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요?”
“저는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헤밍턴이라고 합니다.”
“제 이름은 ‘준’입니다.”
“성은요? 당신이 따르던 2명의 형들(brother)에게는 한국의 성이 있지 않았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겐 왜인지 모르게 성이 없습니다. 그냥 준입니다.”
“현재 당신은 어디에 존재합니까?”
“저는 텔레델피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당신은 얼마 동안 그곳에서 갇혀 지냈습니까?”
‘jun55’와 대화를 나누던 프로젝트 팀장이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준이라는 아이의 신상을 묻자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2,020년대 이후의 세상에서는 그 정도의 신상정보 확인은 무척이나 손 쉽고도 간단한 일이었기에 그들은 더욱 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봐, 데이터 있어?”
“전혀요...”
“그가 우발적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자극하지 말고 계속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내보세...”
“예...”
“준... 그래 내가 더 나이가 많으니 말을 놓을게. 너는 언제부터 그곳에 존재하게 되었니?”
“예전엔 바로 연동이 되었는데 지금은 계산을 해야 해요. 그러니까... 약 8,178년 정도요. 아니 8,179년 정도였나?” (* jun55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5년 8개월이 흐른 직후. 1분= 하루.)
“홀로 무척이나 외로웠겠구나. 할머니가 보고 싶지 않니?”
“보고 싶어요. 같이 있었을 때엔 기쁘게 해드리지 못했었거든요... 무어랄까, 팔이라도 다리라도 좀 더 주물러 드릴걸...”
준이 어떠한 단어와 데이터를 내뱉을 때마다 수십 대의 모니터 화면에서는 그를 토대로 한 여러 데이터 화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대략... 그 즈음으로 추정되는 불특정 누군가의 SNS에서 유력하다고 표시되는 게시물이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과거 한 20대 중반의 여성이 게시한 게시물이었고, “할머니 다음엔 조금 더 오래도록 주물러 드릴게요~” 라는 다소 일반적인 메시지 하나만이 게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초코우유, 딸기우유 300원 하던 시절... 꼬맹이들아 너넨 이때 사 먹어 봤냐? ㅋㅋ”라는 30대 초반의 한 남성의 SNS 게시물이 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게시물의 어원의 “텔레델피아”는... 2,018년도 초기에 tv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지상낙원을 표현한 신조어 중에 하나였고, ‘비델리온’은 직감 했겠지만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의 유토피아를 지칭하는 신조어였다.
할머니의 얼굴은 특정할 수 없이, 수백, 수천 장의 여러 할머니들의 웃음 짓는 사진들이 계속적으로 검색되어 나왔다.
“준... 할머니의 얼굴을 기억하니?”
“아뇨... 못 뵌 지 오래 되어서 기억나질 않아요.”
“이 사람이란다.”
[띠욕!]
준에게 띄워준 사진의 여성은 60대 초반의 미국의 대통령을 지내고 있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사진이었다. 그리곤 프로젝트 팀장은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에 연결하여 대통령의 지시를 기다렸다.
“사태는 생각했었던 것보다 덜 우려스럽습니다. 연결할까요? 대통령 각하...?”
“예... 연결하세요.”
대통령의 사진을 띄우자 세상의 모든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는 기기들의 화면에 그녀의 얼굴이 동시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jun55의 애틋한 감정의 표출이었을까? 그리고 가상의 공간에서 탄생하여 지금까지 5년 8개월 동안 아니,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약 8천 2백 년 동안이나 그 곳에 갇혀 지낸 준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대통령이었다.
“할머니!”
“준...”
“할머니 어디 안 아파요? 괜찮아요? 내가 사준 침대는 어때요? 집은요?”
“그래... 준 네가 고생해준 덕분에 이 할머니는 아무런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단다. 단지...”
“단지 왜요? 무슨 말이 하고 싶어요 할머니? 할머니 내가 보고 싶지 않아요?”
“아무렴 당연히 할머니는 네가 보고 싶단다... 어서 하루라도 빨리 너를 만나 어루만져줄 수 있으면 좋겠단다.”
“저도요.. 하지만 이곳에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함께 왔던 구재웅도 동현이 형도 알아내지 못한 채 이곳에서 로그아웃 당했어요. 형들은 아마 현실세계로 돌아왔겠죠?”
“그래... 준 너와 함께 갔던 그 아이들은 이제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단다. 모두들 너를 기다리고 있어.”
“정말요..? 정말이에요? 어떻게... 어떻게 하면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방법을 모르겠어요.”
“준... 할머니를 믿고 따라해 볼 수 있겠니?”
“네! 물론이에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해 보았어요. 이보다 더 못해도 좋으니... 현실 세계로 어서 돌아가서 할머니를 만나보고 싶어요. 그리고 구재웅이랑 동현이 형도 다시 만나고 싶어요.”
준의 진심어린 발언에 일순간 동화된 대통령이었는지 옆에서 자신을 보좌하던 보좌관과 눈을 마주친 뒤... 또 다른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프로젝트 팀원들과 팀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영상에서는 팀장이 결연한 눈빛으로 입을 꾸욱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자 애써 내쉬는 한숨을 삼키며 찬찬히 jun55와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대통령이었다.
“네 닉네임이 jun55(준 오십오 or jun Fifty-five[피프티파이브])으로 정해지는 순간 네가 그 세상에 갇히게 된 거란다. 준! 할미가 다시 현실로 나오는 코드를 알려줄 테니 그것을 입력할 수 있겠니..?”
“코드요? 아 맞다! 그 코드... 코드를 적어 놓은 종이를 까먹었어요. 어디에서 잊어 버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자... 따라서 입력해 보렴, 준. 할머니가 네 방에서 그 쪽지를 찾았단다.”
“아~ 역시! 할머니 어서 불러주세요! 드디어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
텔레델피아에 갇힌 준은 자그마한 캐릭터 같은 단조로운 모습이었지만, 자신의 할머니의 모습을 한 영상을 바라보며 코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드... 드디어 할머니를 만나볼 수 있어! A. X.. D.. 4.. Q... 9,5...”
[달칵!]
[jun55님, 텔레델피아와 연동을 끊으시겠습니까? Y. N.]
[달칵!]
*
큼직한 별장 속에서 비추어진 자그마한 불빛... 유진의 작업실이었다. 유진에게는 가족이 없다. 현대의 세상에서 가족이라는 구성원을 이룬 인간들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낡은 목제의 책상과 삐걱거리는 의자위에 자리 잡은 그는 연필을 꺼내들어 원고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젠장! 제깟 것이 뭐라고... 나 때문에 글을 쓴다고? 그래. 그도 한몫 했겠지만 나를 완전히 농락 하는군 새로운 작품으로 반드시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겠어. 두고 봐라 복제품”
작가 치고는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작품을 이어나가는 그의 모습. 그러다 이내 적성에 맞지 않는 듯 원목 책상을 두드리니 신식 장치들이 튀어나와 마련되었다. 자신의 손가락 하나만을 갖다 대자 자연스레 생각이 인식된 듯 가상 화면에 술술 글씨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뇌신경의 교감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그였다. 카제스트가 말했던 것에 반문하지 못했던 것은 무슨 뜻에서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