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제단에 도착한 우리들은 숨어서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살폈다. 그림자의 뒤쪽에 위치한 원형의 제단은 빛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그 내부는 볼 수가 없었다. 그 앞쪽에 서 있는 한 무리의 그림자들의 길이는 기다랗게 늘어져 있었고, 톱니바퀴 모양의 머리장식을 한 그림자가 두 그림자를 향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제사장인 ‘메피스토’인 듯 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아홉명의 사제들이 둥그렇게 제사장과 두 그림자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늦진 않은 모양이네.”
그가 나지막히 속삭였다.
“그래 이제 어쩔 셈이야?”
설아의 말에 그가 대답했다.
“제사장을 저 제단에 밀어 넣는 게 가장 중요해, 구출은 동시에 진행한다. 하지만 제사장을 밀어 넣을 때 함께 들어간다면 결과는 뻔하지. 먼저 그를 포박하고 어떻게 그를 제단 한 가운데로 밀어 넣을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어. 둘은 사제들의 주의를 끌어줘. 그리고 현아는 제물이 될 그림자들을 구출해줘.”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을 할 수 없어 보였다. 실제로 그런 제단이 놓여있고 그 앞에 제물이 될 그림자 둘을 목격한 그녀는 충격에 휩싸인 것 같았다.
“현아 정신 차려.”
그는 이현을 흔들어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안 되겠어 너희가 사제들을 유인하고 내가 제사장을 처리하면 제물이 될 그림자들을 해칠 수 있는 존재는 사라지니까 제사장을 처리한 후 신속을 사용할 수 있는 내가 구출도 시도해야겠어.”
그는 수정된 계획을 말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확신이 없는 눈치였다.
그때였다.
“아니야 내가 할게.”
떨리는 몸짓으로 이현이 정신을 차리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현아, 괜찮겠어? 네가 무리할 필요는 없어.”
그는 그녀를 만류하였지만 그의 수정계획은 어딘가 불안했고, 그의 태도에서 뭔가를 결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괜찮아. 이 일은 내가 꼭 해야겠어. 네 말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이기도 하지만 붙잡힌 저들은 곧 나일 수도 있었던 거니까.”
이현의 단호한 이야기에 잠시 생각하던 그는 이내 포기한 듯 그녀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알았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싶으면, 바로 이곳을 벗어나. 약속하지?”
그녀는 대답 대신 그를 한번 안았다.
유인책이 된 설아와 나는 서로 마주 보았다. 이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유인을 하다가 달아나면 될 일이었다. 성공한다면 그는 더 이상 우릴 쫓지 않을 것이고, 실패해도 그가 어찌되든 제사장과 맞딱뜨렸으니 우리를 포로로 잡고 있을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설아도 그런 의중의 신호를 보낸 것으로 받아 들였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생각하기 싫었다. 사랑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 완고한 신념과 유약함을 지녔던 이현이 그를 비로소 믿고 동참하는 모습, 그리고 그런 이현 에게 그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나의 이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손가락을 셋을 들어 신호를 준비했다. 그의 손가락이 전부 접어지자 나와 설아는 달리기 시작했다.
“잡아!”
제사장의 명령과 함께 사제들은 일제히 우릴 쫓기 시작했다. 설아와 나는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다. 첫째는 사제들을 유인해야 했고 둘째는 그대로 도망치기 위해서 속도를 높였다.
그는 신속을 발동해서 제사장의 뒤를 향했고 포박에 성공했다. 이대로 성공인가? 제사장 앞에 놓여있던 두 그림자에게 이현이 다가갔다. 모두 순조로웠다. 이제 설아와 나의 도주만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이쪽으로.”
설아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생각할 겨를 도 없이 그녀를 따랐고 그녀는 언제 봐 두었는지 모를 음영 안으로 숨어들었다.
“대비책이 없냐고 했지? 신속도 쓰지 못하는 우리가 사제들을 따돌릴 확률은 반반이었기 때문에 봐둔 곳이지.”
뭐라고 대답을 하려했으나 설아의 손이 내 입을 가로막았다. 잠시 후 사제들은 우리를 스쳐 지나갔고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아악!”
멀리서 비명이 들렸다. 이현의 것 이었다.
