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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의 그림자
작가 : 시냅스
작품등록일 : 20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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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의 그림자 - 7화 이상한 마을
작성일 : 18-11-07     조회 : 271     추천 : 1     분량 : 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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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기분 나쁘게.”

 

  씩씩거리며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 무릎을 잡고 허리를 구부린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들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 역시 지쳤기에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가 그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눈앞에 그들은 사라졌지만, 그곳에는 첫 번째 마을보다도 훨씬 작은 한산하다 못해 정적이 감도는 마을이 놓여 있었다.

 

  “저 마을에 가서 좀 쉬자, 그들이 사라진 것도 저쪽이니까 혹시 그들을 본 그림자가 있을지도 몰라.”

 

  나는 설아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내가 먼저 제안을 한 것 같았다.

 

  “그래, 그러자. 더 뛸 수 있다고 해도 저들이 우릴 따돌릴 맘이라면 당장 쫓기는 힘들 거 같아 네 말대로 마을에서 물어보는 게 빠르겠어.”

 

  내 말에 동의하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천천히 그리고 나란히 걸어서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마을은 멀리서 봤을 때처럼 무척이나 한산했다. 부산했던 첫 번째 마을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평화롭게는 보였지만 휑 하니 적막감마저 감도는 마을은 누런 흙과 모래가 깔린 조금은 거친 바닥위에 집과 울타리들의 그림자가 띄엄 띄엄 드리워져 있었다. 한쪽에 앉아서 조금 쉰 우리들은 다시 일어나 마을을 거닐며 드문 드문 만나지는 그림자들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두건을 쓰고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그림자들을 보지 못했나요?”

 

  설아는 그녀 치고 꽤 공손하게 질문했다.

 

  “자네들은 누군가? 그런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네.”

 

  말투가 희한했다. 똑같이 태어나서 똑같이 사라지는 그림자 세계에서 마치 자신이 더 오래산듯한 말투, 그녀도 그걸 느꼈는지 의아한 표정을 짓고 뭔가 말하려 했지만 그는 금방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런 걸로 트집을 잡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그녀도 그를 잡지 않았다.

 

  “저기 미끄러지듯이 이곳을 지나간 두건 쓴 자들을 보지 못했나요?”

 

  이번엔 또 다른 주민에게 내가 물었다.

 

  “그런 것 묻지 말게나, 보지도 못했거니와 이 마을에서 그런 이야기 해봤자 좋을 것 없을 것 같네, 여행자들 인거 같은데 가던 길 가시게나.”

 

  이번에도 그런 말투였다. 뭐지 이 마을은? 하나같이 이상한 말투였다. 그때 설아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그런데 말투가 왜 그래요?”

 

  그녀의 성격이라면 따지고 들어야 했지만, 저 정도로 말한 것은 많이 참고 있다는 증거겠지.

 

  “아, 말투 말인가? 자세히 보게 우리도 자네들과 같이 아침에 태어나서 해가 떨어지면 죽지만, 이 마을 그림자들은 하나같이 태어날 때부터 웬일인지 늙고 구부정하고 생기 없이 태어났네. 그래서 다들 이런 말투가 자연스러워 졌지 뭔가. 여행객이라면 의아했을 수도 있겠구먼.”

 

  혀를 끌끌 차며 허리가 구부정한 그 여자 그림자는 어디론가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는 잠시 후 서로를 멍 하니 바라보다가 ‘킥킥’하고 나지막히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우스꽝스럽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그 말투가 퍽이나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네, 더 물어봐야 소용없을 것 같지 않나?”

 

  그녀가 그 말투를 따라하며 농을 걸었다.

 

  “그러게 말일세, 몇몇에게만 더 물어 보고 소득이 없으면 그만둬야 할 것 같네 그려.”

 

  장단을 맞춰 내가 한 술 더 뜨자, 그녀는 아까보다 좀 더 크게 킥킥댔다. 웃음을 멈추고 우리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두어 번 더 물어보았지만, 그것에 대해 아는 그림자는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더 이상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그들을 쫓을 이유까진 없다고 체념한 우리는 마을 중앙의 한곳에서 털썩 주저앉아 쉬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넸다.

 

  “하, 뭐야? 고맙다고 인사하려고 한 것뿐인데......”

 

  “그러게, 단지 못 듣고 간 거라면 그냥 사라지면 될 것을, 쫓아와 보라는 것 마냥......”

 

  “걔네들 좀 수상하지 않니? 움직임도 그렇고, 사제들을 그렇게 쉽게 제압한 거 하며.”

