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외교관 박판서
작가 : So설이
작품등록일 : 201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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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와 인기스타가 다른 점
작성일 : 18-11-04     조회 : 250     추천 : 1     분량 : 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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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 창문을 열고 바깥을 확인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잠에서 깬 곳이 내가 살던 세계인지, 마법을 부리는 판타지 세계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가끔씩 잠에 덜 깨서 비몽사몽한 와중에 착각한 적이 굉장히 많았다. 파미에 대륙에서 건너와 깼을 때 침대 근처에서 스마트폰을 찾느라 한참 고생했다던가 하면서 말이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일어나셨습니까, 일란님.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문을 열지 않고 밖에서 말했다. 아침 일찍부터 내 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하녀였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문을 두드리고 식사를 하라고 불렀다. 일어나는 시간이 너무 늦어진다 싶으면 밖에서 종을 가볍게 울려 깨워주기도 했다.

  “아니, 난 여기로 갖다 줘요.”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어제 벗어놓았던 옷을 대충 꿰입었다. 특별히 맞춤 제작한 짙은 파란색 정장이었다.

  “공작님께서 오늘은 내려오셔서 같이 식사를 하시랍니다.”

  “알았어요. 먼저 내려가 있어요.”

  “꼭 제가 데려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

  그 아저씨 사람 어지간히 귀찮게 하는군.

  나는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 서 있던 하녀 아르멜은 더욱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아침에 이쪽에서 대기하고 있지 말라니까요. 일어나는 건 내가 알아서 일어날게요. 아르멜 씨는 늦잠이나 자세요.”

  아르멜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이게 제가 할 일인걸요.”

  “그럼 나 욕실에서 씻고 갈 테니까 그렇게 일러둬요. 이 꼴로 밥 먹으러 갈 순 없잖아.”

  “다른 사람을 불러 전하라 하겠습니다. 식사 시간은 삼십 분 후입니다. 그 전까지 씻으셔야 해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멜란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얼굴을 붉히는 건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이곳 하인들은 내가 하인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되려 자신들이 더 당황했다.

  “씻는 건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나 두 팔 멀쩡하게 달려 있는 거 보이죠? 식사 나오기 전에 무조건 도착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드려요.”

  나는 그 말만 남기고 잽싸게 도망가 버렸다. 아르멜은 내 뒤를 따라오려고 했지만 풍성한 치마를 입고 빨리 달릴 수는 없었다.

  복도를 지나서 2층에서 1층에 있는 목욕실에 가는 동안 공작가에 있는 하인들을 열 명이나 마주쳤다. 그들은 이미 아침 청소를 끝마치고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목욕실 앞에 하인 피핀을 마주쳤다. 이곳에서는 흔하지 않은 검은색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인상적인 사내였다.

  “일란님, 일어나셨습니까. 목욕 시중할 사람을 불러드리겠습니다.”

  “아니! 수건만 갖다 줘요. 절대 사람 부르지 마요!”

  나는 미리 덥혀놓은 물로 대충 몸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밖에서 피핀이 계속 문을 두드렸다.

  “일란님, 사람을 불러드리겠습니다. 진짜 필요 없어요? 진짜로 필요가 없을까요? 필요가 생기지 않을까요? 모르는 일 아닐까요?”

  쟤는 날 도와주려는 걸까, 방해하려는 걸까?

  식당으로 가니 이미 루시웰 공작과 엘리가 앉아 있었다. 이미 아침 목욕을 마치고 옷을 정갈하게 입고 있었다. 심지어 엘리는 화장까지 한 상태였다.

  루시웰은 나를 힐끗 보더니 시녀장을 불러 음식을 내오라고 했다. 아침에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음식들이 줄줄이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루시웰 공작의 성에서 밥을 먹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첫 번째로 식사 예절을 지키는 게 굉장히 불편했다. 두 번째로는 엘리에게 아침에 일어난 부스스한 꼴을 보여주기가 싫었다. 마지막으로 루시웰 공작의 잔소리가 너무 심했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였다.

  “오늘은 탑에 가는 날이라면서. 늦잠을 잘 여유가 있나. 밥을 먹고 바로 출발해야 할 텐데. 회의가 끝나면 바로 이카로스로 넘어가야 한다면서.”

