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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새에서
작가 : 임완
작품등록일 : 20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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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멈춘 시간 속에서(3) (D-6)
작성일 : 18-12-21     조회 : 334     추천 : 0     분량 : 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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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 뭐야? 왜 몸이 안 움직여?!”

 

 “가지마... 제발...”

 

 “이게 뭐야?! 엄마!!!”

 

 “불러도 소용없어...”

 

 “안 돼... 오지 마... 오지 마!!!”

 

 “나를 자세히 봐봐... 정말 본 적이 없어? 놀이터에서 그렇게 즐겁게 놀았잖아...”

 

 “몰라!!! 모른다고!!! 너 같은 애 본 적 없다고!!!”

 

 “... 어째서? 좋아한다며... 왕자님이라며... 그런데 왜!!!”

 

 “거기까지만 해라...”

 

 “네가 무슨 상관이야!!! 읍...!”

 

 “아직 너에게는 이른가보구나... 너무도 불완전해...”

 

 “흑... 흑...”

 

 “미안하구나... 지금 풀어주마... 무서웠지...?”

 

 “아으으... 흑... 흑...”“정말 미안하다... 너에게는 사과의 의미로, 또 이 애에게는 벌의 의미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해주겠다... 지금은 무섭겠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이 아이는 너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거다... 그럼 이만...”

 

 ***

 

 잠에서 깨고 눈을 뜨자 내 양쪽 뺨에는 눈물 자욱이 가득했다. 어떤 꿈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모든 꿈은 깨어나면 항상 흐릿한 잔상조차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 남아있는 감정은 공포와 따뜻함이다. 정말 모순적인 감정의 조합이다. 하지만 매번 이런 꿈을 꾸고 나면 썩 개운치 않았다. 오히려 찝찝했다. 꼭 무언가를 잊은 기분이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 아암...”

 

 잠을 자는 동안 잊고 있었다가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내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나는 멈춘 시간 속에 갇혀있다.

 

 “그건 그렇고 환경을 조금 개선할 필요가 있겠지...?”

 

 다름이 아닌 옆에 있는 양호선생님이 조금 부담스럽다.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안심이 되지만, 그래도 일어나자마자 바로 사람이 보이는 건 꽤나 익숙해지지 않으면 당황하게 된다. 칸막이라도 구해서 놔둬야할 거 같다.

 

 일어났지만 어차피 할 것도 없고 조금 더 뒹굴 거려야겠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고, 눈을 감았다. 뒹굴뒹굴. 누워있는 자세가 불편해서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계속 뒤척거리며 뒹굴 거렸다. 그렇게 또 한참을 뒹굴 거리다가 몸을 일으켰다.

 

 “끄! 으으으음~!”

 

 간만에 푹 잠을 자서 그런지 기지개를 한 번하니 온 몸의 근육들이 이완되고, 뼈마디 사이의 공간들이 확장되는 느낌이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봉지에서 물 한 병을 꺼내서 마셨다.

 

 꼴깍- 꼴깍-

 

 아침밥은 평소에도 먹지 않기에 굳이 먹을 필요는 없을 거 같다. 내 시간만이 흐르는 이상,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내가 배고플 때마다 먹으면 될 것이다.

 

 ‘일어난 김에 오늘 할 일이나 정리해볼까?’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서 침대 맞은편 벽에 붙어있는 화이트보드로 걸어갔다. 그곳에 놓여있던 보드마카를 하나 집어서 화이트보드에 한 글자씩 적기 시작했다.

 

 ※ 오늘의 할 일 ※

 

 ① 칸막이

 

 ② 답사

 

 ③

 

 우선 첫 번째로는 침대와 양호선생님의 사이에 둘 칸막이를 찾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내 옷을 비롯하여 내 몸의 청결을 책임질 수 있는 그곳을 갔다 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가 더 필요한 게 없을까 싶어서 둘러보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다. 나는 화이트보드의 세 번째 할 일은 숫자만 적어놓고 공백으로 비워 놨다. 나중에 생각나면 추가로 적어야겠다.

