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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새에서
작가 : 임완
작품등록일 : 20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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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는 누구야?
작성일 : 18-11-05     조회 : 352     추천 : 0     분량 : 5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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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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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사망 원인이 있다.

 

 그것은 교통사고다.

 

 드라마에서 이러한 장면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저걸 왜 못 피해?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막상 해당 상황을 내가 맞이하니 너무나도 눈부신 빛, 엄청난 엔진소리, 거대한 차체. 이 모든 요소들 때문에 정말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그럴 수도 없다. 눈부신 빛 때문에 다가오는 물체를 확인할 수가 없다. 만약 그 물체의 정체를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에 이미 본인은 죽어있다는 것을 인지 못 할 것이다.

 

 앞으로 몇 초? 아니, 눈을 깜빡이는 순간부터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난 눈을 조금씩 움직여 감았다.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눈이 반쯤 감겼을 때, 아주 조그마한 시야로 아름다운 금색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천사가 벌써 왔구나.’

 

 난 눈을 그대로 굳게 감았다.

 

 ***

 

 “우와! 너 예쁘게 생겼다.”

 

 “내가 보여?”

 

 “당연하지! 너, 나랑 친구할래?”

 

 “어? 그래도... 괜찮아?”

 

 “이건 내가 부탁하는 거야!”

 

 “어... 그럼 나랑 친구해줘.”

 

 “그래! 우리 이제부터 친구다?”

 

 “... 응!”

 

 ***

 

 눈꺼풀이 무겁다. 굳게 닫혀 있던 눈을 억지로 떴다.

 

 “여긴...”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서 주위를 보았다. 이곳은 내 방이다.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난 분명 아까까지 도로에 있었고, 차에 부딪히기 직전이었는데... 왜 내 방에 있는 거야?’

 

 정말 우리 집이 맞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봐야 할 거 같았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발을 바닥으로 옮기는데 무겁다. 이 느낌으로 보니 신발은 그대로 신고 있는 거 같다. 몸을 들어 올리려니 등에도 뭐가 걸린다. 만져보니 가방이었다. 아무래도 트럭하고 부딪히는 당시의 복장 그대로 내 방까지 이동한 거 같다.

 

 가방은 침대 위에 벗어두고, 방문까지 걸어갔다.

 

 꼴깍-

 

 긴장이 된다. 집이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아직도 그 악몽 속이라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끼익-

 

 문을 열자 밝은 빛이 환하게 나를 비춘다.

 

 “... 어?!”

 

 “뭐야, 언제 돌아왔었어?”

 

 밝은 빛 속에서 드러낸 것은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렇다. 이 집은 확실한 우리 집이다.

 

 “엄마... 엄마!!!”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서 엄마를 껴안았다. 엄마는 당황한 듯 몸이 경직되어 있으셨지만, 이내 같이 껴안아주셨다. 그리고는 내 등을 토닥여주셨다.

 

 “괜찮아, 괜찮아. 고생했어. 많이 힘들었지?”

 

 엄마의 말들이 내 가슴을 울리고, 가장 아파했던 부분을 감싸주었다. 온몸은 따뜻해지고, 줄곧 막혀있던 눈물샘이 열렸다. 따뜻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갔다.

 

 “엄마... 흡... 엄마!!! 진짜 무서웠어... 흡... 죽는 게... 무서웠어!!! 흐앙!!!”

 

 엄마는 말없이 계속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나는 탈진할 만큼 울고 나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진정됐어?”

 

 “... 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모르겠어. 설명을 못하겠어...”

 

 “알았어. 나중에 생각나면 말해줘.”

 

 “응.”

 

 엄마는 주방으로 돌아가셨다.

 

 “곧 밥 다 되어가니까, 옷 갈아입고 나와. 특히, 신발은 벗고.”

 

 “응.”

 

 그 자리에서 신발을 벗고 현관에 놔둔 뒤,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장롱에서 편한 옷을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옷을 벗었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겪게 된 건지, 죽음이라고 적힌 버스 정류장은 정체가 뭔지, 왜 사람들이 없어졌다가 갑자기 나타난 건지, 그리고... 난 어떻게 살아있는 건지...

 

 옷을 다 갈아입은 난,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팡-

 

 다른 것들도 다 원인과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장 궁금한 건 역시 내가 살아있는 이유다. 분명히 내 코앞까지 다가온 덤프트럭을 보았다. 하지만 눈을 감고 뜨니 내 침대 위에 누운 상태였다. 일어났을 때의 복장, 내가 집으로 돌아온 걸 알지 못했던 엄마. 이건 마치 내가 트럭에 치이기 직전, 침대 위로 공간이동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내 손으로 뺨을 쌔게 때렸다.

