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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치기
작가 : 골드보이
작품등록일 : 201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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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익호
작성일 : 18-11-19     조회 : 276     추천 : 1     분량 : 2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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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무님, 어디로 모실까요?”

 

 은영이 운전대를 잡으며 물었다.

 

 “별장으로 가지.”

 

 내곡동 저택에는 일하는 사람도 많고 아무래도 주변에 보는 눈이 많으니,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별장에 머무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은영이 차를 출발시켰다. 익호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그녀의 옆모습을 보았다.

 

 아침에 왔을 때부터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조금 전 병원에서 은영의 반응으로 익호의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병원에서 은영을 안았을 떄,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왜 그러냐는 익호의 질문에 은영은 그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그건 쾌락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통은 더더욱 아니었다. 은영은 익호의 매질에도 웬만해서는 울지 않는 독한 아이였다. 그 눈물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회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빛, 오늘 은영의 눈은 익호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훔쳐보듯 몰래, 그리고 간절하게 누군가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익호의 본능이 경고를 보내왔다. 은영이 그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다. 틀림없었다. 이 일의 뒤편에 익호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이다.

 

 은영은 이 몸의 주인, 서진우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그녀가 영혼치기에게서 받았다는 서진우의 프로필에서 은영과 점접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력 따위야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익호는 윤 실장에게 서진우에 대해 좀 더 알아보라고 지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비서,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받았다고 했지?”

 

 익호는 은영을 떠보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쪽이란 물론 영혼치기 중개인을 말하는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그럼 한 비서가 연락처를 갖고 있나?”

 “연락이 왔던 번호는 갖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통화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항상 연락처를 바꾼다고 해서요. 일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줄곧 그쪽으로부터 연락을 받기만 했습니다.”

 

 흠, 익호가 코로 숨을 내쉬었다. 하긴 익호는 영혼치기의 얼굴도 알지 못했다. 영혼치기라는 남자는 가면을 쓰고 익호의 별장에 찾아왔다. 영혼치기와 몸을 바꾼 몇 시간 동안 익호는 완전한 어둠속에 있었다.

 

 영혼치기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서진우의 몸을 가져다 준 영혼치기는 다시 가면을 쓰고 돌아갔다. 눈먼 암살자, 익호는 언젠가 읽었던 적이 있는 소설을 떠올렸다. 오래전에 읽은 터라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실명한 아이들을 비밀스러운 살인을 위한 암살자로 기른다는 대목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영혼치기들은 철저하게 암흑 속에서 행동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까지 수많은 의뢰를 받아 처리하면서도 그들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비밀유지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오직 돈뿐입니다.”

 

 은영이 룸미러로 뒷자리의 익호를 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익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룸미러로 비치는 은영의 눈이 불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래, 들어가 봐.”

 

 별장에 도착했을 때, 익호가 말했다.

 

 “저녁 여덟시에 S백화점 사람들을 보내겠습니다.”

 

 은영이 페라리의 키를 두 손으로 건네며 말했다. 백화점에서 옷가지와 구두 같은 것들을 가져오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시급하지 않았다.

 

 “됐어, 내일 오전에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은영이 차에서 내리려 했다.

 

 “참, 한 비서.”

 “네, 전무님.”

 “서진우 말이야. 그쪽에서 정해왔다고 했나?”

 “네.”

 

 은영은 짧고 건조하게 대답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눈동자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정말 K대생이 맞나?”

 “네?”

 “난 왜 서진우가 J대를 나왔을 것 같지? 한 비서랑 잘 아는 놈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아, 아닙니다.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한 비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은영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지만 얼굴은 이미 푸른빛을 띌 정도로 창백해졌다. 익호는 미간을 좁힌 채 말을 이었다.

 

 “주인이 주는 거 이외에 욕심을 내는 개. 그게 제일 싫어.”

 

 익호가 은영의 긴 머리채를 단숨에 움켜쥐었다. 윽, 은영이 신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익호는 그녀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끌어다댔다. 그리고는 그녀의 입술을 빨아들였다. 토마토 속살처럼 부드러운 아랫입술이 그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익호는 그 부드러운 점막을 앞니로 깨물었다. 은영이 마침내 신음을 참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익호가 그녀의 머리채를 던지듯 놓았다. 아랫입술에서 나온 새빨간 피가 하얀 턱으로 흘러내렸다.

 

 “어서 가 봐. 핸들에 피 떨어지기 전에.”

 

 페라리에서 내린 익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별장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은영의 차가 사라지는 것을 거실 통유리창으로 지켜보던 익호는 윤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전무님.

 “그놈 상태는 어떤가?”

 - 회장님께서는 여전히 혼수상태십니다.

 “그래? 그거 잘 됐군. 윤 실장이 좀 알아볼 일이 있어서 말이야.”

 - 네, 그럼 정 과장을 이쪽으로 불러 교대하고 전무님 계신 별장으로 가겠습니다.

 “얼마나 걸리겠나?”

 - 사십 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 바로 이쪽으로 오라고.”

 - 알겠습니다, 전무님.

 

 전화를 끊은 익호의 얼굴이 야차처럼 험악하게 찌그러졌다.

 

 한은영, 얌전한 개면 개답게 재롱만 떨어야지. 뭘 더 갖고 싶어서 욕심을 부린 게냐? 어차피 넌 원하는 걸 갖지 못하겠지만, 탐욕의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 주지.

 

 익호는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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