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의 미래를 위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원고료도 두둑하게 받는 건 덤이겠고요. 하하 농담입니다. 과학 작가들, 소설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제각각 다르겠지만 원론적인 목적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론적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유진 작가님”
“그것은 바로 미래를 향한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지요. 인간들의 상상력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바로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그것을 조금 더 관심 있게 지켜보고 표현해 내는 것.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들을 인정받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된다. 라... 그렇다면 만약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이 작품을 쓰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 인정은 그 대상을 만든 당사자의 성과일까요? 아니면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물의 위대한 창조 작품이자 혜택일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주어지는 혜택 같은 것은 음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의 결과엔 다 저마다의 필연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인공지능의 작품은 그러니까 씨를 맺고 태어난 식물의 열매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씨앗을 땅에 심고 물을 주는 것뿐이지요. 좋은 열매가 태어나는 원론적인 현상에는 아무런 개입을 할 수 없다는 거죠.”
“열매의 씨앗이 다르다면, 원하는 과일을 얻을 수 없다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겠군요?”
“제대로 이해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은 만약 그러니까 어떠한 상황으로 인하여 독자, 즉 대부분의 인류들이 증발하여 더 이상 자신의 글을 읽어줄 존재들이 없다면 글을 쓰시겠습니까? 조금 허무맹랑하지만 과학 소설가이시니까 흥미로운 답변을 주실 것 같습니다.”
“음. 저는 아마도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예.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이 지구상에 나 하나만이 존재한다면?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겠죠. 지구상에 남은 여러 고가의 자동차들과 가치 있는 물건들이 모두 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작품의 내용인가요?”
“예... 뭐 만약 그렇다면 정처 없이 어딘가를 떠돌다가도 아무 집이나 문을 열고 들어가 잠을 자도 되고 배가 고프다면 널려 있는 편의점에서 음식물을 꺼내 먹으면 됩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내가 수많은 스포츠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만이 알고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는데, 그 능력이 정작 불필요한 허황된 것들이라면?”
“아마 안드로이드들이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특별히 분야에 특화된 특별 행사의 의미로 50석의 안드로이드 로봇들의 관중석도 마련하였는데요.”
“예. ‘저것’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뭐 욕정을 풀어줄 섹스 머신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호호호~ 그렇군요.”
“인간들은 자신보다 낮은 존재들에게 인정받지 못합니다. 반대로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존재들에게도 마찬가지지요. 동일한 존재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 욕구의 발현이고 인정의 본질적 의미입니다. 수많은 스포츠카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채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이 성공적 모습이라고 볼 수 없듯이 말입니다.”
“만약 제 글을 읽어줄 독자들이 없다면, 저는 글을 접고 후세의 로봇들에게 어울리는 작품의 장르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언젠가 인류는 전부 죽겠지요. 읽히지 않는 작품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떠한 의미로든 통용되는 작품으로 발현되어 존재하고 싶습니다. 영원히 존재하는 작품의 시초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바로 저 객석에 앉아 있는 안드로이드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말이지요.”
“오늘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밤입니다. 더욱이 유진 작가님의 데뷔 초 때부터 지금까지의 작품과 성향을 딴 안드로이드 작가가 탄생한 날이기도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그것’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시지요. 작가님”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를 ‘그것’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창조할 수 있다면 그 수준의 여하와 노력에 따라서 분명히 인정받을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코끼리나 침팬지의 영상을 어린 시절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화가보다 잘 그릴 수만 있다면야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저는 ‘그’가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응원합니다. 또 다른 나인 카피 J여...”
· 유진이 쓴 소설- 두 과학자의 대화
2,036년 세계에서 유망한 과학자들이 한데모인 세계 과학전람회가 열리는 어느 곳이었다.
"노인들을 위한 전신 장착용 휠체어입니다! 그 이름 하여 머신~ 수트!"
"머신 수트라고? 신체의 오감을 활용하여 자극하는 것으로 주목을 받았었지만 자칫 실패로 인하여 감각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결함 때문에 중지된 연구인 줄로만 알았거늘..."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요즘의 현대 시대에서 인간은 홀로 늙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혼인율 또한 20% 미만으로 접어들기 시작했지요. 이는 인간의 성적 욕망과 이성과 가족에 대한 것들을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독거노인으로 접어들게 되면 또 얘기는 달라집니다. 거동이 불편해지는 순간 윤택했던 인생들은 삽시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느껴질 정도이니까요."
"정말로 대단한 물건이로군..."
