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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셨구나... 그래도 참 아이러니하네요. 그렇게 로봇 타도를 외치던 우리 둘이 그것들의 중심에서 만나게 될 줄은...”
“그,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그나저나 많이 예뻐지셨...”
“유진 씨 이제 가봐야 하지 않나요? 늦으면 오늘 안에 신청 못 할 수도 있어요. 다이어터 쪽이라면... 약간의 절차가 필요하거든요.”
“절차요..? 그렇군요. 그 그나저나 주임님 전보다 더 많이...”
“어머! 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 언젠가 만날 일이 있을 거예요. 그렇죠?”
“예. 저..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그나저나 베넷... 얼굴이 더 많이 예... 예..”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자꾸 울리지? 그럼 나중에 또 봐요?”
“휴우.. 말 한마디 붙이는 게 그렇게 힘들었냐? 이 멍청이.. 찐따, 모질이!”
“베넷 씨는 예전보다 더 좋아 보이시네.. 이러한 기계들 사이에서도 빛을 내고 있으시니”
[삐리!]
“16번 유진 씨 들어오십시오.”
“예. 에~ 들어간다는..”
유진은 속옷을 포함한 전라의 상태로 자신의 몸의 상태를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글쎄... 이것은 신체검사의 일부였을까? 아니면 건강검진? 혹은 마치 육질의 등급을 측정당하는 도살장의 돼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여러 성공적인 샘플 사례들의 화려한 근육질의 몸매를 보아하니 그러한 굴욕도 3개월만 참으면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기분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이정도면 가능하겠어?”
“ok! 가능합니다.”
“유진 씨?”
“예! 예 다 끝..난 건가요?”
“일단 옷 좀 입으세요.”
“아... 네”
“다이어터 자격 조건으로서는 충분합니다. 저희 쪽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데요.”
“제안이요?”
“네! 제안입니다.”
“그게 무슨 제안입니까...?”
유진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제안이란 별것 없었다. 3개월의 다이어터 기간 동안 집으로 귀가하지 말고 이곳에서 숙식을 하며 그 과정을 함께 참관하여 ‘인간의 입장’으로서 느껴지는 간단한 생각이라든가 설문 등에 참여만 해 주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3개월 동안 비게 될 직장은 자신의 대타로 안드로이드가 대신 일을 하게 될 것이며, 성실하게 이 프로젝트에 응해 준다면 조금 더 나은 직장으로의 추천 또한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 그들의 조건이었다.
“그까지 것 하지요!”
결연한 마음가짐이 이내 식을 새라 수술복을 입은 유진. 이미 수술대 위에 올려 진 자그마한 실험용 개구리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수면제 투여합니다. 하나...”
“둘...”
“허어업!!”
긴 심호흡을 내뿜으며 거침없이 일어나는 유진.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보다는 몸이 무척 가볍다는 느낌? 그리고 자신의 마음대로 너무나도 정교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가슴과 복부 쪽을 어루만져보는 유진. 왜인지 있어야만 할 곳에 있어야 할 것들이 사라진 공허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수 초 후... 그 공허함은 홀가분함으로 바뀌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유진은 본능적으로 벽에 놓인 거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나란 말이야?”
완벽한 다이어트의 결과였을까? 목 쪽으로 빙 둘러서 새겨진 수술 자국만을 제외한다면 그리고 미세하게 느껴지는 찌릿한 수술 후... 통증만을 제외한다면 699달러, 근육질 몸매, 성공적이었다!
“흐아합..!”
기운을 내며 생전 가져본 적 없는 멋진 몸매에 포즈를 취해보며 거울속의 자신에 빠져버리는 나르시시즘에 처음으로 매료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곤 문이 열렸다.
“아직 너무 무리하면 안돼요. 16번 고객님 아니 유진 씨”
“베넷 씨!?”
“보시면 아시겠지만 목 쪽을 기반으로 큰 대수술이 있었어요. 유진 씨는 약.. 91일 4시간... 그러니까 약 3개월 만에 이 병실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고요.”
“3개월 만이라고요..? 그럼 이게 내 몸인가요..? 대체 어떤 수술을 진행 했길래...”
“보통은 다들 이런 식으로 에둘러 집으로 돌려보내죠. 이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을 하니까.. 하지만 그 전에 ‘동의’ 하셨었죠?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시겠다고...”
“그.. 프로젝트인가... 뭔가 하는 것 말이죠? 하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이라면 이미 끝난 것이 아닌가요?”
