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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의 그림자
작가 : 시냅스
작품등록일 : 20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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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의 그림자 - 8화 수상한 도제
작성일 : 18-11-08     조회 : 260     추천 : 1     분량 : 5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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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아를 흔들어 깨우려는 나의 손을 그는 저지하며 귓속말로 작게 말했다.

 

  “그녀는 내버려 둬, 스승님이 말했던 숲을 보여주려는 거니까, 그녀가 알면 일이 복잡해지겠지?”

 

  뭐지? 이 녀석은? 함부로 신용할 수 없었지만, 무슨 의도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옆에 있는 곳에선 무리였다. 조용히 그를 따라 나서서 마당을 벗어나 마을의 서쪽 출구에 까지 나간 이후에야,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말했다.

 

  “잠깐, 내게 왜 그것을 보여 주려는 거야? 너의 스승도 위험하니 그렇게 가지 말라고 말린 곳인데?”

 

  “너 바다라고 들어 봤어?”

 

  그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대신 도리어 내게 이상한 질문을 했다.

 

  “바다? 그게 뭔데?”

 

  “이 세계는 땅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야, 바다라는 것도 있지. ‘바다’라는 건 이세계의 땅 전체의 넓이만큼, 아니 그보다 어쩌면 더 넓은 면적이 온통 물로 덮여 있는 곳이야. 나는 스승님이 모르는 길을 알고 있어서 숲을 지나 봤는데, 저 숲 너머에는 바로 ‘바다’가 있어. 어때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었다. 당연히 보고 싶지. 그런데 물이 뭐지? 그는 내게 왜 그것을 보여 주려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를 따라가든 거부하든 물이 무엇인지는 묻고 싶었다.

 

  “물이라니? 그건 또 뭔데?”

 

  “물이라는 건, 음 설명하기 곤란한데? 네 모습을 비춰 볼 수도 있고 땅처럼 단단하지 않아서 빠져드는 어떤 것을 물이라고 하는데, 이 세계는 가로와 세로 밖에 없잖아? 너로서는 ‘빠져든다’라는 개념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네. 생각에 빠져들거나 감정에 빠져드는 것처럼 네 자신이 물리공간에서 빠져드는 거야. 가로와 세로의 세계가 층층이 겹쳐져 있다고 생각해봐, 그리고 우리 세계의 아래층으로 빠져 드는 거지.”

 

  경악을 금치 못할 이야기였다. 여태까지의 여행에서도 신기한 일이 많았지만, 이 세계와 같은 것이 층층이 겹쳐있다니! 이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소리인가 싶었다. 우리 그림자가 무엇이고 이 세계가 어떤 것인지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꼭 그 ‘물’로 이뤄져 있다는 ‘바다’ 라는 것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녀석을 믿어도 될까? 왜 굳이 그걸 내게 보여주려고 하는지에 대한내 질문에 그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 위험하다는 숲을 단지 그의 말만 믿고 따라 나설 수는 없었다.

 

  “넌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그걸 왜 보여주려는 건데?”

 

  “너 그 전설 속 그자들을 만나려고 이 마을에 들어온 거 아니었어? 스승님과 너희의 이야기를 멀리서 듣고, 이 숲 너머에서 그들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에 나는 혹시 내가 본 그 바다에 그들이 있지 않을까 해서 기껏 데려왔더니만, 설령 그들을 못 만난다고 해도 바다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 본다면 후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유가 되냐? 이제 니가 대답할 차례야 갈 거야 말 거야?”

 

  의심을 하고 있는 내 태도에 불쾌함은 묻어 있었지만, 그의 말투에 악의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더 있었다.

 

  “아, 그래, 무턱대고 경계한건 미안하다. 네가 말한 ‘물과 바다’ 굉장히 흥미로운 건 사실이야. 또 네 말대로 우리가 찾던 자들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고. 근데말야, 네 스승님의 행방으로 봐서는 그 숲에 나뭇가지 그림자를 주우러 가신 것 같은데 마주치지 않겠어? 또 위험하다는 그 숲을 너는 지나 봤다고 했는데, 정말 안전한 거 맞아?”

