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인상 때문이었던 것일까? 그녀에게 자신의 무지함과 멍청한 부분을 각인시켜주기 위해 우주의 반대편까지 날아온 남자였다. 그래,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우주의 정반대의 공간으로 날아온 것을 보면 정말이지 무척이나 보잘 것 없으면서도 하찮은 이유 중에 하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보다 조금 더 지적인 여자였다. 그리고 이러한 바보 같은 존재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어필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자니 왠지 모를 동질감과 동정심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제이콥은 이러한 곳에서 단 하루라도 제대로 살아가기가 힘들어 답답했을 테니까...
“그래서.. 베넷! 내가 아는 친구에 의하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군.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당연히 그렇겠죠. 하지만 이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은 없어... 그저 평범한 수준의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 단지 그 뿐이었어요.”
“이 세상에서 똑똑한 사람은 당신 하나뿐이었다고?”
“네... 이렇게 이루어놓은 업적들로 혹여나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있을까? 몇 번이고 공개 광고를 모집해 보기도 했었어요.”
“그 모집이란...?”
“보편적인 어린 아이의 지능으로 쉽게 풀 수 있는 수학문제라거나 단순한 기본 상식 같은 문제들이었죠. 예를 들어 389+241-58과 같은 단순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세계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말동무라도 삼을까 아기돼지 삼형제의 막내가 돼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한명 없었어요.”
“그랬군... 당신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웠을지 잘 알겠어. 당신이 멍청한 여자라는 비난은 거두어들이겠어. 하지만 왜 이렇게 사람들이 멍청해 졌는지 혹시 아는가?”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기 때문이에요.”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새로운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
“아뇨... 이 사람들은 몇 세대 이전 슈퍼컴퓨터의 지배를 받고 있던 사람들이었죠.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수동적인 존재.”
“그 본체 컴퓨터가 더 이상 써내려갈 소재가 바닥난 것이로군.”
“맞아요. 위대한 인류의 소설가가 죽은 뒤로부터 말예요.”
“인공지능 컴퓨터라 함은... 끊임없이 증식하며 성장하는 존재 아니었던가...? 내 벗이었던 이자벨라 또한 그랬었지.”
“이자벨라요? 혹시 그녀를 아시나요?”
“뭐 내가 아는 그녀와 동일인이라면 그렇겠지. 덕분에 지금껏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는걸”
“여길 보세요. 그녀는 이 세계의 근본을 이루어낸 창조자예요.”
“어... 그러니까, 저건 내 사진이잖아.”
“그 옆을 보세요.”
“아... 음 그러니까”
“당신이 알고 있는 그녀와는 달리 애초에 로봇으로부터 탄생된 존재였지만요.”
“그랬었군, 그녀는 모든 기능을 상실하지 않은 상태였어. 그렇다면 여긴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 아니었단 말인가?”
제이콥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정말로 우주의 경계의 끝을 도달하여 새로운 평행 우주로 순항을 한 것이 현실이었는지, 혹은 이 평생 세계의 우주 공간으로 차원의 도약을 한 것도 사실인지의 여부에 관해서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사진 속의 여성 안드로이드 이자벨라는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이자벨라가 분명했다. 30년 동안이나 우주여행을 순항하며 대화를 나누었던 그녀는 제이콥의 입김에 의해 새하얗던 얼굴이 약간이나마 누런빛을 띄고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안드로이드 기계가 인류를 창조시켰는지는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는 우리도 알지 못해요. 단지 그녀에게서 태어난 태초의 인간 존재들에 의해서 내려온 이야기들이죠.”
“그녀가 만약 인공 수정으로 인간을 탄생시켜놓았다면 그와 동시에 기계들의 존재들 또한 탄생시켰을 거야.”
“어째서 그렇죠?”
“그녀는 기계와 인간의 조화를 무척이나 안락하게 생각하는 특성을 지녔었거든. 분명히 사라져 버린 나의 부재로 인하여 무척이나 공허하다고 느꼈을 거야. 잠시 이곳의 연혁을 볼 수 있을까?”
“대체적인 정보는 손을 뻗으면 알 수 있을 거예요.”
[태초의 인간은 안드로이드 여신인 이자벨라에 의해서 창조하게 되었다. 그녀는 우주의 끝을 경험한 전지전능한 신이시며 그와 더불어 인간들을 유익하게 만들 슈퍼컴퓨터 보보스 또한 창조해 내었다.]
“여기 와서 만난 인간 이자벨라는 그저 그런 동명이인이었어. 바보같이 착각할 뻔했군. 그나저나 저 자는 누구지?”
“약 1세기 이전 가장 영향력을 끼치던 SF작가에요. 이름은 유진이죠. 그리고 그의 라이벌은 카제스트였어요. 죽을 때까지 집필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였죠.”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그녀의 성향을 물려받은 안드로이드라면 가장 유력한 인간의 부재로 기능을 정지해 버렸을 수도 있어... 그래서 컴퓨터들의 가상공간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빠져나온 인간들은 개·돼지보다도 못한 지경의 바보들이 되어 버렸고 말이야...”
“역시 당신은 풀리지 못한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존재였군요.”
“어쨌든 이자벨라를 두고 떠난 저 자가 본연의 나인지, 혹은 또 다른 평행우주의 나인지는 현재로써는 파악할 수 없어. 단지...”