 

  “그래 나도 좀 의아한 점이 있긴 해, 그들은 메피스토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고 분명 마을 쪽으로 갔었는데 마을을 거쳐서 왔다기에는 너무 빨리 제단에 도착했어. 메피스토가 마지막에 한 말도 그렇고 뭔가가 있는 것 같아.”

 

  그 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우리에게 역시 구부정한 한 그림자가 다가왔다.

 

  “자네들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두건 쓴 자들을 찾는다고 했나?”

 

  이미 말투에 익숙해진 터라, 나는 공손히 말했다.

 

  “예 혹시 아세요? 어디로 갔는지 보셧나요?”

 

  그는 잠시 흠흠 하며 헛기침을 하고 나서 대답했다.

 

  “아닐세, 나도 그런 자들이 이 마을에 나타난 걸 본적이 없네. 헌데, 자네들이 찾는 다는 그자들 말이야. 혹시 전설속의 그자들이 아닌가 해서 말일세.”

 

  “전설이요?”

 

  이번에는 설아가 호기심 어린 태도로 그에게 물었다.

 

  “궁금헌가? 헌데 길바닥에서 말하기는 좀 그러니 내 거처로 가세, 거기로 가서 얘기하지.”

 

  그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갔고 우리는 그를 따라 마을 서쪽 가장자리에 당도했다. 그의 거처에는 여러 동물과 식물의 형상을 한 작은 그림자들이 걸려있고 이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한켠에는 둥근 평판이 놓여있고 네모난 그림자들이 의자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 마당에서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던 한 그림자가 일어나 말했다.

 

  “스승님, 다녀오셨습니까?”

 

  “어 그래, 손님들이 오셨으니 작업은 그만하고 들어가서 쉬거라.”

 

  “예.”

 

  짧게 그러나 공손하게 대답을 마친 그 그림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들은 다 뭐에요? 뭔가 만드시는 분인가 봐요?”

 

  설아는 그에게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물었다. 그녀가 호기심에 무언가를 물을 때는 갓 태어난 그림자의 그것 마냥 천진해 보였다. 그런 그녀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고, 나또한 궁금한 부분이기도 해서 그의 대답이 어떻게 나오는지 귀를 곤두세웠다.

 

  “허허, 일단 앉게. 그래 나는 보다시피 꺾인 나뭇가지의 그림자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드는 자일세. 좀 전의 그 녀석은 얼마 전부터 내게 일을 배우겠다고 여기 들어와 있는 나의 도제 일세”

 

  “그림자가 꺾인 다구요? 그런 게 가능해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차분히 말하는 그의 대답과 달리 나는 놀란 음성으로 그에게 말했다.

 

  “신기한 모양이로구먼, 별것 아닐세. 이 마을은 가끔씩 바람이 강하게 불 때면 자네들이 온 방향과 반대인 이쪽 서쪽출구 너머의 숲에서 나뭇가지 그림자들이 꺾여 굴러온다네. 그것들을 주워다가 장식품도 만들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도 이것저것 만든다네. 이곳은 이 세계 땅의 서쪽 끝이라서 내륙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바람들이 불곤 하지.”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내가 모르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행동하지 않고 생각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나의 지론이 맞아 들어가는 것이 다행스러웠지만, 놀라움의 연속들은 소화하기 벅찰 정도였다. 그림자가 꺾일 정도의 바람이라니. 정말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렇군요, 처음 듣는 이야기라 좀 놀랐어요. 그런데 그 전설이라는 것은 뭔가요?”

 

  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잠시 시간차를 두고 말을 이었다. 이 마을의 그림자들은 말투뿐만이 아니라, 행동방식도 조금 특이했다. 서두르지 않고 항상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은 한적한 마을의 느긋함인가? 싶었다.

 

  “아 그래, 그렇지, 그 얘기를 하다 말았지? 우리 그림자들은 동시에 태어나서 해가 지면 동시에 사라지지만, 대지는 그렇지 않다하네. 이 마을의 대지 한켠에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새겨져 있는 문구가 있는데, 거기에 그런 전설이 적혀있지. 과거에 이 세계는 한번 큰 위협을 당했었다는군. 이 세계의 질서가 무너지고 그림자들의 영혼이 전부 사라질 수도 있는 위기에 대한 것인데, 그때 이 마을에서부터 출현한 한 무리의 신비한 자들이 나타났다네. 그 움직임이 마치 미끄러지듯 했고 두건 달린 망토를 뒤집어써서 아무도 그들의 실제 형상을 본 자가 없었다 하네.”

