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서 ↔
불투명하던 정신을 차렸을 땐, 눈앞에는 광기 어린 아이가 서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옆에는 뒤통수가 짓이겨져 죽어있는 여자와 그 주변에 흘러넘치는 끈적끈적하고 붉은 피가 두 눈동자를 적셔왔다. 끔찍하다는 생각보다는 누가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자리 잡았다. 아이와 얼굴을 마주했다.
“네가 그랬어?”
아이가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누가? 하는 얼굴로 다시 묻자, 아이가 탁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탁자 위에는 괴발개발로 무언가 쓰여 있었다.
[어이, 나! 이 애 좀 잘 돌봐라.]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아이를 바라봤다. 나 말고 다른 인격이 내 안에 있다는 소린가. 아니면 내 앞에 서 있는 어린애의 영악한 장난인가.
“못 믿겠으면 CCTV 돌려봐요. 여기에도 있을 거 아니에요.”
10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가 당돌하게 말했다. 일단 정비소 문을 굳게 잠그고 창문 블라인드까지 내린 뒤, 창고로 향했다. 구석에 처박혀있던 CCTV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며 확인했다. 평소 렌치를 번쩍 들지 못해 두 손으로 겨우 드는 내가 한 손으로 들어 여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리고 잠시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가, 어지러움을 느낀 것인지 몸이 휘청거리다 다시 중심을 잡고 우뚝 섰다. 나다. 내가 나온 것이다. 내가 여자를 죽인 것이다. 두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와 마우스도 화면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겨우 CCTV 내용을 영구 삭제해버리고 정비소 구석에 있던 카메라 하나를 떼버렸다. 원래부터 없던 것처럼 말끔하게. 심장이 터질 듯 뛰고 두 손에서 식은땀이 맺혀온다. 아이는 연신 날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겠지. 방금까지 살인을 하던 내가 다른 사람인 척 상황을 묻고 증거를 인멸하고 있으니. 아이를 잘 돌보라는 말은 뭘까. 이제야 쪽지의 내용이 떠올라 여자의 피를 밟고 있는 아이를 끌고 와 탁자 앞 의자에 앉혔다.
“저 여자는 누구야.”
“우리 엄마.”
“…….엄마? 근데 안 슬퍼? 내가 밉지 않아?”
“아니, 고마워. 근데 누나 이상해. 다른 사람 같아.”
“잠, 잠시 머리가 아파서 그래. 너 갈 곳은 있어?”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갈 곳 없는 것이 뭐가 좋다고 해맑은 것인지. 순간 철없는 아이를 다그치고 싶었다.
“누나, 엄마 묻어야 돼. 그래야 누나가 경찰 아저씨들한테 안 잡혀가.”
“묻는다는 거, 누구한테 배운 거야?”
10살짜리 아이가 그런 말을 알고 있을 리 없었다. 분명 아이의 집안에 문제가 있다.
“아빠가 그랬어. 아빠가 맨날 강아지 묻었어.”
사정을 듣지 않아도 얼추 시나리오가 써내려졌다. 동물 살해를 즐기는 아버지와 아이를 폭행하는 엄마? 여자는 왜 죽었지. 왜 죽여야 했지. 내가 이 아이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엄마가 왜 죽길 바랐어?”
“맨날 나 때리고 밥도 안주고 욕했어.”
과연 난 세상으로부터 용서받을 짓을 저지른 걸까. 아니, 저지른 이상 용서받을 수 없다. 살인이란 것은 더더욱. 두려움에 눈물이 차올랐다.
“누나, 울지 마. 머리 아픈 거 낫게 해줄게.”
아이가 무릎 굽혀 앉아있는 날, 품에 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작은 손의 온기가 느껴져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무섭다, 살인자의 인격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띠링 -
눈물이 겨우 멈췄을 때쯤, 호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의 알림이 울렸다. 내가 핸드폰을 꺼내들자 아이가 정비소 구석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와서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직 온기가 남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여자의 뜨거운 피를 닦기 시작했다.
애써 그 부자연스러운 장면을 무시하고 핸드폰 알림을 확인했다. 카페 가입 메일이었다.
- 얼굴 없는 살인마 펜 카페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
메일 제목은 그랬다. 초등학생이 장난치는 것 같은 제목에 뭘까 싶어 들어갔다. 화면에 뜬 카페의 이름은 nmm 카페. no mask murderer 이란 뜻이었다. 뭐? 뭐지. 이런 게 왜 나한테…….
“누나, 쓰레기통 어디 있어?”
시뻘건 휴지들을 들고 있던 아이가 묻는다. 그 아이가 순간 괴물처럼 보여 말을 잃었다가 탁자 아래에 있던 쓰레기통을 밀어주었다. 그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며 눈앞이 흐려졌다. 안 돼, 안 돼. 또 누군가 죽을지 몰라. 안 돼.
☆구미화☆
음, 이상한 광경이네요. 여자를 죽인 후에 아이까지 죽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이가 살해 현장을 수습하는 걸로 보여요.
이규서 과거를 생각하면, 아이는 죽이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 같기도 하네요. 폭력적인 아버지와 딸을 질투하는 어머니 사이에 자랐으니 아마 저 아이에게 자기 자신이 투사된 건 아닐까요? 킥킥킥. 아무튼 재밌네요.
이규서 과거를 뒤지다가 재밌는 걸 발견했어요. 이상하게도 이규서의 친부와 친모가 한 날, 한 시에 사망을 합니다.
