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이 열리면 진우를, 아니 정확히 말해 진우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은영은 익호의 별장 앞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벨을 눌렀다. 현관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몇 초의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누르며 자기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은영은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쇼핑백을 들고 거실로 올라섰다.
“한 비서,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진우야, 보고 싶었어.
은영은 터져 나오는 말을 참기 위해 어금니를 악물었다. 6년 만에 보는 진우의 얼굴은 조금 그을린 걸 제외하고는 은영이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당장 달려가 그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그의 냄새를 맡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회장님 괜찮으신지 살피러 왔습니다.”
울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평소의 목소리 톤으로 익호에게 대답했다.
“응, 아주 좋아. 맘에 들어.”
진우의, 아니 익호의 욕망에 찬 시선이 은영의 가슴께에 꽂혔다. 진우의 몸, 익호의 영혼. 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누구일까.
이미 각오한 일이었지만 실제로 ‘그’를 마주하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내 앞의 남자가 누구든, 내가 선택한 일이야.
한 걸음, 두 걸음... 은영은 서두르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마침내 그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까지 갔을 때 은영은 그만 멈춰버렸다. 그 이상 가까이 다가가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그를 응시하고 있는데, 그가 긴 팔을 뻗어 은영의 허리를 단숨에 잡아챘다.
거칠고 일방적인 손길. 틀림없이 익호의 스타일이었다. 은영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눈앞의 남자는, 역시 진우가 아니라 익호였다.
한은영,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새삼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목구멍에 솜뭉치가 걸린 듯한 답답한 느낌을 누르며 그를 회장님,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은 진우의 것이 분명한데... 이 남자가 진짜 서진우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요하게 파고드는 익호의 손길을 느끼며 은영은 질끈 눈을 감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래서 6년 전의 그날로 돌아간다면 나는 진우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몇 번이나 자문해 봐도 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녀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금과 동일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블라우스를 벗긴 익호가 은영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의 전희는 목조르기였기에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대신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건 노인일 때와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성대가 으스러질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부릅떴다. 흐릿한 시야에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새긴 익호의 얼굴이 가득 찼다.
절대 진우가 아니야.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은영은 몸에서 힘을 뺐다. 그제야 익호가 그녀의 목을 놔주었다. 물에 빠졌던 사람처럼 기침을 해대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이번에는 익호의 손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은영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익호와 관계할 때마다 그랬듯이 자신을 세뇌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에 없다. 나는 여기에 없다. 나는 여기에...
*
진우와는 법학과 동기였다. 과 수석으로 입학한 진우는 남자애들에게는 워너비였고, 여자애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키도 크고 잘생긴 진우를 동기들은 엄친아라고 생각했다. 성격까지 서글서글한 그를 보고 남자애들은 혼자 다 가지면 어쩌느냐며 성토를 했다. 그러나 진우에게는 엄친아라고 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었다. 진우는 가난한 고아였다. 그럼에도 진우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여자애들은 진우 앞에서 어필하기 위해 은근히 집안 자랑을 하기도 했다. 은영도 진우에게 관심이 있긴 했지만, 다른 여자애들처럼 대놓고 들이대기는 싫었다. 사실 다른 여자애들처럼 내세울 자랑거리도 없었다. 그래서 멀리 지켜보기만 했다.
진우와 친해지게 된 건 같은 동아리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영화와 음악을 좋아했던 둘은 영화음악 동아리에 가입했다. 자연스레 붙어 다니는 시간이 늘어났다. 집도 가까웠다. J대 법학과에서 서울 변두리 지역인 P동에 사는 사람은 진우와 은영밖에 없었다. 그렇게 같이 지내다 보니 언제부턴가 친구이상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날, 밤늦게까지 법대건물 뒤편 계단에 앉아 캔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사귀게 되었다.
진우는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과외 아르바이트를 세 개나 했다. 대학원에 갈 돈을 모으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일주일에 세 번씩은 친구들과 농구를 했다. 진우의 일상은 누구보다 바쁘게 돌아갔고, 은영은 자신이 그 바쁜 일상에 속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때만 해도 진우가 은영만큼이나, 아니 은영보다 더 가난하다는 사실은 둘 사이를 가로막지 못했다. 은영의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4학년이 되고부터였다.
취업, 결혼 등 미래를 생각하자 진우를 선택해도 괜찮을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진우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회라는 정글은 능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무런 배경을 갖지 못한 진우였다. 일이 잘 풀려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전까지는 바닥에서 온갖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진우야, 미안해. 우리 그만 만나자.”
