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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치기
작가 : 골드보이
작품등록일 : 201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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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은영
작성일 : 18-12-09     조회 : 315     추천 : 1     분량 : 3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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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우가 탈출했다. 그 몸으로 어떻게 경비를 뚫고 나갈 수 있었는지... 아니, 그보다 어쩔 셈이지? 어차피 익호의 몸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긴 진우가 그 몸으로 살아가기 위해 기를 쓰고 탈출할 사람은 아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몸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진우의 상황은 익호보다 나을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진우는 익호의 별장이 어딘지도 모를 텐데!

 

 은영은 진우가 가진 카드가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지금 진우가 가진 카드라면 경찰에 신고하고 언론에 김익호 회장과 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진우에게는 김익호 회장이 살아있다고, 자신의 몸을 빼앗아갔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없다. 영혼치기가 몸을 배달할 때 화학약품으로 지문까지 녹여버렸기 때문이다. DNA 검사를 하면 밝혀질까? 경찰이 부랑자처럼 보이는 노인의 말을 믿고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앞장서줄까?

 

 진우에게 전화를 걸어 익호의 별장을 알려줄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진우는 핸드폰을 갖고 있지 않았다. 지금 병원을 나간 진우는 어디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산란한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서둘러 익호의 별장으로 가기 위해 속도를 내는데, 길가에서 뭔가 휙 뛰어들었다.

 

 퉁, 범퍼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은영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들짐승인가?

 한동안 핸들을 꽉 쥔 채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겨우 용기를 내 차에서 내렸다. 얼룩무늬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도로 한 가운데 젖은 수건처럼 축 처져있었다.

 가엽게도... 죽은 걸까.

 은영은 가까이로 가 몸을 숙였다. 아직 죽지 않은 고양이는 가느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노란 눈으로 은영을 쳐다봤다.

 어쩌지? 몹시 고통스러울 텐데...

 이럴 때는 차라리 죽이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고양이를 죽일 자신이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정신을 추슬렀다. 아직 살아있는데 그냥 두면 다른 차에 치어죽을 것 같았다. 피가 나는 곳도 없으니 길가에 두고 가면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은영이 손을 뻗어 고양이를 안아들으려는데 왜웅, 하고 쇳소리와 비슷한 울음소리 났다. 곧바로 손등에서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고양이가 은영의 손등을 할퀸 것이다. 은영을 할퀸 발톱을 혀로 핥은 고양이는 유령처럼 슬며시 일어났다. 그리고 뒷발을 절뚝거리며 길을 건너가다가는 한 순간 뒤를 돌아 은영을 노려보았다.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엔 너무나 섬뜩한 눈길이었다. 은영은 한숨을 내쉬며 운전석으로 돌아가 엑셀에 발을 올렸다.

 

 별장에 도착한 은영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익호의 반응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익호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그런데 진우가 도망가다니 지금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익호가 진우를 어딘가에 가둬두자고 했을 때, 병원에 입원시키자고 했던 건 은영이었다. 안 그래도 만만한 화풀이 대상인 은영이었다. 지금 들어가면 그녀를 죽일 듯이 달려들 게 뻔했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익호의 손에 죽게 된다고 해도 그건 모두 은영이 자초했다고 할 수 있다. 은영은 떨리는 손으로 도어 벨을 눌렀다.

 

 문이 열렸고,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있는 익호가 보였다. 엄지로 턱을 받치고 코앞에 손날을 세우고 있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눈빛만으로도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실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 장식용 개조각상이 완전히 부서져 있었고, 테이블 위의 화병이니, 과일바구니니 하는 것들이 모조리 떨어져 바닥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다.

 

 “회장님...”

 

 익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은영에게 다가왔다. 의외로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앞에 서더니, 주먹을 쥔 손으로 은영의 얼굴을 때렸다. 힘이 어찌나 강한지, 그대로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오른쪽 턱이 부서지는 것처럼 아팠다.

 

 “나쁜 년.”

 

 익호가 쓰러진 은영의 명치를 발로 세게 찼다. 컥, 숨이 막혀와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바닥에 있던 유리 조각이 종아리에 박혀 새빨간 피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회장님,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제발, 잘못했어요.”

 

 은영의 입에서 흐느낌과 동시에 용서를 구하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한 비서가 뭘 잘못했는데?”

 

 은영은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을 저지른 대상은 당신이 아니야. 나는 서진우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지.

 

 익호가 몸을 굽히더니 팔을 뻗어 은영의 머리채를 틀어쥐었다. 은영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새어나왔다.

 

 “니가 뭘 잘못했는지, 니 년 입으로 말하는 게 낫지 않겠어?”

 “자, 잘못했어요. 서진우를 병원에 두자고 해서... 저는 그게 더 좋을 거라고-”

 “어디서 얕은꾀를 부려!”

 

 번쩍, 눈에 불꽃이 튀었다. 익호의 손이 은영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너, 서진우랑 알던 사이잖아? 안 그래?”

 “아니에요, 아니에요. 회장님!”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어. 윤 실장이 벌써 다 알아봤거든.”

 

 헉, 은영이 숨을 삼켰다. 역시 진우와 나 사이를 의심하고 있었어. 속일 수 있을 거라고, 몸이 바뀌면 경황이 없을 테니 속을 거라고,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야.

 

 절망을 느낄 틈도 없이 익호의 주먹이 얼굴에 와 박혔다. 입안에 격통이 느껴지더니 딱딱한 돌덩이가 입에서 튀어나갔다. 돌덩이가 아니라 자신의 이빨이었다. 동시에 은영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학교 다닐 때 그 새끼랑 꽤나 놀아났던데, 왜,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나? 그래서 날 이용하려고 했어? 니가 감히!”

 “아니에요, 회장님. 저는 그저 회장님을 위해, 회장님께 검증된 건강한 몸을 드리고 싶어서...”

 “검증? 더러운 년.”

 

 퉤, 익호가 은영의 얼굴 위로 미끈한 침을 뱉었다. 곧이어 익호의 발이 가슴을 밀었다. 은영의 몸이 지푸라기 인형처럼 바닥에 눕자 익호가 발로 그녀의 가슴을 지그시 밟았다. 갈비뼈가 바스러질 것 같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져갔다.

 

 *

 

 눈을 떴다. 머리가 욱신거렸다. 입안에서는 피 맛이 났고, 부러진 치아를 비롯해 모든 치아가 흔들거렸다. 유리조각이 박힌 다리도 고양이가 할퀸 손등도 떨어져나갈 듯 욱신거렸다.

 

 공기 중에 떠도는 희미한 곰팡이 냄새, 지하실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의자에 묶인 상태라는 걸 아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죽이지 않고 이렇게 묶어놓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김익호 회장은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주저하지 않고 폐기처분시킬 인간이다. 이렇게 된 이상, 죽을 각오는 하고 있다.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아등바등 거리며 살았을까.

 

 이렇게 죽을 줄 알았더라면 진우와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 생각은 하지 말자. 속물처럼 쾌적한 집과 비싼 차와 명품가방을 쫓아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지만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딱 한 가지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진우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죽기 전에 그를 돕고 싶다. 그가 다시 자신의 몸을 찾을 수 있도록. 하지만 이렇게 묶여있는 상태에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은영은 깊은 죄책감과 무력감에 몸을 떨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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