 

 짝-

 

 아프다. 꿈이 아니다. 믿기 힘들지만 이건 현실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거 같다. 어딘가에 이 일의 원인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없을까? 나는 괴로웠지만 오늘 겪었던 일들을 다시 머릿속으로 되돌려 보았다. 그리고 한 장면이 떠올랐다.

 

 “머리카락...”

 

 그렇다. 내가 눈을 감기 직전, 트럭에 부딪히기 직전에 난 분명 금색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어쩌면 그 머리카락의 주인이 내 은인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내가 이번 일을 겪게 된 원인을 알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세상에 금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무리겠지?”

 

 나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하...”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만나고 싶다.”

 

 “은지야, 밥 먹자~”

 

 거실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지친 몸을 침대에서 들어 올리고, 문을 열어 거실로 나갔다.

 

 ***

 

 “벌써 밤이 됐어. 난 이제 집에 가야해.”

 

 “... 벌써?”

 

 “응. 너는 집이 어디야?”

 

 “나는... 저기?”

 

 “하하하하. 너 정말 재밌는 애구나?”

 

 “...”

 

 “그래도 난 이제 가야해. 너도 늦지 않게 집에 들어가. 안녕~”

 

 “... 안 가면... 안 돼?”

 

 “그건 안 돼. 너무 늦으면 부모님이 걱정해.”

 

 “그래도...”

 

 “그러면! 다음에도 이 놀이터에서 다시 만나자! 어때?”

 

 “다음에도 여기서 같이 놀아줄 거야?”

 

 “다음에도, 다음에도, 그리고 또 다음에도! 여기서 같이 놀자!”

 

 “응!”

 

 ***

 

 “하아아암...”

 

 피곤하다. 결국 어제 겪었던 일이 계속 생각이 나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일어나서 거울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펑펑 울고 나서 씻지도 않고 바로 자버렸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씻고, 옷 입고, 퉁퉁 부은 얼굴이라 얕게나마 화장을 할까 했지만 귀찮아서 관두었다.

 

 저벅저벅-

 

 “하...”

 

 오늘도 어김없이 정류장은 수용인원을 초과하여 아예 길을 점거했다. 그래도 나에게는 행운이라는 게 있으니 버스를 타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

 

 ...

 

 분명 평소라면 어떤 방법으로든 지금쯤이면 학교에 도착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행운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 본래라면 그랬을 터였는데...

 

 “하...”

 

 뭔가 어제의 일부터 계속 꼬이는 거 같다. 하는 수 없이 내 얼마 없는 돈으로 학교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웅성웅성-

 

 교실에 도착하니 평소라면 있어야 할 담임 선생님은 없고, 시끄럽고 들뜬 분위기의 반 아이들만 있었다. 항상 시끄러운 교실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시끄러운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특히나, 여자 아이들이 엄청 시끄러웠다.

 

 자리에 가방을 올리고 앉으려고 하니, 연지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연지야, 오늘 무슨 일...”

 

 “대박사건이야! 완전 대박! 은지야, 나 어떻게 해? 사랑에 빠진 거 같아.”

 

 “어... 어?”

 

 “오늘 우리 학교에 전학생 한 명이 왔어!”

 

 말을 듣고 나니 이유를 대충 알 거 같았다.

 

 “남자?”

 

 “게다가 엄청 잘생겼지.”

 

 “봤어?”

 

 “실은 아까 교실에 올라오는데 우리 학교 교복 입은 엄청 잘생긴 사람이 교무실에 들어가는 걸 봤거든?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그렇게 잘 생긴 사람이 우리 학교에는 없었어. 즉! 전학생이라는 거지! 그것도 우리 학년. 대박 아니야?”

 

 우리들이 입학한 지, 아직 세 달밖에 안 지난 상태에서 전학생이라니 조금 희한하다. 그래도 연지의 눈은 연예인을 평균으로 볼 만큼 높기 때문에, 이번 전학생의 외모에 대한 말은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빨리 보고 싶다...”

 

 “그러니까! 1교시가 끝나면 바로 전학생 반으로 찾아가자, 은지야.”

 

 “응.”

 

 “이제 보니 얼굴은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어? 아,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잠시 후, 1교시가 시작되었다.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어?”

 

 이상했다. 분명 목요일 1교시는 영어인데 국어를 맡고 있는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웅성웅성-

 

 탁- 탁-

 

 “자, 조용들 하고. 이미 소문이 난 거 같지만 우리 반에 전학생이 한 명 왔다. 수호야, 들어오렴.”