졸업을 앞둔 겨울날이었다. 학교 앞 카페에서 은영은 진우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자신이 없어.”
“뭐? 무슨 자신이 없다는 건데?”
진우는 은영이 하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가난을 감당할 자신.”
그렇게 말을 던져놓고 은영은 카페에서 나왔다. 진우가 쫓아 나와 은영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지 마. 우리 같이 노력하면 가난 따위 극복할 수 있어.”
진우는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영의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은영은 좀 더 유리한 출발선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은영은 진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의 손목에 감긴 그의 손가락을 더러운 걸 떼어내듯 하나씩 떼어냈다.
그때 진우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니, 어차피 지난 일이야.
은영은 몇 번이고 진우와 헤어지던 순간으로 돌아갔고, 그때마다 헛된 가정을 몰아내기 위해 피가 맺힐 때까지 아랫입술을 깨물곤 했다.
학교를 졸업한 은영은 미르그룹 비서실에 입사했다. 미르그룹 비서실은 대기업이니 당연히 규모가 클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최소인원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선배들 말로는 김익호 회장의 성격이 실리적이라 의전이나 쓸데없는 격식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원이 적은만큼 일은 바쁘게 돌아갔고 신입사원인 은영은 선배들이 시키는 일만 하기에도 버거웠다. 비서실이라고 해도 회장과 직접적으로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입사 2년차 되던 해, 사수로 있던 강비서가 출산휴가에 들어가면서 은영은 익호의 스케줄 관리와 차 심부름을 도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익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익호에게서 성공한 사람 특유의 날카로운 아우라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주일쯤 지나자 그것도 익숙해져서 차츰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
“한 비서, 녹차 좀 부탁해.”
익호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은영은 티포트에 정성껏 우려낸 녹차를 쟁반에 받쳐 들고 회장실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있는 익호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그녀의 다리를 훑고 지나갔다.
“한 비서, 남자친구는 있나?”
은영이 테이블 위에 찻잔을 놓느라 몸을 굽혔을 때 익호가 얼굴을 가까이 하며 물었다. 그의 입에서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아니요... 없습니다.”
긴장한 은영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다행이군.”
익호가 말했다. 은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난 내걸 누구와 나눠 갖긴 싫거든.”
익호가 소파에서 일어나 은영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를 눌렀다. 익호의 완력에 눌렸다기보다 기세에 눌려 은영은 그의 앞에 꿇어앉았다. 그의 아랫도리가 은영의 눈높이에 있었다. 익호는 몸을 가늘게 떠는 은영을 내려다보며 바지 지퍼를 내렸다.
그날부터 은영은 익호의 소유물이 되었다.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익호가 원하는 것을 주고, 익호는 그 대가로 은영이 원하는 것을 주었다. 아파트, 외제차, 명품 백... 은영은 그토록 저주하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풍족한 생활에 젖어드는 것은 무척이나 쉬웠다. 한 달쯤 지나자 가난 따위는 애당초 그녀와 상관없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익호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그의 욕망은 평범한 남자들의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익호는 그녀의 팔목을 에르메스 넥타이로 묶고, 구찌 벨트를 풀어 매질을 했다. 은영의 하얀 등과 배에는 얼룩말 무늬처럼 검붉은 흉터가 새겨졌다.
익호는 은영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벨트를 휘둘렀고, 은영은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걸 볼 때마다 이런 생활은 그만둬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아파트에 혼자 남아 트렁크에 짐을 챙길라치면, 옷장의 옷을 반도 채워 넣기 전에 그런 결심은 사그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녀는 익호가 제공해주는 안락함을 포기할 용기가 없었다. 풍족한 생활을 포기하고 가난하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죽을 용기도 없었다. 그런 은영을 살아있을 수 있게 하는 건 진우와의 추억뿐이었다. 매일 밤 은영은 익호가 마련해준 아파트에서 익호가 사준 침대에 누워 진우의 따뜻한 미소를 떠올렸다.
세 달 전, 익호가 췌장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은영은 안도했다. 익호의 개로 5년을 살았다. 익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척도 없으니 은영에게 얼마간의 유산을 남겨줄 거라 기대했다. 그에게 유산을 받으면 진우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은영이 바라던 대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유산은 전액 비산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유언장을 작성한 익호가 은영에게 말했다.
“훌륭하신 결정입니다.”
그녀는 얼굴이 굳어지는 걸 간신히 참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 노인네를 죽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어. 적어도 유언장에 내 이름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살려둬야 해.
