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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박판서
작가 : So설이
작품등록일 : 201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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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로스의 마법사 (3)
작성일 : 18-11-08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6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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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페는 파미에 대륙에 잠시 건너가 서신을 보내고 돌아왔다. 게이트를 지키는 경비병들의 근무일지에 빈칸이 없는지, 경비 체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혹시라도 누군가 박판서의 지시라고 핑계 삼아 넘어간 적은 없었는지, 누군가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적은 없었는지 모두 상세히 알아보고 보고하라고 전했다.

 

  사실 게이트는 열려 있다고 해서 아무나 드나들 수는 없었다. 누군가 게이트 밖에서 마법으로 길잡이가 되어주거나 드나드는 본인이 마법을 쓸 줄 알아야 했다. 만약 두 개 모두 해당이 되지 않는다면 워프 되는 도중에 다른 차원으로 튕겨져 나가거나 그 틈에 갇혀버릴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곳은 마나라는 에너지에 대해 깨달은 지 불과 반년도 되지 않았다. 그 안에 누군가가 현자들과 견줄 만한 마법을 익혔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가장 큰 가능성으로 현자급 마법사가 파미에 대륙에서 몰래 건너온 것으로 가능성을 두기로 했다.

 

  어떤 목적이든 마법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여론이 거세지면서 나는 당분간 호텔에서 근신이었다.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그냥 속 편하게 휴가를 며칠 얻은 셈 치기로 했다. 오히려 커다란 침대에 퍼질러져 차분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아이가 단순히 납치된 것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아이를 데려간 사람은 이미 마법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무분별하게 마법을 사용하다가 실수했다고 생각하기엔 문에 걸어둔 실드 마법이 너무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다. 사람이 사는 집에 불까지 질러댔다면 어떤 목적이든 대의보다는 욕심이고 타협보다 강행이었다. 결코 이 일이 화재사건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침대에서 이불을 끌어안고 뒹굴거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내 전용 비서가 노크했다.

 

  그녀는 전에 어디 대사관에서 일을 했다는데 주로 내 일정을 잡아주는 건 물론 난감한 상황에서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들어와요.”

 

  비서는 근무중이라면 언제나 정장치마 차림이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태블릿 PC를 보며 말했다.

 

  “박판서 님, 오늘 일정이 잡히신 게 있어서 저녁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정이요? 언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더니?”

 

  비서에게 화를 낸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괜히 자기가 미안해했다.

 

  “급하게 잡힌 것이라 이제 말해줘서 미안해요. 그쪽에서 워낙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왔는데 윗선에서도 가보는 게 좋다고 해서요.”

 

  “뭔 일정이길래 이렇게 급하대요?”

 

  “말로는 간단한 식사자리랍니다. 그게, 어디 당 대표님 아들분이시라고……. 꼭 뵙고 싶다고 했답니다.”

 

  무슨 당 대표 아들이 파워가 그렇게 세다고 사람을 오라가라 하는 걸까? 마음 같아서는 일정을 취소하고 다 뒤집어엎고 싶었지만 이미 내겐 골치 아픈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가끔은 기분전환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알았어요. 갈게요. 간다고요.”

 

  “그럼 저녁 일곱 시에 차 대기시켜놓고 부르겠습니다. 그때까지 쉬십시오.”

 

 

  식사자리라고 하면서 일곱 시에 출발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도착한 곳은 서울 시내에 있는 거대 룸살롱이었다. 건물이나 입구, 내부가 너무 고급스럽고 화려해서 처음엔 그런 곳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방에 들어가자 양아치 같은 놈들 대여섯 명이 여자 하나씩 끼고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과일껍질과 술병, 구두나 넥타이 같은 것들이 뒤엉켜 있었는데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나는 천장을 쳐다보며 눈을 감았다.

 

  “하, 이 새끼들…….”

 

  나는 일정을 허락해줬다는 ‘윗선’을 원망하며 자리에 앉았다. 노래방 소리가 쾅쾅 울려서 너무 시끄러웠다. 나를 불렀다던 당 대표 아드님은 벌써 잔뜩 취해있었고 내게 말을 걸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아하, 이거, 영광입니다! 최호빈이라고 합니다! 그쪽은 이름이 이덕판이던가?”

 

  “…….”

 

  맞는 부분이라고는 판밖에 없잖아?

 

  “오빠, 박판서잖아.”

 

  옆에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도 헷갈리는 여자가 말했다. 그러자 이 양아치는 이마를 탁 치며 호쾌하게 웃었다.

 

  “아하, 이거! 제가 지금 정신이 좀 없어서!”

 

  나는 머리를 짚었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최호빈은 시계를 차고 있었다. 나는 그런 쪽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지만 옷에 걸친 장신구부터 시작해서 옷과 구두까지 상당히 비싸 보이는 명품이었다. 재벌 그룹 총수 아들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까지 비싼 것들을 걸치고 다니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적당히 비위나 맞춰주다가 다들 취하면 도망가리라고 다짐했다.