“틀렸어요. 사실을 말씀해 드리자면, 음 대개는 그래요. 우리가 제공되는 신체를 받고 떨어지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유진 씨는 불과 4시간 전에 수술을 마쳤어요.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단 뜻이에요.”
“하루도 흐르지 않았다고요...?”
“새로운 몸은 만족해요?”
“네.. 당연히 만족합니다만... 새 몸 그럼 이것이 내 몸이 아니란 말인가요?”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베넷이라는 여성과의 만남의 즐거움은 새 느낄 새도 없이 이곳저곳의 복잡한 연구실의 내부와 복도를 거치던 중... 조금 더 그것들의 세부적인 연구와 진행 사항들을 살펴볼 수도 있었지만, 이제 막 깨어난 유진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크게 와 닿을 리가 없었다. 단지 직업 재활 센터에서 마주했었던... 그 베넷의 독특한 향기에 이끌려 발걸음을 내딛을 뿐이었다. 가녀린 그녀의 손가락이 자신의 양 어깨를 붙잡았고, 또렷한 눈동자와 눈동자는 서로간의 내면을 소통하는 창구였다. 도톰한 입술이 슬며시 열렸고, 그 작은 입술은 유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요! 유진 씨 여기니까요. 이제부터 중요하니까 심호흡하시고요. 수술 뒤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으면 좋지 않거든요.”
“아 예... 그, 그죠! 정신 차려야죠!”
마디마디 강단 있는 그녀의 매끈한 양손아귀가 자신의 얼굴을 찰싹 찰싹 때릴 때의 감촉 또한 보드라왔다. 연인들 간의 어루만짐보다도 왜인지 모르게 더 묘한 떨림이었다. 손바닥의 충격이 마주한 양 볼을 어루만지며 비추어진 유진의 눈가에는 지금과 같은 아련한 느낌을 산산조각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저, 저게 뭡니까?”
도살장이었다면 입맛을 다셨을 수도 있었다. 인간들...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을 제외한 종들의 도륙.. 그리고 학살. 스스럼이 없었으니까... 심지어는 자신들의 종마저도... 그렇게 행해왔었으니까.
“저 돼지 같은 몸뚱어리는 대체 무어란 말입니까?”
모가지가 잘려나간 인간의 몸뚱어리를 한 신체의 실험체. 얼굴이 잘려 나갔음에도 그것은 보란 듯이 바등대며 움직이고 있었고, 온몸 구석구석에 붙은 여러 실험 장치들과 전기 작용으로 이곳저곳을 자극시키는 장면에 땀구멍과 항문에서는 여러 땀과 배설물과 같은 분비물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목 쪽의 절단 부위에서는 이미 임시 처치를 하였는지 피가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목 주변을 보아하니 인두로 지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방금 전 거울에서 보았던 자신의 목의 흉터와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다이어터들이 남기고 간 신체들 중 일부예요. 뭐 일부라기엔 그 전부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요.. 수십 년 전 지방흡입 수술에서 남기고 간 지방들.. 셀룰라이트? 뭐 그러한 것들의 잔재라고 보시면 되겠죠.”
“하지만 저건 수술 후 잔여물이라기엔... 너무... 너무나도”
“그렇죠? 너무나도... 크긴 하겠죠..”
“너무나도 볼품없이 눈꼴 사납지 않습니까!?”
“아... 그랬어요? 조금 놀라워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다니”
“하하.. 베넷 평생 자신의 몸을 샤워라는 명목으로 다루었을 때 보여 지는 결과물이 일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불과 4시간 전의 저였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럼, 진실을 말해주어도 괜찮겠군요... 조금은 걱정했었는데..”
“걱정이라뇨?”
“저 몸은... 유진 씨 바로 당신의 수술 후 남긴 폐기물이에요.”
“하하.. 역시, 그랬었군요. 뭐 그다지 별로 놀랄 일도... 뭐라고요!!!?”
“네 저 몸은... 유진 씨의 몸이에요.”
“아... 저 그니까. 베넷. 아.. 어... 그러니까... 어.. 흐흑... 왜, 왜지? 왜 멍청이처럼 바로 눈물이... 눈물이 흐르는 거지?”
“이수작용이 충분하게 발생하는 새로운 몸을 얻었기에, 눈물이 흐르는 걸 거예요... 수술하기 전의 유진 씨는 아마도... 단순하게 이렇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비대해진 몸과 같이 내면의 마음마저도 부풀어 올라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다면 이게... 이게 슬프다는 감정입니까? 이게... 이게 마음이 아프다는 기분인가요?”
