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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새에서
작가 : 임완
작품등록일 : 20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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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날의 영상
작성일 : 18-11-30     조회 : 330     추천 : 0     분량 : 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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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하지?”

 

 “응. 조금.”

 

 “당연할 거야. 세상의 시간은 멈춰있어도 너의 시간은 멈춰있는 게 아니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응.”

 

 수호는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떠나려했다.

 

 “집은 어디야?”

 

 수호는 방긋 웃으며 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늘?”

 

 “응.”

 

 “알았어. 그럼 잘 가. 월요일에 다시 보자.”

 

 “응!”

 

 수호는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정말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놀라울 다름이다. 아직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다음으로 기약하는 게 나에겐 좋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너무 지쳤다. 이 상태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듣다간 기억도 문제지만 내가 도중에 잠들어 버릴 거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수호를 한참 볼 날이 많을 거라 예상되기 때문에 급하게 생각 안 해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후...”

 

 내 몸에서 숨이 한번, 두 번 들어왔다, 나갔다하니 온 몸의 긴장은 풀리면서 눈이 감겼다.

 

 ***

 

 “괜찮아...?”

 

 “... 어?! 어떻게 된 거야?”

 

 “시간을 멈췄어.”

 

 “어? 진짜네? 돌이 떠있어. 네가 한 거야?”

 

 “응.”

 

 “와! 너 대단하다!!! 날 지켜준 거야?”

 

 “어... 어어??? 뭐하는 거야?”

 

 “날 지켜준 왕자님에게 주는 상? 고마워!”

 

 “... 아니야. 나야 말로 고마워.”

 

 ***

 

 정말 주말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토요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정말 알차게도 정신이 피폐해 졌었다. 그 탓인지 일요일은 정말 잠과 밥으로 하루를 다 보냈다. 덕분에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도 정말 정신이 맑았다.

 

 “아...”

 

 물론 정신만 맑을 뿐,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은 누가 먹다가 남긴 단팥빵 같았다. 찌그러져 있는 주제에 겉은 윤기가 반지르르하다. 오늘도 어느 정도의 화장은 하고 가야겠다. 나는 씻기 위해서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일어났어?”

 

 “응... 어어어?!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집 앞에 있으니까 어머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셨어.”

 

 수호는 입 안 가득 우물거리면서 잼이 발린 식빵 한 조각을 나에게 들어 보여주었다.

 

 “그나저나 이거 되게 맛있다!”

 

 “어이구. 잘 먹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여기 많으니까 더 먹어, 더.”

 

 “감사합니다!”

 

 수호는 엄마가 잼을 발라주는 대로 받아서 순식간에 뱃속으로 처리하는 진기한 광경을 보여주었다. 나는 빠른 발걸음으로 엄마에게 다가가서 귓속말로 말했다.

 

 “엄마! 쟤를 왜 데려와!”

 

 “그럼 어떡해. 집 앞에서 너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데 집 안으로 들여야지. 이렇게 잘 먹으니 얼마나 보기 좋아? 게다가 잘생겼고.”

 

 엄마의 말은 그냥 잘생겨서 데리고 왔다고 이해하면 될 거 같다. 하여간 저 외모는 나이를 불문하고 여성에게는 전부 통하는 얼굴인가보다. 나는 수호를 째려보았지만, 수호는 아이 같은 미소로 되받아쳤다.

 

 “넌 얼굴 그만 보고 빨리 씻어. 친구가 기다리잖아.”

 

 “네...”

 

 아침부터 발걸음이 되게 무겁다. 난 터덜터덜하게 화장실로 가서 씻고, 머리카락도 말리고, 방 안에서 느긋하게 옷을 입고 화장까지 끝마치고 거실로 다시 나왔다.

 

 “생각보다 엄청 빨리 준비했네? 의식하나봐?”

 

 “어?”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기억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아까 거실에서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고작 3분 정도만 흘렀다. 나는 수호를 쳐다보았고, 수호는 여전히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골칫덩이를 만났다.

 

 나는 수호의 손목을 잡고 잡아당겼다.

 

 “야! 이제 가자. 언제까지 먹을 거야, 넌?”

 

 “하나만, 하나만 더!!!”

 

 “다녀오겠습니다!”

 

 우리 집에서 은근슬쩍 기생하고 있던 식충이를 집 밖으로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하아... 하아... 너 아이스크림 말고는 안 먹는다며?!”

 

 “어머님이 하나 주시니까 먹었는데 맛있어서 그만...”

 

 수호는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정말 이런 애가 신이 맞는 건가 싶었다.

 

 “그만 먹고 가자!”

 

 “응!”

