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세계인 파미에 대륙으로 건너갔던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담배를 피울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인천 번화가의 한 골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빗물은 썩어가듯이 고여 있고 바로 옆에서 실외기가 뜨거운 바람을 뿜어대는 그곳에서 나는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었다. 빌딩이 높아서 골목까지 햇빛이 들지 않아 한낮이었는데도 굉장히 어두웠다.
가장 으슥한 곳에 숨어서 담뱃불을 붙이려는데 어디선가 요상스러운 파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난 건물 경비원인가 싶어 재빨리 담배를 버렸다. 그런데 경비원 따위가 아니라 골목 구석에 2미터를 훌쩍 넘는 크기로 동그랗게 생긴 것이 빛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안에는 넓은 초원과 기다란 산맥이 보였다. 나는 누가 여기에 그림을 갖다놓았나 싶어 손을 갖다 댔다. 그게 실수였다.
나는 아직도 가끔 비디오를 되감기 하듯이 그 당시를 생각한다. 그때 넣었던 게 손이 아니라 혹시 발이었다면, 머리였다면, 그냥 지나쳤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나는 손을 쓸 틈도 없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초원을 뒹굴듯이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들어온 파란색 게이트(Gate)는 보이지 않았다. 내 앞에는 거의 구름 위까지 도달한 높은 건물이 있었다. 어림 잡아도 백 층 이상이었고 햇빛이 반사되지 않는 금색이었다. 그곳에서 로브를 뒤집어 쓴 할아버지들이 나왔다.
“신탁이 있었다. 좌표를 내려줄 터이니 그곳으로 차원 게이트를 만들어놓아라. 이 세계를 구할 누군가가 이세계에서 등장할 지어다.”
난 그 할아버지가 라임을 맞추는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할아버지들은 내게 정중히 무릎을 꿇었다.
내가 뭘 구한다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구할 수 있는 건 초등학교 학습지 문제뿐이었다. 난 그 현자의 탑에 있는 마법사들과 신탁을 내려준 신에게 농락당한 ‘이세계에 사는 평범한 사람 1’이었던 것이다.
이 마법사들이 차원 게이트를 열어둘 수 있는 시간은 불과 5초. 그것도 좌표가 정확하지 않으면 구현되지도 않았다. 나는 누가 발견할 가능성조차 없었던 그 희박한 확률의 주인공이었다.
나는 현자의 탑에서 마법을 배웠다. 배웠다기보다는 물려받았다. 탑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마법사들이 평생을 지켜온 현자의 돌에 담긴 지식과 마법을 내게 주었다. 탑에서 가장 미녀라고 소문난 엘리 루시웰은 꼭 세계를 구해달라고 했다. 나는 세계평화보다 내 방의 안락함이 더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들은 애초에 내가 거절할 거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다시 집에 돌아가 보려고 머리를 좀 굴려봤는데 해결방법이 아예 없었다. 무엇보다도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는 신이 말씀을 내려주는 신탁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야만 세계의 질서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여행을 하며 삼 년이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대로 아르서스를 해치우러 갔다.
마법 궁수 켈리 창이 날아오는 마법을 요격했으며, 검사 루카스 루시웰이 한쪽 다리를 잘랐고, 도적 아르민은 단검을 던져 심장을 꿰뚫었다. 그 외에 도와준 사람들은 많았는데 현자의 돌에 담긴 힘을 물려받은 나는 고작 아르서스의 몸을 묶어둔 것뿐이었다. 아르서스는 루시웰 공작가에 내려오는 가보인 마법 거울에 봉인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내 덕분에 아르서스를 봉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맞다고 하기에도 민망했고 아니라고 정색할 수도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모험은 그렇게 끝났다. 3년 동안이나 정도 많이 들었다. 세계를 구한 용사라니, 대학교 휴학한 백수건달에서 신분도 많이 격상되었다.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엘리와 잘 되어볼 생각도 있었다. 아르서스를 봉인하고 나서 정확히 일주일 후에 현자 포르페가 다가와 말했다.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우리가 다시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제이든 님은 다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필요할 땐 억지로 데리고 와서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가라고?
사람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그 누구와도 헤어지기 싫었다. 몇 년을 대마법사로 살다가 이제 와서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도 싫었다.
나는 게이트가 열리기로 약속된 날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내가 다시 다른 세계로 돌아가느냐 하는 것은 그 당시 대륙 최고의 관심사로 여겨졌다.
나는 결국 돌아가고자 했다. 신탁이 말하는 게 그것이라면, 그것에 따라주기로. 내가 이곳에 온 건 아르서스를 물리치기 위해서였고 그 역할이 끝났으니 내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지 당신들이 말했던 질서와 균형이 유지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씁쓸하게 말하자 현자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 할아버지들도 괴팍하고 잔소리가 많아서 그렇지, 정이 굉장히 많이 들었었는데.
나는 다시 현자의 탑 앞에 섰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 나와 여행을 함께 했던 동료들부터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현자의 탑에 상주하는 마법사들과 학생들······. 그리고 엘리까지.
일단 게이트가 열리면 인사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마지막에 엘리와 악수를 했다. 마지막까지 좋아한다는 고백은 하지 못했다. 실은 악수가 아니라 포옹을 하고 싶었다. 이제 돌아가니까, 실수인 척 입을 맞추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장난처럼 엘리를 흔들어놓고 한 순간의 인연이었던 것처럼 남겨두기가 싫었다.
게이트가 열렸다. 나는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바로 게이트를 통과해버렸다. 3년 전 느꼈던 그 울렁거림을 느끼며 어느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다시 그 인천의 골목으로 돌아간 것이다.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처음엔 초원과 산밖에 없었는데. 나는 이 게이트를 통해 다른 세계로 건너감으로써 내가 얻은 건 바로 그 얼굴들이라고 생각했다. 평생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곧 이 얼굴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10초, 20초, 1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팔을 흔들던 사람들은 점점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는지 민망한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서 게이트로 팔을 뻗어보았다. 나는 다시 현자의 탑 앞으로 워프되었다. 검사 루카스가 뛰어왔다.
“형님, 결국 저희와의 정 때문에 이곳에서 사시기로 한 거군요!”
“······.”
사람들은 뛸 뜻이 기뻐했다. 마치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미국의 나사(NASA) 기지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두 팔을 들어 휘저었다.
“잠깐! 잠깐!”
난리를 피우던 사람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나는 게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왜 안 없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