 

 화이트보드의 구석에 짧은 선을 가로로 하나 그었다. 시간도 확인할 수 없고, 태양 또한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하루가 지나갔는지 조차도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는 피로에 지쳐서 잠에 빠져들고 일어나면 하루가 지나갔다고 생각하고 이곳에 기록해두자고 생각했다. 오늘은 시간이 멈춘 당일을 제외하고 본격으로 생활을 하게 된 1일차다. 나는 양쪽 뺨을 양손으로 가볍게 쳤다.

 

 짝- 짝- 짝-!

 

 “힘내자!”

 

 ***

 

 나는 지금 내 사물함에 있던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혼자 남은 상황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어차피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매일 하루에 한 번이라도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배배 꼬면서 대충 스트레칭을 끝마치고, 운동장 테두리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바퀴를 돌았을 때부터는 속도를 내어 달렸다.

 

 “흐읍... 하아... 하아... 하...”

 

 두 바퀴를 다 돌아갈 쯤 되니 온몸에서 열이 났고,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더 달리고 싶었지만 너무도 간만에 운동을 한 탓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해야겠다. 나는 바삐 달리던 다리를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이때만큼은 시간이 멈춘 것이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면 아무리 달리고 들이마셔도 바닥의 모래가 허공으로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난 깨끗하게 호흡을 끝내고 양호실로 돌아갔다.

 

 돌아오자마자 봉투를 뒤져서 이온음료를 하나 꺼내어 마셨다. 짭짤하면서 달달한 음료수가 목을 타고 넘어가니 달리면서 지쳤던 몸을 씻겨주는 듯 했다. 적당히 목이 건조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고 음료수를 다시 내려놓던 찰나에 내 눈에 들어온 물건이 있었다. 커다란 벽장과 벽 사이의 틈에 하얀색 물체가 끼워져 있었다. 난 사이에 손을 넣어 그것을 꺼냈다.

 

 “그래! 이게 없을 리가 없지!”

 

 하얀색 물체의 정체는 양호실에서 사용하는 접이식 칸막이였다. 중학생 때의 양호실에는 있었지만 지금의 학교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었다. 설마 구석에 박혀져 있었을 줄은 몰랐다. 나는 틈새로 손을 넣어서 칸막이를 꺼내었다.

 

 끽- 끼익-

 

 조금 먼지가 쌓였지만 높이도 꽤나 있고 넓이도 사이를 막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힘겹게 끌어서 양호선생님과 침대 사이에 칸막이를 설치하여 작은 방처럼 만들었다. 이것으로 첫 번째 할 일은 끝냈다. 화이트보드로 걸어가 첫 번째로 적은 할 일 위에 X자로 덮어서 그었다. 아직 비워져 있는 세 번째 할 일은 두 번째 장소로 갔다 오고 나서 결정을 해야겠다. 마시고 남은 음료를 손에 쥐고 준비를 마쳤다. 양호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가 잠시 멈췄다.

 

 “다녀오겠습니다!”

 

 ***

 

 학교에서 나온 지 꽤나 시간이 지났다. 나는 지금 미로에 갇혀있다. 그 장소를 찾기 위해서 호기롭게 출발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정확한 위치도 모르는 상태로 무턱대고 출발한 건 큰 실수였던 거 같다. 애초에 학교를 마치면 무조건 학교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움직였으니 이 근처의 지리를 모르는 건 당연할 것이다. 유일하게 아는 정보라고는 이 동네에 확실하게 있다는 것 밖에 모른다. 처음에는 시골 동네다 보니 좁아서 금방 찾겠다고 생각했지만, 촘촘히 집들이 있는데다가 다 비슷하게 생겨서 오히려 같은 곳을 맴도는 느낌이었다.

 

 “아, 진짜 어디에 있는 거야!!!”

 

 하필 이 정보는 희건이에게서 이전에 어렴풋이 들었던 것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나 인터넷은 물론, 지도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오직 그것밖에 없다.

 

 “내가 진짜 살다 살다가 걔 말을 믿고 움직일 줄은 누가 알았을까? 에휴...”

 

 그래도 아직은 음료수도 남아있고, 조금만 더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찾지 못했다. 오히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발도 붓고, 땀도 꽤나 흘렸다. 얻은 것은 없고 손해 본 것이 더 많았다. 나는 포기하고 힘겹게 미로 같은 골목을 탈출했다.