 

  “근데 전 왜 부르셨나요?”

 

  “한 번쯤 꼭 뵙고 싶었습니다! 뭐, 하고 싶은 얘기도 있고.”

 

  “그럼 여자분들은 다 내보내시고 진득하게 대화를 좀 해볼까요? 다들 일행이 아니신 것 같은데.”

 

  “에이~.”

 

  최호빈은 검지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그는 반대쪽 팔을 여자의 어깨를 두르고 있었는데 드러난 팔을 떡 주무르듯이 잘도 주물러대고 있었다.

 

  “마법사님, 우리가 굳이 왜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보안은 걱정 마시고 그냥 마음 편하게 노시면 됩니다.”

 

  최호빈은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그 가면 안에는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뭐 이런 걸로 겁을 먹고 사냐는 듯한 느낌.

 

  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파미에 대륙에서 여러 국가들의 귀족들을 많이 상대해봤기 때문이었다. 루시웰 공작은 그 중에서도 가장 담백한 편에 속했다. 대다수가 사람을 깔보거나 무시하는 데 익숙했고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 기준은 무조건 자기 자신이 보아온 환경이었다. 그 중에서도 심한 놈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고 멍청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나는 그 순간에 잠시 눈을 감고 엘리를 떠올렸다. 내가 어려움을 느낄 때 언제나 의견을 존중해주고 지지해주는 천사 같은 엘리를.

 

  ‘엘리, 내가 지금 저 사람에게 아르헨티나 백브레이커를 먹여도 될까?’

 

  “…….”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

 

  최호빈은 유리잔 하나를 내게 건네며 술을 따라주었다. 술 이름이 뭔지는 몰라도 냄새가 굉장히 독했고 가격도 비싸보였다.

 

  “요즘 하시는 일이 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시끌시끌하기도 하고. 괜히 겁먹으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여기저기 다니면서 좀 즐기시고 기자들이 사발 풀어서 여론만 좀 바꿔주면 잠잠해지는 거 금방입니다.”

 

  어떻게 보면 나를 생각해줘서 하는 말 같기도 한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 이유를 잠시 생각해봤는데 그는 얼핏 나를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충고나 훈계를 하듯이 말하기 때문이었다.

 

  “뭐, 어디서 불을 지르셨다고? 그러다가 사람도 한 명 죽었다고 알고 있는데?”

 

  나는 최호빈의 코에 주먹을 짓이기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대답했다.

 

  “불을 지른 게 아니라 화재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겁니다.”

 

  “에헤이. 그러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어쨌든 뭐, 불이 난 건 맞고 잘못한 건 맞다면서요.”

 

  “뭐, 굳이 말하자면 그렇긴 한데.”

 

  나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속이 타서 최호빈이 따라준 술을 한 잔 들이켰다. 오징어 다리 하나와 소주 한 병이면 만족하는 소박한 나는 비싼 술을 마시자 오히려 체할 것 같았다. 도수가 너무 높아서 딱 한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취기가 올라왔다.

 

  최호빈은 옆에 여자가 주는 과일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다리를 꼬았다.

 

  “사람들이 진짜 도덕적으로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까는 것 같죠? 그게 아니라 그 사람들은 하나만 얻어걸려라 하고 사냥감 찾아다니는 심정으로 인터넷에서 여론 몰이하는 거라니까? 나중에 봐요. 뭐 하나 잘못한 사람 나오면 다시 우르르 몰려가서 물어뜯고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릴 테니까.”

 

  “우리요?”

 

  “사실 나도 김덕배 씨랑 처지가 좀 비슷합니다. 뭐, 우리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한답니까.”

 

  “…….”

 

  아무래도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외울 생각이 없나보다. 이젠 내 이름이랑 같은 부분이 아예 하나도 없다.

 

  “최호빈 씨도 뭐 잘못을 저질렀나보군요.”

 

  “잘못이니 뭐니 하면서까지 표현할 건 아니고 사고고 실수입니다. 사고, 실수. 그리고 오해.”

 

  “뭔 짓을 저지르셨기에 사고랑 실수?”

 

  최호빈은 말을 하다 말고 담배를 물었다. 옆에 여자가 라이터로 불을 붙여줬고 최호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쪽으로 연기를 뿜었다. 퀴퀴한 냄새와 묘한 과일향이 동시에 났다.

 

  “사람들이 참 웃겨요.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매일 기부해라, 봉사해라 떠들어대면서 자기네들은 뭘 한답니까? 백만 원 있는 사람은 십 만원 기부할 생각도 안 하면서 천만 원 있는 사람은 무조건 백만 원 기부해야 한답니까? 뭐, 아무튼.”

 

  최호빈은 갑자기 자기 혼자 흥분하다가 화를 가라앉혔다.