 

  해가지면 세계가 전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지는 남는다는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그의 이야기를 끊기는 미안해서 잠자코 경청했고 그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들은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북쪽의 거대한 숲으로 가서 그곳을 지키는 산지기와 힘을 모아 이 세계의 위협을 제거하고, ‘이 세계에 또다시 위협이 생기지 않는 한 우리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예언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고 하네. 물론 그동안 그 전설은 전설일 뿐이지 누구도 그들을 본 그림자가 없었으니,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전설이 되어버렸지. 아마 자네들이 물어도 다들 정말로 몰라서 모른다고 했거나, 설령 알더라도 그들이 나타나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니 대답하지 않았을 걸세.”

 

  “그럼 어디서 그들을 찾을 수 있는지는 알고 계신 거 에요?”

 

  이번에는 설아가 말을 받았다. 그는 역시나 잠시 뜸을 들여 말했다.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내가 가지를 주워오는 서쪽 숲 너머 어디쯤으로 사라졌다고 기록되어 있지. 하지만 그곳은 갈수가 없다네. 말했다시피 이따금씩 강한 바람이 부는데다가 그 숲은 들어간 그림자는 있어도 나온 그림자는 없는 위험한 숲일세. 전설을 아는 자들은 그 숲이 이 마을과 함께 전설 속 그자들에 의해서 저주를 받았다고 하지. 행여나 그들을 찾아 나설 생각이라면 관두게. 여행자인 모양이니 이곳에서 편한대로 머물다가 북쪽으로 가보게나, 서쪽은 저 숲이 끝일세. 나도 그 숲의 입구에서만 간혹 가지를 주우러 가는 것이지, 그 안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네.”

 

  나는 약간 실망했다. 처음에는 감사의 인사 정도나 할 요량이었기 때문에, 궁금한 점은 몇 가지 있었지만 그들을 찾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이야기 해준 전설을 듣고 나니, 꼭 만나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다음 말대로라면, 그 숲을 넘어가 보려는 시도는 너무나 위험하다고 느껴졌다. 진실을 탐구하려면 더욱 강해지고 능동적이어야 한다고 주먹을 쥐었었지만, 용기 있는 것과 무모한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무모한 것, 아차. 호기심 많은 설아가 무모하게 그 숲을 지나보자고 제안하면 어떡한다? 이번만큼은 말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렇군요. 북쪽에 가면 뭐가 있는데요?”

 

  다행스럽게도 설아는 걱정과는 달리 북쪽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전설에서 말한 대로, 거대한 나무숲이 있을 걸세, 기록된 그대로 표현하자면 ‘산’이라고 한다더군. 허나 소문일 뿐이고 더구나 나는 이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으니, 확언할 수는 없지만 말일세 허허허. 이제 그만 들어가 좀 쉬게나. 나는 밖엘 좀 다녀와야겠네.”

 

  말투는 어색했지만 친절한 그가 싫지 않았다. 그리고 호의로 말해주는 것을 무시하고 그 숲을 지나갈 일이 없길 바랐다. 마침 설아도 이번에는 호기심으로 무모한 결정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는 그가 만든 듯한 반원형의 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아마도 재료가 될 가지를 주우러 가는 것 같았다.

 

  “이 세계가 끝나도 대지는 남는다는 이야기 믿겨져?”

 

  그에게는 묻지 않았지만, 궁금했던 부분이라 설아에게 묻자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전설이라잖아, 뭐 그게 사실이겠어? 그건 그렇고 여기가 서쪽의 끝이라는데, 이제 우리 북쪽으로 갈 거야?”

 

  웬일로 설아가 내 의견을 먼저 구했다. 혹시라도 숲 너머의 이야기가 나올까봐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그래야겠지, 하지만 우리 지친것도 사실이고, 그의 호의를 무시하기도 그러니까 여기서 잠시만 쉬었다 가자.”

 

  우리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 각각 등을 기대고 앉아서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거울에 비쳤던 파란 눈이 생각났다. 그동안의 나에게는 눈이라는 기관이 어떤 모습으로 생겼는지 알 수 없었고, 단지 눈을 감는다고 생각하면 눈앞에 풍경이 사라지고 암흑이 드리워지는 것으로서 눈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이었지만, 거울을 보고난 후의 나는, 나의 눈의 모습을 그리며 그것이 감기는 것을 상상했다.

 

  잠깐 흘렀을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눈앞에는 도제라고 불렀던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이상한 말투를 쓰지 않는 그가 내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작게 속삭였다.

 

  “따라와 보여줄게 있어.”

 

작가의 말
 

 관심가져주시고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슴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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