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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새에서
작가 : 임완
작품등록일 : 20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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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말하지 않은 사실
작성일 : 18-12-03     조회 : 344     추천 : 0     분량 : 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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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호는 굳었던 표정을 펴고 나를 다시 보았다.

 

 “그럼 내 공간에 너를 초대할게.”

 

 수호는 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앞으로 조금씩 걸어갔다.

 

 “어?!”

 

 앞으로 걸어가던 수호의 몸은 마치 투명한 문을 넘는 것처럼 사라졌다. 나는 수호를 따라서 보이지 않는 문을 통과하는 것이 무서웠지만, 잡고 있는 손의 따뜻함에 의지하여 나도 문을 넘어섰다. 문 너머에는 새하얀 공간이 있었다. 정말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공간, 넓이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얗다. 그 공간에는 지구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구체가 공중에 떠있었다.

 

 “여긴 어디야?”

 

 수호는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나를 향해 돌아섰다.

 

 “우리 집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

 

 “아... 이건 아닌가?”

 

 “여기가 네가 사는 집이야?”

 

 “응...”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보통의 집에 있는 물품들은 당연하고 침구류조차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지구모형을 제외하고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하하... 그 정도의 반응이야? 조금 상처 받을 거 같은데.”

 

 “아! 미안.”

 

 “이미 늦었어.”

 

 수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우는 시늉을 했다.

 

 “여긴 그래서 어디야?”

 

 “우리 집.”

 

 “아니, 아니! 위치가 어디야?”

 

 수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는 턱을 괴었다.

 

 “아... 음... 어디일까?”

 

 “그게 뭐야!”

 

 수호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그건 나도 정확히 모르겠어. 굳이 위치를 정하자면... 시간의 틈새?”

 

 “전혀 모르겠어.”

 

 “끙... 그게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이 시간의 틈새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들어올 수 있거든.”

 

 “혹시 아까 통과한 문 같은 그게 틈새야?”

 

 “응! 이곳에 들어올 때 시간의 틈새를 통해서 들어왔어.”

 

 정말 비현실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내가 다행히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라서 다행이지, 만약에 논리적이고 고지식한 사람이 이런 일을 겪는다면 하루 종일 따졌을 거 같다.

 

 “그래서 나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뭐야?”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또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야하기도 하고. 적당한 장소가 여기 밖에 생각이 안 났어.”

 

 “아... 그렇구나.”

 

 “일단 계속 서있으면 불편하니까 저쪽에서 편하게 앉자.”

 

 수호는 지구모형을 가리켰다. 나는 수호를 따라서 지구모형까지 걸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소파가 생겨나고, 탁자가 생겨났다. 나는 그것을 보고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호는 나의 반응이 웃긴 거 같았다.

 

 “여긴 내 공간이라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다 할 수 있어.”

 

 “예를 들면 이런 것도 가능하고.”

 

 나는 내 뒤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보았다. 내 뒤에는 수호가 있었다.

 

 “어?!”

 

 나는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돌렸다. 정면에도 수호가 있었다.

 

 “뭐야, 이게?!”

 

 “말했지? 이 공간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만들 수 있는 거야???”

 

 “만들 수는 있어. 하지만 인격은 존재하지 않아.”

 

 “무슨 소리야?”

 

 “꼭두각시 같은 거야. 사람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그들에게 인격은 존재하지 않아. 내가 생각하는 대로만 행동해. 그리고 이 공간에서만 존재할 수 있어.”

 

 “아...”

 

 비록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지는 못해도 사람을 만든다는 자체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 정도면 신이라고 불러야하지 않을까?

 

 “에이~ 그래도 나는 신이 아니야.”

 

 “어?! 어떻게 알았어?!”

 

 “이미 이 공간에 들어온 이상, 너도 내 일부 중 하나가 된 거야. 네 생각을 나도 들을 수 있게 된 거지.”

 

 “기분 나빠... 나 나갈래!”

 

 나는 내 생각을 수호가 엿듣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났고 일어나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왔던 문은 이미 사라진 거 같았다.

 

 “미안해! 안 들을게! 게다가 이번 이야기는 무조건 여기서 해야 해.”

 

 “... 왜?”

