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복을 입은 아주머니, 현정의 엄마가 쓰러질 듯 다가와 가희가 누워있는 침대 가드를 움켜쥐었다.
“현정아, 이게 웬일이야. 감기라더니 이 꼴이 다 뭐야, 어?”
현정 엄마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뜻밖의 상황에 맞닥뜨린 가희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현정아, 우리 딸 어쩌다, 어쩌다 이렇게 많이 다친 거야? 응?”
현정 엄마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움푹 들어간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머니, 진정하시고 환자분에게서 조금만 떨어져 주세요. 병실로 이동해야 해서요.”
간호사가 난감한 얼굴로 현정 엄마에게 말했다.
“간호사님, 우리 딸 얼마나 다친 건가요?”
현정 엄마는 그제야 간호사가 거기 있다는 걸 알게 된 사람처럼 놀란 얼굴로 물었다.
“따님 수술 잘 끝나셨구요. 조금 전에 마취 깨서 지금은 안정하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먼저 입원실로 모신 다음에 차분하게 말씀 나누시죠.”
간호사가 침대 가드를 꼭 쥔 현정 엄마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러자 현정 엄마가 순순히 손을 놓았다. 간호사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비스듬히 멈춰있던 침대를 밀었다. 옆에 있는 현정 엄마를 의식한 듯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까지와는 다르게 느린 속도로 밀고나갔다.
“어머님도 이 병원에 입원해 계신 거예요?”
간호사가 수액 걸이를 밀며 쫓아오는 현정 엄마에게 물었다.
“아, 제가 암환자라... 딸을 잘 돌봐주지도 못하는데... 이런 일이...”
현정 엄마는 손목에 묶어놓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너무 걱정 마세요. 따님은 곧 회복하실 테니까요. 그보다 어머님이야말로 건강하셔야죠.”
간호사가 다정한 얼굴로 현정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입원실은 3인실이었다. 가희는 창가 쪽 침대로 옮겨졌다. 침대 옆 사물함 위에는 사고 당시 입고 있던 원피스가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고, 그 위에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토끼가 그려진 빨간 케이스, 다행히 가희 자신의 핸드폰이었다.
“따님도 몸조리 잘 하시구요.”
간호사가 인사를 건네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현정 엄마는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침대 머리맡에 서 있었다.
“어머니, 힘드실 텐데 좀 앉으세요.”
가희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가희의 말에 현정 엄마가 보호자용 침대에 걸터앉았다. 미간에 근심과 통증이 뒤섞인 듯한 깊은 주름이 패었다.
가희는 자신이 현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제 말을... 놀라지 말고 들어주세요. 저는 현정씨가 아니에요.”
현정 엄마가 아직 물기가 어린 눈으로 가희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가희도 그녀를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어제 뉴스 보셨어요? 출근 시간에 부딪힌 사람들이 서로 몸이 바뀐 일이 있었잖아요. 현정 언니한테도 그런 일이 생겼는데요.”
콜록콜록, 가희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쉿, 현정 엄마가 가희를 달래며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아가씨, 금방 마취 깨고 나왔다면서요. 힘들 텐데 가만있어요. 나도 뭐가 뭔지 혼란스럽긴 하지만... 알아요. 그쪽이 내 딸이 아니라는 거.”
현정 엄마가 입술을 떨면서 말을 하고는 입을 꼭 다물었다. 여전히 턱이 가늘게 떨렸지만, 야무진 입매만큼은 현정과 꼭 닮아있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엄마니까, 엄마는 딸 표정만, 나를 쳐다보는 눈빛만 봐도 내 새낀지 아닌지 알 수 있으니까요.”
“어머니...”
“그리고 아가씨가 누군지도 알 것 같아요. 아마 키가 우리 딸보다 한 뼘쯤 작고, 단발머리... 맞죠?”
“어, 어머니가 그걸 어떻게...”
“좀 전에 아가씨 몸에 들어간 내 딸이 찾아왔었거든요.”
현정을 처음 카페에서 만났을 때도, 참 영리하고 센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모전여전, 과연 그 어머니의 그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요. 저도 방금 전에 현정씨가 엘리베이터 타고 가는 뒷모습 봤어요. 부르려고 하다가 놓쳤는데...”
“어쩐지, 옆집 사는 동생이라면서 찾아왔는데 느낌이 영 이상하더라니.”
현정 엄마는 빨개진 눈에 맺힌 눈물을 손끝으로 연신 닦아내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머니, 현정씨 다른 데로 가기 전에 빨리 연락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사물함 위에 제 핸드폰 좀 주시겠어요?”
