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뭐하는 곳이야?”
“나만의 비밀장소? 숨바꼭질을 할 때 여기에서 자주 했었어!”
“많이 어두운데 위험하지 않아?”
“괜찮아! 내가 여기서 1년 넘게 놀아서 이젠 다 알아. 나만 믿고 따라와.”
“응...”
쿵-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쿵-
“저기에는 원래 구멍이 없었는데?”
쿵-!
“꺄악! 뭐야!”
“한 번만 더 부수고 잠시 쉬자!”
“네엡!”
스으으윽-
“어, 어? 안 돼!!!”
쿵-!
***
“다들 고생했어. 조심히 들어가~”
“응. 내일은 푹 쉬고 월요일에 보자!”
우린 마을에 피곤한 상태로 마을에 도착해선지 별말 없이 인사만 하고 바로 헤어졌다.
“넌 나랑 같이 가자?”
“아니야. 너희 부모님이 걱정하시잖아. 내가 나중에 찾아갈게.”
수호도 그 말을 남기고 제 갈 길을 갔다. 나중에 찾아온다니 어떻게 찾아온다는 말일까? 수호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위치도 모를 텐데...
그래도 아마 거짓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수호의 말을 믿고 집으로 바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왔어?”
집에 돌아오니 거실의 불은 환하고 부모님 두 분 다 깨어있으셨다.
“어? 너 그 상처 뭐야?”
아차. 아까의 사고 때문에 상처가 난 것을 잊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목에 난 상처를 감추었지만, 팔을 드는 행위가 오히려 내 상처를 더 보여주는 상황이 되었다.
“뭐야? 목, 귀 뿐만 아니라, 팔까지 상처가 있어? 어쩌다가 이렇게 다친 거야?”
잠시 고민을 했다. 그대로 말하면 더 걱정하시니 대충 둘러대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실은 아까 너무 신나게 놀아버린 바람에 다리에 힘이 풀려서 넘어졌었어.”
짝-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손바닥은 내 등짝을 때렸다.
“에구, 진짜! 그러게 좀 곱게 놀지. 칠칠맞게 그게 뭐야.”
짝-
“네가 놀러가서 이렇게 다치고 오면 내 마음이 편하겠어?”
“아! 알았으니까. 그만 때려!”
한 번 더 위로 올라간 엄마의 팔을 급하게 붙잡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한숨을 약간 쉬었다.
“밥은? 먹었어?”
“응. 먹고 왔어.”
“후... 알았어. 피곤할 텐데 씻고 빨리 자.”
“응.”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갈아입을 여벌옷을 챙기고 샤워를 하러 갔다. 옷을 벗으면서 거울을 보니 상처 부위에 붙은 의료용 테이프가 눈에 띄었다. 샤워할 때 이것들이 있으면 안 되니 이제 뜯어야겠다.
치지직-
치료하기 전에 상처를 보았을 때 보다는 어느 정도는 말끔해진 느낌이다. 물론 잠시 붙여놨다고 해서 상처가 완전히 아물리는 없겠지만...
쏴아아아-
“앗!”
따뜻한 물이 상처 부위에 닿았다. 따끔한 통증이 상처 부위에서 느껴진다. 다행히 상처가 있는 부위는 점차 뜨거워지더니 곧 감각이 무뎌졌다. 따뜻한 한 방울, 한 방울이 내 몸을 타고 흘러 내려간다. 지금도 아까의 일을 생각하면 서늘해지면서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이렇게나 따뜻한 물이 한순간 차갑게 느껴질 정도다.
뚝-
샤워를 끝마치고 나오니 집 안의 불들은 전부 꺼져있었다. 부모님들도 내가 돌아온 것을 확인하셔서 이제 주무시는 거 같다. 난 방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다.
“도대체 언제 오려는 걸까?”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시간을 확인한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겼다. 나는 휴대폰을 다시 손에서 놓았다. 수호를 믿고 올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어야 하는 건지 고민했다. 오늘 하루는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다. 나는 지금 느끼는 피로감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찾아보며 버텼다.