 

 “네.”

 

 우리들은 은은한 미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문으로 시선을 돌려서 고정했다. 문을 넘으면서 점점 형체가 보였다. 훤칠한 키, 긴 다리, 그러면서도 약간은 가늘어 보이는 몸, 무엇보다도 저 이국적이게 생긴 얼굴은 정말 영화에서나 보일 법할 정도로 잘 생겼었다.

 

 “자기소개 간단하게 하자.”

 

 “네.”

 

 전학생은 반 전체를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이수호 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살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혼혈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전학생은 잠시 머뭇거렸다.

 

 “일단은... 한국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일단은 한국인이라니, 마치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처럼 들린다. 조금은 생각이 특이해 보인다. 그래도 저 얼굴을 본다면 저런 점이 오히려 매력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어때? 내 말 맞지?”

 

 연지가 뒤에서 내 등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말했다.

 

 “응. 완전 잘생겼어.”

 

 “자리는 뒷문 쪽에 비어있는 책상을 사용하렴.”

 

 “네.”

 

 저벅저벅-

 

 전학생은 내 옆을 통해서 본인의 자리로 이동했다. 멀리서 봤을 때도 잘생겼지만, 가까이서 보니 더 잘 생겼었다. 교실 내에 있는 모든 여자들은 전부 이수호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너희들 너무 수호에게 부담주지 말고, 아무쪼록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줘.”

 

 “네!”

 

 교실이 흔들릴 정도의 우렁찬 함성 소리였다. 선생님은 대답을 듣고는 바로 교실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약 5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다들 약속한 듯이 일제히 전학생에게 달려갔다.

 

 “서울 어디서 살다왔어?”

 

 “전화번호 가르쳐줄래?”

 

 “여자 친구 있어?”

 

 “너 왜 이렇게 잘생겼어?”

 

 한 번에 쏟아지는 질문에 전학생은 난감해하며 정신을 못 차리는 거 같았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가서 질문을 할까 싶었지만, 전학생의 표정을 보니 너무 힘들어보여서 나중으로 미루었다. 아쉬운 대로 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전학생의 잘생긴 얼굴이나 감상했다. 정말 사람이 저렇게 생길 수도 있구나 싶었다.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어선지 내 시선을 눈치 챈 전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정말 멍하게 바라만 보았기 때문에 서로가 눈을 마주쳤다는 것을 3초 정도 지나서야 알았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 큰일이다.’

 

 전학생이 아직도 나를 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읍!”

 

 고개를 돌렸을 때, 여전히 전학생은 나를 보고 있었고 또 다시 눈이 마주쳤다. 다시 급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틀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래를 숙여서 책상 위로 엎드렸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아, 어떡해!’

 

 드르륵-

 

 이때, 의자를 뒤로 끄는 소리가 들렸다.

 

 “수호야, 어디가?”

 

 “응. 잠시 볼 일이 생겼어.”

 

 ‘볼 일?’

 

 그리고는 전학생으로 추정되는 발소리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벅- 저벅-

 

 ‘설마... 아니겠지?’

 

 저벅-

 

 발소리는 내 바로 옆에서 멈추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저기...”

 

 이 목소리는 아까도 들었던 전학생의 목소리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못 들은 척, 자는 척을 하며 계속 엎드려 있었다.

 

 ‘제발... 모른 척 가줘. 창피해.’

 

 “저기... 나 기억 안나?”

 

 ‘뭐?’

 

 나는 고개를 빠르게 들고, 전학생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혹시나 아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전혀 본 적이 없다. 애초에 이렇게 잘생긴 얼굴을 기억 못 할 리가 없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 그래? 정말 기억 안나?”

 

 다시 생각을 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계속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전학생은 쓸쓸한 표정을 짓고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구나... 기억 못하구나...”

 

 돌아가면서 전학생이 했던 혼잣말이 나에게는 정말 슬프게 들렸다.

 

 “은지야! 방금 뭐야? 서로 아는 사이였어? 어떻게?”

 

 연지가 방금 일어난 상황을 보고는 달려왔다.

 

 “아니야. 아마도 전학생이 다른 사람하고 착각을 한 거 같아.”

 

 “진짜야? 확실해?”

 

 “애초에 저렇게 잘생긴 사람을 알고 있었으면 기억을 못할 리가 없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다. 그래도 아는 사이였다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깝다!”

 

 “응, 그러게.”

 

 전학생은 내 기억 속에서 누구였던 걸까?

 

 정말 만난 적이 있을까?

 

 괜히 전학생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고, 나는 조금은 우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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