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능력자 전문 양성 학교: 준비 편>
[에너지 스케일을 다음 단계로 이행. 현재 킬로 일렉트론볼트 스케일.]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과 함께 주변에서 은하수 같은 빛알이 흩뿌려진다.
그 빛은 곧 내 몸 능선을 따라 하얀 윤곽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앗!”
나는 유나를 향해서 길게 손을 뻗었다.
유나는 내가 뻗은 손을 가볍게 대각선으로 피했다.
순간 유나가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어딜!”
나는 곧바로 등을 돌리며 뒤를 보호했다.
“아차, 아까워라.”
나와 유나가 현재 하고 있던 건 간단히 말해서 술래잡기 같은 거였다.
물론 서로가 서로의 술래이자 목표이기도 한 그런 술래잡기.
승리 조건은 상대방의 등을 잡는 것.
물론 나는 제압보다는 패는 게 전문이었다.
그렇지만 스파링 좀 하겠다고 서로 죽고 살자고 패댈 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서로 피하고 뒤를 잡는 건 전투의 기본이기도 했다.
“아까부터 계속 나만 술래 같잖아. 이번엔 네가 좀 와라.”
“그래? 그럼―”
순간.
유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갑자기 뒤가 싸했다.
“큭…!”
나는 옆으로 넘어지듯이 해서 몸을 비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등이 있던 곳엔 유나의 손길이 뻗쳐지고 있었다.
“에이, 또 피했네.”
유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푹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고운 검은 단발이 태양빛에 반사 돼 부분 부분 하얗게 보였다.
“생각해보면 노릴 곳이 뻔한데, 당연하지.”
어차피 승리 조건은 뒤를 잡는 것이다.
뒤만 조심하는 건 평소의 싸움 때 사방을 경계하는 것보다는 쉬웠기에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사실은 유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됐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치.”
유나는 말끝을 늘이며 못마땅한 듯이 불평했다.
“다시 오기나 해. 네가 안 오면 내가 먼저 간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유나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뒤로 당겼다.
별로 힘도 안 줬기에 기(氣)로 어느 정도 방어를 올린 상태의 유나라면 별로 아프진 않을 것이다.
보통이라면 내 공격을 피했을 유나가 웬일로 가드를 올리며 내 주먹을 정통으로 받았다.
“계속 피하기만 하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야?”
“것보다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야.”
유나는 내 일격 하나 하나가 꽤나 묵직한지 내 공격이 닿을 때마다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
“남자는 몰라본 사이에 부쩍 크는 법이지!”
나는 되도 않는 소리를 해대며 유나를 더욱 몰아 붙였다.
그렇게 유나가 옥상 난간에 닿는 순간.
유나는 다시 한 번 더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여기냐!”
나는 뒤로 확 몸을 틀며 팔을 넓게 휘둘렀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허공만을 휘저을 뿐이었다.
“뭐야, 없어?”
그때, 내 뒤에서 탁 하는 소리가 나면서 등이 약간 눌리는 느낌이 났다.
나는 아차, 하고 다시 난간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유나가 옥상 난간에 기댄 채 나를 보고 실실 쪼갰다.
“아싸, 내 승리!”
“혹시 계속 거기에 있었어?”
“응”
뭐야, 그럼 나 혼자 그냥 생쇼하다가 그대로 등을 내준 거잖아?
젠장.
[현재 에너지 스케일, 일렉트론볼트.]
나는 에너지 스케일을 다시 본래대로 되돌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유나도 나처럼 신체 강화를 풀었다.
그렇지만 아까부터 계속 나를 보며 배시시 웃어대고 있었다.
나한테 이겨서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아이고야. 솔직히 니 능력 너무 사기 아니냐? 게다가 룰도 너한테만 너무 유리하다.”
“그래도 연습은 되잖아.”
“뭔 연습.”
“내가 특수능력 쓰는 연습.”
“나는 뭔데…”
유나는 최근에 ‘특수능력’을 개안했다.
잠재능력의 한계가 없는 유나였기에 엄청나게 화려한 능력을 얻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측과는 딴판으로, 그녀가 말하길 자신의 능력은 생각보다 수수하다고 했다.
그녀의 특수능력은 통칭, ‘기척차단’.
말 그대로 자신의 기척을 차단하는 능력.
……그러나 실제로 까보니 마냥 평범한 기척차단이 아니었다.
유나가 보여줬던 건 기척차단이 극에 달한 모습.
내가 이름을 붙이자면 『인식차단』이라고 붙였을 것이다.
유나가 능력을 쓸 때면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녀의 고운 머릿결에서 풍겨오던 알알한 샴푸 향기도.
조그마한 입술에서 미약하게 들리던 조용한 숨소리도.
그 숨에서 느껴지던 습기 진 따스함도.
마치 그녀의 존재자체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나가 진짜로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말 그대로 내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실제로 아까도 유나는 옥상 난간에서부터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그녀를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자 생쇼를 떨어댔지.
“그치만 난 이런 것보다 콰광! 하고 화려한 걸 원했단 말이야.”
유나가 배부른 소리를 해댔다.
“지금도 충분히 대단한데 뭘 더 바래. 일단 이론상으론 대인전 최강 아니야?”
“그래? 근데 사실 내 능력엔 엄청난 약점이 있어.”
“뭔데?”
