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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새에서
작가 : 임완
작품등록일 : 20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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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학생
작성일 : 18-11-09     조회 : 335     추천 : 0     분량 : 5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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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멍하게 있었다. 아까 전학생과의 있었던 일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이대로 있다간 내가 찝찝해서 잠을 못 잘 거 같았다. 오늘 집에 가면 일말의 단서라도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그나저나 집에 어떻게 가지?’

 

 어제의 일 때문에 당분간은 다른 길로 새지 않고 집으로 가자고 다짐했지만... 그래도 같은 일이 또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오늘따라 집으로 가는 길이 멀고, 무섭게 느껴진다.

 

 “은지야! 오늘도 그 카페 아르바이트생 보러 갈래?”

 

 “미안. 오늘은 조금 피곤해.”

 

 “아... 수호 때문에?”

 

 “어?”

 

 “너 아까 수호랑 이야기하고 나서부터 하루 종일 멍한 상태였잖아. 맞지?”

 

 하긴 연지는 우리가 헤어지고 나서 나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전혀 모르니, 헛다리짚는 게 당연한 거 같다. 그렇다고 해서 연지의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긴 했다.

 

 “뭐... 그것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조금 피곤해.”

 

 “그럼 오늘은 희건이 데리고 산책이나 갔다 와야겠다. 푹 쉬어!”

 

 “응...”

 

 학교에서 나와 곧장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가 올 때까지 3분 정도 남은 거 같다. 혹시나 이번에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닌지, 고개를 돌리며 사람들을 확인하였다.

 

 “와악!”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서 주변을 확인했었다. 아무 이상도 없었고, 내가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내 뒤에는 전학생이 서있었다.

 

 “안녕?”

 

 전학생은 아침에 봤던 쓸쓸한 표정은 어디가고 환한 미소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아, 안녕...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방금 왔어.”

 

 “아... 그렇구나.”

 

 큰일이다. 엄청 불편하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서 전학생을 등졌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어차피 지금 피한다고 해도 같은 학교, 같은 반인데 3년 동안 피해 다닐 것도 아니고, 오해를 빨리 풀고 친해지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다시 전학생을 향해 몸을 뒤로 돌렸다. 그러나 전학생은 없었다.

 

 “누구 찾아?”

 

 “와악!!!”

 

 나는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놀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휘둘렀다.

 

 짝-

 

 ‘맞았... 나?’

 

 분명 맞는 소리는 내 귀에 들렸다. 내 눈앞에는 나에게 뺨을 맞았는지 고개가 돌아가 있는 전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손에는 때린 감각이 전혀 없었다.

 

 “아야... 아프잖아.”

 

 전학생은 본인의 왼쪽 뺨을 어루만지고 있다. 반응을 보니 아마도 맞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 저기. 미안.”

 

 “괜찮아. 놀래 킨 내 잘못도 있으니까.”

 

 “그런데 너 언제 내 뒤로 왔었어?”

 

 “네가 몸을 돌릴 때?”

 

 그 짧은 순간에 뒤로 몰래 갔다니...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

 

 “끄응...”

 

 전학생이 계속 순수한 표정으로 얼굴을 계속 들이대니, 하려던 말은 하지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문이 막혔다.

 

 “이제 어디가?”

 

 “집 가야지.”

 

 “집은 묘시마을이지?”

 

 “어떻게 그걸...”

 

 “아까 희건이라는 애가 알려줬어. 나도 거기에 사는데 같이 가도 될까?”

 

 진짜 내 친구지만 이렇게 눈치가 없다니, 앞날이 걱정된다. 나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안될까?”

 

 하필 또 저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또 약해진다.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

 

 “하... 그래, 같이 가자.”

 

 “응!”

 

 잠시 후, 버스가 도착했고 전학생과 함께 뒷자리에 같이 앉았다.

 

 “저기,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응, 뭔데?”

 

 “날 정말 알고 있어?”

 

 “응.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

 

 오래 전?

 

 “언제부터?”

 

 “한 10년 전? 11년 전? 그때 넌 여기에 안 살았잖아.”

 

 전학생의 말대로 난 8살이 되던 해에 이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이유는 부모님께서 하시던 사업이 망했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우리 식구들은 할머니 댁에서 지내게 되었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셔서 이제는 집에 안 계신다.

 

 “나를 어디서 본 거야?”

 

 “놀이터.”

 

 “놀이터?”

