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나노로봇>
으음…
뒤가 푹신푹신하다.
이제 일어나야하나.
더 자고 싶은데.
그래도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유나가 또 왜 이리 늦냐고 뭐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슬슬…
…아니, 그게 아니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걸 잊어버린 듯한―
“―푸하!”
나는 숨을 터뜨리면서 눈을 떴다.
“어때. 꿀잠이었지?”
강호권이었다.
“…………”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머리 주변이 물에 젖어 있었다.
아마 나를 깨울 때 항상 그랬던 것처럼 물을 뿌려서 깨웠나보다.
그리고 나는 침대 위에 묶여있었다.
침대는 곳곳에 붉은 자국으로 더러웠다.
“…뭘 할 셈이야.”
“아니, 그냥 뭐. 그동안 너무 잘 버틴 것 같아서 말이야. 상을 좀 줬지.”
“…………”
그의 속셈 모를 한 마디 한 마디가 내겐 공포로 다가왔다.
내 뒤에 축축한 게 물인지 식은땀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벌써부터 그렇게 기대하지 말라고. 못 참겠잖아.”
“뭘 할 셈이냐고…!!”
나는 불안하고 불안해서 결국 소리 내 외쳐버렸다.
“궁금해 죽겠지?”
강호권은 그런 내가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있는 힘껏 발버둥 쳤다.
“크윽… 크윽!!”
하지만 내 손과 발은 침대 각 꼭짓점에 단단하게 묶여있었다.
“풀어! 빨리 풀어줘!”
“하하. 이제야 좀 고딩같네.”
“고작 고등학생 상대로 무슨 짓인데!”
나는 처절하게 외쳤다.
“그럼, 우리가 애들 장난인 줄 알았냐?”
“풀어줘…! 풀어달란 말이야!”
“이제 와서 그렇게 빌어도 늦었어.”
강호권이 손가락을 딱하고 치자, 저 뒤에 있던 부하가 무언가를 가져왔다.
그것은 거대한 펜치였다.
“뭐, 뭘 할 생각이야…”
나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곧 알게 될 거다.”
강호권의 부하가 내 오른손이 있는 쪽으로 왔다.
그리고 그 거대한 펜치를 점점 가까이 댔다.
“하, 하지마…”
내 반응에 강호권이 씨익 입 꼬리를 올렸다.
마치 악마가 웃는 듯했다.
그리고 이어서 내 손톱 끝에 묵직한 감각이 일었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 말라― 끄아아아아아아악!!!”
펜치가 내 가슴 쪽으로 잡아당겨지며 내 오른 손톱 하나가 뜯겨져 나갔다.
손끝이 불에 타는 듯했다.
“끄으으으으으윽… 허억… 허억…”
“어때. 상쾌하지?”
“제발… 풀어줘… 제발 풀어― 끄으으아아아악!!”
곧이어 내 두 번째 오른 손톱이 덧없이 벗겨졌다.
“끄아아아아앗…! 끄흐으으윽… 으그으읏…”
고통에 조금 익숙해질 때쯤.
연이어 펜치가 움직였다.
“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손가락 끝에 송곳이 박히는 듯한 격통이 척수를 찔렀다.
순식간에 내 오른 손톱이 전부 사라졌다.
“크큭… 이번엔 왼쪽도 깨끗하게.”
강호권이 기분 나쁘게 혀를 다시면서 말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침대 하나만 달랑 있는 좁은 방에서 내 비명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딱- 하고 한 번 울릴 때마다 마치 규칙처럼 내가 소리 지른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마지막으로 이어서―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오오. 벌써 재생되고 있는데?”
강호권이 내 오른손을 보며 감탄에 겨워했다.
“끄으으으… 이… 이젠 더 이상… 제발… 풀어줘…”
“물론 풀어주지.”
나는 강호권의 말을 듣고 순간 마음이 놓였다.
더 이상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나는 감정 없이 웃었다.
“일단 앞으로 100번만 더 채우고.”
강호권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이번에는 발끝에서부터 격통이 느껴졌다.
나는 온몸을 뒤흔들며 목이 쉬어라 비명을 질러댔다.
그렇게 아홉 번을 더 질러댔을 때.
다시 오른손부터 해서 반복되었다.
x x x
“빨리 좀 움직여 이 자식아!”
강호권의 부하가 내 엉덩이를 뻥하고 찼다.
나는 앞으로 픽하고 엎어졌다.
그리고 이내 비틀거리다 다시 제대로 섰다.
“이제야 좀 고분고분하네.”
강호권의 부하가 내게 찍 하고 침을 뱉고 나를 거칠게 끌었다.
내가 도착했던 곳은 본래의 지하실, 강호권의 앞이었다.
“이제야 좀 니 처지를 알겠냐?”
강호권이 내게 말했다.
“…………”
나는 아무 말 없이 공허한 표정으로 허공만을 바라봤다.
“이 자식 맛 갔는데요?”
“크하하하! 그렇게 당하고도 안 저러면 사람이냐!”
강호권은 속이 후련한 듯이 크게 웃어 재꼈다.
“넌 이제 우리 노예다. 알겠냐?”
나는 미약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호권이 그런 내 모습에 히죽하고 웃었다.
“쟤 풀어줘.”
“넵.”
강호권의 부하가 내게 다가와서 내 밧줄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발 벌려.”
나는 졸개의 말에 따라 발을 묶고 있던 밧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그가 단검을 들고 와서 밧줄을 서걱서걱하며 잘랐다.
뚝, 하고 밧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손.”
나는 발에 했던 것처럼 손에도 똑같이 했다.
그러면서 시선은 공허하게 계속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뚝, 하는 소리가 나자마자.
“!?”
