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능력자 전문 양성 학교: 준비 편>
우리 부모님은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5년 전의 괴수 침공 때 돌아가셨다.
무지하게 슬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능제관으로서, 괴수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다 순직하셨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나는 현재 보호자가 없었다.
여기서 보호자가 없다는 건, 법적인 것뿐만 아니라, 아직 미성년인 내가 믿고 상담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금은 좀 달랐다.
아직은 떨떠름했지만 보호자… 아니, 주인 비슷한 게 있긴 했으니까.
“……이런 경유로 능전양고에 편입시험을 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나노로봇을 들키지만 않는다면, 자네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너무 흔쾌히 받아들이시는 거 아닙니까.”
“그럼 내가 반대해줬으면 좋겠나?”
“그건 아닌데…”
주인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박사가 내 눈앞에 있었다.
내 목숨을 살려주고, 동시에 내게 나노로봇이라는 엄청난 힘을 안겨 주기도한 박사는 내게 너무 애착이 없었다.
처음에는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니 시키는 것 뭐든 다 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방임하다시피 하니까 이제는 자유롭다 못해 오히려 불편했다.
“제게 뭐 시키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직은 괜찮네.”
“처음에 연구를 도우라고 했던 건 대체 뭐였습니까…”
“걱정 말게. 자넨 지금도 아주 잘 해주고 있어.”
“제가요?”
“암, 그렇고말고.”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자네가 끊임없이 싸우다보면 실전 데이터가 쌓이고, 그러면 로봇의 성능은 더욱 좋아지고, 그게 결국 내 연구의 진전으로 이어지는 게지.”
“아하.”
이거 엄청난 상부상조의 관계인데?
내가 원하는 것과 박사가 원하던 게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질 줄이야.
그렇담, 딱히 박사를 신경 쓰지 말고 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겠다.
“그럼 전 편입 시험을 보는 걸로 할게요.”
“근데 그냥 허락하면 재미없으니까, 패널티를 하나 걸도록 하마.”
“패널티?”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말이 학교지, 능전양고는 사실상 잘 갖춰진 싸움터와 다를 바 없지 않나? 지금 생각해보니 자네가 합격하는 게 훨씬 연구에 진전이 될 테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박사가 이어서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면서 마저 말을 이었다.
“만약 편입에 떨어지면, 근처 몬스터가 득실대는 곳에 떨어뜨려주겠네. 아니면 다시 한 번 더 고문당해 볼 텐가?”
그냥 괜찮을 것 같아서 한 번 말을 꺼내봤던 편입 이야기였는데.
이제는 죽자 살자 덤벼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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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 전문 양성 학교.
통칭 능전양고.
고등학교라는 이름이 없는데도 그렇게 불리는 까닭은 응시 가능 나이가 고등학생부터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 고등학생에 입학하려는 애들만 그 학교에 몰려드는 건 아니다.
작년도에 응시했다 떨어진 학생들, 다른 학교에 다니다 편입을 노리는 학생들 등, 매년 능전양고에 합격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어졌다.
입학하면 얻게 되는 고등학교3년+대학교4년, 총 7년의 커리큘럼. 그 수준이 대한민국 최고급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학비는 제로. 오히려 학생들에게 지원금을 준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활동 자체가 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하기 때문이라나.
이것 말고도 다른 다양한 혜택 덕분에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바로 능전양고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재수생과 현역을 나누는 건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
그래서 그들은 현역들을 대상으로 한 기본 입학과, 나머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편입 입학, 이렇게 두 가지로 입시를 나눴다.
물론 나는 후자이다.
그 입시에 있어서는, 말 그대로 ‘능력자’ 전문 학교답게 필기 시험 같은 건 없었다.
그들이 요구했던 건 오로지 신체검사 결과지 몇 장과, 3일 간에 걸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뿐.
그 시험 당일까지, 2 주도 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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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 보는 널따란 건물 앞에 서있었다.
“여기가 맞나?”