 

 “전부 다 잊었구나...”

 

 전학생은 또 다시 아침에 보았던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기억해! 놀이터에서 마주친 거 맞지?”

 

 “거짓말 안 해도 돼. 넌 옛날에도 거짓말하면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어.”

 

 몰랐었다. 아니, 그보다도 전학생이 말하는 것은 들으면 들을수록 거짓말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겐 그 당시의 기억이 흐릿했기 때문에 전학생의 말을 들을수록 그랬던 거 같기도 하면서 아닌 거 같기도 했다. 전학생이 옛날의 나를 이렇게까지 기억해주는데 정작 나는 하나도 기억을 못하니, 전학생에게 왠지 미안해졌다.

 

 “미안...”

 

 “그런 표정 짓지 마.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기억해낼 거야.”

 

 나보고 그런 표정을 짓지 말라면서, 정작 본인이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너는 집이 어디야?”

 

 “나도 조금 걸어가면 있어. 위험해지기 전에 빨리 들어가자.”

 

 “잘 가.”

 

 “응! 내일 보자~”

 

 오늘따라 너무 쉽게 지친다. 원인은 역시 전학생이다. 갑자기 모르는 애가 전학을 오더니 나를 안다고 했다. 처음에는 잘생긴 외모에 혹했지만, 지금은 이상한 사람에게 엮인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집에 가면 전학생에 대해 알고 있는지 부모님께 물어봐야겠다.

 

 “다녀왔습니다.”

 

 “어, 왔어? 먼저 씻고 와. 밥 다 되려면 시간 좀 걸리겠어.”

 

 “응.”

 

 쿵-

 

 가방을 방에 던져놓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바로 샤워하러 갔다.

 

 쏴아아아-

 

 “후...”

 

 시원한 물이 내 몸을 감싸듯이 흘러내린다. 머리부터 양손, 양발의 끝까지 흘러내리면서 내 몸에 있는 열기와 땀을 씻어내려 갔다. 오늘 하루 걱정했던 일, 받았던 스트레스에게서 해방되는 느낌이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무서운 일이 안 일어나는 거 같았다. 집이라고 해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밖보다는 나을 것이다. 만약 그때와 같은 일이 또 다시 일어난다면... 정말 패닉에 걸릴지도 모르겠다.

 

 뚝-

 

 몸과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젖은 몸을 닦고, 옷 입고 나가니 거실에는 아빠가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어, 일찍 왔네?”

 

 “응.”

 

 ...

 

 아빠와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분명 피가 이어진 가족은 맞지만 여러모로 불편하다. 이유는 아빠의 열등감과 가부장적 마인드 때문이다.

 

 아빠는 열 명의 남매 중에서 7번 째였고, 이 탓에 사랑도 크게 받지 못하고 뭐든 열심히 했어야 했다. 이 때문에 열등감이 계속 쌓여갔었다. 문제는 이렇게 축적된 열등감이 폭발을 한 게 지금의 가정에서 폭발을 해버렸다. 결국 그게 아빠의 가부장적 마인드를 만들고 말았다. 특히나 내가 어렸을 때 망한 사업 때문에 거의 3~4년간은 부부싸움이 일상이 될 정도로 잦았었다.

 

 요즘은 체념을 하신건지, 힘이 떨어지신 건지는 모르겠다. 옛날에 비하면 소통을 하는 횟수는 늘었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불편한 아빠다.

 

 “은지야, 반찬 들고 가줘.”

 

 “응.”

 

 탁- 탁-

 

 “잘 먹겠습니다.”

 

 조용하다. 항상 밥 먹을 때가 되면 TV에서 나오는 소리를 제외한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한 가지 내가 알고 싶은 점이 있기에, 이 정적을 깨트렸다.

 

 “나, 한 가지 궁금한 거 있어.”

 

 엄마와 아빠는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예전에 서울에서 살 때, 집 앞의 놀이터에서 내가 같이 놀았다는 남자애 알고 있어?”

 

 “아, 네가 맨날 말하던 그 아이?”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전학생의 말은 사실인 거 같다.

 

 “알고 있어?”

 

 “어. 그 당시에 네가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왔잖아. 돌아오면 항상 그 남자애 이야기만 하고.”

 

 “아... 그렇구나.”

 

 “그거 때문에 네가 미친 줄 알았지.”

 

 아무런 말도 없이 밥을 계속 먹고 있던 아빠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

 

 “왜? 사실이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미친 줄 알았다니?”

