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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치기
작가 : 골드보이
작품등록일 : 201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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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현정
작성일 : 18-11-04     조회 : 316     추천 : 2     분량 : 3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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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겁지겁 회사에 도착하니 8시 59분.

 한 번 더 지각하면 이번 달에도 경고를 먹을 뻔했는데 다행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출근카드를 찍으려는데, 목에 걸고 있던 출입증이 없었다. 어, 그럴 리가 없는데. 당황하는 사이에 출근기록타이머는 9시로 바뀌었다. 결국 지각이구나. 한숨을 쉬는데 안에서 최 부장이 문을 열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숨을 몰아쉬며 애써 밝게 인사하는데 최 부장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현정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시죠??”

 

 최 부장이 작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또 썰렁한 농담을 하나 싶으면서도 뭔가 싸한 느낌이 목덜미를 스쳤다.

 

 “부장님, 왜 그러세요. 저 현정이잖아요. 저 오늘 지각 안했는데 출입증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변명하듯 말하던 현정은 돌연 입을 다물었다. 본인 목소리에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니잖아.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뒷걸음질을 치는데 통통한 손이 보였다. 짧은 손가락과 두터운 손바닥. 현정의 손이 아니었다. 뭔가 잘못된 거야.

 

 현정은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세면대 위의 거울을 봤다. 거울 안에서 그녀를 마주보고 있는 사람은 낯선 얼굴의 중년 여자였다.

 

 흰머리가 군데군데 섞인 어중간한 길이의 단발, 누르스름한 피부, 광대 위의 기미, 손톱으로 눌러놓은 것처럼 가늘고 작은 눈, 그에 비해 크고 뭉툭한 코, 그리고 두꺼비를 연상시키게 하는 두툼한 입술까지. 완벽한 추녀라는 말이 있다면 딱 어울릴 법한 외모였다.

 

 말도 안 돼. 이건 꿈일 거야. 난 아직도 집에서 자고 있나 봐.

 

 현정은 찬물을 틀어 손을 씻었다. 손바닥에 차가운 감각이 그대로 전해졌다. 꿈이 아니었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출근길에 못 다한 화장을 마무리하러 왔던 정 과장이 그런 현정을 곁눈으로 흘끔거리더니 재빨리 립스틱만 바르고 나갔다.

 

 다리에 힘이 풀린 현정은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흐느껴 울고는 정신을 차렸을 때 무릎을 덮은 보라색 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촌스러워서 눈에 띄었던 치마...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더듬던 현정은 헉, 신음을 삼켰다. 설마! 아까 그 아줌마와 몸이 바뀐 건가? 머릿속에 조금 전 영상이 리플레이 되었다.

 

 판교역에서 내려 정신없이 뛰다가 마주오던 아줌마와 어깨를 세게 부딪쳤다. 의외로 충격이 컸는지 잠깐 동안 눈앞이 흐려지며 현기증이 났지만, 간신히 중심을 잡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물론 미안하다고 사과할 시간도 얼굴을 마주할 시간도 없었다. 다만 보라색 치마만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틀림없다. 그 아줌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아줌마와 몸이 바뀐 것이다.

 

 어떡하지. 머릿속에 누가 엉킨 털실꾸러미를 쑤셔 넣은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안 돼. 생각하자.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보자.

 

 현정은 정신을 추스르고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이미 현정의 프라다백은 후줄근한 가죽가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떻게 이걸 몰랐지. 현기증 탓이다. 아까 그 아줌마와 부딪쳤을 때 지독한 현기증 때문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으니까. 현정은 가방을 열어 소지품을 확인했다. 가방 안에는 가장자리가 헤진 갈색 반지갑과 색이 바란 꽃무늬 손수건, 동네 화장품 가게에서 받았을 법한 작은 파우치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폴더폰. 요즘 같은 시대에 폴더폰이라니, 내 몸을 가져간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현정은 기가 막혔지만 전화를 집어 폴더를 열고 자신의 번호를 눌렀다. 다행스럽게도 비밀번호는 걸려있지 않았다.

