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근데 이건 뭐지?”
재웅의 백업 데이터로 게임을 하던 준은 게임 속 급작스레 다가온 NPC의 대화창 표시에 아까 전의 기억을 되살렸다. ‘koo9’란 재웅이 사용하던 닉네임이었다.
[koo9님, 텔레델피아와 연동하시겠습니까? Y. N.]
“연동? 근데 내꺼 데이터는 저장되어있지도 않은데? 에라 모르겠다.~”
[달칵!]
[텔레델피아와의 연동에 수락하셨습니다. 새로운 닉네임을 작성하세요.]
“닉네임..? 음... 그러니까 j..un 55...”
[달칵!]
엔터를 누르자마자.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방문이 박살되며 누군가가 쳐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집에서 행방을 찾을 수 없었던 재웅이었다.
“어..? 재웅이 형!”
“준! 여긴 위험해 빨리 나와 함께 자릴 뜨자..!”
“자릴 뜨자고..? 그나저나 그 모습은 뭐야? 그리고 손에든 가방들은?”
“어... 나도 쫓기고 있어. 이 돈 때문인 줄 알고 좋아했었는데 그것 때문이 아니었어.”
“그럼 뭣 때문에?”
“일단 이곳에서 벗어난 뒤에 설명해 줄게! 나와 같이 가자 준.”
“어, 어 알았어. 잠깐 할머니한테 허락 좀...”
“그럴 시간 없다니깐 빨리!”
“어... 응 알았다니까”
항상 연속극이 시작되는 할머니의 방에서는 이상하게도 할머니를 찾아뵐 수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어디에 갔나 했더니 재웅은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행색으로 현실 속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을 줄이야. 아무리 2살 많은 형이라지만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나저나... 재웅이 형! 형 운전도 할 줄 알아? 이, 이건 그냥 차가 아닌데? 날고 있잖아!”
재웅이 몰고 있던 차라는 물체는 준의 세상에서는 볼 수 없을 독특한 디자인의 탈것이었다. 공중 위를 떠다니면서도 좁은 길가를 요리조리 운행하는 것을 보니 왜인지 작년에 갔었던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지금 우리는 쫓기고 있다고... 너도 접속한 것 맞지? 텔레델피아...”
“어... 근데 왜?”
“믿기 힘들겠지만, 내가 여기 온 후로 약 6개월가량이 흘렀어.”
“6개월이라고? 무슨 소리야 구재웅~ 너네 집에서 내가 나오고부터 3시간 정도밖에...”
준은 게임인지 현실인지 분간 못할 상황에서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의 직감을 느꼈다.
현실 속에서의 1분이 이곳에서의 하루라는 사실을...
“그럼..! 동현이 형! 동현이 형도 이쪽으로 오겠는데?”
“어... 구동현이 너보다는 조금 더 빨리 왔지. 지금 구동현이 우릴 잡으려고 하고 있고.”
“뭐라고?”
“그 세끼는 비델리온 세력으로 접속했어.”
“비델리온은... 나쁜 놈들이잖아?”
“어떻게 우회했는지는 몰라도 나도 잘 모르겠어... 여하튼 얼마 전에 구동현한테 진짜로 죽을 뻔했단 말이지.”
“죽는다고...? 진짜로 죽인다고?”
“그 또한 알지 못해. 여기에서 느끼는 고통들이나 느낌들이 전부 현실과도 같아서 실제로 죽으면 어떻게 될지...”
“그럼 여기가 게임 속이라고?”
“나도 잘 모른다니까. 자꾸 말 시키지 마.”
“야 구재웅! 이게 뭐야! 나 집에 다시 데려다 줘.”
“뭔 집이야... 너네 집은 이제 없어”
“그건 또 무슨 소리?”
“집에서 나오는 순간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어진다고... 나도 그랬어.”
“하아~ 그럼 할머니는?”
“너네 할머니는 게임 안하시잖아. 당연히 잘 계시겠지.”
“와... 어이가 없네. 그나저나 이 많은 돈들은 전부 뭐야?”
“내가 밤낮 안 가리며 모은 거야. 마음만 먹으면 무한대로 모을 수도 있어.”
“그게 무슨 소용인데?”
“왜 소용이 없어?”
