 한 잔만 더 하고 갈라니 걱정 말고 가거라.” 승수는 피곤한 듯 고개를 숙였다.

 

 

 

 “다롱아” 방심한 순간 프런트로 달려가는 다롱이를 향해 승수가 소리쳤다.

 

 “다롱아 그러면 안 돼!”

 

 술도 안 취했으면서 전봇대 밑에 지퍼를 내리고 오줌을 갈기는 취객처럼 다롱이가 뒷다리 하나를 들고 프런트 아래에 오줌을 갈겼다. 순간 승수는 눈을 찔끔 감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부린 추태는 그저 개그일 뿐이었다.

 

 “아이고 귀여워라.” 순경들과 술 취한 아저씨를 따라 골목까지 다녀오느라 다롱이의 추태를 보지 못한 아영이 다롱이에게로 다가가 쓰다듬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방에 들어간 아영이 손님이 남긴 닭 꼬지 하나를 물로 씻어 다롱이에게 내밀자 다롱이가 날름 받아먹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승수는 다롱이가 부러워졌다. 다롱이 보다 못한 자신이 그렇게 초라할 수 없었다.

 

 “너 왜 이리 예쁘니?” 다롱이 키만큼 자세를 낮춘 아영이 다롱이를 쓰다음으며 말했다.

 

 아영은 2년 전 자신의 품에서 숨진 담비가 떠올랐다. 비단결 같은 하얀색 털을 가진 말티즈였다. 떠돌이 개를 보면 너무나 가여운 나머지 보호소에 신고부터 하고 보는 아영이었다. 그 중 유난히 마음을 아리게 하던 담비는 백내장을 앓고 있었다.

 

 

 

 ****

 

 눈에 하얀 점막이 끼인 담비를 보듬은 아영이 보호소에 들어서자 재 주인이 찾아오지 않았나하는 기대감에 들 뜬 개들이 막 짖어댔다.

 

 “속상해 죽겠어요. 귀엽다고 키울 때는 언제고.”

 

 버려진 개들을 보면 늘 아팠지만 앞을 가누지 못하는 담비 때문에 아영의 가슴 밑바닥은 마른 나무 등이 갈라지듯 했다.

 

 “그건 아영이가 아직도 순수하기 때문에 그래. 사람들도 서로 사랑하다 마음이 변하면 서로 돌아서는데 이까짓 개 하나 못 버리겠어? 사람이니까 당연한 거야.”

 

 “저는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요. 저희 아빠도 엄마도.”

 

 “두 분은 서로의 인생을 존중하며 갈라 선 거잖아. 어느 한 쪽도 상대방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 안 할 걸. 그리고 두 분은 아영이를 버리지 않으셨잖아. 이제와 하는 말인데 그 당시 잘나가는 아영이 아빠에게 아영이 줘 버리라고 내가 네 엄마에게 말했지. 그런데 연숙이는 절대 포기 못한다고 부모가 어떻게 자식을 버릴 수 있느냐면서. 뭐 나만 나쁜 년 된 거지 뭐.” 아영의 품에서 담비를 받아낸 진희가 막 철장 속에 담비를 밀어 넣자 잠든 듯 온순하던 담비가 철장을 긁으며 울부짖었다. 허기가 가시기도 전에 젖꼭지를 빼앗긴 아기의 울음소리도 그토록 처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옛 주인의 냄새가 아영이에게서 나나봐. 아니면 정이 너무 그리웠던 게지.”

 

 “어쩌면 좋아요?” 아영의 눈시울이 금세 뜨거워졌다.

 

 “지금이야 서로 아프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또 그렇게 살아가게 되어 있어. 생명은 어쩌면 견디면서 존재하는 건지도 몰라. 만약 견디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사람 하나 없어. 다들 죽어 버리고 말지.”

 

 “어떻게요! 자식 잃고 부모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밥이 넘어가요? 어떻게 웃을 수 있어요?”

 

 “그건 아영이가 아직도 순수하고 여리기 때문이야. 아영이도 닥치면 감당하게 될 거야.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지.”

 

 “아뇨 전 그런 어른이면 되기 싫어요.”

 

 “어른이 되고 싶어 되고 되기 싫다고 안 되는 것인 줄 아니? 어쩔 수 없이 부여 받는 책임인 거야. 그 책임을 완수해야 인간인 거고.”

 

 “아줌마 안 되겠어요. 저 강아지 제가 키울게요.”

 

 “감성적으로 행동할 일이 아니야. 건강한 강아지도 키우려면 부담 되는데 제는 병까지 들었는데.”

 

 “그러니깐 제가 키우겠다고요. 병든 강아질 누가 입양하겠어요.”

 

 

 

 

 

 *******

 

 “제 새끼에요.” 다롱이를 쓰다듬는 아영에게 승수가 소리쳤다.

 

 “아 그러세요?” 아영은 강아지를 데리고 온 승수가 아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제 강아지 원래 남 손 안타는데 신기하네요.”

