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 쓰러져 신음하던 진우는 부러질 것처럼 가느다란 팔목으로 바닥을 짚고 간신히 일어났다. 목구멍이 바싹 말라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물, 물을 마셔야 해.
골목을 지나기만 하면 편의점이 있었다. 진우는 정신력으로 한발 한발 나아갔다. 앞으로 발을 내디디다가 무릎에 힘이 빠지는 바람에 넘어질 뻔했지만 겨우 중심을 잡고 일어났다. 15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가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간신히 편의점 앞에 도착했지만 유리문을 미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진우는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갔다. 아르바이트생이 바코드를 찍었다. 850원입니다. 돈을 내려고 주머니를 뒤지는데 지갑이 없었다. 지갑은커녕 동전하나 나오지 않았다. 놈들이 노인의 옷에 돈을 넣어두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진우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할 기운도 없었다.
“저 목이 말라죽을 거 같은데.... 지갑을 안 갖고 나와서... 혹시 여기 수돗물이라도 마실 데가 없을까요?”
아르바이트생이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진우를 쳐다보더니 곧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진우는 마른 입술을 갈라진 혀로 핥으며 밖으로 나왔다. 일단은 힘들어도 집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가다 쉬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느라 평소에는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가는데 족히 30분은 걸린 것 같았다.
집에 들어가면 신발도 벗지 않고 개수대로 직행해 바스라지기 직전의 목을 축일 생각이었다. 차가운 물 한 방울만을 생각하며 걸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길가에 멈춰서 숨을 몰아쉬는 진우를 딱하다는 얼굴로 봤지만, 막상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반지하 원룸 건물에 간신히 도착했을 떄 건물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건 검은 세단이었다. 진우를 보자 차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나왔다. 본능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남자들에게 어꺠를 잡힌 후였다.
한 남자가 진우의 머리에 무언가를 덮어씌웠다.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입에 재갈이 물려졌다. 거친 천이 입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양손은 뒤로 결박당한 채 수갑이 채워졌다. 그들은 진우를 차안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야, 야, 우리 회장님 다치실라, 조심해라.”
남자들이 진우를 조롱하며 낄낄거렸다. 회장님, 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역시 허름한 옷차림은 연극일 뿐이었구나.
“회장님, 한잠 푹 주무시고 일어나시죠.”
다음 순간 진우의 목덜미에 차가운 주사바늘이 꽂혔다. 의식이 희미해지며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