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어떻게 찾을까. 어깨와 뒷목에 미지근한 물줄기를 맞으며 생각에 골몰하던 현정의 머리에 아까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이 떠올랐다. 현정은 거품을 다 헹궈내지도 않은 채 욕실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윤전의 가방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주소와 주민등록증 발급일자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2014. 11. 8. 4년 전이니 이사를 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주소지로 찾아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현정은 남아있는 물기를 닦으며 옷장을 열었다. 옷장 문 안쪽에 달린 기다란 거울이 현정을 비추고 있었지만 억지로 외면하며 가장 사이즈가 큰 트레이닝 바지와 맨투맨 티셔츠, 검정색 야구 모자를 꺼냈다.
평소에는 헐렁했던 맨투맨 티셔츠가 꽉 꼈지만 애써 무시하며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현관으로 가서 운동화를 신었다. 발 사이즈는 비슷한 것 같은데 발등의 살 때문인지 운동화가 잘 들어가지 않았다.
끈을 조절하려 허리를 숙이는데 뱃살이 불편하게 겹쳐졌다. 역시 낯설기만 한 느낌이었지만,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신경쓰지 말자고 마음을 다독이며 빠른 손놀림으로 운동화 끈은 느슨하게 풀었다. 이마에서 진땀이 배어나왔다.
*
지은지 삼십년은 넘어보이는 오래된 빌라 앞에서 현정은 윤전의 주민등록증을 보며 주소가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리고 용기 내어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안에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정과 바뀐 윤전이라면 현정의 목소리로 대답할 텐데. 실망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가, 가스검침 왔습니다.”
현정은 긴장하며 대답했다. 가스검침 며칠 전에 왔었는데,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현관문을 열고나오며 말했다. 현정은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현정을 쳐다봤다. 거실 벽에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사진 속에는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군인처럼 짧게 머리를 깎은 쌍둥이 아들 두 명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윤전은 이사를 간 것 같았다. 두피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현정은 모자를 벗어들고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가스검침기를 놓고 왔네요.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뒤돌아 나오는데 아주머니의 한마디가 뒤통수를 때렸다.
“혹시, 여기 혼자 살던 아가씨... 맞지?”
“아닌데요.”
현정은 재빨리 운동화를 신었다.
“에이, 맞는 데 뭘. 이렇게 개성있는 얼굴을 어디서 또 본다고, 내가 아가씨 얼굴을 몰라?”
“아니에요.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아요.”
현정이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왔다. 개성 있는 얼굴이라고 하며 묘하게 비틀어지던 아주머니의 입술... 고윤전, 이 얼굴로 세상을 산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나 같아도 숨어버리고 싶겠지.
윤전은 필사적으로 숨으려 할 것이다. 현정으로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이제 어디에서 윤전을 찾아야 하나.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걸었다. 막막해서 울고 싶었지만 턱을 바짝 당기고 울음을 참았다. 우는 것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칫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지만, 지친 몸만큼은 정신력으로 다스릴 수가 없었다. 세포 하나하나에 납으로 된 추를 매단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이렇게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 현정은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오피스텔로 향했다.
집에 돌아온 현정은 땀에 젖은 티셔츠를 벗었다. 몸에서 시큼한 땀 냄새가 났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몸을 찾을 수 없게 된다면 이런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걸까. 현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욕실에 들어갔다. 샤워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현정은 샤워기의 온도를 뜨겁게 맞췄다. 아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 껍질이 벗겨지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헛된 생각을 하며.
샤워를 하고 나온 현정은 머리를 말릴 틈도 없이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몸이 바뀐 사람들에 대해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굳이 검색할 필요도 없었다. 포털은 이미 몸이 바뀐 사람들에 대한 뉴스로 넘쳐나고 있었다.
현정은 ‘출근길에 바뀐 몸, 되찾았어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클릭했다. 활짝 웃는 두 명의 여자 사진 아래 짧은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오늘 오전 8시경 을지로입구역에서 부딪혀 몸이 바뀌었던 이선경씨(41세)와 조희영씨(25세)가 몸을 되찾은 후 미소 짓고 있다.]