  이카로스는 이 세계의 고대어로 이세계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내가 마음 편하게 밥을 먹을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고기를 씹어 삼킬 자신이 없어서 수프나 몇 숟갈 떠먹었다. 그 와중에도 공작의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온 나라 국민에게 용사님 소리를 들으면서. 그럴수록 성실함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단다. 내가 젊을 때는 말이야, 짚을 엮어서 공놀이를 했는데 내가 아직 백작이었을 때 공작의 패스를 받아서······.”

  “아버님,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자구요.”

  엘리가 주의를 주었다. 딸에게는 꼼짝 못하는 공작은 드디어 따발총 같이 잔소리를 쏴대던 입을 멈췄다. 나는 엘리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엘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란, 밖에 마차를 준비해두었어.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식사를 마치고 떠나기 전에 공작과 엘리에게 인사를 남겼다. 엘리가 물었다.

  “또 언제 돌아오는 거야?”

  “글쎄······. 나도 일정이 잡혀야 오는 거라서. 금방 또 올게.”

  루시웰 공작의 ‘우는 여인 절벽 성’에서 탑까지는 마차로 세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이 시간이 제일 고역이었다. 공작 마차라고는 하지만 자동차보다 편할 리는 없었다. 두 시간 이상 타면 엉덩이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자동차를 가지고 오고 싶었지만 포르페와 현자들이 반대했다.

  “게이트는 무슨 이유에서 열려있는지는 몰라도 언젠가 불시에 닫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문명이 없어도 잘 살아왔습니다. 다른 차원의 세계를 억지로 끌어들였다간 질서와 균형이 무너집니다. 아시죠? 질서와 균형.”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귀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떠들어댔으니까.

  나는 현자의 탑에 도착해서 뒤뜰에 있는 회의장으로 바로 갔다. 회의장은 야외에 기둥으로 벽을 세워놓고 거대한 올리브 나무의 그늘이 지붕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아주 분위기 있는 공간이었다. 현자들은 이미 모두 그곳에 모여 있었다.

  현자들을 포함한 마법사들은 한 달에 한 번, 일주일 정도만 한 명씩 이카로스로 건너갈 수 있었다. 최대한 서로의 세계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한 세계가 다른 차원에게 영향을 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어서 다들 조심스러웠다.

  요즘 현자의 탑에서 하는 회의는 보통 마법사들 중 누군가가 이카로스로 건너가는가를 결정하는 게 전부였다. 회의는 보통 포르페와 내가 진행했다.

  “자, 그럼 이번에 이카로스로 건너가고 싶은 사람은?”

  회의장에 있는 모두가 손을 들었다.

  “내가 갈 거야.”

  “무슨 소리! 나는 아직 한 번도 간 적 없으니 내가 갈 거야!”

  “아니, 이번에는 내가 가겠소!”

  포르페가 목재 판에 나무망치를 두드렸다.

  “다들 조용히 하세요!”

  회의장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다들 소란을 피운 것을 반성하는 표정이었다. 포르페는 근엄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가고 싶소.”

  “······.”

  균형과 질서라더니. 그걸 진심으로 지키고 싶은 게 맞는 걸까?

  모두들 나를 바라보았다. 다들 기대에 찬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가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신청할 수 있지만 결국 누가 가게 될 건지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내가 정하게 되어 있었다.

  물론 나름의 기준선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걸 뽑아보자면 이것이었다.

  1. 이카로스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가장 잘 이행해줄 사람

  2. 함부로 마법을 쓰지 않고 이카로스에서 최대한 마법이 없는 생활이 가능한 사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카로스에서 가져온 서류를 펼치며 말했다.

  “이카로스에는 마법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또한 그 때문에 발생하는 범죄자들과 그걸 이카로스가 이룩한 문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태까지······. 이카로스의 경찰들에게 마법사를 추적하는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오. 그 부분에서만큼은 포르페님이 가장 달인이 아닌가 싶은데.”

  포르페는 일부러 입을 굳게 닫아 대기권을 돌파할 기세로 승천하는 광대를 숨기고 있었다. 그는 헛기침을 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삼 초 후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의 있소!”

  “이건 반칙이야! 난 아직 가보지도 못했다니까!”

  “나도 추적 마법은 잘 하오. 이것 보시오. 잘하잖아!”

  “······.”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솔직히 저 마음들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일을 하러 가는 것보단 놀러간다는 마음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중학생 때 수련회를 가면 조교들이 여기 놀러왔어! 라고 소리치고는 했는데 나는 그 말이 참 이해가 안 갔다. 놀러온 게 맞으니까. 아마 저들도 같은 마음이겠지.