 

  “기부는 돈이 드니까 대신 봉사를 하러 간 겁니다. 아버지가 일이 바쁘다고 하시니까 나라도 대신 가서 사진 몇 장 찍어줄 생각이었죠. 근데 거기 같이 활동하러 온 애들 중에 고등학생 애가 한 명이 있었는데 좀 이쁘장합디다. 뭐 그렇게 어린 것도 아니었고 고등학교 이학년이었는데 나랑 나이차이도 얼마 나지도 않아요. 그래서 그냥 같이 고생하는 처지에 대충 끝내고 밥이나 좀 먹자고 그랬더니 괜히 기집애가 바락바락 달려들더라고요. 먼저 뭐라고 하니까 그냥 살짝 밀친 것뿐인데 그냥 뒤로 냅다 넘어집디다. 아주 먼저 때리라고 벼르고 있었던 거라고요, 그게.”

 

  최호빈은 그 말을 하며 혼자 낄낄거렸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들으며 손에 든 술잔을 조금씩 기울였는데 한 잔도 채 마시지 않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야, 니들 다 나가.”

 

  최호빈은 갑자기 안면을 싹 바꾸며 방에 있는 친구들이며 여자들을 모두 내보냈다. 노래가 꺼지고 방에는 어색한 정적이 맴돌았다.

 

  “분위기 파장이네요.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최호빈은 일어나려는 내 손을 붙잡고 다시 자리에 주저앉혔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나만 남겨두다니. 이건 숨겨둔 마음을 고백하는 타이밍이 분명했다.

 

  “…….”

 

  그럴 리가 없겠지?

 

  “내 마법사님한테 부탁 하나만 합시다. 지금 당장 떠들고 있는 기사들이야 내리면 그만이고 굳이 그렇게 안 해도 조금 있으면 잠잠해지기도 하는데……. 이 일의 원흉인 그 년을 내가 가만히 두자니까 괜히 울화통이 터지고 억울합니다. 그래서 내가 마법사님을 특별히 좀 뵙자고 한 겁니다.”

 

  최호빈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대화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술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마법사님이 나를 좀 도와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마법에 대해 일자무식한 놈이라 방법은 마법사님이 알아서 정하시고, 그 년한테 예의만 좀 가르쳐주시면 됩니다. 사례는 진짜 섭섭지 않게 합니다. 내가 빚이랑 은혜가 확실한 사람이거든요. 그럼 시험 삼아 그럴 능력이 있는지 마법이나 한 번 보여주시겠어요?”

 

  “좋습니다. 그러지요.”

 

  나는 호기롭게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술기운이 돌아 잠시 비틀거렸다.

 

  최호빈은 신나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역시! 내가 처음 봤을 때부터 남다른 분이시라는 걸 알아봤다니꽈악!”

 

  최호빈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뚱이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공중에 떴다가 테이블 위에 처박히듯이 떨어졌다. 술병이 떨어지며 깨지고 꺼지지 않은 무선마이크가 서로 부딪쳐 스피커에서 쿵 소리가 났다.

 

  머리에 술을 뒤집어 쓴 최호빈이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왜? 보여 달라면서?”

 

  나는 예쁜 유리접시에 있는 바나나를 하나 집어 정성스럽게 깐 다음 최호빈의 입에 통째로 쑤셔 넣었다.

 

  “잘 들어. 먼저 난 편리한 부탁을 들어주는 지니의 램프가 아니야. 나도 이런 감투 쓰는 거 엿 같은데 엄연히 외교관이다. 난 당신 같은 사람들 뒤치다꺼리나 하라고 개고생해가면서 마법을 배운 게 아니야. 네가 아니라 네 아빠의 할아버지의 조상이 와도 들어줄 생각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최호빈이 바나나를 옆으로 퉤 뱉으며 소리쳤다.

 

  “네 아빠? 네가 그렇게 막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보지? 지금 당장 어떻게 되는지 전화 한 번 해봐?”

 

  “해봐. 내가 진짜 예의가 뭔지 가르쳐줄 테니까.”

 

  나는 옆에 있는 플라스틱 얼음통을 악력으로 구겨버렸다. 물론 단순한 악력이 아니라 마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호빈이 당황한 얼굴로 두 눈을 깜박거렸지만 자존심이 상했는지 다시 악에 받혀 소리쳤다.

 

  “세상 힘만 믿고 되는 줄 알아? 너 같이 깝치다가 나중에 무릎 꿇고 비는 애들 여럿 봤다. 기대해라. 나가자마자 신고해줄 테니까.”

 

  “여고생한테 협박해달라는 거 거절했다고 신고하시겠다고? 해. 응원해줄 테니까. 내가 전화 걸어줘?”

 

  나는 바나나 껍질을 최호빈의 얼굴에 예쁘게 얹어주고 문을 열었다. 최호빈의 친구들이 문 앞에서 줄줄이 사탕처럼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확인한 그들은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아.”

 

  나는 몸을 돌려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사고고 실수입니다.”

 

  그리고 룸살롱을 나가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오해입니다.”

 

작가의 말
 

 작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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