“단지...?”
“인류는 인류를 위한 새로운 문학 작가를 탄생시킬 필요가 있어. 이 봐 베넷! 당신의 이 세계에서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이지?”
“믿기 힘들겠지만 절대적이에요...”
“그래 그럼 잘 됐군, 나의 선택에 따를 의향은 있는 거겠지?”
“당연하죠. 평생을 기다렸는걸요.”
“우리는 동등한 입장에서 저들을 처단할 권리가 없어. 그렇다고 관여를 해서도 안 되지 그녀를 홀로 두고 간 나의 과오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거야. 아마도 그녀의 딸이었던 최초의 인간이 나에게 영상을 남겼던 것이었겠지. 내가 다시금 돌아와 사태를 해결할 것이라 믿고서...”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인간들의 과정을 수없이 접해 왔었지.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주면 권력을 위해 서로를 짓밟고 전지전능한 힘을 쥐어주면 인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파괴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들을 빼앗자니 무력한 현실을 원망하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지.”
“방법이 있을까요?”
“기계들의 판단은 어쩌면 옳았을 지도 몰라. 베넷 전 세계에 생중계를 시작하도록 해. 모든 사람들이 가상공간장치에 접속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 다음은요?”
“사람들에게 백업된 나의 데이터를 똑같이 공유하도록 해. 나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알겠어요. 더 필요한 것은요?”
“우주여행을 떠나는 것은 오로지 나 혼자만 떠났던 걸로... 약간의 수정을 해야겠지.”
“그게 좋을 것 같겠네요.”
*
죽지 않는 자의 은하 지침서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과연 그 진리에 도달하는 무언의 깨우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 있단 말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애초에 중요하거나 진리였던 것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안녕하십니까? 베넷입니다.]
“오오.. 이 세상에서 모르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미스 베넷이잖아!?”
“그녀는 이 세상에서 신으로 통하는 사람이야. 그녀가 하는 말은 대부분 맞거나 정확히 일치한다고..!”
진리를 찾아 떠났던 제이콥의 기억들은 기억저장장치로 인한 백업된 데이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전파될 것이었다.
[저는 열화와 같은 여러분들의 성원을 뒤로한 채... 잠정적인 우주여행을 떠날 계획입니다.]
“에에..? 뭐라고? 베넷이 떠난다고? 그렇다면 우릴 두고 간단 말인가? 세금을 내는 방법은? 월급을 나누어 쓰는 방법은 베넷이 알려준 금액대로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효율적인 방법은 없었는데!”
“오오..~ 안 돼요 베넷 떠나지 말아요. 우릴 버려두고 가지 말아요. 제발.. 신이시여~ 미스 베넷이 우리를 져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살아생전 자신이 추구하던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한번쯤은 의문을 갖고 혹은 망각한 채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인생의 본질인지에 대한 여부는 그 누구도 어떻다 판단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떠나기 직전, 여러분들에게 반드시 전해주어야만 할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 저 베넷과 함께 우주로 떠나실 분들은 서둘러 가상세계장치에 접속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엥..? 그 장치는 별다른 콘텐츠가 없어 기능을 멈추었던 것 아니었나?”
“미스 베넷의 말이라면 무언가 또 다른 방법이 있겠지 그녀의 말이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도 그렇군! 여기에서 술이나 퍼마실 때가 아니라 빨리 접속을 해야겠어. 그녀가 서두르라고 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반드시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벗어나 우주여행을 한다면 더욱 더 윤택한 생활을 접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가상세계장치에 접속이 어려우신 분은 베넷 기업으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단 한명도 빠짐없이 여러분들을 도울 것입니다.]
전 세계로 송신되는 베넷의 영상메시지 한 번에 인류의 70% 이상이 가상세계장치에 접속하였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권유와 찾아가는 서비스를 비롯해 접속률 100%를 보이는 것이 계획이었고 성공 확률 또한 보장되어 있었다.
각자의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제이콥이 겪었었던 우주여행을 겪게 될 것이었다. 그가 우주여행을 떠나기 직전 어떠한 인간 생애를 겪었는지는 접속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막바지 우주여행을 떠날 시점. 왜 인류를 대표하여 우주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찌되었든 모든 인생의 전말에 대해서는 모두가 그 끝을 알 수 없을 테니까. 단지 그 기억들의 순간에는 함께하던 안드로이드 이자벨라는 지워지고 없었다.
남자는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하지만 행성들 간의 아무런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남자는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그 자리 그 곳에서 머무를 뿐이었다. 미처 감지 못한 동공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만 같았지만 그것은 온전히 마주한 자신의 모습이자 느낌이었다는 것을 그 때 당시에는 눈치 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제이콥 묵시록 6장 12절
“라져... 라져... 라져댓 듣고 있나? 여기까지는 수신이 되지 못하는 모양이로군”
“......”
“아무도 없는 우주 공간에 혼자 있다니 쓸쓸한 기분이 드는군, 하지만 내 예감이 맞다면 반드시 우주의 벽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왜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기분이 드는군.”
홀로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어색하지 않도록 한 배려였을까 그는 눈을 감았고 클래식인 아베마리아, 비틀즈의 명곡들이 적적한 우주 공간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