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쌍둥이-독립
작가 : 대홍수2
작품등록일 : 201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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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의 첫걸음(2)
작성일 : 18-11-28     조회 : 274     추천 : 0     분량 : 6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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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파국으로의 첫걸음(2)

 

 비가 내린다. 한밤중의 비는 사람의 마음을 착잡하게 하는 힘이 있지만 서진의 절망적인 감정은 비 때문이 아니었다. 방 안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서린은 죽은 것처럼 보였다. 분명 숨을 쉬고 흐느끼는 것이 눈에 보였음에도 서진은 왜 자신이 그런 착각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서린은 죽고 싶어 하고 있었다.

 

 서진은 서린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마치 등 뒤에서 누군가가 서진을 붙잡는 것만 같았다. 세 걸음 만에 서진은 다리에 쥐가 난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서진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으로 땅을 짚고 땅을 끌어 서린에게 다가간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도망을 갈망하게 하는 독한 냄새가 서진을 괴롭혔다. 서진은 서린의 어깨를 잡았다.

 

 서린의 기억이 서진의 머릿속에서 폭발했다.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절망.

 

 서진이 서린의 어깨를 놓치고 비명을 질렀다.

 

 *****

 

 4시간 전.

 

 수업이 끝난 서진과 서린은 학교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지훈을 발견했다. 지훈은 놀랍게도 정상적이고 괜찮은 남방과 청바지에 신발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이발까지 깔끔하게 마친 지훈을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렇게 하면 쌍둥이를 1초라도 더 빨리 볼 수 있다는 듯 학교 정문에 서서 잠시도 쉬지 않고 강시마냥 힘찬 제자리뛰기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대학생 이상의 나이임이 확실함에도 중학교에서 외모에 관심을 갖던 여학생들이 다가갔다가 기행에 질려 도망치는 두 종류의 물결을 만들어내는 지훈을 보며 서진은 이것이 빛과 어둠을 함께 선사하는 신의 공평함인지, 신의 선물을 파괴하기 위한 악마의 저주인가 의문을 느꼈다. 서진은 지훈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결국 옷 샀네요. 보기 좋아요. 제 말 들으니 괜찮죠?"

 

 "아, 고마워요."

 

 지훈이 드레스를 처음 입은 애니메이션 속 여주인공처럼 팔을 뻗고 가볍게 한 바퀴 돌았다.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서진은 지훈이 사람의 옷을 입은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서린이 어젯밤 가장 필요할 때는 어디 있었냐고 핀잔을 주려는 찰나였다.

 

 "사실 서진씨 말 때문은 아니에요. 오늘 서진씨 어머님을 만났거든요."

 

 "네?"

 

 서린은 말을 잊었다. 서진과 서린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지훈이 쌍둥이의 반응에 신이 나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제 모든 문제가 다 끝났대요. 아마 다음 주 안에 여러분들을 데리고 같이 살 수 있다는 모양이에요."

 

 서진이 지훈을 껴안았다. 감동해서는 아니었다. 서린이 서진의 의도를 깨닫고 서진을 함께 껴안듯 접촉했다.

 

 '아무래도 제가 떨어져 산 기간이 길어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을 데려가려면 법정 싸움에서 밀릴 것 같아요. 데리고 유럽으로 도피할 생각이에요. 어디로 갈 지는 아직까지는 비밀로 할게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깐. 유럽도 잊어줘요. 그리고 몰래 나가야 할 가능성이 높으니깐 애 아빠가 모르게 해야 한다는 것도 꼭 전해줘요.'

 

 수정은 얼마 전에 읽었을 때 보다 더 수척해 보였다. 아무래도 많은 고생을 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서진의 가슴 한 구석이 찡했다.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6년간의 믿음이 서진을 차갑게 만들었다. 지훈이 엄마가 보내서 왔다고 말했음에도 서진과 서린이 엄마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은 이유는 너무 많은 것을 물어보면 지친 엄마가 다시 떠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동안 자신을 버렸으면서 갑자기 나타난 것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정은 지훈을 통해 보는 모습으로 서진의 불안과 반발을 깔끔하게 녹여버렸다.

 

 ".......그래서 일단은 아버님을 떠날 거라는 것은 비밀로 해 달래요. 아버님 몰래 나가는 것인 만큼 부부 간의 합의는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은 정해야죠. 여기에 남을지, 아니면 어머님을 따라갈지 정해서 3일 뒤에 다시 만나서 알려주면 본격적으로 출국준비를 해서 떠난다는 것이 어머님의 일정입니다."

 

 "3일까지 필요 없어요. 그치?"

