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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의 그림자
작가 : 시냅스
작품등록일 : 20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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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의 그림자 - 18화 진실의 대가
작성일 : 18-11-18     조회 : 241     추천 : 1     분량 : 7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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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퓨리스! 이 세계의 질서를 위해서 이제 그만 포기해라!”

 

  백목이었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드디어 그들이 도착했다. 백목의 옆에는 귀영과 수하들도 있었다. 더 이상 퓨리스와 말을 섞을 필요가 없어 졌다고 생각한 나는 여차하면 신속을 발동시키기 위해서 머릿속을 비워갔다.

 

  “백목 어째서 날 이렇게 끝까지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거죠? 당신을 떠난 복수인가요?”

 

  “무슨 소리냐, 날 떠나다니! 네놈은 나의 계승자인 순영을 납치하고 그 능력을 빼앗아 죽이기까지 해서 지난 세계를 파괴하려던 자가 아니더냐?”

 

  “하하하하! 내가 순영을 죽였다고? 내가 순영을 죽였어?”

 

  그녀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아니 정말 미쳐 버린 걸까?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던 그녀는 돌연 웃음을 뚝 그치고 매섭게 우리를 바라봤다.

 

  “백목!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기억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 같군. 내가 순영을 죽여? 하하하하 그럼 나는 누구지? 당신 앞에 있는 내가 바로 순영이다!”

 

  “뭐, 뭐라고?”

 

  백목은 물론 나 역시 그녀의 일갈에 크게 놀랐다. 이 허황된 이야기를 믿을 수는 없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누가 백목의 기억을 조작했단 말인가? 산의 정보망에 접근할 수 있는 자는 극소수였을 텐데?

 

  “헛소리 하지 마라, 순영의 힘을 흡수하더니 이제 자신이 순영이라고 하는 게냐? 이 악마야 더는 너의 미친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귀영 어서 그녀를 경직시키게.”

 

  “귀영이라고? 네가?”

 

  이번에는 퓨리스 쪽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귀영은 곧바로 경직을 시전 했고, 위기의 순간에 다다른 퓨리스는 다시 설아를 안고 신속을 발동시켰다. 이렇게 되면 그녀가 신속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묶어두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나는 즉각, 신속을 발동시켜 그녀를 뒤따랐다. 주변이 완전히 정지한 듯하게 변했을 때 설아를 안고 있는 퓨리스가 시야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녀는 어디론가 도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뱅뱅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내가 신속을 발동시키길 기다렸다는 것처럼.

 

  “이봐, 신속을 멈추지 말고 잘 들어. 지금부터 진실을 이야기 해 줘야겠어.”

 

  하지만 이제는 그녀와 노닥거릴 필요가 없었다. 일단 신속을 멈추게끔 그녀를 잡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짝 쫓았다.

 

  “이런 멍청이가, 하는 수 없군.”

 

  그녀를 붙잡기 위해 달려드는 나를 향해 한 팔로 설아를 낀 채로 그녀는 방어에 나섰다. 그녀의 팔을 움켜잡으려는 나의 팔을 쳐내며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린 퓨리스는 내 팔과 등을 타고 연거푸 몸을 회전시켜 나의 등 뒤로 갔다. 당황한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눈앞에는 어느새 그녀가 소환한 심명이 시야를 가리면서 그대로 나의 머리에 내리 꽂혔다. 아, 이대로 끝인가. 라고 생각한 순간 나의 머리는 그녀의 심명 안으로 들어갔고 그 순간, 그녀가 내게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순식간에 나의 의식 속에 스며들었다.

 