예정보다 일찍 집에 들어온 이규서의 친부는 자기 아내와 함께 뒹굴고 있는 사내를 발견하고 때려 죽여요. 그리고 친모는 자기 내연남을 두들겨 패는 자기 남편을 칼로 찌르죠.
친부는 화가 나서 규서의 친모도 때려죽였는데 하필 찔린 곳이 좋지 않아서 과다 출혈로 죽었다고 합니다.
아하하하하하하. 이게 무슨. 초등학생도 믿지 못할 일을 떡하니 조사결과라고 써놨더군요. 주요 참고인이 누구냐? 바로 이규서죠. 그 모든 것을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
제 판단으로는 이규서가 셋 다 죽였다고 보고 있어요. 지금도 봐요. 저렇게 비틀거리죠? 인격의 치환과정이라고 보여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다른 인격이 등장하는 거죠.
제가 관심 있는 대상은 저 유약한 착한 여자 이규서가 아니라, 지금 튀어나온 나쁜 년 이규서입니다. 킥킥.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규서와 우리 몽달이 연결 작전을 시작해볼까요?
방금 저 메일, 제가 보낸 거예요. 킥킥킥.
↔ 이규서 ↔
젠장, 또 뭔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거야. 얼굴 없는 살인마 팬 카페? 이딴 게 뭐라고 - 응? 뭐야. 재밌잖아. ‘등업 신청을 하면 죽어 마땅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보내드립니다.’ 이거 웃기네. 얼굴 없는 살인마라.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누나, 또 머리아파?”
“뭔 소리야. 넌 왜 손이 시뻘겋냐. 아, 피 닦고 있었네. 그래. 열심히 해.”
아이가 시뻘건 손으로 내게 다가와 묻기에 슬쩍 등을 밀며 내가 해야 할 일을 시켰다. 저 놈이 나이가 조금만 더 있었다면 조수로 부려먹는 건데, 아쉽다. 아니다, 충분하려나?
호기심에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쓴 뒤에 등업 신청을 했다. 그러자, 1분도 되지 않아 카페에서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등업 완료가 됐다는 말과 동시에 보내온 ‘죽어 마땅한 사람들의 리스트’, ‘누군가에게 이 리스트가 발각될 시에 회원님께 불이익이 갈 수 있습니다.’
메일의 간단한 소개는 그랬다. 리스트의 내용을 살폈다. 이름. 나이. 거주지. 지은 죄. 그렇게 쭉 나열되어 있는 사람이 몇 십 명은 있었다.
뭘까, 이 카페는 무엇이기에 이런 걸 보내오는 걸까. 정말 죽여도 되는 건가. 순간, 짧은 희열에 잠겨 입꼬리가 씰룩였다.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다들 ‘누구는 오늘 제가 죽이겠습니다.’ 라며 써놓았다. 그리고 일주일 간격으로 카페 관리자가 ‘사망 확인되었습니다.’ 아니면 ‘사망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살인의 여부를 판명 지었다. 생각보다 미친놈들의 판에 굴러 들어온 것 같았다. 어떻게 확인하는지는 몰라도, 이 카페는 미친 거다. 그래서 재밌는 걸지도?
☆구미화☆
이거 봐요. 제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요. 이렇게 바로 덥석! 달려들 것 같더라니.
이규서가 얼굴 없는 살인마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녀가 이규서의 양부모를 죽였기 때문이죠. 꽤 오래 전 일인데...
이규서는 친부모를 잃고 보육원에서 좀 지내다가, 아주 운 좋게 양부모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에게 아주 잘해줬던 것 같아요. 이규서는 드디어 자기 보금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했겠죠.
안타까운 부분은 이규서의 양부모는 자기가 입양한 양녀에게는 천사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악마, 아니 그것보다 더 한 인간들이었다는 거죠. 장기공장이라고 아시려나? 그걸 운영하던 부부였어요. 뒷세계에서도 아주 유명했죠. 뒤탈 없이 부속들을 수급하는 능력은 가히 최고라고 불렸으니까요.
뭐, 자세한 이야기는 됐고, 이규서가 얼굴 없는 살인마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저는 최선을 다해 도와줄 예정이랍니다. 호호호.
그나저나, 제일 짜릿한 건. 한 번씩 이규서가 제가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는 거죠. 슬쩍 슬쩍 보긴 하지만 이 사진 좀 볼래요? 아주 정확히 렌즈를 바라보고 있죠?
이규서는 나쁜 년 모드가 되었을 때는 신체 능력도 같이 올라가는 것 같아요. 아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니까요!
↔ 이규서 ↔
“야, 꼬맹이.”
열심히 피를 닦던 꼬맹이가 고개를 들어 순진한 얼굴로 날 응시했다. 웃기는 놈이다. 자기 엄마의 피를 닦아내면서 그런 모순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니. 미친 늑대새끼 같다.
“너 나랑 일할래? 일하는 대신 너 먹고 잘 곳 마련해줄게.”
“정말? 누나, 나 안 버릴 거야?”
“내가 널 왜 버려. 네가 뭘 불어버릴줄 알고.”
꼬맹이가 재미있다는 듯 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영악한 새끼. 잘못 거둬들인 건가. 싶었지만 착해빠진 놈보다는 나을 듯싶어서 같이 따라 미소를 지었다.
일단 여길 다 정리한 뒤에 리스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아까 창문에서 느껴지던 시선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지만 이 근처에서 날 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뭘까, 그 놈은. 혹시 이 꼬맹이도 그 놈이 보낸 첩자일까?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어 ‘푸스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꽤 즐거운 날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