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나노로봇>
나는 염호권에게 가서 말했다.
“야. 가자. 안내해.”
“정말로 가게…?”
염호권이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봤다.
“니 형님이 오랬잖냐. 기껏 초대해줬으니, 가줘야지.”
“…가서 어떻게 할 생각인데.”
“어떻게 하긴. 너랑 똑같지. 그 썩어빠진 정신머리에 주먹 한 대 박아주고 온다.”
나는 주먹을 쥐고 팍팍 치는 시늉을 내면서 목을 풀었다.
염호권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경악을 했다.
“!? 그, 그런 건 불가능해! 네가 형님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서 그런 소릴 할 수 있는 거야!”
“어이구, 느닷없이 웬 걱정. 내가 안 가면 너한테 그 불똥이 다 튈 거 아니야.”
“…가서 형님한테 죄송하다고 빌자. 몇 대 맞을지는 몰라도 진심으로 빌면 용서―”
“넌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나는 염호권의 말을 끊었다.
그렇지만 염호권은 계속 자기 형님의 강함을 주저리주저리 하면서 내가 질 거라고 했다.
들을 가치도 없다고 판단해, 나는 몸을 돌려 뒷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 녀석은 건드려선 안 될 걸 건드렸어. 간다. 따라와.”
“형님 아지트에 가려면 거기로 내려가는 거보다 여기가 더 빠른데.”
염호권이 내가 가고 있는 길하고는 정반대인 곳을 가리켰다.
“일단 다른데 갈 데가 있다.”
“서, 설마 학교로 돌아가게?”
“이 상황에?”
“그럼 어딜…”
“뭐긴…”
나는 뜸을 들이면서 뒤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밥 먹어야지.”
참고로 밥은 염호권 너가 내는 거다.
x x x
나는 염호권 패거리의 안내에 따라 어디 구석진 골목길에 도착했다.
“여기야.”
염호권이 가리켰던 곳은 골목길 끝에 있던 계단.
그걸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강호권의 아지트가 있는 거겠지.
나는 곧바로 계단을 내려가서 문 앞에 섰다.
그들도 내 뒤를 따라오는 듯했다.
염호권이 내 뒤에서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잘 보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가 강호권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바로 감이 왔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문 앞에 손을 뻗어…
아니.
바로 발을 들어 꽝-! 하고 있는 힘껏 찼다.
순식간에 문이 나가떨어지며 지하실 내부가 보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발을 들이밀며 안을 살펴보았다.
좁을 줄 알았는데 교실보다 훨씬 넓은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들어가면서 먼저 자신 있게 한 마디 하려 했지만 갑자기 염호권 패거리가 앞에 끼어들면서 내 등장을 막았다.
“”“혀, 형님!”“”
염호권 패거리가 강호권이라 추측되는 남자 근처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살려주세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염호권 패거리가 강호권 앞에 넙죽 절하며 처절하게 빌었다.
몇몇은 맞을 걸 예상했는지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강호권은 침착했다.
“됐어. 이번 일은 잘해줬다. 전에 말했던 돈이나 가져와. 그걸로 끝내줄게.”
“저, 정말입니까!?”
염호권이 잔뜩 화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정말. 네가 전에 말했던 계집애보다도 더 재밌는 녀석을 데려온 거 같으니까. 특별히 봐준다.”
염호권 패거리가 그 말을 듣고 재차 절을 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저렇게 보니 저 녀석들도 참 힘들게 산다 싶었다.
“니가 전화했던 그 놈이냐?”
그때, 강호권이 나를 노려보며 말을 던졌다.
동시에 그의 주변에 있던 부하들 또한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20살 초중반쯤 돼 보이는 그들.
수는 가히 열 명은 됐다.
식은땀이 마치 낫과도 같이 내 등을 따라 흘렀다.
고등학생인 염호권 패거리와는 달리 눈앞의 녀석들은 적어도 일이년 이상 이 바닥에서 구른 놈들.
과연 상대가 될까?
후우…
겁먹지 마라.
비록 일주일밖에 안됐지만 나는 수많은 경험을 했고 동시에 엄청나게 바뀌었다.
바뀐 내 자신을 믿어라.
나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었다.
조금씩 가까워질 때마다 그들이 더욱 커 보인다.
나는 강호권과 5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입을 열었다.
“그럼 니가 강호권이겠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반말이나 찍찍 싸고… 아주 간댕이가 부었구나 부었어.”
“난 쓰레기한텐 존대 안 해.”
