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인가?’
가로와 세로만이 존재하는 2차원 외에 또 다른 차원은 없을까? 그 안에 존재하는 ‘나’란 것은 무엇일까? 이 세계에 존재하는 우리를 ‘그림자’ 라고 할 때, 그 그림자의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그림자로 태어나서 벌써 절반이나 살아온 나는, 떨칠 수 없는 이 의문에 항상 휩싸여 있었다. 어른이 돼서 키가 50센티미터나 줄어든 나는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면서 다시 점점 자라날 키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고 죽을 수 있을까?
행동해야 한다. 생각 만 으로는 그 대답에 가까워 질 수 없다는 사실을, 지나온 시간을 통해 나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수많은 존재들이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황혼을 기다린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 그림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2차원의 이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 하지 않는다. 우리의 생이 존재하는 의미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가 열 두 시간의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는 그 의미를 찾았을 것이고 나 역시 찾을 것이다.
길을 나서기로 했다. 남은 시간은 살아온 생애만큼이나 많은 시간이지만, 결코 길게만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었다. 푸른 하늘이 나의 옆구리에 맞닿아 있고 생명의 원천인 태양이 코앞에 있어도, 그들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걸음은, 깊은 탄식과 함께 계획을 생각하던 나를 무의식적으로 익숙한 곳으로 향하게 했다.
발걸음은 충재의 집 앞에서 멈췄다. 태어날 때부터 친구였던 그는 나와는 달리, 항상 주변을 살피고 동료를 위해 헌신했다. 어쩌면 특이하거나, 심하면 이상하게 여겨지기에 충분한 나의 생각과 의문, 그리고 그것이 단지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금한 것은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나. 그런 나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다소 엉뚱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에 항상 귀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던 친구였다.
아마도 길을 떠나기 전, 무의식적으로 향한 곳이 그의 집이 된 것은, 그에게서 나의 여정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마음 한켠에서 작용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작정 떠나겠다고?”
충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현우야 나는 오랫동안 너와 친구였지만, 너의 무모함을 말릴 수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 하지만 말이야 친구야, 우리 그림자는 왜 태어났는지 애초에 모르고 태어나잖아? 해가 뜨면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덩그러이 이 세계에 존재하게 되지. 그런데 그 끝을 알고 그 의미를 쫓는 것이 애초에 없는 신기루를 쫓는다는 생각은 안 들어? 눈앞의 현실인 행복을 제쳐두고 그렇게 까지 하려는 이유가 뭔데?”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동안 오랜 시간을 생각 해 왔지만, 그의 지적은 정확했고 나또한 그러한 자문에 대한 해답을 아직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한참을 뜸을 들여 입을 열었다.
“눈앞의 행복과 현실이 전부라고 해도 나는 알고 싶어 정말로 그것 뿐 인지, 네 말대로 설령 신기루를 쫓는 거라고 해도 그것이 신기루였음을 확인하고 싶어.”
충재는 나의 눈빛에서 설득할 수 없음을 느낀 모양이었다. 나 역시 그의 애정 어린 진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떤 면에선 네가 부럽다. 나는 일상의 행복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너처럼 그런 선택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래,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야?”
“응, 서쪽으로 갈 생각이야 어디선가 들었는데, 서쪽으로 갈수록 태양이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져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연장 된다 더라구.”
충재를 만나기 전까지는 어디로 향할지도 몰랐던 내가 충재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대답했다. 그래, 맞다 서쪽으로 가면 태양이 느리게 사라지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어떻게 갑자기 그 생각이 났을까? 그와의 대화는 나에게 번개처럼 모티브를 주었고 말하면서 생각하는 나를 보며,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숙명적 느낌을 받았다.
“그래, 그 선택도 네 성격을 말해주는 구나. 부디 돌아올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남기길 바래.”
“고맙다. 꼭 돌아올게.”
그의 집을 나서는 나를 충재는 배웅했고, 내가 사라질 때 까지 그는 먼발치에서 나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