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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기 짝이 없어! 인간들은 이러한 보편적인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게 수상작이라고? 바보 같은 신파극을 좋아하는 얼간이들이 늘어난 모양이로군.”
카제스트의 수상작을 흘기며 중얼거리는 유진. 그러나 알게 모르게 마지막 결말의 부분에서 손쉽게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끊었던 술과 담배를 다시금 손에 대기 시작했으며 나아가 절대로 금하겠다던 가상 입체 장치의 세계에도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한 그였다. 가끔씩 찾아온 베넷의 관심에도 무용지물이었다. 다시금 심기일전하여 글을 써 보려고 하였지만 이전과 같은 자존감과 확신에 찬 작품을 쓰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3회 연속, 나아가서는 4회 연속의 수상 후보작에서도 아쉽게도 경합을 벌이다 카제스트의 작품에 밀려 수상을 내주게 되었다. 더욱이 세간의 언론에서는 안드로이드들을 포함한 인류의 비평가들도 카제스트의 작품이 몰라볼 정도로 성장을 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유진을 비롯한 남아 있는 인간들의 역량으로는 더 이상 과학 소설의 대항마를 찾기가 힘들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 또한 이러한 경계의 분기점은 과도하게 발달된 비대해진 문명 탓으로 점차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지 않아 평균 지능이 낮아지기 시작한 문학인들의 폐해를 1순위로 꼽기 시작했다. 카제스트의 4연속 A.I. 문학상의 수상 결과로 인하여 이제는 인간들의 감정을 다루는 순수 문학의 경계에 대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고, 그나마 몇 안 되는 순수문학 작가들의 자리도 넘볼 지경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순수문학 작품의 존재로써는 카제스트의 뒤를 이은 이오니스트가 최초의 순수문학 작품 수상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몰라보게 망가졌어요. 당신...”
“이제 인간들은 더 이상 편리한 이상향을 꿈꾸지 않아. 애초에 꿈에서 깨어나길 거부하니까 말이야. 빌어먹을 존재들에게 현실에서 깨어나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사람들은 점차 멍청해 지고 있어요. 문명의 비대한 발전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이지요. 하지만 인정하고 순응하는 순간 우리들은 안드로이드들에게 길들여지는 가축과도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말거예요.”
“녀석의 말이 맞았어. 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고 있는 거지? 나의 글의 부푼 꿈과 이상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사라져 버렸지. 전부 텔레델피아나 비델리온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니까...”
“기억나나요? 당신, 4년 전에 제가 처음으로 찾아 왔었던 때를”
“그나저나 베넷 자네 이제 완벽한 안드로이드로 변화한 게로군?”
“맞아요. 최소한 500년 이상의 존속은 가능할 거예요. 혹 모르죠. 그 시간이 되면 좀 더 발전을 이루어서 영원히 연명하게 될 지도.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지 않나요?”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녀석을 이기고 싶어.”
“정말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신 거예요?”
“아무 이유 없이 지고 싶은 녀석은 세상에 없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예요.”
“하나뿐이라고?”
“제가 말했었던... 가상 입체 장치”
“그게 마지막 방법이라면 사양할 수밖에”
“대체 그렇게 그것을 마다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녀석과 같아진다면, 내가 녀석과 같아진다면... 내가 이긴다 해도 녀석들이 이긴 것과 무엇이 다르지?”
“만약 그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요?”
“잃지 않을 수 있다고?”
“대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곳, 혹은 영원히 존속하고 싶은 장소에 현혹되어 빠져 머무르곤 하죠. 영원이라는 긴 시간... 혹은 그 이상보다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상황들에 빠져서 말예요.”
“지금 이 순간 또한 그와 같은 상황이라면 난 아마도 버티지 못할 걸세...”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을 해 보세요. 카제스트가 카피 J였을 때를 기억하나요?”
“그래 기억하지. 자네 아버지의 조수들인 사람들을 포함 카제스트의 인공 지능과 문학성을 성장시키기 위해 모토로 삼은 나의 생전의 모든 정보들을 데이터화 하여 입력하기 시작했지.”
“순수 본연의 가치를 떠나서라면 유진 당신과 똑같거나 나을 수도 있다는 이론이었죠? 막연하게요.”
“그렇지...”
“이번엔 그 반대가 되어보는 건 어때요?”
“반대가 된다고?”
“카제스트의 인격과 마음은 이미 얼마 전에 형성되었어요. 그리고 그의 생각들과 이념들은 원하는 사람들의 접속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가 되어 있으니까요. 그것이 애초에 ‘그’의 존재의 이유이기도 했었고...”