“크하하하! 이 자식 말 뽄새봐라?”
강호권은 내 도발에 전혀 화내지 않고 오히려 웃었다.
그러더니 순간 정색을 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있지, 있어. 가끔 너처럼 지가 대단한 줄 알고 나대는 새끼들. 사람이 지 분수를 알아야지. 안 그러냐, 호권아?”
강호권이 갑자기 옆에 있던 염호권에게 동의를 구했다.
“다, 당연하죠! 딱 제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염호권이 순간 당황해 말을 더듬다 이내 신이 난 듯 말했다.
누가 봐도 염호권 네가 들어야할 말인 거 같은데.
“시끄럽고, 덤벼.”
나는 바로 전투태세를 취했다.
더 이상의 도발은 불필요하다.
그게 통할 상대도 아니고,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너 뭔가 착각하나 본데.”
염호권은 말하다 말고 갑자기 뒤로 빠졌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다음에 다시 말을 이었다.
“보스를 잡으려면 잡몹부터 잡아야지.”
강호권은 말을 끝내고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러자마자 강호권의 부하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순식간에 기(氣)강화를 마친 후였다.
나는 양팔을 가로지르며 가장 먼저 오는 공격을 막았다.
갑작스런 충격에 팔이 아렸다.
이후 뒤로 물러나려했으나 바로 뒤에서 발차기가 날아왔다.
여기서 나가떨어지면 바로 끝이다…!
나는 발차기를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았다.
“크윽!”
묵직한 일격이 내 온몸으로 퍼졌다.
그러나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나는 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섰다.
“흐읍!”
잡은 발을 그대로 쥐어 잡고선 반 정도 회전시켜 강호권의 부하들이 몰려있는 쪽으로 던졌다.
대부분은 그것을 피했지만 몇몇이 부딪혀 같이 고꾸라졌다.
아직 멈춰선…!
나는 바닥을 박차 그들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내가 던졌던 것을 피하느라 아직 무게중심이 불안정한 녀석들이 몇 보였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중 가장 가까이 있던 녀석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달려가는 힘까지 포함에 바로 명치를 가격했다.
강호권의 부하 한 명이 명치 부분을 쥐어 잡고 바닥에 뒹굴었다.
이젠 바로 옆의 녀석한테도 똑같이―
“!?”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마자 바로 안면을 맞았다.
중심을 잡을 새도 없이 연이어 다른 공격이 들어왔다.
“컥! 커흑! 억!”
짧은 내 신음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그리고 결국 제 발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그들이 그걸 놓칠 리가 없었다.
기(氣)로 강화된 묵직한 발차기가 온몸에서 느껴졌다.
염호권 때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강했다.
하지만 버틸 만했다!
나는 눈앞에 날아오는 발을 재차 껴안듯이 한 다음 온몸을 실어 아래로 당겼다.
열 명의 벽 중 하나가 무너지면서 뒤로 엉덩방아를 찍었다.
나는 그것을 손에 놓지 않은 채 악을 써가며 한 바퀴 돌렸다.
가장 가까이 있던 녀석들은 넘어지고 그 외에는 피하거나 비틀거렸다.
나는 그렇게 해서 다구리에서 해방됐다.
그리고 곧장 거리를 벌려 숨을 골랐다.
“후욱… 훅…”
“오, 꽤 하는데? 적어도 맷집 하나는 대단하군.”
강호권이 의자에 앉은 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 자식 치유 능력자예요! 그래서 저도 결국…!”
염호권이 강호권의 의아함에 답을 제공해주었다.
나랑 있을 때는 고분고분하더니, 호가호위라는 게 바로 저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싸우는 걸로 봐선 2성급인데, 치유 능력? 그리고 잘 보니 기(氣)강화도 못쓰고 있잖아?”
“그, 그건 저도 잘… 그렇지만 저랑 싸울 때도 저랬습니다!”
“흠, 뭐 일단 지켜보자고.”
강호권의 말이 딱 끝나자 마치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부하들이 다시 내게로 달려들었다.
여전히 온몸이 욱신거리고 입에선 피 맛이 났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쌩쌩했다.
염호권한테 점심을 잔뜩 얻어먹어서 그런 건지는 몰랐지만, 이전보다 훨씬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아마 지금 염호권과 일 대 일로 싸운다면 이번에는 5분 안에 끝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앞에 녀석들은 열 명.
그럼 단순 계산으로는 총 50분.
아니, 30분이면 충분하다!
