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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새에서
작가 : 임완
작품등록일 : 20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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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또 다른 관리자
작성일 : 18-12-07     조회 : 334     추천 : 0     분량 : 6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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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

 

 수호의 품속에서 안겨있던 나는 뒤늦게야 지금의 상황을 인지하고 황급히 수호를 밀어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호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왠지 수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어쨌든 저 여자가 죽음의 관리자라는 거잖아! 맞지?”

 

 “응.”

 

 “그럼 우리가 관람차에서 죽을 뻔했던 일을 포함해서 내가 계속 목숨의 위협을 받는 이유가 운명에 거스르기 때문이야? 죽음의 관리자는 계속 나를 죽이려 하고?”

 

 “그 말이 맞아. 그래도 걱정 하지 마! 넌 안 죽어.”

 

 “고마워.”

 

 나는 그러다가 주위를 급하게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내가 찾는 물건이 없어서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을 보고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너 혹시 지금 시간을 멈춰놨어?”

 

 “응. 너 늦게 돌아가면 어머님이 걱정하시잖아. 그래서 여기 들어오자마자 멈춰놨어.”

 

 “배려해줘서 고마워.”

 

 “별 말씀을. 데려다줄까?”

 

 “아니야. 집까지 가면서 조금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응. 저곳으로 나가서 걸어가면 학교 정문으로 이어질 거야. 잘 가~”

 

 수호가 가리킨 곳에는 매우 미세하게 아지랑이가 일고 있었다. 정말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이 이상함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나는 시간의 틈새로 걸어가서 통과했다.

 

 부우웅-

 

 그 장소를 통과하자마자 정말 학교 정문으로 되돌아왔다. 수호가 멈춘 시간은 완벽한 정지가 아니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불과 1~2초 정도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눈앞에서 잠깐 사라졌다면 일반인의 시선에서는 기괴한 일이 일어나서 놀라겠지만,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아무도 눈치를 못 챈 거 같다. 나는 안심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버스가 도착을 했고 나는 버스에 탑승했다.

 

 “어?!”

 

 여긴 버스가 아니다. 분명 버스의 문을 통과했지만 이곳은 버스가 아니다. 정신 사나울 정도로 알록달록한 공간이다. 나는 이 현상을 알고 있다.

 

 “수호야? 이수호!”

 

 “아~ 너를 지켜주던 사람의 이름이 이수호라고 하구나?”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곳엔 왼쪽 눈 밑에 점이 있고, 비단결 같은 보라색 긴 머리를 가진 우아하게 보라색 한복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

 

 “안녕~”

 

 “누... 누구세요?”

 

 “글쎄...? 누굴까? 넌 이미 알고 있지 않아?”

 

 난 이런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를 사람을 알고 있지 않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이미지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어느 정도 유추하고 있다.

 

 “... 관리자에요?”

 

 “빙고! 정답입니다!”

 

 여장남자처럼 보이는 관리자는 손바닥을 모아서 얼굴 옆으로 비스듬하게 들었다.

 

 “...”

 

 “아...? 이거 유행 아니었어? 예전에 TV에서 본 거 따라한 건데?”

 

 “죄송하지만 모르겠네요...”

 

 옛날에 인터넷에서 본 거 같기도 했지만 굳이 장단을 맞추고 싶은 느낌이 아니다. 솔직히 많이 부담스럽다.

 

 “그렇구나! 하긴 밑에 내려간 게 10년 정도 지났으니 모를 수도 있겠다! 괜찮아!”

 

 “아... 네...”

 

 내 눈앞에 흔들의자 두 개와 원목으로 보이는 탁자가 생겨났다.

 

 “서서 말하기도 이상하니, 차나 마시면서 이야기 할까?”

 

 “피곤한데 집으로 돌아가는 건 안 될까요?”

 

 “돌아가도 상관없어!”

 

 생각보다 순순히 보내준다.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 의심이 되지만 현재의 우선순위는 이 장소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몸을 돌려서 아까 들어왔던 문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이미 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보라색 관리자에게로 다시 몸을 돌렸다.

 

 “왜? 집에 가기 싫어?”

 

 “밖으로 내보내주세요...”

 

 “싫. 은. 데? 호호호.”

 

 정말 악질이다. 겉으로는 우아한 척을 하지만 분명 성격은 엄청 괴팍하고 더러울 것이다.

 

 “더럽다니~ 너무하다. 반전매력이라고 해줄래?”

 

 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관리자의 공간에 들어온 이상 내 생각이 읽혀진다는 것을...

 

 “그렇지, 그렇지. 아주 자알 알고 있어! 보아하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거 같은데 빠르게 진행하지 않을래?”

 

 보라색 관리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향해 손짓을 했다.

 

 “네...”

 

 선택지가 없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서 앞뒤로 흔들리는 의자에 앉았다.

 

 끼익- 끼익-

 

 방금 생겨난 의자치고는 잡음이 심하다.

 

 “그런 게 또 분위기가 살잖아~ 안 그래?”

 

 “아... 네...”

 

 “차는 어떤 걸로 줄까? 녹차? 대추차? 아니면 어린 애니까 율무차?”