“녀석의 것을 베끼란 말인가?”
“베끼고 말고는 작가로서의 당신의 기준에 맞추어야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정말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녀석이 어떠한 생각으로 글을 쓰는지 어떠한 생각으로 나를 바라보는지 한번쯤은”
“그래요. 한번쯤은”
“적을 알고 나를 알라... 는 말인가 흥미롭지만 그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네 운이 좋았던지 다행스럽게도 카제스트의 인격은 4번째 A.I. 문학상 이후 완성되어 실질적으로 공개되어 서비스 되고 있어요. 물론 그마저도 관심이 없는 ‘인간’들도 태반이긴 하지만요.”
“녀석에게 접속한다면, 반대로 나의 생각들을 빼앗길 수도 있지 않은가?”
“이미 전부 빼앗겼는걸요. 그는 당신의 성향과 생각들로 전례가 없던 새로운 작품들도 창조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요.”
“인간의 노화와 늙음이란 것에 이토록 한탄스러웠던 적이 있었는가?”
“이제는 돌아갈 곳도 없잖아요. 참고로 난 당신의 팬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카제스트의 작품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요.”
“좋아.. 하겠네! 녀석의 생각에 접속할 수 있는 장치를 나에게 빌러주게”
“언제쯤일까 하고 항상 휴대하고 있었어요. 오늘 당장이라곤 말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마음이 생긴다면, 할 생각이 자리 잡히게 된다면... 건투를 빌어줄게요.”
“고맙군. 나의 벗이자 그의 딸인 자네가 없었다면 난 아무래도 떨어질 곳 없는 나락으로 추락해 버렸을 테지.”
“악착같이 다시 올라오는 것도”
“그래. 우리 인간들의 본성이니까...”
<유진이 쓴 소설- 죽지 않는 자의 은하 지침서 >
남자는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하지만 행성들 간의 아무런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남자는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그 자리 그 곳에서 머무를 뿐이었다. 미처 감지 못한 동공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만 같았지만 그것은 온전히 마주한 자신의 모습이자 느낌이었다는 것을 그 때 당시에는 눈치 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유진 묵시록 6장 12절
“라져... 라져... 라져댓 듣고 있나? 여기까지는 수신이 되지 못하는 모양이로군”
“이제 끝이로군요. 제이콥 방금이 마지막 무전이었죠?”
“아니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떠나오기 직전 이미 각오했던 것 아니었나? 다시금 되돌아갈 수는 없겠노라고 정착할 곳을 정해두지 않았다는 건 말이야. 어디로든지 떠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하지.”
“안녕... 영원한”
“충격에 대비하라고! 지구의 대기권은 무수하게 통과해 봤겠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실전이니까 말이야”
“당신은 마치 겪어본 사람처럼 말씀 하시는군요?”
“당연하지! 꿈에서도 항상 갈구해 왔던 순간이었어.”
“태양계 영향력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 태초의 생명이었던 장소에서 드디어 나아가게 되는 거군요.”
“벗어나는 순간 은하계로의 돌입이야. 앞으로 2시간 40분 남았으니까 그 동안 체력이나 비축해 두라고 곧 있으면 시간의 개념 또한 중요해지지 않는 상태에 돌입하게 될 테니까. 단순한 우주 놀이가 아닌 최초의 진정한 우주 공간에 돌입하는 최초의 영광을 누리게 될 거야.”
제이콥은 눈을 감았고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머나먼 거리의 우주 탐사여행을 떠난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 우주로 비행선을 쏘아 올리는 행위는 인간들에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일이자 이상적인 꿈의 발현의 행동이 아닐 수가 없다. 이를테면 나로호 등의 셔틀 우주선의 경우가 그랬다. 이후 급진적으로 발전한 과학 문명의 여파로 직접적인 통신은 불가하지만 이미 태양계를 벗어난 것으로 기록된 보이저 1, 2호가 대표적이었다.
태양계의 항성의 중력의 법칙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달리는 차 안에서 적용되는 법칙과 지구의 중력의 대기권을 벗어난 법칙...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어지간한 스턴트맨이 아니라면 이리 튀고 저리 튀어 나뒹굴며 상당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로 대기권을 벗어날 수 있는 에너지와 산화되지 않는 방호벽이 있다면 그 에너지를 분출함과 동시에 태양계 공간으로 솟아 나가게 될 것이다. 그 힘이 부족하다면 다시금 태평양의 중심 어딘가로 추락하겠지.