“네. 맞아요. 유진 씨가 그동안 느꼈을 좌절감들과 소외감은 모두 이렇게 눈물을 흘려야만 정상이라고 볼 수 있는 감정들이었어요. 흔히 의사나 의학박사들은 뚱뚱한 비만자들에게 ‘혈관이 막혀 있으니 위험하다..’, ‘성인병을 동반할 할 수 있으니 살을 빼야 한다.’라고 의료상담을 해주곤 하지요.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는 눈앞에 직면한 살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속에 꽉 막힌 공허함과 소외된 배척감을 제거해 주는 것이 급선무였을 지도 몰라요.”
“마음먹기에 따라 달려 있다는 건가... 그럼 이 몸은... 누구의 몸이죠?”
“글쎄요. 어떤 몸일 것 같나요? 직접 그 몸을 느껴본 당사자가 더 잘 알지 않겠어요?”
“마치 새것 같아요...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을 겪어보지 않은 것 같은... 하지만 선천적으로 매우 훌륭하게 잘 만들어진 몸....”
“훌륭한 신체에는 올바른 감정도 깃들기 마련이지요. 울고 싶다면 맘껏 우세요. 슬프다면 그 슬픈 기분을 제대로 느끼세요. ‘왜 내가 슬픈 건지...’, ‘왜 자신이 답답한 건지...’ 그 이유를 알면 인간은 자신이 처해진 상황과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까요.”
“그렇군요. 이러한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 실험의 일환인 겁니까?”
“네 맞아요. 하지만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것들이에요. 보세요.”
“어... 내 몸은 이제 어디로 가는 거죠?”
“따라오세요.”
유진은 바로 옆의 실험실... 또 바로 옆의 실험실 너머로 보이는 바깥 공간에서 자신의 잘려진 몸뚱어리가 어떠한 과정을 거치게 되어 어떻게 처리가 되는지 베넷의 설명에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분비물이 전부 빠진 신체는... 각종 소독약들과 가공된 약품 처리를 거쳐... 이쪽, 이쪽이에요.”
“또... 수술대입니까? 이번엔 또 무슨 수술.. 설마..?”
“보이세요?”
“저건.. 인간의 머리... 아니 얼핏 보기엔 흡사하지만...”
“네, 저건 100% 무에서부터 창조된 인공 안드로이드 로봇이에요.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일부인 머리일 뿐이지만요. 하지만 아직 자체적인 판단을 하는 A.I.프로그램은 깔리지 않았어요. 이것은 앞으로 3개월 동안 성실하게...”
“아앗! 베넷... 뭐, 뭡니까. 무얼 하는 거죠? 설마 저 거부감이 드는 기계 머리통을...”
“네... 버려진 유진 씨의 신체와 결합하는 수술이에요.”
“기계의 머리통을 붙여 놓는다고 움직일 수 있을 리가...”
“본인 또한 이렇게 움직이고 있으면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앗..! 붙이자마자 일어났다!”
“두뇌가 기계로 이루어진 A.I.는 생물학적 코마나 실질적인 고통 따위를 느끼지 않으니까요. 저렇게 완벽하게 신경다발을 봉합해 놓은 상태라면 수술 직후 바로 활동까지 가능하게 되어요. 이 또한 세밀하게 조작할 수 있는 기계 신경의 우수함 때문이겠지요. 물론 자극적인 활동은 조금 더 흘러야겠지만...”
“벌써 수술이 끝난 겁니까? 단 10분 만에...?”
“실험체 no.16번 잠깐 내 앞으로 올 수 있겠어?”
“예. 갈수 있습니다.”
유리벽 하나만을 사이에 둔 채... 베넷과 유진을 바라보는 또 다른 유진. 아니, 예전 유진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었던 유진의 신체였다.
“지금 기분이 어때?”
“신장 쪽에 요통이 느껴집니다. 간 지방 수치가 높아. 피로도가 극심합니다. 온 몸 구석구석의 혈류들이 원활하지 않아. 움직임에 제한이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불필요한 각종 지방들과 셀룰라이트들이 심장 펌핑의 흐름을 방해하여 호흡이 가빠옵니다. 생물이라면 고통 또한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릎 관절 쪽의 연골과 허리 척추 뼈에 가해지는 무게가 상당하여...”
“오케이! 대충 알았어. 한마디로 산송장이나 다름없다는 거군...”
“산송장...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이 의미 없는 움직임을 한다.’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
“내가 한말 되뇌지 마! 이거 저번에 쓰던 실험체 백업 된 거야?”
“백업되지 않은 데이터입니다.”
“하아~ 그랬군. ok. 당분간 조용히 하고 있어 no.16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따라와요. 유진 씨...”
“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