“니 말대로라면 어차피 게임 돈인데 게임 돈이 대체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생각한 준이었지만, 재웅이 벌어들인 수백억의 돈을... 그러니까 게임 돈들은 현실에서도 똑같이 통용되는 화폐의 개념으로써 미각으로 느낄 수 있는 여러 음식들과 마실 것들 혹은 며칠 동안이라도 묵을 수 있는(게임 세상에서는 묵는다는 개념이 중요하다.) 최상급 건물의 호텔. 나아가서는 게임 속 화폐를 관리하는 관리자에게 다가가면 현실로의 계좌 송금도 가능하단 쓰임새가 있었다.
“뭐야... 그럼 이 돈을 우리 할머니에게 송금시키면 우리 할머니 부자 되는 거야?”
“뭐 그런 셈이지... 우리 아버지도 보니까 엄청난 크기의 tv와 좋은 침대를 구매하신 뒤에 무척이나 만족스런 모습이었어. 어머니는 내가 보낸 돈으로 여러 적금을 들어 놓으셨고, 이후 집까지 구매 하셨으니까.”
“잠깐... 근데 니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어?”
“직접 관여할 수는 없어도 게임 속 해설을 통해서 알 수 있어. 현실 속에서의 나에 대한 정보는 모두 이 세상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재웅의 설명대로라면 이러한 개념이었다. 재웅이 소지하고 있는 두루마기는 자신이 지금까지 깨 왔던 여러 퀘스트들과 그동안의 기록들에 관한 것들이 적혀 있었고, 그에 대한 설명은 대략 이러했다.
- koo9의 아버지가 250만 원짜리 침대를 마련하였다. (★★★★)
- koo9의 아버지가 380만 원짜리 tv를 마련하였다. (★★★★★)
- koo9의 어머니가 2억짜리 집을 구매하였다. (★★★★★)
- koo9의 재산이 100억을 돌파하였다! (Mission Clear!)
- 재웅의 퀘스트 일지.
“우와... 그럼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는 거야?”
“그렇지!”
“구동현을 잡으면 1,000억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어.”
“구동현을 죽여야 돼?”
“어... 빨리 레벨을 올려서 나와 함께 구동현을 죽이자.”
준은 1분의 현실시간 동안 하루를 체감할 수 있는 알 수 없는 공간의 장소에서 ‘koo9’ 재웅을 멘토 삼아 열심히 미션을 깨며 레벨을 올려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만족할만한 수준들의 장비를 얻게 되었고, 자신의 현실 세계에서의 할머니와 부모님들이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서 만족하는 상황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더 이상 이 게임 속 세상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기 힘든 재웅과 준은. 마지막 보스인 동현과의 혈전을 위해 준비 중이었다.
“오랜만이다 준?”
“동현이 형...”
“구재웅 너도 있었네. 한참 찾았잖아! 나 만렙 찍고서 얼마나 심심했는데, 나도 여기에서 나가려면 최종보스인 너를 죽여야 된다네? 근데 준이랑 2대 1이면 너무 불리한 거 아냐? 한 10대 1은 되어야 해볼 만한 게임인 것 같은데 언제나처럼 나를 대신해서... 밤새도록 게임 심부름을 했었던 너였잖아. 재웅아”
“난... 내가 좋아서 게임을 했을 뿐이라고... 누가 너 좋으라고 그 밤을 샜는지 알아?”
“그렇다고 치고... 한번 붙어보자? 얼마나 잘 키웠는지...”
재웅과 동현의 피 터지는 싸움 끝에 재웅은 숨을 거두었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동현은 재웅과의 혈투로 인해서 큰 부상을 입었고, 그 기회를 틈타 공격 패턴이 넘어존 준에게 덜미를 잡혀 결국 동현마저도 숨을 거두게 된다.
텔레델피아 세력과 비델리온 세력 둘 모두가 사라지고, 마지막 퀘스트는 완료 되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플레이어는 닉네임 명 ‘jun55’의 준이었다.
*
“또예요..? 또?”
“하아... 이번은 어느 나란데?”
“이번은 브라질이에요. 우회 접속 코드가 만만찮아요. 출처를 알아내는 것만 해도 몇 주는 걸릴 거예요.”
“‘koo9’와 ‘dong’같은 경우는 서로가 자멸해서 지워진 거 확실하지? 그렇다면 남은 것은...”
“네, 남은 건 이제 jun55 하나뿐이에요. 그런데 그게...”
“그게 뭐?”
“둘과는 다르게 그 증식 속도가 엄청나요. 도저히 손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요...”
“자신의 할머니에게 효도를 한다는 명목이었지? 아마...”