“핸드폰 카메라로 보면 다 찍히더라.”
“그렇냐…”
“게다가 다른 대책도 많잖아.”
사실 그렇긴 했다.
사전에 물을 뿌려둔다든가 하면 바닥에 발자국 정도는 보일 테니까.
“시험 벌써 다음 주네.”
유나가 내 옆에 무릎을 모으고 앉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우리 둘 다 붙을 수 있겠지?”
“글쎄다. 일단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수업도 땡땡이 치고 있잖냐.”
“응… 그래두 좀 불안해.”
“왜. 떨어질 거 같아?”
“그치만… 전국에서 쟁쟁한 사람들은 다 모이는 거잖아. 그래서 나만 붙고 정의 너만 떨어지면 어쩌나 해서.”
“시발. 내 걱정 다시 뱉어내.”
“헤헤.”
유나는 눈을 찡그리며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었다.
그 표정이 심히 귀여워서 특별히 봐주기로 했다.
능전양고 시험 당일까지.
단 1주일도 남지 않았다.
x x x
사건은 빠르게 진행이 되어 바로 시험 당일이 되었다.
나와 유나는 능전양고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만나 준비를 마치고 바로 평양 중심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는 중간에서 멈출 때마다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태웠다.
그러나 내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대로 기차는 앉을 자리 하나 없이 꽉 차게 됐다.
보이던 사람 대다수가 우리와 비슷한 나이 대인 것 같았다.
“우와… 여기 전부가 우리랑 똑같이 능전양고 시험 치러 가는 사람들?”
유나가 갈수록 늘어가는 각양각색의 학생들을 보며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을 텐데… 으으, 붙을 수 있을까.”
“그것도 그렇고. 난 이 많은 인원을 도대체 언제 다 판별할지가 궁금하다.”
“그래서 3일 동안 보는 거 아니야?”
“한 사람당 15분씩만 잡아도 일주일은 걸리겠는데.”
능전양고의 시험 내용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일단 입학생들에게도 그걸 공개하면 커다란 불이익이 있나본지 재학생들에 의해 정보가 유출되는 경우도 없었다.
[다음 역은 능력자 전문 양성 학교 입구. 능력자 전문 양성 학교 입구 역입니다. 이 기차는 다음 역이 종착이오니…]
그렇게 다음 역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는 산을 가로지르는 터널 안에 들어섰다.
창문 너머가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내부의 빛에만 의존하게 됐다.
“이 산만 넘으면 중심부인가.”
“응. 그런 거 같아.”
딱히 대답을 원하지 않았던 내 질문에 유나가 양손을 꼭 모은 채로 동의했다.
약간 떨리고 있던 게, 정말로 긴장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유나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여줬다.
“아얏!”
“그렇게 똥 마려운 표정해도 아무 것도 안 돼. 정 그러면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든가.”
“그, 그런 거 아니거든! 더러워!”
유나가 내 저질스런 위로에 틱틱 대며 화를 냈다.
그런 유나를 보며, 나는 피식 하고 한 번 웃고는 창문 쪽을 가리켰다.
“봐라. 곧 뜰 거다.”
“뭐가?”
나는 유나의 말에 딱히 답하지 않고 창문을 봤다.
유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창문 너머의 어둠이 일순에 가시며 기차 내부가 창문을 통해 외부와 이어졌다.
50층은 그냥 넘는 고층 빌딩들이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며 곳곳에 즐비해있었다.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최고급 광물 소재 몬스터를 잡아다, 거기서 추출해낸 소재로 지었다고 예전에 질리도록 TV에서 광고했었다.
몇 주 전에 괴수의 침공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그 어느 곳에도 부서진 흔적 따윈 없었다.
그야말로 기(氣)과학의 정수였다.
“우와… TV에서만 봤는데, 대단하다.”
유나가 경탄을 금치 못하며 계속해서 바깥을 봤다.
[곧 종착역인, 능력자 전문 양성 학교 역에 도착합니다. 승객 여러분은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야, 내릴 준비하자.”
“응…!”
x x x
대한민국은 예전에 분단국가였다.
그러나 2030년에 기적과도 같이 통일이 되었다고, 그렇게 역사책에서 배웠다.
그렇지만 내게 있어선 반세기 전의 일이었기에 별로 크게 와 닿진 않았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당연히 앞으로 내가 갈 곳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통일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겐 계속해서 남쪽에 비해 뒤쳐지는 북쪽은 여간 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끌고나갔던 정책이 하나 있었다.
당시 기(氣)라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힘이 발견 되어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정부는 기(氣)와 관련된 전문 연구 및 교육 기관을 평양에 만들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서 지어졌던, 평양 중심부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학교 도시.
나와 유나는 현재, 그 거대한 학교의 정문 앞에 서있었다.
학교를 빙 둘러 감싸고 있던 거대한 담은 내 키의 서너 배는 훌쩍 넘었다.
고개를 올려 위를 쳐다보면 투박한 궁서체로 큼지막하게 학교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게 보였다.
침을 꿀꺽하고 삼키며 주먹을 꽉 하고 쥐었다.
긴장하지 말라고 유나에게 타일렀던 주제에, 내 가슴은 가면 갈수록 빨라져만 갔다.
나는 위를 올려다보며 똑똑히 말했다.
“여기가 바로, 『능력자 전문 양성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