 

 통화 연결음이 들렸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이나 걸어봐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는 전원이 꺼져있다는 안내음이 들려왔다. 현정은 더욱 불안해졌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을 그 여자는 아마도 아니 거의 확실히, 본인의 모습을 되찾고 싶지 않을 것이다. 현정은 지갑을 열었다. 카드 두 장과 현금 2만 6천원, 그리고 주민등록증이 들어있었다.

 1975년생 고윤전.

 75년생이면 90년생인 현정과 열다섯 살 차이였다. 마흔넷이라니, 아직 스물아홉인 현정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숫자였다. 주민등록증을 가방에 넣고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봤다. 여전히 전원이 꺼져있다는 안내멘트만 들릴 뿐이었다.

 

 일단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차분히 생각해 보자.

 

 절망감이 현정을 짓눌렀지만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회사 건물을 나와 마침 지나가던 빈 택시를 잡아탔다.

 

 “어디 가슈?”

 

 현정이 올라타자 택시기사가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역삼역이요.”

 

 현정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택시기사는 대답 대신 쯧, 혀를 차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현정은 좌석 시트에 등을 기댔다. 지금까지 세상은 현정에게 무조건적으로 친절했었다. 그런데 아줌마의 몸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순하디 순하던 세상은 현정에게 날카로운 바늘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숨이 막힐 것처럼 목구멍이 조여들었지만, 어떻게든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

 

 현정은 1층 경비 아저씨의 눈을 피해 오피스텔로 올라갔다. 익숙한 비밀번호를 낯선 손가락으로 누르고 현관에 들어가자마자 무너져 내렸다. 퉁퉁 부은 하마 같은 발에서 4센티미터 굽의 낡은 구두를 벗겨냈다. 뭉툭한 발을 보자 또다시 울컥, 울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단서를 찾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현정은 컴퓨터 앞으로 뛰어가 전원을 켰다. 컴퓨터가 켜지는 잠깐 동안에도 조바심이 나서 견디기 힘들었다. 현정은 컴퓨터가 켜지자마자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몸이 바’까지 입력했는데 자동 완성 검색어가 쭉 떴다. 몸이 바뀌었어요, 몸이 바뀌는 현상, 몸이 바뀐 사람 등등.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현정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이트에는 ‘몸이 바뀐 사람들 - 제 몸을 찾아주세요’라는 긴급 카페가 개설되어 있었다. 현정은 즉시 카페에 가입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구구절절 사연을 올려놔서 그런지 공지사항에는 작성양식이 정해져 있었다.

 

 현정은 작성양식을 따라 간단명료하게 내용을 작성해 나갔다.

 

 제목: 오늘 오전 판교역에서 20대 여성과 바뀐 40대 여성을 찾습니다.

 일시: 201X년 9월 25일 오전 8시 40분경

 장소: 판교역 승하차장

 상황: 아침 출근길에 40대 여성과 부딪힌 후 회사에 출근하고 나서야 몸이 바뀐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꼭 좀 연락 주세요.

 연락처: 010-3724-0726

 

 무심코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었던 현정은 아차 싶은 마음에 폴더폰을 꺼내 기기정보를 확인했다. 010-7319-5838. 현정은 자신의 번호를 삭제하고 그 여자의 번호를 천천히 입력했다.

 

 이제 마지막 사진 첨부만 남았다. 현정은 책상 서랍에 두었던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상반신을 셀카로 찍은 후 자신의 원래 얼굴과 함께 첨부해 올렸다.

 

 과연 이 몸의 주인에게서 연락이 올까.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품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몸에서 땀 냄새와 섞인 싸구려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구역질이 났다. 냄새를 씻어내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자신의 몸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현정은 샤워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았다.

 

작가의 말
 

 영혼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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