“핸드폰? 근데 이거 쓸 수 있으려나...”
현정 엄마가 들어 보인 핸드폰은 액정이 완전히 깨져있었다. 패널도 망가졌는지 전원이 켜졌는데도 검은 화면만 보일 뿐이었다.
“어머니, 핸드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럼요.”
현정 엄마가 환자복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주었다. 지금 현정은 윤전의 폴더폰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윤전의 번호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윤전의 몸에서 빠져나왔다고는 해도 한 번 들어갔던 몸의 기억은 대개 사흘 정도 남아있는데, 윤전의 기억은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가희는 하얀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윤전은... 어제의 사고로 결국 죽은 걸까.
리터너 일을 하면서 이런 일을 겪은 건 처음이었다. 아무리 당찬 가희라고 해도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가희는 떨리는 손으로 현정 엄마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죄송해요. 번호가 기억나지 않아서요.”
“번호요? 현정이한테 전화건다는 거죠? 우리 딸 번호는 01-”
“아뇨, 지금 현정씨가 갖고 있는 건 다른 사람 핸드폰이라서요.”
“다른 사람? 아, 지금 둘이 몸이 바뀐 거니까... 가만, 그럼 아가씨 핸드폰을 우리 딸이 갖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근데 이 핸드폰은 우리 딸 거가 아닌데?”
현정 엄마가 가희의 핸드폰을 앞뒤로 뒤집어보며 말했다. 그녀는 어제 아침에 가희와 현정이 서로 바뀌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랬다면 당연히 가희가 현정의 핸드폰을 갖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윤전과 바뀌는 바람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사실대로 말한다면 현정 엄마의 걱정이 더욱 커질 텐데... 가희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왜요? 무슨 문제가 있는 거예요?”
가희가 망설이는 걸 눈치 챈 현정 엄마가 금세 그늘진 얼굴로 물었다. 가희는 현정의 눈을 꼭 닮은 그녀의 눈동자에 대고 거짓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예민한 현정 엄마라면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가희는 그녀에게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그게...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요.”
“그래요. 사정이 있으니 어제 아침 출근길에 바뀐 사람들이 여태까지 제 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죠?”
“네, 어머니.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 이번에도 너무 놀라지 마시구요. 사실은... 어제 저랑 현정씨가 바뀐 게 아니라서요.”
“두 사람이 바뀐 게 아니라면...”
“네, 현정씨는 어제 출근하다가 고윤전이라는 사람과 몸이 바뀌게 됐어요. 그런데...”
현정 엄마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희는 어제 아침부터 현정이 겪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어제 아침, 현정은 출근길에 고윤전이라는 사람과 부딪혀 몸이 바뀌었다. 그런데 고윤전이 현정의 몸을 갖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가희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 몸을 돌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 현정은 지인의 소개로 가희와 만날 수 있었다. 현정의 몸을 되찾기 위해 가희와 (윤전의 몸을 하고 있던) 현정은 일부러 몸을 바꿨다. 가희는 어젯밤 윤전과 만났지만,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이렇게 되고 말았다. 오늘 저녁까지 몸을 찾아다주기로 했는데 연락이 없어 현정이 몹시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이건 아가씨 핸드폰이 맞죠?”
동요하지 않고 가희의 설명을 끝까지 들은 현정 엄마가 가희에게 물었다. 가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윤전과 부딪히던 장면을 떠올렸다.
트럭에 치임과 동시에 두 사람이 부딪히면서 몸이 바뀌어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현정의 핸드폰은 윤전의 유류품으로 처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윤전의 죽음을 생각하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지만, 현정 엄마 앞에서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네, 맞아요.”
“그럼 전화번호 불러 볼래요? 받을 수 있나 한 번 볼게요.”
“네?”
“나도 가희씨처럼 액정이 완전히 깨진 적이 있었는데, 전화를 받을 수는 있었거든요.”
아, 가희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불렀다. 현정 엄마가 전화를 걸자 가희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가희는 전화를 받아들었다.
“네, 어머니.”
“다행이네요. 전화를 받을 수는 있는 거네요.”
수화기를 통해, 그리고 머리맡에서 현정 엄마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 말아요. 우리 현정이한테 곧 연락이 올 거예요. 제 엄마 걱정돼서 병원까지 왔다갔는데, 오늘 저녁까지 몸을 찾아준다고 했으니 아마 조금 더 기다렸다 연락할 생각이겠죠. 우리 딸 덜렁거리기는 해도 똑똑한 아이니까, 곧 서로의 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현정 엄마의 눈가에 진주 같은 눈물이 맺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