그렇다면 여기에서 문제!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들...이 아닌 은하계를 공전하는 태양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어떻게 될까? 수금지화목토천해 오늘의 잡설은 특별히 제외된 명왕성까지도 포함시켜 떠올려 보자. 태양이 우주 공간을 어떻게 순항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간단하게 그 내부의 행성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쉽다. 위성인 달이 지구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트리플 엑셀을 밟고, 지구와 목성, 화성을 비롯한 여러 행성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태양의 주위를 공전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양 또한 엄청난 속도로 은하계를 공전하는데 속도는 대략 초속 217km라고 한다. 본론에 앞서 태양계의 구조를 잠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태양은 항성이고 태양 주변의 행성들이 태양계 행성들이 아니라 ‘태양계 자체가 항성이다.’라고 한다면 이해가 가는가? 쉽게 이야기해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 자체를 항성의 중심핵이라고 치자. 그리고 그 주변을 돌고 있는 명왕성까지의 범위를 통칭 항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으음 누가 이러한 보고서를 보게 될 거라고 무척이나 열심이네요.”
“깨어났나 보군... 관계없을 거라 생각하지 말게! 앞으로 우리들 앞에 도래하게 될 내용이니 말이야.”
“자면서 얼핏 들은 내용인데 말예요. 말했었던 태양계의 중력 그 자체를 벗어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은하계로의 돌입이지”
“은하계를 벗어나면요?”
“은하단이나 은하군 규모의 우주 공간을 항해하게 되겠지”
“은하단을 벗어나게 되면요?”
“나도 거기까진 잘 몰라. 하지만 우리가 가고 있는 최종 목적지이기도 하지.”
“이번 탐사의 목적은 어떠한 행성들의 에너지 혹은 존재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 곳을 찾기 위한 것이었죠?”
“그래 맞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력이겠지.”
“과학자들은 참으로 대단하네요. 어떻게 이런 것을 발견해 냈는지”
“의사도 그에 못지않아, 인간이라는 개체 하나도 어떤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우주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
“빈말이라도 감사하네요.”
“우리는 태양과 떨어진 태양계 공간이 아닌 명왕성 끝까지의 태양계 바깥을 향해야만 하지. 그래서 태양계의 중력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은하계의 돌입 또한 마찬가지야. 그 위의 공간들이 얼마나 넓고 무궁무진할 지는 미지수야. 하지만 그 돌입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이번 여행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어. 물론 그 전에 죽을 수도 있겠지”
제이콥과 이자벨라는 단 한명으로 이루어진 생존자 집단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우주 공간을 벗어나려 한 대에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다. 핵전쟁이 일어날 것을 대비하여 새로운 별을 탐사한다는 암묵적 목적으로의 이유 따위가 아니었다. 단지... 마지막 인류의 씨앗을 우주 어딘가로 흩뿌리기 위해서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 이자벨라와 단 둘이었다면 어땠을까? 우주여행이 아닌 어느 한 곳에서 정착을 하며 후세를 바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순수 무에서부터 창조된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로봇이었다. 의료수술 전용보조로 개발된 프로그램을 탑제 시킨...
70년대에 유행했었던 익숙한 멜로디의 팝송들이 흘러 나왔다. 그 시대를 살아본 적 없었음으로 아무래도 좋았다. 클래식인 아베마리아, 비틀즈의 명곡들이 우주 공간과 조화를 이루었다. 셀 수 없는 수많은 항성들 사이를 회유하며 은하계의 경계의 끝을 벗어나기 직전이었다.
“제이콥? 자고 있나요?”
“어... 음 현 지점이 어디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산 밖이에요. 입력해 놓은 범위로부터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어요.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 수백 개로 추정되는 은하군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요. 임시좌표 지점 AXD4Q95...”
“잠시 동안 꿈을 꾼 것만 같은데, 언제 여기까지 도달하게 된 거지? 잠깐만 이자벨라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군. 만약 내 직감이 틀리지 않다면 저 끝을 벗어나야 우리가 원하는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늙어죽기 직전인데 죽기 전에 꿈을 이루시는 거로군요?”
“농담 말라고... 내 입김에 자네의 얼굴이 물들 정도의 시간이 흘렀어. 30년만인가. 돌입 준비할 테니 좌표지점 파악하고 충격에 대비하라고”
“드디어 그 끝을 알 수 없는... 막바지 대기권으로의 돌입이로군요.”
“나는 눈을 뜨며 이 순간을 받아들이겠네. 이자벨라 자네는?”
“저는... 눈을 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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