나는 핸드폰 화면에 나오던 지도와 그 건물을 계속 번갈아가면서 봤다.
이곳에 온 이유는 ‘무능력자’로 판별 나있는 내 현재 등급을 바꾸기 위함.
잠재 등급은 옛날의 것이 있으니까 굳이 손댈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덜미만 잡힐 것 같고.
“일단 들어가 보면 답 나오겠지.”
나는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건물 안으로 몸을 들였다.
“검사받으러 오셨나요?”
사근사근한 직원이 바로 나를 반겼다.
“아, 네.”
“그럼 여기서 나라 사랑 카드 보여주시고 탈의실로 가서 옷 갈아입어 주세요.”
나는 직원한테 관련 절차를 밟고 곧바로 탈의실로 향했다.
다 갈아입고 나니 회색의 반바지와 반팔차림이었다.
나 말고도 모두가 이렇게 입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 안내를 따라 다른 방으로 이동하였다.
그 방은 컴퓨터가 격자 식으로 즐비해 있었다.
각자 들어온 순서대로 모두가 앉자, 감독관이 나와서 설명을 시작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지만 결국 나온 질문대로 솔직하게 탑을 체크를 하라는 거였다.
그렇게 감독관의 시작 표시가 떨어지고 모두가 일제히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면서 정신검사가 시작됐다.
질문1.
앞에 괴롭힘을 받는 무능력자 학생이 있습니다. 당신에겐 그들을 막을 능력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법대로 능제관에게 신고한다.
2. 능력을 써서 무능력자 학생을 구한다.
보아하니 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에 대한 질문인 거 같은데.
1번이 더 착해 보이겠지?
질문2.
당신은 법대로 신고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딱 걸려 결국 당신도 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도망쳐서 도움을 청한다.
2. 맞고만 있는다.
3. 맞서 싸운다.
이건 어쩔 수 없지.
1번이 나름 이성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도망간다는 게 걸린단 말이야.
어쨌든 정당방위니까 3번을…
질문3.
당신은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 조절을 못한 나머지 그들은 말 못할 중상을 입었고 가해자로 몰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능제관에 가서 솔직하게 고백한다.
2. cctv가 없다. 몰래 버려두고 도망간다.
3. 이 녀석들은 악이다. 더 팬다.
시발. 질문이 왜 이래?
사람 약 올리나.
그렇게 혼자 속으로 씩씩 거리고 있었을 때, 옆의 애가 일어나서 감독관에게 말했다.
“다 했습니다.”
“아, 저도.”
“저도 다 했습니다.”
뭐야, 벌써?
난 이제야 세 번째 질문인데?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능력을 썼는지 머리 주변이 기(氣)로 은은하게 노란빛을 띠었다.
아, 사고가속인가.
그러면 말 돼지.
참 편리하네. 나도 하나 있었으면 좋―
[욕구를 감지. 설명. 신체의 에너지를 뇌에 집중시키면 사고가속과 유사한 연산능력 강화 효과가 가능합니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무감정한 기계 목소리가 울렸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등장이라 나는 몸을 순간 흠칫했다.
이럴 때도 말해주는 거였어?
되게 친절하네.
어쨌거나, 그럼…
나는 정신을 집중하며 몸을 가볍게 끌어 올렸다.
이어서 기(氣)를 다루던 감각으로 기(氣), 아니, 에너지를 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 근처에서 하얀 빛알이 튀자 근처의 몇 명이 나를 보고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화면을 보았다.
글이 일순에 읽히고 이에 대한 판단이 순식간에 진행됐다.
이거라면…!
나는 그때부터 미친 듯이 마우스를 움직이며 답을 마구 체크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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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펀치 머신을 이용한 공격력 검사, 지칠 때까지 무작정 뛰게 하는 지구력 검사, 그리고 공격을 얼마나 잘 버틸 수 있는 지에 대한 방어력 검사 등, 대부분의 신체검사를 마쳤다.