사진 기사라 그런지 다른 설명은 없었다. 현정은 스크롤을 내려 하단의 관련기사를 클릭했다. ‘이선경씨와 조희경씨는 어떻게 몸을 되찾았나’라는 제목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역 계단을 서둘러 내려가던 선경씨는 마주오던 희영씨와 어깨를 부딪쳤다. 아프다고 생각될 정도의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몇 초간 현기증을 느낀 선경씨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눈 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선경씨 자신이 서 있었던 것. 놀란 것은 희영씨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몸이 바뀐 초유의 사태에 어쩔 줄 모르다가 가까운 A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두 사람 말고도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의료진들도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에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 봤지만,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 다른 병원들과 연락해봐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애당초 두 사람의 몸이 바뀐 것을 질병이라고 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흘렀고, 기적은 점심시간 이후에 일어났다. 선경씨가 화장실에 갔을 때 만난 한 여성이 ‘몸을 되찾고 싶으면 두 사람이 다시 몸을 부딪혀보라. 그러면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게 된다’ 라고 말한 것이다. 선경씨가 되물을 틈도 없이 여자는 사라져버렸고, 병실로 돌아온 선경씨는 속는 셈 치고 희영씨와 몸을 부딪쳐봤다. 그러자 처음 충돌했을 때처럼 약간의 현기증이 일었고 거짓말처럼 자신의 몸으로 돌아오 있었다. A병원 의료진들은 즉각 질병관리본부에 연락했고, 동일한 증상을 겪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정상적으로 자신의 몸을 되찾을 수 있었다. 현재 선경씨와 희영씨는 뇌파 검사 등 제반 검사를 받고 이상 없음으로 확인,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선경씨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중학생인 딸아이를 생각하며 버텼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됨으로써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한편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선경씨에게 몸을 되찾을 수 있도록 조언해줬다는 여자를 찾기 위해 A병원 근방 CCTV 자료를 확보하여 분석중이다.
현정은 기사를 읽자마자 빠르게 다시 한 번 읽어 내려갔다. 기사대로라면 희망이 있었다. 윤전을 찾아내어 다시 부딪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녀를 어디에서 찾느냐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윤전에게는 현정의 여권이 없으니까 당장은 해외로 도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까.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으니 자신의 몸을 찾아달라고 해도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가까운 파출소를 검색하려던 현정의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멈췄다. 윤전과 바뀌었다고 주장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할 텐데.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내가 나임을 증명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가족들의 진술을 들어야 할 확률이 높고, 현정의 유일한 가족인 엄마를 찾아갈 것이다. 안 될 말이었다. 엄마는 암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약간의 스트레스도 큰 타격이 될 텐데, 몸이 바뀐 현정의 모습을 봤다가는...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소녀같이 심성이 여린 엄마는 삼년 전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더욱 현정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을 서성였다. 그런데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 이후에 아무 것도 먹은 게 없었다. 아니 이 사람은 뭔가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배가 한 번 더 요동쳤다. 라면이라도 끓여먹을까 했지만 가스 불을 켤 의욕조차 나지 않았다.
중국집에 배달을 시키려고 싱크대 서랍에 넣어두었던 메뉴판을 꺼냈다. 뭘 먹을까 잠시 고민하며 메뉴판을 훑어보던 현정은 요일메뉴의 마파두부밥 사진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는 마파두부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혹시 윤전이 좋아하는 음식일까?
이러다가 윤전의 몸이 현정의 영혼까지 지배하게 되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현정은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평소에 자주 시켜먹던 볶음밥을 주문했다. 그리고 볶음밥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다시 자신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봤다. 여전히 전원이 꺼져있다는 안내음이 들렸다.
역시 자신의 몸을 찾을 생각이 없는 거야.
현정은 미간을 좁히며 통화종료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엄마, 라고 입 밖으로 외쳤다. 엄마가 전화를 걸었다가 전원이 꺼져있다고 하면 걱정할 게 뻔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던 현정은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목소리가 확연히 다르지만 감기에 걸렸다고 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예민한 엄마라도 스피커폰으로 해놓고 멀리 떨어져서 얘기하면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 여보... 세요?
모르는 번호에 엄마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 나 현정이야.”
현정은 코를 쥔 채 되도록 핸드폰에서 멀리 떨어져 얘기했다.
- 현정이? 우리 딸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 걸려서 그래.”
- 감기? 그러게 환절기에는 카디건 챙겨다니라니까. 병원은 다녀왔어?
“응. 점심시간에 다녀왔어.
- 그래, 약 잘 챙겨먹고.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거야. 엄마의 마음씀씀이에 현정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흐느낌이 새어나올까봐 이를 꽉 악물고 침을 삼켰다.
“엄마 나 미안한데 오늘 저녁에 엄마한테 못 가겠다. 야근도 해야 하고, 엄마 면역력 떨어져서 조심해야 하잖아. 감기 옮으면 어떡해.”
- 알았어. 엄마는 최 여사가 잘 돌봐줘서 괜찮아.
“참, 근데 나 핸드폰 잃어버렸어.”
- 핸드폰? 어쩌다 그랬어? 어쩐지 전화기 꺼져있더라니. 하여간 우리 딸 덜렁이야. 어디서 잃어버렸는데?
“응. 나중에 얘기해줄게. 안 그래도 엄마 걱정할까봐 회사 사람 전화 빌려서 하는 거야.”
- 그래그래, 얼른 일해.
“근데 엄마, 왜 전화했었어? 무슨 일 있었어?”
- 아니야. 엄마 아무 일 없어. 그냥 딸 목소리 듣고 싶어서.
“응, 엄마. 밥 잘 먹고 있어. 또 연락할게.”
- 약 잘 챙겨먹고, 감기 빨리 나아. 보고 싶어, 이쁜 내 딸내미.
“알았어, 엄마. 끊을게.”
전화를 끊은 현정의 입에서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