 

  그는 다소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봐, 내가 바다를 보지 않았다면, 너에게 물과 바다에 대해서 어디서 듣고 말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내가 바다를 봤다면, 그 숲을 지났다는 소리잖아. 스승님과 마주칠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숲이라서 스승님은 항상 남쪽 숲 가장자리로 가시니까. 내가 알고 있다는 길은 북쪽 끝에 있어. 갈 거야? 말 거야? 이번에도 다른 소리 하면 나 그냥 들어간다?”

 

  그는 나에게 양자택일로 대답할 것을 촉구했다. 그의 이야기만을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는 아니었다. 문제는, 위험부담을 안고 바다와 물을 보기 위해 갈 것인가? 아니면 바다와 물을 포기하고 말 것인가? 의 문제로 함축되었다. 이 선택에 대해서 나는 어떤 중요한 갈림길에 선 기분이었다. 세계와 나의 본질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인데, 이만한 기회를 위험 부담 때문에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백 퍼센트 신용할 수는 없는 이야기를 믿고 모험을 감행할 것인가?

 

  어떻게 생각해 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여기서 물러날 거라면 나는 애초에 여행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고, 그의 이야기가 설령 거짓이라고 해도 행동하지 않고 서는, 그런지 어쩐지 영원히 알 수 없는 문제가 되겠지. 위험 부담이 제로인 길만을 찾는다는 건 진실을 쫓지 않겠다는 것과 같았다. 나는 재하의 마을에서 스스로에게 다짐하지 않았던가?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좋아! 가자.”

 

  “좋아, 화끈한 면도 있군 잘 따라와 길이 험하니까.”

 

  그는 내 어깨를 한번 툭 치며 앞장섰다. 언제 봤다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북으로 향했고 나는 놓칠세라 그를 뒤쫓았다.

 

  북쪽 입구에 당도한 그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나를 보며, 진지한 태도로 몇 가지를 일러 주었다.

 

  “이 숲이 들어간 자는 있어도 나온 자가 없다는 것은, 숲이 미로로 되어 있기 때문이야. 선대에도 아침 일찍 들어간 자들도 해지기 전까지 결국 나오지 못하고 미로에서 사라졌다는 소문이지. 게다가 이곳은 시간도 미로처럼 엉켜서 이쪽의 시간과는 다르게 흘러가니까, 자칫 길을 잘못 들면 방향 뿐만 아니라 시간도 종잡을 수 없게 되 버려. 하지만 내가 발견한 이 길은 엄청 단순하니까. 절대 길을 잃지 않을 거야. 대신 눈을 뜨고 가면 안 돼. 눈을 뜨는 순간 환영에 의해 미로에 갇혀 버리거든. 이 길은 이쪽으로 해서 쭉 앞으로만 가면 되. 그렇게 백 걸음 정도 가서 남쪽, 그러니까 너의 왼쪽으로 삼십걸음, 그리고 다시 오른쪽 즉 서쪽으로 이십걸음을 걷고 나서 눈을 뜨면 바다가 보일거야. 거기서 그자들을 찾아봐. 돌아올 땐, 반대로 하면 되겠지?”

 

  그가 조곤조곤 설명해 줬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해주는 이유가 뭐지? 같이 가지 않는 건가?

 

  “뭐야, 너는 같이 가지 않는 거야? 네가 바다까지 안내해 주기로 해서 여기까지 온 건데 나보고 위험한 이 숲을 혼자 지나라구?”

 

  당황하는 나를 보며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이봐, 어차피 눈을 뜨고는 건널 수 없는 숲이야. 눈을 감고 건넌다면 내가 앞에 있고 없고가 무슨 상관이야? 더구나 스승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나는 집으로 지금 돌아가야 한다구. 네 일행에게 적당한 변명도 해야 하고. 그녀가 널 찾아서 이 숲으로 오면 좋겠어? 그럼 난 간다.”

 

  자기 말을 마치자마자 대답하거나 붙잡을 새도 없이 그는 빠르게 뛰어서 돌아가 버렸다.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먼저 가버린 그 없이는 여기까지 온 길도 생각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처음 출발할 때 생각했던 것과 달라진 것은 그가 앞에 있느냐 없느냐 뿐이었다. 그의 말대로 어차피 눈을 감고 통과해야 하는 숲이라면, 길을 알고 있는 편이 그에게 의지하며 불안해 하는 것 보다는 어쩌면 나은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를 처음 따라 나섰을 때 여기 오기로 결정한 이유가 떠올랐고. 통과해 보기로 결심했다.