사제들이 설아와 현우의 뒤를 쫓은 후 제사장의 배후를 잡은 나는 신속의 시간차를 이용해서 순식간에 제사장을 포박했다. 성공이었다. 그리고 현아가 두 그림자를 구출하기 위해 접근한 순간이었다.
“아악!”
현아는 비명을 질렀고 제물인 줄로 알았던 두 그림자는 현아의 양팔을 잡았다. 함정이었다.
“흐흐 내가 그렇게 허술할 줄 알았더냐, 신속의 기술을 가진 네가 그동안 나의 비밀을 염탐하고 다닌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너의 연인을 점지했지. 그러면 네가 모습을 드러내고 나를 칠 것을 알았다. 네가 나를 포박하는데 신속의 에너지를 전부 사용했으니, 이제 네 연인을 구할 방법은 없다. 어떻게 하겠느냐?”
그의 말대로 신속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숲에서 어느 정도 회복은 했지만 이미 숲까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탓에 무리한 만큼을 정상으로 되돌릴 정도의 회복분을 제외하고는 잠깐을 사용할 수 있는 분량만이 있을 남아 있었던 것뿐이었다. 설아와 현우에게는 엄포를 놓았지만, 사실 그들을 포박하고 나면 제사장에게 사용할 분량이 없었던 것이다. 메피스토가 그런 사정을 정확히 짚자 곤혹스러웠다. 신속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메피스토와 함께 제단에 뛰어들 생각이었지만, 현아가 붙잡힌 상황에서 분노와 당황과 걱정이 맞물려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신속을 완전히 익히지 않은 채로 산을 떠난 것이 후회되었다. 하지만 당황하면 끝이다. 침착해야 한다.
“메피스토, 너의 상황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야. 너는 지금 나에게 결박당해 있고 제단이 코앞이야. 무슨 뜻 인지 알겠지? 순순히 그녀를 놔주지 않으면 나도 널 어떻게 할지 모른다.”
“호오, 이거 대치 국면이로군? 지금은 그렇지만, 잠시 후에도 그럴까? 너의 연인을 잡아둔 이상 너 역시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지금은 팽팽해 보이지만, 곧 사제들이 도착한다. 네게 일행이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에 미끼를 쫓게 한 것은 변수였지만, 그들이 잡혔든 놓쳤든 사제들은 곧 돌아와. 그들이 왔을 때도 그런 엄포가 효과가 있을까?”
내색할 수는 없었지만, 심중으로 움찔 했다. 설아와 현우 녀석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설령 돌아 온 대도 그의 말처럼 잡혀서 돌아오게 되겠지. 사제의 숫자는 아홉. 그들이 돌아오면 대치 상태의 균형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방법을 떠올려야 했지만 묘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헛소리 하지 마! 열명이든 백명이든 너의 수하라면 너를 인질로 잡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 그들이 도착한대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 게다가 그들은 미끼를 나로 알고 쫓았으니 붙잡지 않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걸?”
“뭘 잘 모르는군, 내가 너의 신속의 수준을 알고 있는데 왜? 추격하지도 못할 추격대를 보내고 이곳에 와서 널 기다렸을까? 게다가 그들도 바보가 아니야 미끼가 도망치면서 신속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곧 눈치 채고 돌아올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내 수하가 아니야. 동업자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감시자라고 할 수 있지. 너는 내가 어째서 이런 일들을 벌이는지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못했나보군.”
녀석은 처음부터 계획적이었다. 현아를 안고 도망치게 하고 추격대를 보낸 것은 신속을 소진시키기 위한 것 이었구나, 이래서는 설아와 현우가 사제들에게 붙잡히지 않고 그자들을 오래 끌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는 걸? 하지만, 현우 그 녀석은 몰라도 설아 녀석은 유인의 시간을 일부러 오래 끌 이유가 없을뿐더러, 녀석들이 유인을 오래해도 메피스토 녀석의 말대로라면 문제다. 사제들이 눈치를 채는 순간 끝이군. 최대한 상황을 빨리 정리해야 했다. 일단 침착하자. 그리고 방법을 생각하자. 일단 되는 대로 말하면서 이 녀석의 주의를 끌어야 겠군.
“모르긴 뭘 몰라, 너는 그림자들을 제단에 희생시켜서 의지를 뺏고 그 남은 시간만큼을 흡수해서 영생을 누리려는 거잖아!”