 

 내가 학교를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수호가 조작을 해놓은 덕분에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음에도 아주 여유롭게 시간이 남았다. 둘이 나란히 서서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잠은 잘 잤나보네?”

 

 “응. 너무 푹 자서 피곤해... 넌?”

 

 “난 잠을 안 자. 시간을 계속 관리해야 해.”

 

 “아, 그렇구나. 시간을 관리하는 게 무슨 일을 하는 거야?”

 

 “별 거 없어. 시간이 제대로 흐르고 있는지 정도만 확인하는 거야.”

 

 “자세히 말해줘.”

 

 “음... 물건은 시간이 흐르면 부식되고, 생물은 흐르면 나이를 먹잖아? 그것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도록 관리하는 거야. 알겠어?”

 

 나는 수호의 말이 이해가 될 거 같으면서도 되지 않았다. 이런 내 머릿속을 한 가지 키워드가 지나갔다.

 

 “나이...”

 

 나는 걸으면서 휴대폰을 꺼내어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였다.

 

 “뭐 해?”

 

 “찾았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수호의 얼굴에 들이댔다.

 

 “이거 네 짓이지?”

 

 수호는 잠시 기사를 읽는 듯해 보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수호의 눈동자는 초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어??? 이거... 나 맞는 거 같은데? 뭐야?”

 

 “너 일 똑바로 안 하면 위쪽에서 뭐라고 말 안 해?”

 

 “글쎄...? 별말은 없는 거 같네. 하하.”

 

 “너 정말... 어휴.”

 

 역시나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기이한 성장사건은 수호의 만행이었다. 시간을 관리한다는 중직인데 태만이라니... 위기의식은 있는지 궁금하다. 수다를 떠는 와중에 정류장에 도착했다. 어김없이 사람은 징그럽게도 많았다.

 

 “어! 버스!”

 

 버스라는 키워드에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은 입력된 명령어처럼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 목소리의 주인은 양치기 소년인 만큼 금방 원성이 터져 나왔다.

 

 “아! 진짜 짜증나!”

 

 “쟤는 관심이 부족한 건가?”

 

 “야! 작작해!”

 

 많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화를 냈지만 양치기 소년은 원성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휴... 쟤는 언제쯤 철이 들까?”

 

 “다들 화내는 이유가 뭐야?”

 

 “계속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니까 그래. 어디 한 두 번이어야지.”

 

 수호는 내 말을 듣고 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도로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버스 4대가 버스정류장을 향하여 달려왔다.

 

 “이젠 거짓말이 아니지?”

 

 “너 그렇게 막 써도 되는 거야?”

 

 “이 정도는 문제없을 거야. 몇 년간 계속 했었으니까.”

 

 몇 년간...?

 

 “설마 내가 지각하려 할 때마다 버스 오던 일이 네가 한 짓이야?”

 

 “응.”

 

 “세상에...”

 

 버스라고만 해도 내가 중학생 때부터 계속 이랬으니 3년 전이다. 애초에 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 일들이 사실은 수호가 손댄 일이었던 걸까?

 

 부우우웅-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수호와 나는 버스를 탑승하러 긴 대기 줄에 이어서 섰다.

 

 삐빅- 감사합니다.

 

 “너 혹시 언제부터 나한테 은근슬쩍 도움을 준 거야?”

 

 “몇 년 전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너랑 헤어질 때부터?”

 

 즉 내가 서울을 떠날 때부터니 거의 10년 전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조금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네 말대로 10년 전부터 도움을 줬다고 치자. 그럼 10년 동안 나를 도와주면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있었던 이유가 뭐야? 그리고 왜 지금은 모습을 드러낸 거야? 보고 싶었다며?”

 

 나의 쉴 틈 없는 질문에 수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는 거짓말 절대 안한다며.”

 

 “그게... 너한테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

 

 “무슨 말이야?”

 

 “만약에 이걸 네가 듣는다면 넌 제 정신을 유지 못할 수도 있어.”

 

 도대체 어느 정도로 심각한 내용이기에 제 정신을 유지 못한다는 걸까? 수호의 경고를 듣고 나니 듣기가 꺼려졌다.

 

 “많이 심각해?”

 

 “... 응.”

 

 “후... 알았어. 그럼 나에게 잠시 시간을 줘. 마음의 준비를 할게.”

 

 “응. 준비가 끝나면 말해줘.”

 

 학교까지는 약 5분 정도가 남아있었지만 서로 아무 말 없이 창문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며 묵묵히 서있었다.

 

 ***

 

 “은지야!!! 사건이야! 사건!!!”

 

 아침부터 연지가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기에 그럴까? 벌써부터 피곤해진다.

 

 “이번엔 또 뭐야?”

 

 “이거 봐, 이거!!!”