 

 “너를 믿은 내가 바보였어. 하...”

 

 터덜터덜한 발걸음으로 학교를 향해 다시 걸어갔다. 지친 내 머릿속은 이 찝찝한 땀들과 찝찝한 머리카락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가장 큰 1순위 문제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편의점에서 들고 왔던 생수통의 물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의 청결은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학교의 정문을 통과했다가 그래도 큰 생수통이 필요할 것 같아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다시 몸을 돌렸다.

 

 “어? 찾았다!!!”

 

 나는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장소를 찾았다. 옷을 구할 수 있고, 씻을 수도 있는 장소, 바로 찜질방이었다. 옛말에는 정말 틀린 것이 하나도 없는 거 같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학교 앞, 그것도 자주 들리는 편의점의 건물이 찜질방 건물이었다. 방금까지 무거웠던 발이 찜질방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가벼워졌고, 최대한 속도를 내어 달려갔다.

 

 건물에 도착하여 구조를 확인하니 2층은 카운터, 3층은 남성 목욕탕, 4층은 찜질방, 5층은 여성 목욕탕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계단을 통해 올라갔다.

 

 터벅- 터벅-

 

 지금까지 계속 걸었던 탓에 더 이상 내 하체에는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고지가 눈앞인 만큼 조금만 더 힘을 내어 한 계단씩 올라갔다.

 

 2층... 3층... 4층...

 

 ‘마지막!’

 

 탁-!

 

 5층에 겨우 도착했다. 대중목욕탕은 최소 10년 안에는 가본 적이 없었기에 약간의 긴장도 조금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내부는 내가 알던 이미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분명히 옛날에는 수건과 찜질방의 옷들이 한 곳에 쌓여져 있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다. 수건의 회수율이 남탕은 오히려 수건을 놔두고 가서 130% 정도가 되는 것에 반해 여탕은 계속 들고 가서 30% 정도밖에 안 된다고 들었다. 그 탓에 들어갈 때 개수 제한을 두고, 나갈 때 그대로 반납해야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여탕에 수건과 옷이 비치되어 있지 않는 이상 나는 2층의 카운터에서 수건과 옷을 가져오거나 최악의 경우, 3층의 남탕에 들어가서 수건과 옷들을 챙겨 나와야 한다. 그밖에도 5층까지 다시 걸어서 올라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피곤했다.

 

 “앞으로 진짜 조금만 더 참자...!”

 

 다시 문을 열어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갔다. 제발 카운터에 모든 것이 다 있기를 기도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2층에 도착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 다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단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장면은 중앙에서 돈을 계산하는 카운터와 양쪽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유리문들이 보였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신발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우선 카운터를 향해 걸어갔다.

 

 의자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줌마, 카운터의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물함 열쇠들, 그밖에도 뒤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이 있었지만...

 

 땡- 땡-

 

 계산과 물건을 주기 위한 좁은 구멍을 제외하고는 전부 유리로 막혀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양옆에 있는 유리문들 밖에 없다. 나는 왼쪽에 있는 문으로 먼저 가보았다. 손잡이가 없는 걸 보면 자동문 같은데 주변을 둘러봐도 센서는 보이지 않는다. 손을 넣어서 억지로 열어볼까 했지만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았기에 금방 포기했다. 이쪽이 이런 상태인 만큼 저쪽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오른쪽 문으로 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것 또한 센서로 열리는 자동문이다. 왼쪽과의 차이라면 여기는 센서가 있는 것을 보니 오른쪽이 들어가는 문, 왼쪽이 나가는 문 같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열 방법이 없었다.

 

 “아... 제발...”

 

 이젠 다른 선택지가 없다. 정말 이렇게까지는 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 밖에 방법이 없는 거 같다. 두려움과 자괴감을 가득 안고 3층으로 올라갔다.

 

 터벅- 터벅-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칠 만큼 지친 나머지 계단 한 칸, 한 칸이 높게 느껴졌다.

 

 “하아...”

 

 이제 이 문만 열면 된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하고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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