 

 “먹을 거 앞에 별 수 있나요.”

 

 “아니에요. 다른 사람은 아무리 맛있는 거 들고 꼬여도 다롱이가 곁을 안 줘요.”

 

 “그런가요?” 아영은 남은 꼬지를 다시 물로 씻어 다롱이에게 마저 주었다. 승수는 갑자기 텅 빈 가슴 안에 그 무엇인가 묵직한 것이 들어차는 것 같았다.

 

 “아가씨가 마음에 드나봐요.” 하마터면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요. 하고 뱉을 뻔 했다.

 

 “호호” 그녀의 웃음소리는 마치 꿈속의 것만 같았다. 다롱이를 책임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뱉지 않은 것은 분명 승수가 이성을 지키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승수의 몸은 힘없이 처지기 시작했다. 잠깐 의식을 잃은 승수가 정신을 차렸을 땐 집에 도착한 직후였다. 몽유병환자처럼 집으로 온 승수는 자신이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롱아! 아롱아”

 

 분명 두 녀석이 꼬리치며 자신의 뺨을 핥아야 하는데 웬걸 다롱이는 없고 아롱이 뿐이었다. 순간 승수는 머리끝이 뾰족이 섰다.

 

 “다롱아” 귀퉁이에 대고 다롱이를 불러도 다롱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상황 파악이 안 된 아롱이만이 꼬리가 부러져라 흔들었다. 승수는 다시 투다리를 향해 달렸다. 승수가 밟은 어둠이 가로등 빛처럼 흘러내렸다.

 

 “저기 우리 다롱이 없어졌어요.” 투다리에 도착한 승수가 홀을 청소 하고 있는 아영이에게 우는 소리로 말했다.

 

 “다롱이가 왜요?”

 

 “아까 다롱이에게 꼬지 먹였잖아요?”

 

 “네.”

 

 “그 다음 다롱이 어디로 갔나요?” 그들은 도로변에서 시작되는 골목의 초입까지 나왔다.

 

 “다롱이 아까 제가 준거 다 먹더니 저기 왼쪽 골목으로 가던데요.” 아영은 승수가 막 관통해 온 골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집에 없는 걸요.”

 

 “그럴 리가요. 다롱이 그리 가고 뒤 따라 가셨잖아요.” 가로등에 비친 아영의 눈이 크게 빛났다.

 

 “제 다롱이 없으면 전 못 살아요. 제 심장이란 말예요.” 승수는 울상이 되었다.

 

 ***********

 

 승수가 다롱이 아롱이를 처음 만난 것은 일 년 전이었다. 그날도 승수는 취해 있었다. 휘청 이며 걷는 시장 통은 마치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릿했다. 좌판상의 주인들은 몇 십 년 장사를 한 토박이들이어서 삭을 데로 다 삭은 김치 같았다. 거기 어느 좌판, 조그만 종이 박스 안에 두 생명이 있었다. 수컷은 세상모르고 잠 자고, 암컷은 박스를 나오려고 벽을 긁었다.

 

 “할머니 이 아기들 몇 살이에요?”

 

 “응 이제 석 달.”

 

 “아니 이리 어린 것들을 어떻게 팔려고 해요? 제 엄마 품에서 놀게 두지.”

 

 “총각 그게 이 강아지들의 운명이라네.” 노파는 막 채소 가격을 묻는 손님에게로 시야를 돌렸다.

 

 “할머니 이 암컷 얼마에요?”

 

 “응 오만 원.” 승수는 호주머니 속에든 지폐를 구겼다. 그 돈은 승수가 가진 전부였다. 다니고 있던 용역업체에 내일 나간다 해도 일이 없으면 굶을 것이 막막했지만 다 털어 앞에 있는 생명을 구하고 싶었다.

 

 “할머니. 여기요.” 구겨진 지폐를 내밀고 조그만 생명을 보듬자 울컥 눈물이 나왔다.

 

 “총각 그럼 요놈도 데려가게. 그놈 혼자 있으면 외로울 테니 요놈도 곁에서 함께 키우게나.” 눈물을 훔친 승수가 두 마리를 보듬자 암컷은 그의 눈물을 핥았고 수컷은 잠에서 막 깨어 어리둥절해 했다.

 

 “설마 다롱이가 다른데 갔으려고요. 집에 다시 가보세요.”

 

 “집에 없으면 어떡해요? 제 다롱이 찾아내요.”

 

 승수는 아영이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10살 되던 해 유일한 안식처였던 엄마를 잃고 흉포한 아버지의 손아귀에 떨어졌던 그날 세상 한 가운데 홀로 떨어진 그 참담한 기분을 다시는 견디고 싶지 않았다.

 

 

 

 ***********

 

 “엄마 어제 그 아저씨 강아지 잃어 버렸다고 막 우는 거 있지. 세상에 나 그런 남자 처음 봤어.”