“네... 어떤 코드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할머니는 불의의 병에 걸렸고, 준이 모은 돈으로는 현실세계의 문명으로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죠. 더불어 불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드는 돈이 무려 7,000조라는 연구 자금이 필요하다며 거침없이 먹어치우고 있단 말예요.”
“참으로 답답할 노릇일세... 돈을 원하는 테러범이나 해커였다면 꼬리라도 잡을 텐데 말이지! 게다가 그 준의 할머니란 존재는 대체할 수단 자체도 없는 거잖아? 몽타주 있어?”
“예... 몽타주가 있기는 한데, 그게 좀...”
미국이었을까? 혹은 세계 연합이었을까? jun55의 단서를 잡은 전문 테러 및 해킹대비 구성 팀들은 전대미문의 금융사건과 더불어 역사적인 큰 규모의 기업, 주식 폭락 사건 등의 전말을 파헤친 결과... 그 모든 일들을 벌인 것이 자생적으로 생겨난 코드명 ‘koo9’와 ‘dong’, 그리고 이후 마지막으로 생겨난 3번째 ‘jun55’의 소행이었음을 밝혀낸다.
그 셋의 존재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개체였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닉네임이라거나... 코드명, 혹은 ID의 개념이 아니라 애초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에서부터 생겨난 기계 코드. 즉 온라인 세계에서의 시스템 데이터가 융합되어 탄생되어진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의 출현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마치 아무런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던 바다에서 첫 기념비 적인 지구의 유전자가 탄생한 것과 같이... 단백질을 비롯한 소규모의 에너지 구성원으로 첫 생명체가 존재하게 된 것처럼 무궁무진하게 널려있는 데이터의 자원들과 여러 정보들의 혼합으로 인해서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들의 탄생이 3번째 연달아 사이버 상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처음에 그것들은 별다른 오류를 범하지 않았었다. 2,02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90년대 말 느닷없이 700원짜리 디스켓과 300원짜리 초코우유를 비롯하여... 아무런 연관도 없는 편의점 시스템의 영수증 내역이나 사람들의 금융 정보에 접근하여 오류를 일으키곤 하였다. 첫 시초로 추정된 것은 불특정 다수였던 한 30대 직장인의 신용카드 내역에 250만원 상당의 침대가 결제가 되었다는 것과 40대의 주부의 통장에서 380만 원짜리 tv결제 비용이 빠져 나갔다는 신고로 인하여 존재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후 아무런 연관도 없는 각기 다른 수십만 명의 사람들의 통장과 카드 내역에는 ‘Mission Clear!’라는 명목으로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수사를 맡은 각기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그 돈의 행방을 찾기 위해 협업하여 끝까지 추적해 보았지만, 결국 그 돈은 되찾을 방도도 없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고, 물건의 출처 또한 특정할 수가 없어 물건을 받아본 사람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태의 시기에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 금융 시스템과 사이버 거래 등에 대한 치명적인 단점에 대해서 토로하기 시작했고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손을 뻗고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닉네임 ‘jun55’를 잡기 위해 힘을 모았지만 대부분이 역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잃거나 복구할 수 없는 금융 불구자 상태로 낙인이 찍혀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커질 대로 커진 ‘koo9’와 ‘dong’의 충돌이 일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지한 인간들은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고, 금융 거래 등의 80% 이상이 대부분 오프라인으로의 활용할 수 있는 대체 지폐 등으로 전환되어진 세상으로 퇴보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돈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돈을 만들 돈이 사라지는 현상)
어떠한 전자 기기든지 온라인이라는 수단과 연결만 되어 있다면, 핸드폰 요금이던... 공과금이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부분으로 부과가 되어 그 세금의 출처를 찾을 수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러한 사태를 직감한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핸드폰 사용 등과 인터넷 사용을 가급적이면 중지하기 시작했고 유선을 이용한 전화기의 활성화, 자료들의 공유도 직접적인 온라인 연동이 없는 usb나 하드디스크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시장에서도 8, 90년대의 레트로 감성을 떠올린다는 명목으로 디스켓 모양을 한 usb가 처음으로 출시된 것도 웃지 못 할 아이러니한 현상이었을 것이었다.
그러던 중 ‘koo9’와 ‘dong’이 세계의 모든 금융 데이터를 갉아먹고 난 뒤 충돌을 하여 산화해 버리게 되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jun55와 당시 그와 대립 중이던 인류 집단 프로젝트의 리더가 서로간의 교류를 할 수 있는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