“단순한 놈, 반은 맞지만 반은 틀려, 영생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나? 모든 그림자가 사라지고 태어날 때 영생을 통해 홀로 남겨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설령 다수의 친구들이 함께 영생을 얻는다고 해도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저주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 그래 네 말대로 의지가 사라진 그림자들의 남은 시간만큼을 흡수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우리 사제들이 스스로의 생을 연장시키는 데에 사용한다고 생각했다면 헛짚었다. 그 에너지는 다른 곳에 쓰이고 있지.”
되는 대로 내뱉은 질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생명연장이 목적이 아니라면 이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사제들이 수하가 아니라 동업자이자 감시자라고 했는데 그들이 돌아왔을 때 정말로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이 무의미한지를 캐내야 했다.
“어디에 쓰이든, 사제들이 너의 수하가 아니라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이제 상황파악이 되기 시작하나 보군, 사욕이 아니라 신념에 의해 움직이는 자들이 어떨 것 같나? 제사장이란 것은 사제집단의 대표에 불과해, 즉, 나도 그 아홉과 함께 하나의 일원에 불과한 거지. 제사장과 사제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신의 대행자, 이 세계에서 신이라고 할 만한 분은 그분 한 분 뿐이야. 우리는 그분의 계획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리고 그분의 계획은 절대적으로 옳아. 이 세계와 우리 그림자들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분이다. 그것을 믿고 사명을 다하는 사제들의 눈에 네가 나를 잡고 있는 일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야, 하하하하. 이제 슬슬 도착하나 보군.”
이현의 것으로 생각되는 비명소리를 듣고도 사제들을 피해 몸을 숨기고 있던 우리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제들이 우리를 지나치고 나서야, 내 입을 틀어막고 있던 설아의 손이 풀렸다.
“지금이야, 튀자!”
그녀의 말 대로였다. 이제 이곳을 뜨면 다시 여행자가 돼서 유람을 하게 되겠지, 의도치 않게 빨려든 위험한 상황과도 작별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버리면 그들은, 아니다 그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여행을 나선 후, 내가 무엇인지 이 세계가 무엇인지 찾겠다면서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휘말렸으니 이제는 벗어날 때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비겁했다. 정작 의도한 대로 행동한 적도, 아니 정확히는 의도를 가진 적도 없었기 때문에 상황에 휘말린 거면서 이제는 겪어온 일들로부터 도망치려고 하고 있다니. 유람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겠다는 것과도 맞지 않았다.
스스로 뭔가를 하기는 싫고, 상황에 끌려 왔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도망치면 그뿐인가? 그런 식으로 구미에 맞는 현상에만 몰입하고 싫은 상황은 피하는 방식으로 정말 이 세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안의 나에 대해서 무엇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제단에 도착하기 전 구실의 뒤에 숨어서 안위만을 꾀했던 부끄러움을 반복할 셈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럴 수는. 꼼작도 하지 않고 서있는 나를 향해 그녀가 재차 얘기했다.
“뭐해? 지금 튀어야 한다구!”
“아니, 지금부터는 너 혼자가 난 돌아 가야 겠어.”
“너 미쳤어? 대비책을 세우랄 땐 언제고, 대체 왜 그래?”
“미안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버리면 스스로에게 납득할 수 없을 것 같아. 어떻게 되든 끝을 보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도망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안 돼,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래.”
영문을 알 수 없어 당황하는 설아를 뒤로 하고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늦지 마라, 제발 늦지 말아야 할 텐데.
“저런 바보 녀석......”