"그래 평범한 인간이 구매하기 위해선 1등 복권에 3번 정도 당첨된다면 거머쥘 수 있는 제품이니까."
"자 보십시오! 저 98세의 노인이 100m를 9초대에 돌파하는 모습을! 200kg가 넘는 벤치 프레스를 해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신체 능력을 보완해 줌과 동시에 잃어버렸던 시각과 미각 그리고 청각... 아! 청각은 제외였나요? 하하~ 여하튼 다 죽어가던 남성상의 상징인 정력 또한 되찾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원리는 이 허리 쪽에 연결된 호르몬 주사제를 투여함으로써..."
(*노인들은 기본적으로 시각과 다른 감각들을 잃어 상대적으로 청각이 좋아지는 경향이 있다.)
"으하하하! 마치 30대로 돌아간 것만 같군! 이 이쁜 것들은 대체 어디에 있다 이곳에 온 걸까나?"
괴상망측한 몰골로 전지전능한 신이 된 것만 같은 순간을 누리고 있는 그 남자... 노인, 그는 마치 모든 것을 다 가진듯한 만족하는 표정으로 시험용 머신 수트를 착용한 채 주변의 젊은 여성을 자신의 무릎위에 앉히는 둥... 허리를 휘어감은 채 거침없는 쇼맨십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2가지 아이러니한 상황은 그것을 지켜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였다는 점과 제품 시연을 하는 젊은 여성들은 실제 인간이 아닌 가공된 안드로이드 로봇이라는 점이었다.
"안 돼 안 돼... 우리는 연구 자금이 부족해서 저런 신의 걸작을 만들어낼 수가..."
"없지 없지... 아무렴 나도 그렇다니까."
"자네가 지금 연구 중인 물건은 어떤 건가? 내게 조금 말해주지 않겠나?"
"으음... 돈을 만들어내는 기계는 어떠한가?"
"돈을 만들어 내는 기계?"
"그렇지... 종이와 특수처리 된 잉크를 활용한 말 그대로 돈을 찍어내는 기계란 말일세."
"쉬잇! 자네 그거 불법이란 걸 모르는가?"
"당연히 알고 말고... 그러니까 정식적으로 나라에서 승인을 받은 상태로 돈을 찍어내는 거란 말일세. 돈을 찍어내는 기술력도 무척이나 발전했기에 거기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자금이 만만찮거든."
"그렇군... 지금의 세상에서는 종이로 된 화폐가 아닌 고도로 농축된 전자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칩들이 보편적이니까."
"가령... 1억 원을 찍어내게 된다면, 나에게는 약 800만원의 인건비가 들어오는 구조일세."
"오! 그거 정말 나쁘지 않은 방법이로군. 그렇다면 100억을 찍어낸다면 8억 원의 수익 구조를 내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네..."
"대체 무슨 문제인가?"
"100억을 찍어내는 대에 대략 1년이라는 기간이 걸린다는 말일세."
"그게 뭐 어때서? 연봉 8억 원이라면 자네의 명성과 업적에 비해서도 결코 적지 않은 돈이라고..."
"그 기계를 만들어내는 자금이 무려 120억이 들어간다는 말일세."
"허어 그렇다면 대략 15년 동안은 아무런 수익 구조를 낼 수 없다는 말이 되겠군."
"그래... 이것저것 돈을 끌어다가 쓰는 빚과 이자들은 둘째 치고서라도 원금 상환만으로도 그 정도의 기간이 걸리지."
"자네의 나이가 64세이니..."
"79살이 되는 날에 첫 봉급을 받게 되는 것일 테지."
"상당한 딜레마로군. 그 동안 노인 연금 들어놓지 않고 뭐했는가?"
"자네라면 하겠는가?"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네만.. 설마 나에게 권유하는 겐가?"
"아니, 아닐세. 단지..."
"단지?"
"내가 120억 원의 개발 자금을 마련해야만 하는데"
"하는데?"
"그 120억 원을 찍어내는 대에 소요되는 자금 자체가 바닥난 상황이라네."
"아니 그 정도란 말인가?"
"돈을 찍어내야만 하는데, 거기엔 돈이 들어가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소요되는 돈 또한 존재하지가 않아. 그 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돈을 들여야만 하는데, 그곳에 들어가는 돈을 찍어낼 돈이 없단 말일세..."
"허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로군."
"그래서 이번 사업은 그냥 접기로 했네."
"으음..."