 

 “바깥에 있으면 다른 관리자들이 엿보거나 들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여기는 내 공간이니까 외부에서는 관여 못 할 거야. 아마도.”

 

 “그런 거라면... 알았어.”

 

 나는 다시 소파로 발을 돌려서 자리에 앉았다.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콜라.”

 

 “자, 마셔.”

 

 탁자 위에는 눈을 깜빡이고 나니 콜라가 담겨있는 와인 잔이 생겨나 있었다. 이쯤 되면 나도 익숙해졌는지 큰 반응 없이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꿀꺽- 꿀꺽- 탁-

 

 “자, 이제 말해줘. 준비 다 됐어.”

 

 “후... 어디서부터 말을 해줘야할까?”

 

 수호는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다. 나도 수호를 따라서 고개를 돌리니 벽에 빔 프로젝터를 쏜 것처럼 화면이 나왔다. 그 화면에서는 우리들이 아침에 보았던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여기!”

 

 수호의 말과 동시에 동영상은 일시적으로 멈췄다. 멈춘 장면에는 검은 색의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공중에 떠있었다.

 

 “저 여자...”

 

 “관리자지?”

 

 나는 수호의 말을 가로챘다.

 

 “응. 아마도...?”

 

 내가 생각한 것과는 반응이 다르다.

 

 “아마도는 뭐야?”

 

 “그게... 나도 추측만 하고 있어.”

 

 “무슨 소리야?! 같은 관리자인데 왜 그걸 모른다는 거야!?”

 

 수호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관리자들끼리는 서로를 만나면 안 돼. 그러니 서로를 몰라. 존재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어. 나머지는 전부 추측이야.”

 

 “그럴 수가...”

 

 “그래도 저 여자가 누군지는 대충 알 거 같아.”

 

 “누군데?”

 

 “죽음의 관리자.”

 

 죽음의 관리자? 수호가 시간을 관리하듯 저 여자는 죽음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일까?

 

 “그걸 어떻게 알았어?”

 

 “하... 여기서 내가 너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 이유야. 정말 듣고 싶어?”

 

 마음의 준비는 이 공간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끝마쳤다. 일말의 두려움이라도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내 심장을 누군가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심장의 고동이 손끝, 발끝에서도 확실히 느껴진다. 이젠 내 상황과 운명에 마주해야 한다.

 

 “응. 부탁할게.”

 

 “알았어. 나는 이 사실을 오랫동안 너에게 숨기려고 했었고, 솔직히 지금도 네가 이 사실을 몰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하지만 이젠 숨기지 못할 상황이 되었고, 무엇보다 네가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고 하니 나도 너를 믿고 말할게.”

 

 내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었고 손발은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수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너는 사실 오래 전에 죽었어야 하는 사람이야.”

 

 “...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오래 전에 죽었어야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말 그대로야. 너는 원래 죽었어야 했어. 혹시 살생부라는 걸 알아?”

 

 살생부란 단어 그대로 죽일 사람과 살릴 사람이 적혀있는 책이다. 책은 유일하게 저승에만 한 권이 존재하고 분명 염라대왕이 관리하는 책이라고 알고 있다.

 

 “응. 대충은 알고 있어.”

 

 “그 책에는 죽일 사람, 살릴 사람이 적혀있어. 즉, 생명과 관련된 책이야. 문제는 이런 살생부를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어. 그게 바로 삶의 관리자, 죽음의 관리자야.”

 

 “어? 조금 이상한 거 아니야? 삶의 관리자, 죽음의 관리자니까 즉, 2명이라는 말이잖아.”

 

 “그렇지.”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살생부는 저승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한 거야?”

 

 “네가 아까 말해줬잖아. 관리자들끼리는 서로를 만나면 안 된다고. 그럼 살생부는 어떻게 관리하는 거야?”

 “어... 어?! 그러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무래도 수호는 정말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던 낌새다.

 

 “정말 관리자들끼리는 서로를 만나면 안 되는 거 맞아?”

 

 “음... 그게 막 정해져 있는 건 아닌데, 과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시의 지구에서 살고 있던 생명들이 관리자들의 마음에 안 들었었나봐. 그래서 서로의 권한들을 사용하여 생명들을 몇 차례씩이나 갈아엎었대. 그것 때문에 분노한 신은 공간의 관리자를 제외하고 다 죽였다는 이야기야. 이것 때문에 관리자들끼리는 서로를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거고...”