  이번 세계로부터 수 세계 이전, 백목의 앞에 한 자매가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순영’과 ‘귀영’ 태양이 뜨면 모든 그림자는 본래 동시에 생기는 세계였지만, 이들은 시간 뿐 아니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모습으로 쌍으로 태어난 그림자였고, 태어나서 먼저 입을 연 순영이 언니가 되었다. 백목은 이들 중 하나를 계승자로서 선택해야했다. 정보망의 언저리에서 경직을 익힌 귀영은 언니인 순영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순영은 정보망에 접촉 한 후 그 중심에까지 다다랐기에 백목으로부터 후계를 선택받게 되었다. 하지만, 순영은 세계에 대한 의문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이방인 기술자 메피스토에 매료되고 결국 사랑하여 이름을 바꾸고 계승을 거부하기에 이르렀고, 메피스토와 순영은 도시로 떠나게 되었다. 홀로 남겨진 귀영은 언니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그 분노는 메피스토에게 향했다. 귀영은 그들을 쫓아 도시로 따라오게 되었다. 하지만 언니인 순영, 아니 그를 사랑한 나머지 이름까지 퓨리스로 바꾼 그녀의 모습을 접한 귀영은 언니를 생각해서 메피스토에 대한 그녀의 분노를 보류한 채, 시간을 갖고 그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을 지켜봤다. 결국 귀영은 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설아 그러니까 수영이 탄생하고 나서 부터가 문제였다. 언니와 메피스토의 사랑은 이해했지만, 불멸의 그림자인 수영의 존재가 이 세계를 위협할 것이라고 여긴 귀영은 이번 세계의 바로 전 세계일 때, 도시를 벗어나 백목의 산으로 향했고 결국 스승을 설득한 귀영은 해가 질 무렵 언니 순영의 처소를 급습. 조카인 수영을 빼돌렸던 것이다. 순영과 메피스토를 당할 수 없었던 귀영과 백목은 이 세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를 빼돌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 만족하고 백목의 산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다해서 해가 진 후 귀영은 죽음을 맞이했으나, 이번 세계의 태양이 떠오르자 유령의 존재로서 이 세계에 발을 딛은 것이 심명이 전해주는 내용이었다.

 

  심명을 거두며 퓨리스는 나지막히 말했다.

 

  “이제 알겠어? 난 순영이고 귀영은 내 동생이야. 귀영이 어째서 수영을 위협의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신속을 멈추게 되면 네가 그렇게 염려하는 수영 아니 설아를 가장 먼저 노릴 자는 내가 아니라, 귀영이라구.”

 

  머릿속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심명이 전해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퓨리스가 ‘딸을 해치는 자는 없다’고 했을 때, 귀영이 움찔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메피스토의 제단에서 설아는 그녀의 아버지에 대적하고, 귀영은 설아가 자신의 조카인 줄도 모른 채 그녀의 형부를 제단에 밀어 넣었단 말인가? 아, 사제들은 밀어 넣었지만, 정작 제단에 뛰어든 건 메피스토 그 자신이었어. 그래, 그래서 그때 메피스토가 귀영을 만났을 때 뭔가를 아는 눈치였구나! 그런데 이게 사실이라고? 그럴 리 없어 그럴 리가. 퓨리스 이자는 악당이다. 설령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세계의 그림자들의 의지를 뺏으려고 한 것 또한 사실이지 않는가? 혼란스러운 나머지 집중이 흐트러지면서 신속이 풀려갔다.

 

  “현우야!”

 

  그때였다, 퓨리스의 품에 안겨있던 설아가 의식을 되찾고 신속이 풀려가는 나의 손을 잡았다. 공간의 중앙에서 신속은 완전히 풀렸고 설아는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설아, 그녀는 이 엄청난 이야기를 알고 있을까? 그런 것은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설아를 구했고, 그녀는 지금 내 품에 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이 또 무엇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이야!”

 

  순간 앞쪽에서 검은 줄기가 이쪽으로 향했다. 그 너머에는 귀영과 그 수하들이 ‘ㅅ’자 모양의 대형을 짜고 있었고 뒤쪽으로부터 넘겨받은 검은 구슬의 에너지를 집약해 맨앞의 귀영은 그것을 이쪽으로 쏘았던 것이다.

 

  ‘퍽’

 

  나는 황급히 설아를 옆으로 돌려 세웠지만, 눈앞에 나타난 퓨리스의 옆구리를 맞고 꺾여버린 검은 줄기는 그대로 설아의 등을 강타했다. ‘아앗’ 하는 설아의 낮은 비명과 함께 그녀의 팔다리는 서서히 경직되어갔다. 아니 석화되어갔다. 안돼. 안돼. 왜? 어째서 이런 일이.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퓨리스 아니 순영이 다가와 힘없이 풀려버린 내 팔에서 그녀를 받아 끌어 안았다.

 

  “아아아아아아악! 수영아!!!!!!”

 

  눈앞의 순영은 절규하였다. 내가 그녀의 말을 믿었더라면, 아니 혼란에 빠져 신속이 풀리지만 않았더라면, 백목산이나 바다에 가질 않았더라면, 아니 애초에 이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엄마, 난, 이곳에 남고 싶어요. 이 바보 같은 녀석과 함...”