"그나저나 자네는 지금 어떠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신가?"
"나도 자네와 비슷했다네, 수십 년 전부터는 주변에 재활용 물품이나 자원들을 활용하는 독거노인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지 더불어서 존재하는 모든 물건들을 다시금 원 자제, 원재료로 되돌리는 여러 기술적 혜택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자네도 알다시피 20년도(2,020년대) 초반에는 그러한 것을 공략하기 위하여 조금 더 편안하게 많은 물건들을 옮길 수 있는 슈퍼 리어카라던가 자체적으로 물질들을 압축 및 분해시키는 물체 분해기 등의 물건들도 생겨나게 되었지."
"하지만 그것은 값비싼 이유로 상용화 자체가 안 되지 않았었나?"
"그래... 자네의 연구와 비슷했었던 돈이 없어서 만들지 못하는 돈을 만들어 내는 장치처럼 말이야..."
"그래서 일찍이 나 또한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 아닌 다른 것들을 활용하기로 했다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100년 동안 별다른 충전 없이 끊임없이 재활용을 수집하는 재활용 수집 기계 로봇이라네."
"기계 로봇이라면... 안드로이드인가?"
"아니 아니지~ 안드로이드의 A.I.(인공지능)는 무척이나 고가이니까... 그저 입력해 놓은 범위 내에서 활동하는 도우미 로봇 정도라네."
"하지만 애초에 폐지나 재활용 물건들을 수거하는 노인들 입장에서는 그 또한 값비싼 고가의 물품 아니겠는가?"
"그렇지... 그래서 바꿀 수 있는 걸세!"
"바꾸다니?"
"자신의 썩어 문드러진 신체를 나라에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재활용 로봇을 구입할 수가 있는 것이지"
"오호라~"
"알다시피 이 지구상의 모든 재료들은 전부 가공되어 되돌려서 원하는 모든 물건으로 재탄생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지 돈이 없어서 문제라면 문제지만..."
"하지만 결혼과 출산이 40년 만에 8%대로 -92%가 감소한 지금의 상태에서는..."
"인간의 생체 유전자가 무척이나 희박한 것이로군."
"그렇지! 현대의 기술력으로는 다 늙은 노인의 신체를 활용하여 대략 6구 정도의 새로운 신생아 인간을 탄생시킬 수가 있다네."
"그렇지만... 그것은 그 1명의 노인이라는 인격체가 죽어야만 가능하지 않은가?"
"하지만 자신의 명성과 일상을 100년 동안 책임져 줄 수 있는 대체 안드로이드가 주어지지 않는가?"
"정말로 그렇군... 어차피 희망과 낙도 없는 기약 없는 십 수 년. 아니 몇 년도 채 되지 않는 나날들을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보다는..."
"자신의 이름으로 열심히 그리고 묵묵하게 임무를 수행하며 '100년을 더 살았다.' 라는 것이 되는 게지."
"100년의 인생이 추가로 주어지는 셈이로군."
"자네라면 하겠는가?"
"으음... 글쎄일세."
"가령 자네의 돈을 찍어내는 기계를 6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금이 주어진다면?"
"6대라고?"
"년 간 48억 원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일세. 게다가 국가적으로도 큰 이바지를 할 수 있는 영예로운 영광의 업적이 아닐 수가 없지!"
"음... 그렇다면 난 하겠네!"
"그러한가? 음.. 역시 자네라면 이해할 줄 알았네!"
"이해라니? 설마 자네?"
"이 연구를 위해 나는 이틀 뒤에 나의 몸을 담보로 연구를 진행할 안드로이드 로봇과 사업 계획서에 서명을 마친 상태라네..."
"그, 그런 게로군 그렇다면... 다음 해에 열리는 과학 박람회에서는..."
"나를 대체할 안드로이드 로봇이 자네를 맞이할 걸세. 부디 완성된 제품에 좋은 평을 남겨주길 바라네."
"음 그렇군... 신형으로 대체 된다는 말인가?"
"어차피 지금 나 또한 28년 208일 21시간 오 십 육 분 사십 삼초... 사십 이초... 일초..."
"나쁘지 않은 선택이로군. 무운을 빌겠네."
활기를 띈 과학 박람회의 어딘가의 모퉁이 구석... 그곳에서는 깡통처럼 생긴 보잘 것 없는 고철덩어리 도우미 로봇 둘이서 알 수 없는 전자 언어로 소통을 나누더니 채 1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 자기 제 갈 길을 가려 헤어지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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