 

 수호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 관리자들끼리는 정말 만나선 안 될 거 같다. 그저 본인들의 마음에 안 든다고 몇 차례씩이나 생명을 죽여서 바꾸다니... 옛날부터 들었던 빙하기, 운석 충돌, 노아의 방주 등... 많은 생명들이 죽어 나갔던 이야기들은 어쩌면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네 말대로라면 관리자들끼리는 오히려 서로를 피한다는 말이지?”

 

 “응. 맞아.”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두 가지밖에 없다.

 

 “그럼 지금 남은 가능성은 두 가지밖에 없네. 애초에 살생부가 한 권이 아니라 살부, 생부로 나뉘어져 있거나, 그게 아니면 삶과 죽음을 관리하는 사람이 합쳐서 한 명이거나. 이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다고 생각해.”

 

 우리는 서로의 생각에 깊이 빠졌다. 그러다가 둘 사이의 정적을 깨고 수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확실한 건 모르니까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자. 이야기가 다른 길로 잠시 새었지만 각설하고 계속 이야기할게.”

 

 “응.”

 

 “어찌 되었든 넌 원래라면 죽었어야 하는 사람이야. 약 10년 전에.”

 

 “그 때라면 너를 놀이터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응.”

 

 “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너는 원래 살생부에 요절할 운명이라고 적혀있었을 거야. 그것도 엄청 이른 나이에. 그 증거로 너는 10년 전에 놀이터에서 나를 보았어.”

 

 “그게 무슨 말이야?”

 

 “보통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저승사자를 볼 수 있다고 하잖아? 실제로 사람은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관리자를 눈으로 볼 수가 있어. 사람의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올수록 신과 가까워지게 되거든.”

 

 수호가 이전에 나에게 해주었던 말을 배경을 토대로 생각을 해본다면 10년 전, 놀이터에서 수호와 내가 만났을 때부터 나는 이미 죽을 운명이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면 엄마가 놀이터에서 수호를 못 봤다고 한 말도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른 사람들 눈에 다 보이잖아.”

 

 “지금은 내가 일부러 보이게 한 거야.”

 

 “아, 그렇구나... 하지만 난 지금 이렇게 살아 있잖아.”

 

 “응. 왜냐면 내가 10년간 너를 계속 지켰으니까.”

 

 “... 대체 왜? 무슨 이유로? 도대체 왜?! 네가 그런 고생을 하는 건데?”

 

 관람차 때의 일, 트럭에 치일 뻔한 일, 그 외에도 다양한 운이 좋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전부 수호가 한 일이 라는 걸 저번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려 10년간 나를 죽음이라는 운명에게서 지켜주고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도대체 나란 사람은 수호에게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도대체 수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전혀 수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저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했다. 10년이라는 세월동안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데 소나무 같이 변하지 않고 나를 지켜주었다는 사실이 나의 감정을 자극했다. 그런 수호가 오랜 고민을 하여 나에게 모습을 드러낸 건데 나는 수호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매몰차게 밀어냈었다. 지금이 돼서야 수호의 슬픈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미안하다. 내 자신을 원망한다.

 

 “전에도 말했었지? 네가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줬어. 나는 오히려 너에게 정말 감사하고 있어. 제발 나를 위해서라도 자책하지 말아줘. 응?”

 

 수호는 감정이 올라와서 눈시울이 빨개진 나에게 걸어와서 살포시 안아 주었다. 그 포근함에 내 속의 눈물은 눈 바로 밑까지 올라왔다. 자칫하면 쏟아진다. 정말 울보 같은 모습을 그만 보여주고 싶은데... 이번엔 정말 울고 싶지 않다. 나는 꾹 참아보려 애썼다.

 

 “울지 말고, 응? 내가 너를 위해서 구해준 만큼, 너는 나를 위해서 행복하게 살아주면 돼. 나는 그걸로 만족해.”

 

 수호의 저 말은 내 눈물을 사라지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극하여 결국 터지게 만들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도 나는 끝까지 참아보겠다고 소리를 죽여서 울었다. 그렇게 나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을 흘리고 있었고, 그런 나를 수호가 안고 나를 품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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