영상을 보다가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이때 창문 밖에서 방 안으로 쏟아지는 달빛을 막는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이 그림자의 형태는 사람이다. 나는 수호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급하게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다.
“이수호! 왜 이렇게 늦었어!”
달칵-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림자의 정체는 수호가 아니었다. 얼굴에 이상한 복면을 둘러써서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적어도 수호처럼 큰 키는 아니었기에 알 수 있었다.
“누구세... 읍!”
복면을 쓴 사람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손으로 내 입을 막고 자신이 있는 쪽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어... 어?’
갑작스럽게 당겨져서 나는 창문의 뒤쪽으로 몸이 넘어가려 했다. 복면을 쓴 사람의 힘에 내 몸이 창문틀을 넘어서 끌려가고 있었다. 그 때, 내 입을 막고 있던 손이 사라졌다. 나를 잡아당기던 손도 없어졌지만 이미 내 몸은 반 이상 넘어갔기 때문에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멈췄다. 갑자기 나타난 수호가 넘어가던 나를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고... 고마워.”
“별 말씀을.”
수호가 나를 받아준 덕분에 나는 큰일 없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었다.
“방금 어떻게 한 거야? 너 어디서 나타난 거야?”
나는 창문에 바짝 붙어서 수호를 쳐다보았다. 그런 내가 부담스러운지 수호는 손사래를 치며 몸을 뒤로 뺐다.
“일단 진정하고 자리가 음... 네 방에 들어가도 돼?”
“응. 상관없어.”
수호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말 눈을 깜빡하는 순간도 아닌, 눈앞에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다. 나는 그 장면에 당황하여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았다.
“나 여기야.”
수호의 목소리는 내 등 뒤에서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수호는 나와 디자인이 비슷한 잠옷을 입은 채로 바닥에 앉아있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수호는 잠시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떴다.
“시간의 관리자.”
“어?”
“사람들은 내가 시간을 관리하고 지킨다고 해서 시간의 관리자라고 불러.”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야?!”
“그럼 방금 일어난 일은 믿어?”
“끙...”
시간을 관리하고 지킨다니... 전혀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안 믿을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수호의 주변에서 일어난 알 수 없는 일들을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직전까지도 내 눈으로 보았기에 부정은 할 수 없다.
“... 믿을게.”
“고마워.”
나는 심각했지만 수호는 그저 해맑게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럼 너... 아까 그 사람을 어떻게 한 거야?”
“이 세상에서 소멸 시켰어.”
“뭐?!”
“농담이야.”
소멸 시켰다는 농담이라니... 만약 진짜로 세상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가능할 거 같아, 소름이 끼쳤다. 나는 정색을 했다.
“그런 재미없는 농담 하지 말고 진짜 어떻게 했어?”
수호는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애써 웃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이 근처의 섬으로 보내버렸어.”
“아...”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난잡하다.
“혼란스러워?”
“응...”
“그럼 말로 하는 거 보단... 체험해볼래?”
“어, 어?”
“가자!”
수호는 내 손을 잡아당겼다. 나는 수호의 이끌림에 홀린 듯 따라갔다. 수호는 맨발로 창문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는 그런 수호에게 당황한 표정을 보이며 잠시 주춤했지만, 문제는 없다는 듯이 창문을 가볍게 넘어서 뛰어올랐다. 나 또한 몸이 가벼워진 것처럼 창문을 가볍게 뛰어넘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와!!!”
내 몸이 공중에 떠있다. 점점 올라가더니 어느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오니 떠오르는 것이 멈춘 거 같았다. 나는 하늘에서 땅을 쳐다보았다. 하늘에서 쳐다보는 묘시마을은 정말 예뻤다.
“와...”
“좋아?”
“응! 좋아! 여기서 이렇게 보니까 마치 시간이 멈춘 거 같아.”
“멈춘 거 맞아.”
“어?”
“잠시 저쪽으로 가볼까?”
수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우리의 몸은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면 있는 시내였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서 가게들의 불빛은 대부분 꺼졌지만 사이마다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이 오히려 영화에서 나올 법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도로 위의 자동차들이 도로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앞을 비추고 있다.