 

 서린의 말에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의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흘려본 기쁨의 눈물이었다.

 

 *****

 

 행복하다. 서진과 서린은 행복했다. 몸이 배배 꼬이고 심장이 답답하지만 그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을 정도로 행복했다. 가슴이 뛴다. 해외여행은 가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유럽이라니. 유럽이라고 다른 대륙보다 특별히 좋을 건 없지만 즐거운 서진과 서린은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집으로 돌아온 서린과 서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가에 매달려 힘껏 소리쳤다.

 

 "프랑스!"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스웨덴!

 

 "영국! 러시아! 체코!"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둘은 마치 경쟁하듯 떠오르는 유럽 국가의 이름을 정신없이 외쳤다. 서진과 서린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제 나간다.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자 평생 웃을 수 없는 공간이라 생각한 집에서도 상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제법인데? 포르투갈! 핀란드! 헝가리!"

 

 "너도!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내가 했어!"

 

 "그래? 그럼 여기까지!"

 

 서진이 순순히 인정하고 창가에 떨어져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심지어는 지긋지긋한 냄새와 꿈틀대는 바퀴조차 서진과 서린을 축하하기 위해 움직이는 듯 했다. 서린도 곧 바닥에 드러누워 팔다리를 휘적거렸다. 서린이 서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디로 가고 싶어?”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면 여기보다 낫지 않겠어?”

 

 “정답이네.”

 

 서린이 천장을 바라보며 웃었다. 즐거운 분위기가 진정되자 서진이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지? 기억나?”

 

 “기억 안 나지. 엄마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잖아.”

 

 “하긴.”

 

 할 말이 그것뿐인가? 서진은 생각했다. 서진은 기억 속에서 수정을 그립고 좋게 생각한 것은 그저 민태가 끔찍한 인간이라 그랬을 뿐, 사실 수정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진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다시 떠올렸다. 민태, 민태, 민태. 오로지 주먹질이 무서운 민태 뿐이었다. 사랑이 위대하다고 하지만 민태의 주먹질은 어머니의 사랑을 포기하고 도망치게 만들었고, 서진과 서린의 기억 속에서 친모의 추억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폭력의 판정승이지만 서진은 도저히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더 위대하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서진 역시 사랑 측에 가산점을 주고 폭력에 감점을 주기 위해 애썼지만 마침내 실패한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같이 살면 되니깐.”

 

 폭력 10: 사랑 0 현재까지 박빙의 무승부! 후반전은 폭력 팀은 전부 퇴장시키는 대신 경기장 위 선수의 수를 맞추기 위해 빠지는 폭력 팀의 수만큼 사랑 팀의 팀원을 추가시키겠습니다. 자, 10분간 휴식 후 후반전 시작!

 

 서진의 머릿속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무려면 어떤가. 사랑의 가장 위대함은 그 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심판을 매수하는 그 정치성에 있다는 결론을 내린 서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서진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눈물까지 흘리며 웃자 서린이 당황한 듯 서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서진의 생각을 읽고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같다면 웃기다고 생각하기 힘든 내용임에도 그저 모든 상황이 웃겼다. 한참을 웃던 서린이 이제는 거의 오열을 하는 서진을 흔들어 깨웠다.

 

 “야, 일어나. 이제 아빠 올 생각이야.”

 

 “아, 그래야지. 그럼 우리....... 마지막은 아니지만 아무튼 얼마 안 남은 노동을 시작해 볼까?”

 

 서진이 몸을 일으켰다. 몸이 전혀 무겁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 정도로 기운이 남아있던가 놀라며 서진은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부엌 앞에 선 서진은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은 분명 행복했다. 어쩌면 앞으로 자신들의 인생에 어떤 즐거운 일이 벌어지더라도 오늘, 지금 만큼 행복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을 만큼 행복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이 무색하게도 아직 서진과 서린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약속 한 마디뿐인 상황에서 지나친 행복으로 인한 방심으로 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체념 대신에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이 주어졌다가 박탈당한다면, 그 뒤 이 기약 없는 가족생활을 더 견디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녁 준비를 마치고 민태가 온 것을 나타내는 문 열리는 소리에 서린도 같은 문제를 깨달은 듯 긴장한 얼굴로 문가에 선 민태를 바라보았다.

 

  민태는 서진과 서린의 걱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표정으로 둘은 힐끗 보고는 ‘밥 먹자.’ 한 마디만 하고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민태는 어제부터 어딘가 많이 얌전해져 있었다. 서진은 의아한 눈으로 서린을 바라보았다. 서린 역시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오늘따라 왜 개차반이 아니냐고 물을 용기는 없었다. 서진은 민태가 앞으로 일주일만 더 이렇게 얌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민태는 말없이 소주를 따고 병째로 마시기 시작했다. 한 병을 비운 민태가 말했다.