 

 엄마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래,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우린 그때 네가 귀신에 홀린 게 아닌가 싶었어.”

 

 “... 왜?”

 

 “전에 한번은 그 남자애도 볼 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너를 데리러 갔는데, 네가 혼자서 놀면서 아무도 없는 허공에 혼잣말을 하고 있었어. 나는 뭔 일인가 싶어서 너한테 갔더니, 네가 평소에 말하던 남자애라고 소개를 시켜주더라고. 아무도 없는 허공을 가리키면서 말이야.”

 

 지금 엄마가 하는 말은 해답을 찾으려던 나에게는 오히려 큰 혼란을 야기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엄마의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떤 의미인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단, 확실한 것은 어제에 이어서 이번에도 알 수 없는 일에 휘말리게 된 거 같다.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니야! 다시 크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조금만 더 크게!!!”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그래! 그렇게 해야 노는 게 재미있다고. 그럼 이제 시작... 엄마!”

 

 “은지야,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어?”

 

 “얘가 내가 말한 예쁜 애야!”

 

 “안녕하세요.”

 

 “... 그게 무슨 소리야? 빨리 집으로 가자!”

 

 “아, 싫어! 같이 놀 거야!”

 

 “시끄러워! 빨리 가자!”

 

 “아! 싫어! 싫어!!!”

 

 “...”

 

 ***

 

 최근 들어서 알 수 없는 꿈을 자주 꾸는 거 같다. 어떤 꿈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꿈처럼 다음 날이 되면 잊혀졌다. 하지만 꿈속에서 느꼈던 감정만은 남아있었다.

 

 오늘은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웠다. 그리고 매우 슬펐다. 나는 눈을 떴다. 뺨 위로 오랫동안 참은 거 같은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도대체 어떤 꿈이었기에 이리도 슬픈 걸까?

 

 한참을 울다가 일어났다. 다행히도 이런 슬픈 감정은 눈물이 마를 때까지 계속 울다보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에 얼굴을 비춰보니 너무 울어서 눈과 뺨이 퉁퉁 부었었다.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씻고, 옷도 입고 화장은...

 

 ‘오늘도 안 하고 가면 어제처럼 연지가 물어보겠지?’

 

 부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눈시울과 뺨이 빨개진 것만이라도 화장으로 덮고 가야겠다.

 

 “이 정도면 모르겠지?”

 

 화장을 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된 만큼 평소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버스정류장에 아슬아슬하게 도착은 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평소보다 약 1.5배에서 2배 가까이는 되는 거 같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버스를 포기하고 바로 택시를 타고 가야할 거 같다.

 

 “안녕?”

 

 내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빠르게 몸을 돌렸다. 나를 부른 것은 전학생이었다.

 

 “이번에는 와악! 안하네?”

 

 그 말을 듣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전학생에게서 떨어졌다.

 

 “시끄러워...”

 

 전학생은 실없는 웃음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표정을 바꾸고 다가왔다.

 

 “뭐, 뭐야?”

 

 전학생은 내 바로 앞에서 멈추고는 팔을 들어 올렸다. 나는 전학생을 째려보았다. 전학생은 손을 내 머리 위로 올렸다.

 

 “고생했어.”

 

 이 상황은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너 울었던 거 같아서 위로해주려고 했지. 인터넷에서 보니까 이러면 여자들에게는 위로가 된다던데, 아니야?”

 

 “어, 아니야.”

 

 나는 단호하게 말하면서 내 머리 위로 올렸던 전학생의 손을 뿌리쳤다. 전학생은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버스다!”

 

 맨날 듣던 양치기 소년의 목소리다. 나는 도로를 쳐다보지 않고, 양치기 소년을 째려보았다. 그런데 양치기 소년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나는 무언가가 잘못 되었나 싶어서 도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있을 수 없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정상적이라면 이 시간에는 버스 한 대만이 와야 정상이지만, 지금 내 눈앞에는 버스가 네 대, 그것도 전부 다 우리 학교로 가는 버스들이었다. 내 행운이 이 정도로 효과가 좋은 것이었나 싶어서 어리둥절했다.

 

 “자, 학교 가자!”

 

 전학생은 해맑게 미소를 짓더니, 내 손을 낚아채서 도착한 버스 중 한 대로 나를 데려갔다.

 

 “어? 어.”

 

 전학생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특이하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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