“어? 그러고 보니...”
나는 시선을 돌리며 주변을 관찰했다. 도로 위의 자동차부터 시작해서 몇 명 없는 인도의 사람들, 그리고 내 주변의 새들까지... 전부 멈춰있다. 나는 수호를 향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말했잖아?”
“거짓말이 아니었어?”
“난 거짓말은 안 해. 너한테는 절대로.”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시간이 멈춰있다. 수호의 말은 거짓이 아닌 진짜였다.
“가까이서 볼까?”
공중에 떠있던 내 몸이 미끄럼틀에 미끄러지듯 사선을 그리며 땅으로 내려갔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다 멈추어있다. 앞에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서 자세히 쳐다보았지만 눈동자의 움직임,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조차 없었다. 정말 멈춰있다. 나는 내 뺨을 쌔게 꼬집어보았다.
“아!”
역시 꿈이 아니다. 나는 신기한 나머지 그 자리에 서서 사람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이상한 점을 느꼈다.
“정말 멈춰있는 거 맞아?”
“눈치 챘구나?”
내가 이런 질문을 한 이유가 있다. 아주 미세하지만 조금씩 움직임이 보인다. 하지만 계속 한 물체를 쳐다보지 않는다면 알아채지는 못할 점이었다.
“사실 나도 못하는 게 있어. 첫 번째는 네가 방금 알아차린 것처럼 시간을 완전히 멈추지는 못해. 아주 천천히 흘러가게 해서 멈춘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최대야. 그리고 두 번째는...”
수호는 말하려던 것을 멈추었다. 꽤나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두 번째는?”
“... 두 번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 사람들이 보통 이런 말을 하지?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고... 그건 관리자인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야.”
“왜?”
“시간을 마음대로 돌리게 된다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진다는 이유일 걸?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아무래도 윗분들 생각이라서 말이야...”
“윗분들이라니?”
수호는 내 어깨를 잡고 내 몸의 방향을 틀었다.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조금 더 구경하자.”
수호는 말을 돌리며 강제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했다. 묻고 싶은 말은 산더미 같이 많았지만 수호 나름의 사정도 있을 거라 생각되어, 굳이 캐묻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걷던 와중에 차들이 한참을 지나가다가 멈춘 도로로 방향을 꺾었다. 나는 발걸음을 급히 멈췄다.
“여기는 좀...”
어둡고 사람이 없다. 불빛은 오직 가로등 불빛과 자동차 불빛밖에 없다. 이 상황을 나는 얼마 전에 이 몸으로 직접 겪었었다. 그 때의 장면들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직은 극복하지 못했다.
“그때의 트럭 때문이야?”
나는 수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호를 쳐다보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설마...?”
“내가 구해준 거야. 그거.”
시간을 멈추고, 긴 거리를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사람. 이러한 조건으로 사람을 찾아본다면 분명 수호 말고는 없다. 하지만...
“나를 구해준 사람은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금색이었어.”
수호는 내 말에 잠시 웃더니,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수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까맣던 수호의 머리카락은 한 가닥, 한 가닥씩 금색으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수호의 머리는 곧 금색으로 덮어졌다.
“어... 어?”
“칭찬 고마워~”
“그럼... 정말 네가 날... 구해준 거야?”
“응.”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고맙다고 해맑게 웃을까? 아니면 무서웠다고 수호에게 안겨서 펑펑 울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때 수호가 나를 감싸듯 안았다. 수호는 말없이 나를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걱정 하지 마. 너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지켜줄 거야. 너는 내 인생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니까. 네가 나라는 사람을 만든 거야.”
“나는 너를 기억 못 해.”
“네가 나를 기억할 때까지 목숨을 걸어서 너를 지킬게.”
수호는 이후에 내 귓가에 들릴 듯, 말 듯 작게 말했다.
“설령 내가 모든 ...을 다 잃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수호의 마지막 말을 명확히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마지막 말을 하는 수호의 얼굴은 매우 슬퍼 보이면서도 비장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