 

 “아무거나 주세요.”

 

 “얘도 참! 이 세상에서 제일 난감한 말이 뭔 줄 알아? 바로, ‘아무거나 주세요.’야. 너 분명 나중에 남자친구가 메뉴 고르느라 아~ 주~ 고생하겠어.”

 

 “하... 그럼 녹차로 할게요.”

 

 내가 말하자 눈앞에서 꽃무늬가 그려진 찻잔이 생겼다.

 

 “맛있게 마셔~”

 

 “네...”

 

 나는 찻잔을 들어서 마시는 시늉을 하였다.

 

 “어?”

 

 “어때? 맛있지?”

 

 혀끝에만 살짝 닿았을 뿐인데 녹차의 진한 향과 특유의 알싸함이 몸속 깊숙이 스며들었다. 조금 분하지만 맛은 확실히 있었다.

 

 “... 네.”

 

 나는 찻잔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나는 속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내쉬었다.

 

 “그래서 저를 데려온 이유가 뭐에요?”

 

 “아, 맞다! 내가 왜 데려왔더라? 잠깐만~”

 

 탁자위에 바삭해 보이는 과자들이 생겼다.

 

 “기억해낼 동안 과자라도 먹는 건 어때? 이 과자가 녹차에 그렇게나 잘 어울리더라. 음~”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한다. 나는 일어나서 탁자를 힘껏 내려쳤다.

 

 쾅-

 

 “제발 그만하고, 용건이나 말해요!”

 

 보라색 관리자는 손에 들고 있던 과자와 찻잔을 탁자 위로 올려놨다.

 

 “거참, 요즘 애들은 뭐든 빨리! 빨리! 하고 싶어 하네. 하여간 여유를 몰라요, 여유를.”

 

 보라색 관리자는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다리를 꼬고 손을 깍지 꼈다.

 

 “알았어. 내가 너를 왜 데려왔나? 간단해. 너에게 충고를 하려고 데려왔어. 분명 밖에서 만나면 너를 지켜주는 왕자님이 어떻게 할 지 모르니까~”

 

 “무슨 충고요?”

 

 “별 거는 아니고. 너 이수호라는 관리자랑 만나는 걸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왜요?”

 

 “걔한테 대충 들었지 않아? 관리자와 인간이 만나선 안 되는 이유를?”

 

 관리자와 인간이 만나선 안 되는 이유라니... 수호에게서 들은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보들을 조합해보면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간다.

 

 “혼란이 일어나서?”

 

 “정답이야! 몰랐던 거 같은데 용케 때려 맞췄네? 그렇다면 왜 혼란이 일어날까?”

 

 관리자와 관리자가 만나서 학살이 일어난 것은 들었지만 관리자와 인간이 만난 경우는 이번에 처음 들어본다.

 

 “모르겠지? 내가 옛날에 있었던 일을 말해줄게. 잘 들어!”

 

 보라색 관리자는 자세를 조금 고치고, 찻잔을 다시 들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너, 진시황이라는 옛날 사람 알아?”

 

 “네. 교과서에서 봤어요.”

 

 “그렇지! 요즘 애들은 공부 잘 하는구나? 그래, 그 진시황이라는 사람은 죽지 않고 불로불사하기 위해서 이것저것을 다 했었어. 그 과정에서 연금술을 관리하는 관리자와 만났나봐. 둘 사이에서는 한 가지의 거래가 오고갔어. 관리자는 진시황에게 불로불사를 할 수 있는 물질을, 진시황은 관리자에게 병사 인형을 주기로 했었어. 여기서 불로불사를 할 수 있는 물질은 당시에 신의 광석이라고 불렸던 은을 말하는 거야. 어떤 생명이든 은을 지니고만 있어도 모든 병을 치유해주었거든. 그렇게 해서 수십 년간 관리자는 은을 진시황에게 몰래 주고, 진시황은 지하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병사 인형을 제작하고 있었어. 아마도 관리자는 인형들을 조종하여 악랄한 계획을 꾸미고 있었나봐. 하지만 이러한 암거래가 그렇게 순조롭게는 될 리가 없지? 결국 신에게 걸리고 만 거야.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

 

 나는 긴장된 나머지 침을 한번 크게 삼켰다.

 

 꼴깍-

 

 “신이 관리자와 진시황을 다 죽였나요?”

 

 “음... 반 정도는 맞아! 신은 관리자를 바로 죽여 버렸어. 하지만 신은 자신이 정한 제약이 있어서 직접 손을 대지는 못 했어. 신이 정한 제약 중 하나가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한은 관리자에게 전부 일임을 하는 거였거든. 즉, 신은 인간에게 직접 손을 대지는 못하는 거지.”

 

 “그렇다면 어떻게 됐나요?”

 

 “신은 신의 광석이라고 불리던 은을 바꿔버렸어. 그동안은 신의 광석이라고 불리는 만큼 효능이 어마어마하고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희소성이 높았지. 하지만 그때의 일로 인해서 한순간에 은은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어. 희소성은 당연히 떨어지게 되고, 무엇보다 영험한 효능이 없어졌어. 이제는 오히려 생명에게 흡수가 된다면 죽을 수도 있는 독이 되어버렸지. 하지만 진시황은 이러한 사실을 알 수가 없었어. 그 결과가 교과서에는 어떻게 나와 있지?”