  회의는 세 시간이나 더 길어졌다. 그래도 포르페가 간다는 사실은 결국 번복되지 않았다. 포르페는 현자의 탑 안에서 양가죽으로 만든 큰 가방을 등에 매고 나왔다.

  “가시죠, 일란 님.”

  이미 짐까지 다 싸놓은 치밀함이라니. 다른 사람을 지목했으면 어떤 난리를 피웠을지 상상하기도 싫구만.

  차원의 문이 열린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파미에 대륙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현자들의 통제 아래 게이트에 너무 가깝게 접근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게이트가 아니라 나를 보러 온 것이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적어놓은 나무 판자를 피켓처럼 들고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일란 님, 이쪽을 봐주세요!”

  “일란 님, 다음에 꼭 우리 기사단에 들러주십시오! 젊은 신입 견습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 이쪽 봐! 형!”

  대부분 용사라는 말에 동경을 품은 남자들이었다. 현자의 탑은 파미에 대륙 중에서도 꽤 외진 지역에 있어서 말이 없으면 찾아오기 꽤 힘들었다.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도 현자의 탑까지 찾아오는 중에 들를 수 있는 마을이라고는 몇 개 있지도 않았다. 밤새 쉬지도 않고 이곳까지 걸어와야 하니 어지간히 튼튼한 남자들만 찾아오게 되는 것이었다.

  “······.”

  그래도 형보다는 오빠 소리 듣는 게 더 좋은데.

  나는 안쪽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하나를 더 꺼내서 포르페에게 건넸다.

  “이걸 저처럼 눈에 써요. 우리가 이 시간에 갈 거라는 걸 저쪽에서 알고 있거든요.”

  “이게 뭡니까?”

  “일단 쓰세요. 건너가면 알게 되실 거니까.”

  나는 나에게 열렬한 인사를 보내는 열혈 남성호르몬의 집합체들에게 손 인사를 건넸다. 모두들 기뻐하며 피켓을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나와 포르페는 동시에 게이트 앞에 섰다.

  “차원을 통과하는 동안 좀 어지러울 거예요. 그리고 나가자마자 좀 정신없을 겁니다.”

  우리는 게이트 앞에서 한 발을 내딛었다. 약간의 울렁거림과 함께 찾아오는 어지러움. 그것을 견뎌내고 나면 무려 차원이 바뀌게 된다. 그리고 내가 있는 세계가 바뀐다.

  비명소리.

  웅성거림.

  사방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들!

  그저 빌딩 사이의 골목이었던 곳은 하나의 유명지가 되었다. 게이트를 감싸고 있는 건물들을 전부 밀어버리고 그곳에 큰 건물을 새로 세울 예정이었다. 아직은 철창이나 나무 같은 구조물로 대충 가건물을 만들어놓았을 뿐이지만.

  나는 철창 밖에서 나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사람 좋은 미소로 대답했다. 사람들은 내 응답에 열렬히 환호했다. 포르페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빛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경호원들이 여섯 명이나 달려와 우리를 감싸고 길을 안내했다. 나머지 경비원들은 나를 찾아온 사람들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우리는 안내를 받아 검은색 리무진에 탔다. 자기 몸집만 한 가방을 아기처럼 안고 있는 포르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뭔가? 이것들이 다 뭔가? 태어나서 다 처음 보는 것들이로군!”

  마치 회춘한 것처럼 피부가 탱글탱글해졌다. 나는 그 모습이 아이 같아서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긴, 파미에 대륙과 마법의 비밀을 파헤치고 현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이니까. 살면서 새로운 것들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을 텐데. 이곳이 진정 별천지겠지.

  “앞으로 구경할 게 많으니까 벌써부터 너무 놀라지 마요. 오히려 좀 피곤하게 될 걸요. 그리고 나 여기서는 일란이 아니라 박판서입니다. 일주일 동안은 그렇게 불러주세요.”

  리무진 안쪽에서 전화가 울렸다. 유리벽 너머에 있는 운전사가 말을 거는 것이었다.

  “박판서 님, 어디로 모실까요? 오늘 당장 참가하셔야 할 스케줄은 없는데.”

  나는 손가락 끝에 작은 불꽃을 만들어내며 말했다.

  “서울 그랜드 호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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