그녀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나의 결심에 저 녀석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 제단에 돌아가는 일은 역시나 두려웠다. 해가 떨어지기 전 까지는 죽음이라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 어쩌면 나는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 담담했던 것이 아니라, 죽음을 목전에서 실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담담한 척 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호기롭게 설아 에게 말하고 달리고는 있지만, 이미 늦었거나 늦지 않았더라도, 내가 도착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뭔가? 또 일이 잘 되지 않아서 제단에서 증발이라도 하게 되면 끝장이다. 달리고 있는 사이에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직면해야 한다. 도망침으로서 잃게 될 나의 의지를 생각하면, 제단에서 의지를 뺏기는 것보다 더욱 괴로울 거라고 생각하자. 최면이라도 걸 듯 달리면서 스스로를 부추겼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도망칠 것 만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갈등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덧 제단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사장을 붙잡고 있었지만, 이현 또한 붙잡혀 있었다. 그녀를 붙잡고 있는 그림자는 둘, 혼자서 둘을 동시에 제압하는 것은 무리였다. 설아가 생각났다. 이럴 때 설아가 있었다면 묘책이 있었을 텐데, 적어도 둘을 동시에 제압해 볼 시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없는 자를 생각해 봤자 소용없었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에 비해 생각의 회전이 따라가질 못했다. 여기까지 와서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건가? 머뭇거리는 사이 제사장과 그가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배후가 있다니, 그렇다면 혹시 숲에서 마주쳤던 그들인가? 아니 그보다 지금 더욱 급한 것은 제사장의 말대로라면 곧 사제들이 들이닥칠 터였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하, 그런거였어? 메피스토, 너의 신이 얼마나 대단한 줄은 모르겠지만, 이 세계와 그림자의 본질을 회복한다면서 그림자의 에너지를 빨아 무슨 짓을 벌이는 줄은 몰라도, 앞뒤가 안 맞는 걸? 그런 녀석이 절대적으로 옳다구? 웃기시네!”
그때였다. 제멋대로지만 쾌활한 목소리. 너무나 반가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른 말이 새어 나왔다.
‘저 바보가, 곧 사제들이 들이 닥칠 텐데, 그것도 혼자서 정면으로 나타나면 어쩌겠다는 거야?’
중얼거렸다고 여겼지만, 아무도 들리지 않을 생각에 그치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쩔 셈이지? 복안이 없이는 손해 볼 짓을 하지 않을 녀석이었지만, 내 머리로는 도저히 변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설아가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미꾸라지가 입만 살았군, 뒤와 주변을 보고도 그리 말 할 수 있을까?”
그녀의 주변에 망토를 두른 아홉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제들이었다.
“위험해!”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말함과 동시에 그녀에게 뛰어가 손목을 낚아챘다. 일단 피해야 했다. 그런데 손목을 잡힌 그녀는 내 손을 가만히 풀며 제사장에게 말을 이었다.
“내 뒤와 주변을 자세히 봐야하는 건 너 인거 같은데?”
그녀는 내게 찡긋 하며 신호를 보냈고,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제사장에게 한 말이었지만, 정작 주변을 자세히 보고 있는 것은 나였다. 다음 순간, 어떻게 된 일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제들은 묶여 있었고 사제들의 뒤에는 아홉 개의 또 다른 그림자가 있었다. 그들은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망토를 두르고 있었고,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왔다. 숲에서 만났던 그들이었다. 배후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사제들을 붙잡고 있다면, 그들은 적어도 적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 중 한명이 뭐라고 중얼대기 시작했다. 그의 손 위에는 검은 원형이 생기기 시작했고 잠시후 이현을 잡고 있던 그림자들은 경직되고 말았다. 이어서 사제들의 뒤에 있던 아홉 그림자 역시 검은 원을 만들며 중얼거렸고 붙잡혔던 사제들은 모두 제단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현을 붙들고 있다가 경직된 두 그림자를 포박하고 나와 설아가 기절한 이현을 부축여 세우는 동안 아홉 개의 그림자가 미끄러지듯 이동해서 메피스토를 에워쌌다.
“너, 너희는!”
메피스토는 잠시 놀라더니 이내 미쳐버린 듯 웃어 제꼈다.
“하하하하! 너희가 움직였다면,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군, 그분의 계획은 반드시 이뤄진다. 바보 같은 놈들, 너희들 따위가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신의 의지를! 오오 퓨리스여!”
말을 마치자마자 메피스토는 제단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제단은 일순 더욱 밝아지더니 팟! 하고 한 점으로 응축되어 사라졌다.
“그는 무사한가?”
망토를 쓴 무리의 우두머리가 말하자 그들 중 하나가 대답했다.
“다행히 무사한 것 같습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큰일 날 뻔 했군요.”
“이곳에서의 우리의 소임은 끝났다. 돌아가자.”
우리가 그들에게 채 말을 건네기도 전에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더니 홀연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