 

 연지는 나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에 나오는 건 연지가 자주하는 SNS였다. 연지는 한 계정에서 올라온 영상을 틀었다. 시끄러운 사람들의 소리와 함께 영상이 재생되었다. 배경은 우리가 갔었던 놀이공원이다.

 

 “사고 났던 영상이야?”

 

 “쉿! 끝까지 봐봐.”

 

 뻔한 내용이겠지만 그래도 보았다. 영상이 촬영되고 있는 때는 보아하니 나와 수호가 한참 바람에 맞서서 버티고 있을 때인 거 같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느꼈다.

 

 “뭐야? 왜 내가 탄 곳만 저렇게...”

 

 영상에서는 관람차의 부스가 흔들리고 있었다. 문제는 나와 수호가 탑승한 곳만 흔들렸다는 것이다. 다른 것들은 가만히 있었다. 오직 하나만 심하게 요동을 쳤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이다음 장면을 봐.”

 

 연지의 말대로 계속해서 영상에 집중했다. 요동을 치는 관람차 부스에서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주변에 울렸다. 분명 돌이 부딪혀서 창문이 깨질 때다. 이때 연지가 영상을 멈췄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화면의 구석을 가리켰다.

 

 “여기야! 여기!!!”

 

 연지가 가리킨 곳은 허공이었다.

 

 “뭘 말하려는 거야?”

 

 내가 이해를 못하자 연지는 답답한 표정을 보이며 잠시 휴대폰을 들고 가서 무언가를 손대는 거 같았다.

 

 “이러면 보이지?”

 

 연지의 휴대폰은 아까의 장면이 있었지만 조금은 달랐다. 편집을 하여 밝기와 노출을 조절한 거 같다. 나는 연지가 가리켰었던 위치를 다시금 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연지가 가리킨 곳에는 긴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저 위치는 땅일 수가 없으니 저 여자는 공중에 떠있다는 의미가 된다.

 

 “뭐야, 이건?”

 

 나는 놀란 표정으로 연지를 쳐다보았다.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 이 영상이 SNS에 엄청 퍼지고 있어!”

 

 게시물을 공유한 횟수가 1000회 이상이고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수호가 떠올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수호는 나와 같이 교실에 들어왔지만, 수호는 보이지 않았다.

 

 “뭐야? 수호 어디 갔어?”

 

 “수호는 왜?”

 

 “아, 아무것도 아니야.”

 

 수호가 영상을 보자마자 사라졌다는 건 무언가 짐작 가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그 상황, 영상 속의 그 여자는 어떤 것의 관리자에 해당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

 

 수호가 돌아온 것은 학교를 마치고 하교할 때였다. 수호는 정문 앞에서 우리들을 맞이했다. 수호의 표정은 꽤나 어두웠다.

 

 “너 어디 갔다 왔어?”

 

 “잠깐 위쪽에.”

 

 수호는 내 등 뒤로 어색하게 눈동자를 계속 움직였다. 수호의 시선으로 고개를 뒤로 돌리니 연지와 희건이가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

 

 “연지야? 나 아무래도 수호랑 따로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아. 노래방은 다음에 가자.”

 

 “에이~ 요즘 너무 수호랑 딱 붙어 지내는 거 아니야? 가끔은 같이 놀자~”

 

 “나도 부탁할게.”

 

 수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연지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아, 응... 마음껏 이야기 나눠... 먼저 갈게!”

 

 연지는 얼굴에 홍조를 띄운 채로 희건이를 데리고 저 멀리 사라졌다.

 

 “위쪽에 갔다 온 거야? 그 여자는 누구야?”

 

 “그 전에 너에게 묻고 싶어. 너는 마음의 준비를 끝마쳤어?”

 

 수호는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린 상태로 나에게 물었다.

 

 “그게 이번 일하고 관련이 있어?”

 

 “응. 관련이 깊어.”

 

 저렇게 까지 말하니 조금은 무서워졌다.

 

 수호가 나를 지켜보며 도와줬던 이유.

 

 모습을 감추며 지내다가 어느 순간부턴가 내 앞에 나타난 이유.

 

 내가 계속해서 겪고 있는 알 수 없는 기이한 현상들.

 

 그리고 사고 현장에서 촬영된 관리자로 추정되는 여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들이다. 겁이 안 난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이유도 모른 체 매번 목숨을 겨우겨우 구제 당하고, 언제 위협을 또 다시 받게 될지 무섭다. 내가 왜 이런 일들을 겪게 된 건지 알고 싶다. 어쩌면 나는 이 일의 제 3자, 관련자가 아니라 주인공일지도 모르겠다. 이젠 정면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응. 준비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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