이제 마지막 특수 능력 검사만 받으면 집에 갈 수 있었다.
“69번 류정의 씨.”
나는 안내원의 부름에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섰다.
저 벽 끝에 검사관으로 보이는 사람 3명이 앉아 있었다.
주변엔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무장을 갖춘 능제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럼, 자네 능력을 보여주게나.”
내가 가운데에 서자 가운데의 연륜 있어 보이는 검사관이 말했다.
“제 능력이요…?”
“그래.”
생각해보니 나에겐 ‘특수 능력’이라 부를 만한 게 아직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2성 능력자로 판별될 것이다.
능전양고에 지원할 수 있는 최소 현재 등급은 3성부터 였기에, 그래서는 곤란했다.
나는 이 방에 들어오기 전부터 생각해왔던 방법을 쓰기로 했다.
“저, 혹시 칼 같은 거 하나 빌릴 수 있을까요?”
“칼?”
“네. 능력을 보이려면 필요합니다.”
앞의 세 검사관이 괜찮은지 이야기를 나누다 이내 허락해주었다.
근처에 있던 능제관 한 명이 내게 단검 하나를 건넸다.
“그럼, 갑니다!”
나는 그렇게 외치자마자 단검을 내 왼손에 주저 없이 박았다.
저번의 고문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버틸만한 아픔이었다.
“자, 자네 지금 뭐하는 겐가!!”
“저 애 당장 붙잡아서 그만두게 해!”
내 행동 하나에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었다.
능제관 한 명이 내게 달려오며 나를 제압하려 했다.
“자, 잠깐 만요! 이게 제 능력이라니까요!”
나는 고개를 좌우로 힘차게 저으며 그들을 말렸다.
“도대체 자네 능력이 뭐길래!”
나는 왼손에서 단검을 쑥 하고 뽑고 피가 흐르는 손을 앞의 검사관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짧게 대답했다.
“치유능력이요.”
내 왼손은 벌써 치유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
상처 내부에서부터 부글부글 거품이 나면서 하얀빛이 일고 있었다.
“……다음부턴 미리 말하고 하게나. 아니, 먼저 안 물어본 내 잘못도 있어…”
검사관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치유능력이라… 그럼 이 테스트도 겸해야겠군.”
검사관이 손짓하자 근처에 있던 직원이 와서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직원이 지금 당장 가져오겠다고 하며 밖으로 나갔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바로 다시 돌아왔다.
직원의 손에 들려 있던 건 ‘혼래빗’이 들어있는 우리였다.
한국말로는 보통 뿔토끼라고 불렀다.
안전을 위해 뿔은 이미 잘라놓은 듯했다.
“자, 그럼 그 단검으로 혼래빗에게 상처를 내고 치유능력을 보여주게. 자신의 치유 능력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자네 스스로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냐를 보는 것이기도 하니까, 잘 생각해서 행동하게나.”
그 터무니없는 부탁에 나는 침묵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러나?”
“못합니다…”
나는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면접관이 그런 나를 보고 한심한 듯이 말했다.
“으이구, 덩치도 산만한 게 그깟 소형 몬스터 하나 상처 입히는 걸 두려워해서 어떡해? 능력자 생활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치유 능력자는 대게 다 이러한가?”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무척 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저…… 자신 말곤 치유 못합니다.”
“…………”
검사관이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
나도 그런 검사관을 그저 아무 말 없이 쳐다봤다.
검사관이 먼저 침묵을 깼다.
“그러니까, 자가 치유 능력밖에 없다는 건가…?”
“네…”
“그걸 보통 우리가 말하는 ‘치유 능력’이라고 볼 수 있는 지는 의문이지만… 뭐 알겠네. 이제 가 봐도 좋아.”
“자, 잠깐만요! 이것도 보여드릴게요!”
결국 이후에 나는 할 수 있는 온갖 짓거리를 다 하며 발버둥친 나머지 겨우 3성 능력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설마 다시 한 번 더 내 배를 찌르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