“흐아아아아앗!!”
나는 바로 단검을 뺏어들고 강호권의 부하를 발로 강하게 찼다.
커헉-!, 하는 소리가 3m 저편에서 났다.
강호권의 부하가 나가떨어진 걸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나는 곧바로 발을 뻗었다.
두근-!, 하고 심장이 뛰었다.
그동안 치유만 하고 있었던 모든 신진대사가 빠르게 재가동됐다.
강호권은 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직 반응이 느리다! 이거라면…!
나는 양손으로 단검을 강하게 쥐어 잡고 그대로 찔렀다.
내가 쥔 단검이 강호권의 가슴에 닿았다.
깡―!
그러나 사람의 몸에선 결코 날 수 없는 소리가 났다.
“하아…”
강호권이 길게 한숨을 뽑았다.
내가 내지른 단검은 분명 강호권의 몸에 닿았으나, 내가 저번에 가했던 주먹과 똑같이 겉만 훑었을 뿐이었다.
단검의 끝에서 노란빛을 발하던 그의 표면이 완벽하게 내 공격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거 아냐?”
강호권이 아무런 반격도 안한 채 내게 물었다.
나는 그의 박력에 못 이겨 뒷걸음질 쳤다.
강호권이 이어서 계속했다.
“2성 능력자와 3성 능력자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는 거. 보통 5배, 크게는 10배 넘게도 차이가 난다고 하지. 그리고 너는…”
“…………”
“나보다 10배는 약해―!!”
강호권이 내 단검에 아랑곳 않고 그대로 오른손을 내질렀다.
나는 배를 정통으로 맞고 다시 저 멀리 5m 넘게 날아갔다.
그러나 단검을 결코 손에서 놓진 않았다.
“마저 정리해.”
강호권이 손을 털며 그의 부하에게 명령했다.
강호권의 부하가 저번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다 죽여 버릴 거야…! 다 죽여 버릴 거라고!!”
나는 그들을 향해서 단검을 마구 휘둘렀다.
“크윽, 형님! 이 , 이 녀석… 아직 쌩쌩합니다!”
“그렇게나 당하고도 어떻게…! 미친개 자식!”
강호권의 부하는 주춤하며 내게 다가오지 못했다.
저번에 그냥 싸울 때도 내게 졌고, 이번에는 칼까지 들고 있으니 어찌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아… 진짜 도움 되는 애가 없네.”
강호권은 성질을 내며 의자에서 내려왔다.
“그동안 그리도 싸우고 싶었냐? 상대해 줄 테니까, 와라.”
강호권이 상의를 벗어던지고 내게 손짓했다.
그의 온몸은 기(氣)로 강화되어 있었다.
2성 능력자의 먼지 같던 기(氣) 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밝았다.
“흐읍!”
나는 순간 숨을 집어삼키고 강하게 바닥을 찼다.
강호권과 내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단검을 뒤로 내당기고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그의 주먹이 바로 내 지근거리에 닿는 순간!
나는 바로 몸을 옆으로 틀었다.
부웅―!
강호권의 주먹이 내 옷자락을 스쳤다.
나는 그 옆을 지나쳐가며 그의 옆구리를 단검으로 그었다.
살을 베는 듯한 느낌이 약간 났다.
나는 다시 거리를 벌리면서 생각했다.
역시 강호권이 의도하고 강화시킨 부분이 아니면, 그 경도는 훨씬 약하다!
나는 어느 정도 되는 거리에서 강호권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칫…”
강호권이 불만인 듯 혀를 찼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아냐?”
“…………”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호권에겐 상관없는 듯했다.
“바로 그 눈. 자기 분수 파악도 못하고 혼자 불타고 있는 너 같은 새끼를 보면, 정말 명치 백대는 때려주고 싶다고.”
강호권이 내가 벌려놓은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며 그가 선언한 대로 내 명치를 강하게 쳤다.
나는 다시 뒤로 나자빠지며 서너 번 구르다 곧바로 몸을 옆으로 뒤집었다.
강호권의 날쌘 발차기가 내가 방금 전에 있었던 곳을 강하게 훑었다.
내 머리카락이 그의 발끝에 쓸리며 몇 가닥 뽑혀나갔다.
거기서 생긴 틈을 내가 놓칠 리가 없었다.
나는 손에 들려 있던 단검으로 재빠르게 강호권의 등을 벴다.
약간 생채기가 난 게 전부였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베었던 궤적을 그대로 뒤따라가며, 마치 곡괭이로 내려찍듯 그의 등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아까보다는 깊게 박힌 것 같았다.
핏방울 몇 개가 내 얼굴에 튀었다.
“이 놈이…!”
강호권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뒤로 돌려차기를 날렸다.
나는 그걸 정통으로 받으면서 다시 한 번 더 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발을 아래로 내딛고.
무릎을 지지대 삼아 꾹 누르면서.
다시 일어섰다.
나는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퉷 하고 뱉었다.
“진짜 짜증나게 하네…”
강호권이 오른팔에 기(氣)를 모았다.
곧 그의 팔뚝이 끔찍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끝까지 속이 터져 나올 것처럼 됐던 그의 오른팔이었다.
눈에 보이던 감촉은 돌의 거친 표면이었고, 피부에 느껴지던 압력은 거대한 바위가 짓누르는 듯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나는 강호권의 거대한 오른팔에서부터 시선을 돌렸다.
그랬던 내 눈은 이미 결정을 내린 듯 오로지 강호권의 얼굴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후욱…, 하고 숨을 골랐다.
“이제 좀 나가떨어지라고―!”
강호권이 묵직한 오른팔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로 나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호권이 바닥을 박차는 동시에, 나도 있는 힘껏 몸을 앞으로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