 

 “수은 중독...”

 

 “정답입니다! 결국 진시황은 성분이 바뀐 것도 모른 체, 수은에 중독되어 결국 죽었어.”

 

 보라색 관리자는 자신이 할 말은 끝났다는 걸 표하고 싶은 건지 자세를 다시 고치고,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자! 이제는 왜 관리자와 인간이 만나면 안 되는 건지 확실히 알았지?”

 

 “그러니까! 결국 혼란이 생길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잖아요! 하지만 수호하고 저는...”

 

 “너. 아직 본인의 입장을 잘 모르구나?”

 

 쾅-

 

 보라색 관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를 쌔게 내리쳤다. 능글맞게 웃고 있던 관리자의 눈빛이 살짝 흐트러졌다.

 

 “네 생각으로는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말이지?”

 

 “네! 그러니까!”

 

 쾅-!

 

 보라색 관리자가 이번에 탁자를 쌔게 내려치자 탁자는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그의 눈은 다시금 변해서 이번에는 명백하게 살의를 띄고 있는 눈이었다.

 

 “너. 너무 기어오르는 거 아니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웃기지마. 지금 네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야! 이미 들어서 알고 있잖아? 너는 원래라면 이미 죽었어야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런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너는 지금 생각을 하고 말하는 거냐!!!”

 

 보라색 관리자가 언성을 높이자 마치 자진이 일어난 것처럼 공간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강도는 점점 쌔져서 서있기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잠... 잠깐만요!!! 알았어요!!!”

 

 내가 소리치자 공간을 흔들고 있던 진동은 점차 잦아들었다. 나는 힘겹게 중심을 다시 잡고 서있을 수 있었다.

 

 “뭐? 할 말 있어?”

 

 “... 다시 말해서 만약 수호와 제가 계속 연관된다면 신이 저희 둘을 어떻게 해서든 죽일 거라는 이야기인가요?”

 

 “그래. 너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 상관없지만 너를 지켜주는 관리자는 그야말로 개죽음 당하는 거지.”

 

 보라색 관리자의 말대로 나는 원래 살생부에서 10년 전에 죽어야 한다고 적혀있었기에 죽어도 문제가 없지만, 수호는 나를 지키려다가 결과적으로 본인의 목숨만 버리는 꼴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수호에게 의지를 하다가 둘 다 죽어버린다? 그런 짓은 수호에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무섭다. 하지만 수호가 나 때문에 죽어버린다니 싫다. 이미 해답은 정해진 거 같다.

 

 “네. 알았어요. 더 이상은 수호와 만나지 않을게요.”

 

 본인이 원하는 답변을 들어서 만족을 한 건지 무서웠던 관리자의 눈빛은 힘이 풀리고 처음 봤을 때처럼 능글맞은 눈빛으로 돌아왔다.

 

 “이제야 이해를 해준 거 같네. 잘 생각 했어~”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으~ 응? 무슨 조건 일까나?”

 

 “저에게 한 달만 시간을 주세요. 그럼...”

 

 “일주일. 그게 최대야.”

 

 “네. 그럼 일주일만이라도 시간을 주세요.”

 

 “좋았어. 그럼 잠시 와볼래?”

 

 보라색 관리자는 다가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너, 거울을 자주 보니?”

 

 갑자기 거울에 관해선 왜 묻는 걸까?

 

 “네. 아침마다 봐요.”

 

 “그렇다면 여기면 되겠다!”

 

 보라색 관리자는 오른손을 들더니 내 왼쪽 눈을 감싸듯 덮었다.

 

 “조금 따끔할 거야~”

 

 내 왼쪽 눈을 덮은 손은 점점 뜨거워지더니 눈에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아악!”

 

 마치 내 눈을 잡아서 쥐어짜는 느낌이다. 극심한 통증이 내 눈을 강타했다. 나는 극심한 통증에 전신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고, 서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치 보라색 관리자의 손과 내 눈이 접착제로 붙어있는 것처럼 떨어지지를 않았다. 약 10초 정도가 지났을까? 눈에서 손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아... 하아... 하...”

 

 “방금 네 눈에는 시간제한을 설정했어. 내일부터 시작해서 정확히 7일 뒤, 다음 주 월요일 유시(酉時)에서 술시(戌時)로 넘어갈 때, 내 권한으로 네 영혼을 육체의 손상 없이 바로 저승으로 보낼 거야. 그게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자비야.”

 

 저게 무슨 소리지? 시간제한이라니? 이렇게 갑자기?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네가 날짜를 헷갈릴 수도 있으니 왼쪽 눈에 표시를 하나 해놨어. 앞으로 네가 거울을 볼 때마다 왼쪽 눈에는 남은 일수가 숫자로 보일 거야. 그럼 안녕~!”

 

 안녕이라는 말과 함께 내 몸은 뒤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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