 

 “안 되겠다.”

 

 서진은 이유도 알지 못 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눈이 붉어지고 서린의 비명소리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은 눈을 감았다.

 

 *****

 

 “서진아, 일어나.”

 

 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서린이 환한 미소를 짓고 서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처받은 적 없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해맑은 웃음이다. 서진이 서린을 보자 그제야 뒤늦게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밤이 된 다음에 몰래 집을 빠져나갔지. 그리고 엄마랑 같이 도망쳤고.”

 

 “맞아. 여긴 마치 천국과 지옥처럼 사람 사는 곳이지.”

 

 서린이 흰 벽을 짚고 옆으로 힘을 주자 마치 커튼처럼 벽이 열리고 피라미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그리스는 피라미드가 너무 이쁘네.”

 

 “그치. 프랑스는 역시 자유의 여신상이지.”

 

 피라미드가 자유의 여신상으로 변했다. 자유의 여신상이 몸을 숙여 서진이 있는 집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여신이 서진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웃고 있지는 않았다. 하긴, 여신은 웃지 않는다. 웃는 건 인간인 서진의 몫이다. 서진이 여신의 손을 잡았다. 서진과 여신이 서로의 손을 잡고 춤을 췄다. 서진은 여신의 어깨 위에 얹힌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은 중학생인 자신의 손 그대로였다. 서진은 안심했다. 이건 꿈이 아니다. 더군다나 꿈은 두려운 것이지 환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래. 현실은 끔찍하고 꿈은 무서운 것이니 여긴 꿈도, 현실도 아니지.”

 

 서진의 내린 결론에 동의하듯 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신의 동의를 얻은 서진이 기쁜 마음으로 서린에게 말했다.

 

 “그런데 엄마는?”

 

 “엄마는 장 보고 있어.”

 

 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왔다. 서진은 펠리컨의 입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서진이 펠리컨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따뜻하다. 마침내 가족이 하나가 되는 데 성공했다. 엄마가 펠리컨 입에서 나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서진은 축축하고 따뜻한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서진아.

 

 서진은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여기가 현실이 아닌 건 알아. 그런데 뭐 어때? 난 인생 처음으로 평안하고 안전한 곳에 있다고.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서진아.

 

 아, 알겠어. 일어날게. 5분만 더 자고 일어날게.

 

 서진아, 살아남아라. 날 위해. 강해져라. 날 위해. 성공해라. 날 위해. 여기서 벗어나라. 날 위해.

 

 서진이 눈을 떴다. 서진의 등이 차가워졌다. 문득 머리가 아파왔다. 완벽한 이 공간이 처음으로 흠집이 생겨났다. 서린이, 민태......

 

 서진이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

 

 서진은 지독한 코골이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자신이 민태의 코 고는 소리에 깨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 속에서 멍하니 눈만을 뜬 채 누워있던 서진은 곧 용수철처럼 튕겨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수였다. 강한 두통에 서진은 이를 악물고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서진이 바닥을 짚자 손바닥에서 따끔한 것이 느껴졌다. 서진이 손바닥을 들어 눈가에 가져갔다. 어둠 속에서 초록빛 술병 조각들이 서진의 손바닥에 붙어 있었다. 서진이 머리에 난 상처에 손을 가져다댔다. 따끔한 느낌과 함께 손에서 자신의 신체가 아닌 다른 것이 느껴졌다. 서진이 상처를 만진 손에 달라붙은 붉게 물든 유리조각을 발견한 서진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설마 아들을 죽일 생각이었나.”

 

 서진이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눈가를 닦은 서진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꿈인지 현실인지 떠오르지 않는 애매한 기억 속에서 서진은 머리채를 붙잡힌 채 방으로 끌려가는 서린을 떠올렸다. 서진이 벽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방문은 닫혀 있었지만 잠기지는 않은 듯 서진의 손을 따라 손잡이가 돌아갔다. 문을 열려던 서진이 멈칫했다. 방 안에서 코골이와 빗소리에 가려져 희미한 고통 섞인 울음소리와 이상한 냄새가 났다.

 

 서진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서린이 갈기갈기 찢어진 옷 사이에서 쓰러져 있었다. 피 냄새, 그리고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아니, 이건....... 이건 안 되는 거잖아.”

 

 서진의 시야가 물방울에 물들어 흐릿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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