 

 “이 년아 그러게 왜 신고를 하고 지랄이야.”

 

 “내가 그런 줄 알았나. 술 꼬장 부릴 줄 알았지.”

 

 “이 년아 너 때문에 굴러 들어온 호박 한 덩이 덩굴째 날아간 줄 알어. 엄마 도와주려고 왔으면 조용히 서빙이나 할 것이지 어디서 나서긴 나서고 지랄이야”

 

 “엄마는 참나.”

 

 “딱 사람 보면 모르것디. 착한 사람 같지 않던”

 

 “그래서 엄마는 그리 사람 보는 눈이 잘나서 아빠랑 이혼하고 술장사까지 하고 있는 거야!”

 

 갑자기 아영과 엄마가 당기던 공기가 팽팽해졌다.

 

 

 

 **********

 

 며칠 후 투다리를 향해 걷는 승수의 발아랜 빗물이 찰랑 거렸다. 시장 통을 거니는 인파들은 최헌의 노랫말처럼 가을비 우산 속에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이 세상에 외로운 건 승수 자신 홀로 인 것 같았다. 승수가 도착하자 그를 맞아준 건 아영이 아닌 연숙이었다. 50대 후반인 그녀는 세월을 이겨먹을 만큼 강했는지 결코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누나 여기 500한 잔 주세요.” 승수는 다짜고짜 그녀를 누나라고 불렀다. 마치 나이든 아영이를 보는 것 같았다.

 

 “저번에 혹시 저 여기 왔던 거 기억하세요?” 승수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응 기억하지 내 딸이 얼마나 후회를 하던지.”

 

 “뭘 요?”

 

 “착한 사람을 괜히 신고했다고 그러더라고.”

 

 “착하긴요. 제 새끼 없어진 거 보고 당연히 놀라는 거지.”

 

 “그래 강아지는 찾았어?”

 

 “네 다행히 집에 먼저 와 있더라고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만약 다롱이 잃어 버렸으면 저 죽었을 거예요.”

 

 “아이고 삼촌 정말.”

 

 “사람이 어떻게 제 새끼 버리고 살 수 있어요?” 승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빗소리가 커지자 영희가 방금 내려놓은 맥주잔의 거품처럼 승수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그 어떤 묵직한 것이 부풀어 올랐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재미보다 먼저 배워 버린 이별은, 10살적 처음 술 취한 아버지가 강제로 입안에 쑤셔 넣던 회 맛과 흡사했다. 비릿하고 역겨운 내음, 아이가 도저히 씹어 삼킬 수 없는 그 회를 승수는 아버지에게 얻어맞기 싫어 씹지도 않고 삼켜야 했다.

 

 엄마가 사라진 정월 대보름 밤, 광활한 하늘엔 보름달이 떠 있었지만 그 하늘처럼 밑도 끝도 없이 팽창한 승수의 가슴 속엔 거대한 응어리가 들어차고 있었다.

 

 승수는 가슴 속에 억지로 들어차는 이별을 어떻게 씹어야 할지 몰라 꾸역꾸역 삼켜야 했다.

 

 그날 이후 승수에게 인생이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뭐 안 좋은 일 있어? 오늘 따라 왜 그래? 다롱이도 찾았다면서.”

 

 “비가 오니 좀 우울해서요.” 취기가 오른 승수의 눈가가 축축해졌다.

 

 “하긴 나도 젊었을 땐 안 그랬는데 요즘 비오면 꿀꿀하긴 해.” 연숙이 포근하게 대해주자 흔들어 재낀 탄산이 병뚜껑을 밀치고 나오듯 승수 안에 부풀어 오른 것들이 울컥 가슴을 뚫고 나왔다.

 

 “삼촌 울어?”

 

 “죄송해요.” 승수는 연숙이 오래전의 엄마처럼 포근했다.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건만 그동안 잘도 버텼건만 그녀 앞에서 이토록 하염없이 무너지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산다는 게 다 그래.” 벽에 걸린 두루마리 화장지를 뜯은 연숙이 승수에게 내밀었다.

 

 “다들 말을 안 할 뿐이지.” 아들 뻘인 승수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확한 속내야 말을 들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속내의 테두리 정도는 충분히 간파할 수 있는 나이 이순이 바로 코앞이었다.

 

 “사는 게 갈수록 허전하고 외롭네요.”

 

 “누구나 다 그래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 사람도 다 외로워.”

 

 “죄송해요.” 승수는 아직 초저녁이라 손님이 없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까닭도 없이 가슴이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웃는 행위에는 이유가 있었지만 밀려오는 슬픔에는 이유가 없었다. 승수는 더 크게 펑펑 울어 재꼈다. 방금까지 그가 퍼 마신 500시시 빈 잔에 눈물을 다시 채워 넣어도 될 것 같았다. 프런트 벽 위에 걸린 액자 속, 아영의 앳된 모습이 승수의 시야 안에서 한참을 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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