 

  설아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전신이 석화되었다. 그녀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순영에게 다시 그 검은 줄기가 덮쳤다.

 

  ‘퍼엉’

 

  검은 줄기는 도중에 사라졌다. 나의 심명과 함께. 나는 천천히 일어나 설아와 순영의 앞으로 걸어 나가 그들을 노려보았다.

 

  “귀영! 어째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들은 너의 언니이자 조카잖아!”

 

  분노에 찬 나의 목소리에 귀영은 담담히 대답했다.

 

  “흥, 이렇게 되면 더 숨길 것도 없군, 그래 그녀가 순영이 맞다. 이 세계의 질서를 지키는 계승자의 자리를 지키기는커녕 메피스토에 홀려 이곳에 존재해서는 안 될 수영을 낳은 부끄러운 언니지. 이 세계의 본질을 되찾아 주겠답시고 빛의 제단과 차원의 문을 만들자는 메피스토에게 동조한 악마. 지난번 세계의 마지막에 나는 수영을 빼돌리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곧 해가 저물고, 나는 저들을 막아야 한다는 원념 때문에 저승에서도 사라지지 못하고 지금의 내가 생겨버렸어. 영원히 유령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야. 나는 이 일을 반드시 완수하고 이 가짜 저승을 벗어나 진짜로 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선 순영에게 필적할 존재가 필요했지.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이번 세계에서 그때와 똑같은 의심을 가지고 여행을 떠날 자가 있다는 것을 점쳤어. 그리고 그 후로 네게 주목했지. 너의 동행이 설마 수영이었을 줄은 몰랐다만, 넌 네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잘 해 주었어. 이렇게 이 세계에 있어선 안 될 존재를 제거하고 언니를 무력하게 해줬으니 말이야. 하하하하.”

 

  그런 것 이었다니! 귀영은 처음부터 나를 이용할 속셈으로 접근한 것 이었다니. 나의 모든 여행이, 아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귀영에 의해 놀아난 것이었다니. 더 이상 착잡할 수가 없었다. 한 그림자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가 속한 세계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그 답을 찾아 나선 것이 이토록 위험한 일 이었단 말인가. 여행을 나설 때 나를 만류하려던 충재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게 사실인가 귀영?! 그렇다면 내 기억을 조작한 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경악에 빠진 백목은 귀영에게 물었다.

 

  “백목, 아니 옛 스승님. 당신의 약점은 기억을 저장해두고 다음 세계에서 태양이 떠오를 때 까지는 육신이 없다는 점이지. 지난 번 해가 떨어지고 나서 밤사이 정보망에 접촉해 당신의 기억을 조작하는 일쯤은 간단한 것이었어. 당신은 언니가 아닌 나를 후계로 지목 했어야해. 아니 후계를 찾지 말고 스스로 끝까지 산지기가 되었어야 해. 어째서 후계를 찾고 영생을 그만두고 싶어 했지? 영생이란 것이 저주인 것을 느껴서가 아닌가? 당신이라면 나를 이해해야 해. 누구보다 고지식했던 당신의 가르침을 이어서 이 세계를 지키려고 했던 나를! 그리고 영생의 괴로움으로 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나를!”

 

  귀영은 앙칼지게 소리쳤고 그 목소리에는 깊은 한이 서려 있었다. 설아를 해친 그녀에 대한 분노는 걷잡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녀의 이야기에는 그녀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슬픔이 배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의 원인은 후계에게 산지기를 계승하고 사라지고자 했던, 고집스럽게 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했던 백목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그 역시 영생이라는 저주 속에서 안식을 얻고자 했을 뿐, 발단은 그였다고 하나 그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는 일. 순영과 메피스토는 악당이었는가? 그들은 단지 가정을 꾸리고 싶었고 그것이 위협 당하자 차원을 넘고 싶었을 뿐이다. 아니 적어도 순영은 그렇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그림자의 허상을 본체에 합류시키고자 했던 메피스토의 그릇된 이상이 문제 였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그가 꿈꿨던 이상은 정말 그릇된 것이었을까? 나 역시 이 세계 너머에 이것만이 아닌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림자이기만 한 것이 아닌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 그것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지 않는가? 메피스토와 내가 뭐가 다르지? 내가 메피스토처럼 이 세계의 진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그와 같이 행동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여태까지 우리가 존재하며 행했던 일들에는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설아를 잃은 나의 이 분노는 대체 어디로 향해야 한단 말인가?

