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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박판서
작가 : So설이
작품등록일 : 201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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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로스의 마법사
작성일 : 18-11-06     조회 : 257     추천 : 1     분량 : 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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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페는 생각보다 이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그는 현자 칭호를 달기 전에는 학생들에게 마법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점수를 잘 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고 하는데 정작 그 점수를 잘 못 받은 학생들은 좋은 마법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선생님이었다.

  경찰들은 비밀리에 마법 교육을 받았는데 저녁때쯤 그들의 모습은 이미 지옥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래도 수재들이라고 할만 한 사람들만 모아놨을 텐데 당장이라도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며 경찰들에게 조의를 표했다.

  저 사람들은 오늘 잠은 다 잤다고 볼 수가 있다. 나도 한 번 겪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날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군.

  마법은 단순히 이해한다고만 해서 적용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었다. 마법을 쓰려면 마나를 쓸 수 있는 타고난 몸이 있어야 했고, 재능도 필요했으며, 아주 기초부터 꾸준히 연습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반 년 안에 빛나는 구체를 만들 수 있으면 마법사들 중에는 수재였다. 그들이 원해서 가르쳐주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고급 이론을 설명한다고 해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안 그래도 내가 도착할 때쯤 포르페는 격한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교육이 벌써 다섯 번째인데 이 정도로 연습이 안 되어있다니요! 여기까지 건너온 이 늙은이가 민망해질 정도입니다. 마법은 연습에 또 연습이라고 이전에 온 사람들이 말해주지 않았던가요? 형식적인 교육은 다 집어치웁시다! 여러분은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해요.”

  경찰들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뺏긴 것처럼 절망했다. 마나를 응축해서 조그마한 빛의 구를 구현하는 것은 마법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었는데 포르페는 사람들에게 그것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는 현자의 돌에 담긴 힘을 받았는데도 그걸 해내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지.

  “이놈이 진짜 신탁에 나온 그 사람 맞아? 신전 가서 다시 확인해보라고 그래!”

  포르페가 날 가르치다가 너무 답답해서 그렇게 소리를 친 게 기억이 났다. 저 할아버지 성격에 혈압이 터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련만.

  나는 경찰서를 빠져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저녁도 나랑 같이 안 먹는다니까. 내가 봤을 때 포르페의 저 교육열이면 비서인 이제하 씨도 같이 저녁을 못 먹을 가능성이 컸다.

  정문으로 당당하게 통과하려는데 누군가가 길을 막았다. 경찰서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었다.

  “박판서 씨, 어디 가십니까?”

  “나 오늘은 스케줄 없어요. 산책 좀 하려고요.”

  나는 내 앞길을 막은 손들을 옆으로 치워버리고 지나가려고 했으나 경호원은 손길을 뻗어 내 뒷덜미를 잡았다. 위쪽까지 단추를 채운 와이셔츠에 목이 턱 막혔다. 이 사람들은 날 경호하려는 거야, 죽이려는 거야?

  “크억! 이게 무슨 짓입니까?”

  “산책을 하려면 저랑 같이 가시지요.”

  “저는 그쪽 취향이 아닌데요.”

  “···그게 아닙니다! 박판서 씨가 다치지 않게 하는 게 저희 일이라고요!”

  “나 안 다칠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왜 일하지 말고 쉬라는데도 뭐라 그래요?”

  “우리도 엄연히 정식 경호원입니다! 직업의식이 있다구요! 어어?”

  나는 서너 명의 남자들을 옆으로 밀치고 도망쳤다. 뒤에서 누군가가 험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 자식 잡아!”

  “······.”

  박판서 씨에서 바로 저 자식으로 바뀌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누가 보면 내가 나쁜 놈인 줄 알겠네.

  나는 경찰서를 빠져나와 마침 신호가 바뀐 횡단보도를 건넜다. 딱히 마법을 쓰지 않았지만 경호원들 네 명쯤 따돌리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너희가 암만 운동을 했어도 내가 판타지 세계 여행 짬밥만 삼 년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로 끈질겼다. 넘어지고 자빠져도 절대 추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법을 쓰면 좀 더 간단히 따돌릴 수 있을 테지만 나는 그들의 도전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면서 저 멀리 뛰어오는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나 잡으면 앞으로 군말 안 하고 같이 다닐게요! 잡아 봐요!”

  “다들 들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마!”

  그들은 손에 총이라도 들려 있었으면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쏠 기세였다. 유흥가가 없는 밤거리라서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서울 시내를 이렇게 뛰어다녔나 싶어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너무 신난 나머지 어디까지 달려왔는지 모를 정도였다. 경호원들은 이미 겉옷까지 벗고 뛰고 있었지만 나를 잡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때 한쪽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표정이 어딘가 다들 다급해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또 시작이구나.

  “그래요. 제가 바로 박판서입니다.”

  사람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를 지나쳐 어디론가 우르르 몰려갔다.

  “······.”

  민망해라. 나도 스타병에 걸렸나.

  나는 사람들이 몰려간 쪽을 뒤따라 가봤다. 그들은 근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이미 다른 사람들도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아파트에서 불이 난 모양이었다. 10층 정도 높이에 있는 한 집안에 불이 났는데 불길이 옆집에 번질 기세로 상당히 거셌다. 창문 밖으로 불길이 솟을 때마다 사람들이 술렁였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소방차는 왜 아직 안 온대요?”

  “아니, 단지 입구에 누가 주차를 잘못해놔서 들어오질 못하고 있대요! 중형차를 밀고 들어올 수도 없고!”