 

  막상 들어서려니, 긴장이 돼서 주먹을 꾹 쥐어 보았다. 재하의 마을을 떠날 때가 생각났다.

 

  ‘그래, 할 수 있어. 직진 백보 좌로 삼십보 우로 이십보랬지?’

 

  눈을 감고 숲으로 들어섰다. 한발, 두발, 눈을 감은 이상 발걸음의 숫자를 잊어서는 큰일이기에 정신을 집중했다. 서른 걸음쯤 걸었을 때, 귓가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너는 어째서 이 숲에 들어섰지? 이 세계의 비밀을 알아서 뭘 어쩔 셈인가?’

 

  실제로 누군가 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스스로 생각한 말도 아니었다. 환청인가? 이 숲은 환영 뿐 아니라 환청으로도 유혹하는 모양이었다.

 

  ‘존재하면서, 존재의 참뜻을 알지 못하고 거하면서 거하는 곳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고, 세계 또한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지’

 

  ‘인식하지 않으면 신기루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무생물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신기루라는 말이군, 이것이 맞다고 생각하나?’

 

  그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지적은 날카로웠다. 그런데 지금 몇 걸음이더라? 아차, 환청과 문답할 때가 아니었다. 서른아홉, 그래 서른아홉 걸음이다. 마흔, 마흔하나. 마음속으로 걸음 수에 집중하면서 최대한 들리는 소리를 무시하기로 했다.

 

  ‘뭘 어쩔 셈인가? 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는군, 네가 이 세계의 비밀과 스스로의 실체에 대해서 발견한다 한들, 아 그렇구나! 하고 아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세계를 조작하거나 스스로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알기 전과 알고 난 후가 뭐가 다르지? 단지 내가 알았다. 알고 죽는다. 라는 자기만족의 지성에 대한 사랑인가? 앎에 대한 사랑을 철학이라고 할 때 철학이 할 수 있는 것이 자기만족뿐이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시끄러워!’

 

  꽤나 복잡한 소리들이 웅웅거렸다. 머릿속에 메아리치는 그 이야기들은 퍽 중요한 부분을 짚고 있었기에, 자칫 잘못 하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것만 같아. 숫자에 더욱 집중했다. 백보가 채워졌고 남쪽으로 몸을 돌려 다시 걷기 시작 했다. 하나, 둘, 셋.

 

  ‘너는 이 세계가 무엇이고 네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이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어째서 내 질문을 회피하지? 구한다고 했지만, 실은 답을 알게 될까봐 두려운 것 아닌가?’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울리는 이야기들은 나의 마음을 콕 찝어서 늘어놓는 것 같았다. 빨리 빠져 나가야 했다. 이야기에 말려들면 끝장이었다. 삼십보를 더 걸어서 서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제 남은 것은 직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졌지만 눈을 떠도 되는 시점을 분간해야 했기에 다시 집중해서 숫자를 세었다. 그런데 웅웅거리는 소리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스무발자국은 백보와 삼십보 보다 적은 발걸음이 분명한데 왠지 가장 긴 구간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느껴졌고 같은 속도로 걷고 있음에도 영원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숫자를 세고 있었는데, 숫자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내가 숫자를 세고 있는 줄 조차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다리는 아직 움직이고 있다. ‘스무 걸음이 넘었을까? 이제는 눈을 떠도 될까?’ 라는 생각조차 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걷고 있었다.

 

  ‘찰싹’

 

  무언가가 발끝을 때리는 순간, 나는 정신이 돌아왔다. 눈을 뜨고 보니 엄청난 풍경이 펼쳐 졌다. 머리 좌우로는 모래가 펼쳐져 있고, 발끝으로부터 앞쪽으로는 청녹색의 장판 같은 것이 광활한 규모로 퍼져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장판 같은 것은 대지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청녹색의 한가운데는 황금색의 원형이 분해되어 흐물흐물 퍼지듯이 춤을 추고 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의 발끝에서는 그 장판이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내 쪽으로 다가올 때마다 발끝을 ‘찰싹’ 하고 때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다인가?’

작가의 말
 

 내일은 아침이 아니라 밤에 연재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어딜 가게 되어서요.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슴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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