 

  “하하하하하하하하! 귀영! 너는 고작 그런 이유로! 하하하하하하.”

 

  순영의 목소리는 이번에는 정말로 미쳐버린 것 같았다. 석화된 설아를 끌어안은 채 순영은 고개를 하늘로 향하며 떨리는 몸과 함께 웃고 있었다. 아마도 거울에 그 모습이 비친다면,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겠지.

 

  “순영, 나의 옛 언니여. 너는 모든 것을 다 가졌었기에 나의 마음을 알 수 없겠지. 이제 모든 것을 잃고 나니, 조금은 느껴져? 고작 그런 이유라고? 너는 내게서 얼마 남지 않은 의미까지 앗아가 버리려고 했다. 그 덕에 나의 사념은 죽지도 못하는 원령이 되어버렸어. 이 저주를 끝내고 이 세계를 지키겠다는 게 그렇게 잘못인가?”

 

  귀영의 말에 조금 전까지 희비사이에서 실성한 듯 했던 순영은 귀영을 돌아보며 무겁게 말했다.

 

  “귀영, 너는 모르고 있어. 영생도 죽음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야. 너는 눈앞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고 다가오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본 적이 있어? 이 세계도 질서도 무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그 망령이 사라지면 영원의 시간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거 난 몰라! 산의 중앙에 다다랐던 언니는 알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저 차원의 문이 열리는 순간 진정한 죽음을 찾아 저쪽 세계로 가겠어. 이 세계의 질서는 수영의 죽음으로 바로잡혔어. 나는 내 사명을 다했다구!”

 

  귀영의 말에 차원의 문을 쳐다봤다. 적색이었던 문은 어느새 밝은 황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귀영, 그럴 일은 없을 거다. 현우라고 했던가? 너는 어느 쪽을 선택할 거야? 이 세계야? 아니면 차원의 문 너머 저쪽이야?”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없다. 설아는 석화되어 버렸고, 내게는 더는 할 일이 없었다. 퓨리스가 뭐라고 하던, 멍해진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설아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나와 함께 이 세계에 남고 싶어 했다. 나는 이 비뚤어지고 엉망인 세계가 전부가 아닌 줄을 알았지만, 나는 그림자. 이 세계에 속한 존재. 게다가 나는 충재에게 꼭 돌아간다고 약속도 했었지.

 

  그래, 메피스토와 나의 차이점은 바로 그거였어. 나는 이 세계와 나의 존재 그리고 눈앞의 친구들과 그들의 행복을 사랑한다. 설아가 이 세계에 남겠다고 한 것도 그런 의미였을 거야. 비록 그녀를 잃었다고 해도, 그림자를 부정하고 이 세계를 부정해선 안 돼!

 

  생각하는 사이 차원의 문은 백청색으로 바뀌었다. 순간 귀영은 차원의 문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순영은 공간 중앙에 있던 기다란 선의 끝을 눌렀다. 그러자 차원의 문의 테두리가 갈라지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안 돼!”

 

  귀영은 더욱 빨리 뛰었으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귀영, 네가 차원의 문을 넘어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했지? 이 세계여 잘 있거라!”

 

  순영은 석화된 설아를 안고 마지막 힘을 짜내 신속을 발동시켰다. 설아는 이 세계에 남고 싶어 했다. 아무리 순영의 딸이지만, 설아의 마지막 부탁을 나는 지켜야 했다. 신속을 발동했다. 무너져가는 차원의 문을 향해 달리는 모양새로 멈춰버린 귀영을 지나쳐, 차원의 문 안으로 사라져 가는 순영의 품에 안긴 석화된 설아의 팔을 잡았다. 설아만은 뺏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잡은 손은 이내 차원의 문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백목의 산에서 중심부로 빨려 들어갈 때 보였던 수많은 정보의 빛줄기들과 같은 것이 그때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스쳐갔고 잠시 후 나는 문의 다른 쪽 출구로 튕겨져 나가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작가의 말
 

 이제 2차원의 무대는 끝이 났네요. 다음화부터는 3차원으로 건너간 현우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슴을 드리며 즐거운 일요일 되시기 바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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