“흐아아아아앗!!!”
나는 온몸에 넘쳐흐르는 투지에 모든 것을 맡기며 싸움에 몸을 던졌다.
x x x
나는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 올린 다음 그대로 아래로 내질렀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왼손에 잡힌 멱살을 위로 들어올렸다.
퍽―!
입술이 터지고 동시에 이빨에 내 손도 까지면서 피가 뒤섞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왼손의 멱살을 던지듯이 놨다.
까진 오른손은 벌써 아물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걸작이야, 걸작.”
강호권이 박수를 치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게 니 미래다 새끼야.”
내 주변엔 열 명의 부하가 전부 쓰러져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 부하를 전부 이렇게 만든 건 칭찬해주지. 이게 바로 치유능력자의 힘인가? 나도 직접 본 건 처음인데, 정말 대단해.”
강호권은 그렇게 말하며 한 번 더 짝짝짝 하고 박수를 쳤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
나는 더욱 경계하며 자세를 낮췄다.
“어이쿠, 나랑 싸우게? 거 싸우느라 힘들었을 텐데, 좀 쉬지?”
“안타깝게도 지금 하도 쌩쌩해서 몸이 근질근질해 죽겠거든? 그쪽이 안 오면 내가 간다.”
딱히 시간을 더 끌 이유도 없어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나는 아까보다 더욱 빨라진 발걸음으로 곧장 강호권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주먹을 스프링 당기듯 뒤로 쭉 뺀 다음에.
튕겨나가듯이 앞으로 내질렀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주먹이 강호권의 배에 직격했다.
그러나 강호권은, 씨익 하고 웃고 있었다.
“어…?”
앞을 보았다.
분명 내 주먹은 그의 명치를 향해 있었다.
그러나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내 주먹의 끝이 노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 주먹에서 나오던 게 아니다.
강호권은 미리 타격 지점을 예상하고 그곳만 부분적으로 강화시켜 놓은 것이었다.
“그게 다냐?”
강호권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내려다봤다.
“크윽…!”
나는 그의 배, 가슴, 명치, 앞에 보이던 거라면 가리지 않고 마구 난타를 가했다.
그럴 때마다 내 주먹은 마치 강철을 때리는 듯했다.
박사의 연구실에서 강철 벽을 주먹으로 쳤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내 한발자국 물러선 다음 보다 긴 거리를 가속해 강호권의 얼굴을 강하게 쳤다.
그러나 강호권의 목은 단 10도 정도 돌아간 게 다였다.
“그게 다냐?”
강호권이 다시 내게 말했다.
“그럼!”
인식 못할 속도의 주먹이 내 가슴에 닿았다.
“커헉―!?”
폐가 순식간에 쪼그라들며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거의 5m 넘게 날아갔다.
바닥을 서너 번 구르자 회전이 멈췄다.
나는 거친 숨을 내몰아쉬며 겨우겨우 일어섰다.
“헉… 허억…”
“오. 또 일어섰어?”
강호권은 감탄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좋아. 특별히 너한테도 보여주마.”
강호권이 상의를 벗자 근육으로 다부진 그의 맨몸이 드러났다.
그러나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그의 오른손이었다.
문신이 잔뜩 새겨진 그의 오른팔은 마치 악마가 그곳에 살고 있는 듯했다.
“원래 니 여자한테 보여주려 했던 건데, 어쩔 수 없지.”
강호권이 오른팔을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기(氣)로 인해 그의 오른팔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곧 그 빛은 내부로 흡수되어 그의 팔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뚜둑뚜둑, 쩌적쩌적, 뼈와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가 지하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내 눈앞에 현현했던 건―
―그야말로 몬스터의 팔이었다.
특수능력.
3성 능력자부터 가지게 되는 특별한 능력.
그 종류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며 지금껏 알려진 종류만 해도 수만 가지가 넘는다.
기본적인 능력만 해도 2성과는 비교가 안 되는데, 특수능력의 존재만으로 더욱 격차를 벌였다.
이것이 바로 3성 능력자가, 『특수능력자(特殊能力者)』라 불리는 이유였다.
“어디 한 번 이것도 버티나 보자고.”
강호권은 그렇게 말을 끝내자마자 바로 바닥을 박찼다.
나도 이에 반응해 방어태세를 취하려했으나.
강호권은 이미 내 앞에 있었다.
“!?”
그것에 제대로 경악하기도 전에, 온몸이 아작 나는 감각이 전신에서 느껴졌고.
나는 바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