그날 이후, 은영은 익호를 살리기 위한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한방치료, 민간요법, 명상, 자연치유 등 알아보지 않은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익호는 어떤 말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절대 포기할 수 없는데.
그러나 그녀에게는 상황을 역전시킬 패가 없었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기분이 어떤 건지 실감하고 있을 때, ‘그 전화’가 왔다.
- 회장님을 살리고 싶어요?
음성변조를 한 듯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였다. 익호의 건강 상태는 철저히 대외비로 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주워들은 걸까.
-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은영이 전화를 끊으려는데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말했다.
- 살린다는 표현이 맘에 안 들어요? 그럼 이건 어때요? 회장님의 몸을 새 걸로 바꿔치기 해줄게요.
다음날, 은영은 목소리가 말해준 주소로 찾아갔다. ‘사무실’은 재개발 구역 가운데서도 눈에 띌 정도로 허름한 건물이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계단을 올라가니 2층에 국제경제연구소라는 패널이 붙은 회색 문이 있었다. 은영은 마른 침을 삼키고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자였다. 몸에 붙는 빨간 니트 원피스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한 여자는 30대로도 50대로도 보였다. 사무실은 살풍경 그 자체였다. 아무 것도 없는 빈 방에는 여자가 앉은 철제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응접 테이블이나 소파도 없었다. 장식품이라고는 여자의 뒤쪽 벽에 걸린 기괴하게 뒤틀린 나무그림뿐이었다.
“찾아오기 힘들진 않으셨죠? 커피, 드실래요?”
은영은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여자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가방에서 진우의 사진과 은영이 알고 있는 정보 - 이름, 생년월일, 6년 전 살고 있던 주소 -를 적은 메모와 계약금조로 가져온 5천만 원이 든 봉투를 꺼냈다.
“아, 타겟을 정해오신다고 했었죠?”
“네, 이 사람과 바꿔주세요.”
은영이 진우의 사진과 메모를 내밀었다. 여자가 니트 원피스와 똑같은 색의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손으로 사진과 봉투를 받아들였다.
“의뢰인이 타겟을 정할 경우 위험부담이 커져서요. 지정 할증료에 대해서는 어제 통화할 때 말씀드렸죠?”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일만 제대로 처리해주신다면.”
“오, 잘생겼네.”
여자가 사진을 보고는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입금 후에 하셔야지.”
“회장님께 보고 드리고 승낙하시면 바로 입금하겠습니다.”
여자는 알았다는 의미로 턱을 당기고 책상서랍에서 담배케이스를 꺼냈다. 그리고는 가느다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의 불을 댕기는 여자는 더 이상 은영에게 흥미가 없어보였다.
은영은 황급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익호의 별장으로 차를 몰았다. 몸이 쉴 새 없이 떨리는 바람에 가는 동안 두 번이나 사고를 낼 뻔했다.
전날 밤 여자의 전화를 받고 난 은영은 말할 수 없는 흥분에 휩싸였다. 여자가 말해준 내용은 민간요법 따위로 익호의 생명을 몇 개월 연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익호는 치료를 거부하는 상황이었고, 만에 하나 조금 더 살게 된다고 해도 은영에게 유리하게 유언장을 써줄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하지만 익호의 몸을 젊은 사람과 바꿀 수 있다면, 그것도 진우와 바꿀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호가 제공하는 안락함을 누리면서 진우의 얼굴을 매일 같이 볼 수 있다면...
별장에 도착하자 신 여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는 익호가 조금 전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은영은 익호의 침실로 갔다. 넓은 방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침대 하나. 익호는 금방이라도 숨이 꺼질 사람처럼 병약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은영을 지배하고 함부로 짓밟던 독사가 아닌, 병마에 시달리는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은영은 침대로 다가가 말없이 그를 지켜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누워있을 진우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한 비서, 왜 왔나.”
언제부터 깨어있었는지 익호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회장님, 아직 유언장은 필요 없으실 것 같습니다.”
은영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만들며 말했다. 그러자 익호가 마른눈곱이 붙어있는 눈을 치켜떴다.
“뭐?”
“회장님께 젊음을 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거 참 말이라도 고맙군.”
흐흐흐, 익호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는 금세 날카로운 눈빛으로 은영을 노려봤다.
“한 비서, 내가 부르기 전에는 여기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소름끼치도록 차가웠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급한 일? 이런 시시한 농담이?”
“농담이 아닙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믿어주셔야 합니다.”
“당장 꺼져.”
익호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은영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혹시 영혼치기라고 들어보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