  “그게 진짜입니까?”

  나는 아줌마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말이라니깐요, 라고 대답하던 아줌마가 내 얼굴을 보더니 반색을 했다.

  “어머, 어디서 많이 봤나 했더니 마법사님 아니신가?”

  그 말 한마디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소방차는 아예 못 들어온답니까? 불이 난 지는 얼마나 됐죠?”

  “그거야 난 잘 모르지~. 그나저나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보다 더 잘생겼네.”

  나는 아파트 쪽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팔을 덥썩 붙잡았다. 나를 기어코 쫓아온 경호원이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다 못해서 입에서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올··· 헉헉, 라가··· 실 생각이··· 헉헉, 시죠? 안 됩니··· 다. 애들 불··· 헉헉, 장난하는 게 아니라구요.”

  “······.”

  말을 하려면 똑바로 하던가.

  “이참에 봐둬요. 진짜 마법이 어떤 건지.”

  나는 경비원의 팔을 뿌리쳤으나 그 역시 필사적이었다.

  “우리는 계약에 묶인 몸입니다. 박판서 씨가 다치시면 우리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요! 소방관은 괜히 있습니까?”

  나는 경비원을 밀쳤다. 지친 경비원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나 때문에 넘어졌지만 솔직히 미안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잔뜩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못 들어온다잖아! 저기 위에 몇 사람이 있을 줄 알고 돈 타령이야!”

  나는 다리에 헤이스트 마법을 걸고 계단을 올라갔다. 아쉽게도 마법으로 하늘을 나는 건 내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몸을 가볍게 만들 수는 있어도 공중에 뜰 정도로 안정감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헤이스트 마법이 있으면 10층짜리 계단 올라가는 것도 30초면 충분했다!

  나는 마나로 미사일을 만들어 현관문에 날렸다. 비밀번호 잠금쇠와 문고리를 차례로 부쉈다. 문고리가 떨어져나간 구멍으로 안쪽을 바라보았다. 연기가 가득했으나 아직 집 안 전체에 불이 번진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쪽에 살짝 열린 문틈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거실에 널찍하게 난 창문을 열고 바람을 일으켜 최대한 연기를 내보냈다. 닫힌 문을 통해서 연기가 새어나오는 방을 제외하면 아직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불은 이곳에서 시작된 모양이었다.

  방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안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을 테니 함부로 손잡이를 만졌다가는 손이 고기처럼 노릇노릇 익고 말 것이다. 나는 네 개의 빛의 화살을 만들어 문으로 날렸다.

  펑 펑 펑 펑!

  연속적인 폭발음이 들렸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이게 뭐지? 마법을 잘 안 쓰고 살았더니 감이 죽었나?

  나는 이번엔 열 두 개의 화살을 만들었다. 화살들을 동시에 문에 날렸지만 위쪽에 천장이 일부 무너져 내렸고 문은 구멍만 났을 뿐 거의 멀쩡했다. 사람 머리 만하게 난 구멍에서 작은 불기둥이 치솟았다.

  불길과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엎드려서 자세를 낮췄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방 전체를 얼음으로 뒤덮을 수도 있었으나 만약 사람이 남아 있다면 오히려 마법이 더 위험했다.

  “너는 사람들하고 섞일 수 없어. 이젠 아주 잘 알았겠지.”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남자아이가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몸을 살짝 일으키고 소리쳤다.

  “거기 계십니까! 의식이 남아있다면 말하세요! 나는 마법사 박판서입니다. 대답하세요!”

  그때 누군가가 불길 속에서 문을 열고 갑자기 튀어나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몰라도 검은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는 나를 옆으로 밀쳐버렸다. 엄청난 힘이었다. 나는 바닥에서 세 바퀴를 구르고 벽에 부딪쳐서야 멈출 수 있었다.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는 어린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펑펑 울면서 그를 따라갔다.

  나는 마나를 응축해 그들이 나가는 현관문 쪽으로 미사일을 날렸다. 현관 쪽에 작은 구멍이 두 개 났지만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집을 빠져나갔다.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켜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으나 다리가 꼬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갑자기 엄청난 현기증이 몰려왔다.

  젠장. 방심했다.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셨어.

  나는 해독 마법을 쓰려고 했으나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하는 거더라. 분명히 현자들한테 배웠었던 것도 같은데······. 자면 편해지려나······.

  “······.”

  헉! 안 돼!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든 후에 벽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다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때 열린 현관문을 통해서 소방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 중 두 명은 아파트 복도에 연결된 호스를 붙잡고 안쪽으로 뛰어갔고 한 명은 나를 부축했다.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아래쪽에는 경비원이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나오자마자 환희에 찬 표정으로 달려왔다. 이렇게까지 걱정한 모습을 보니 왠지 좀 미안해졌다.

  “거봐요! 그러게 조심하라니까는!”

  “여기로 나온 사람 못 봤어요? 키 거의 나 만하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남자아이요.”

  “어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진작 다 대피를 했었다니까요!”

  “말도 안 돼. 분명 이쪽으로 나갔을 거라고요.”

  “몸에 검댕은 다 뒤집어쓰고 또 어딜 가시려고 합니까! 안 됩니다!”

  “그 사람들 붙잡아야 한다니까! 불을 피한 게 아니라 나를 피해서 도망갔어! 분명히 불 지른 범인들이야!”

  나는 경비원을 뿌리치고 아파트 단지를 뛰어다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화재가 다 진압되는 동안 사건 현장에서 달아난 그 사람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작가의 말
 

 작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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