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영혼치기
작가 : 골드보이
작품등록일 : 201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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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현정
작성일 : 18-12-12     조회 : 283     추천 : 1     분량 : 4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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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가희씨가 지금 병원에 있다고?”

 

 병원이라는 말에 현정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뭔가 일이 잘못된 걸까?

 

 - 네, 가희 누나랑 방금 통화했어요.

 “병원에는 어쩌다?”

 - 사고가 좀 있었다는데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고, 가희 누나가 비산병원 812호로 오래요. 지금 핸드폰 액정이 나가서 누나한테 연락 못했다고. 저보고 대신 전해달라고 했어요.

 “어... 가희씨는 괜찮은 거야?”

 - 네, 팔이 부러져서 수술을 받았다는데, 괜찮다고 했어요. 수술이 좀 길어져서 연락 일찍 못했다고 누나한테 미안해하던데...

 “아니, 미안하긴 내가 고맙지.”

 

 말하면서 현정은 내 팔이 부러진 거구나, 라고 새삼 생각했다. 하지만 고맙다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 그래요, 누나. 그럼 병원에서 봐요. 저도 그쪽으로 갈게요.

 “잠깐, 수창아. 너 일 끝났지?”

 - 네, 끝났어요.

 “그럼 병원에 가기 전에 우리 집에 잠깐 들를래?”

 - 누나네 집이요? 왜요? 누나, 빨리 몸 찾아야 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니가 도와줘야 할 사람이 있어.”

 - 제가요?

 “그래, 그러니까 일단 와. 자세한 건 집에 오면 얘기해 줄 테니까.”

 

 자신의 몸을 찾는 일이 급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얼마나 다쳤는지 궁금하면서도 진우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어차피 현정은 병원에 가면 가희에게서 자신의 몸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조금쯤 미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정 자신도, 왜 이렇게 진우라는 남자에게 신경이 쓰이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얼떨결에 엘리베이터에서 도와주게 되었고, 자신도 가희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처지니,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더 적극적이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진우를 보고 있자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낯설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는 지금 자신의 모습도 아니라, 그의 몸을 빼앗아간 탐욕스러운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현정씨... 이렇게까지 도와주시고...”

 옆에서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진우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그러게요. 저도 제가 이렇게 좋은 사람인 줄 몰랐는데, 좋은 사람이었나봐요.”

 현정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는 진우의 옆에 가서 앉았다. 2인용 소파라 그와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웠지만,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슨 말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근데 여기까지 도와주신 걸로 충분하니 얼른 병원에 가보세요. 저는 그 분 오면 얘기하고 도움 받을 일이 있다면 도움 받도록 할게요.”

 진우가 현정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야 병원에만 가면 금방 몸을 되찾을 수 있으니까요. 일단 수창이 - 그 친구 이름이에요 - 오면 작전회의만 같이 할게요. 한사람의 머리라도 더 보태는 게 나을 테니까.”

 “현정씨...”

 

 진우가 현정의 손을 잡았다. 겉보기에는 형편없이 마르고 쭈글쭈글한 손이었지만,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이 느껴졌다. 영혼과 영혼이 통한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저... 이상하게 진우씨를, 진우씨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도요. 현정씨 얼굴을 상상할 수 있어요. 무척 아름다운 사람일 거 같아요.”

 

 아름다움, 이번 일로 현정은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눈에 띄는 외모 때문에 오히려 더 털털하게 행동하고 예쁜 척 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넘치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자기만큼 예쁘지 않기에 은근히 질투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겉으로는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엄청나게 의식하고 있었다는데 스스로도 충격을 받았다. 윤전과 바뀌고 나서 그녀의 추한 모습에 놀라고, 아니, 그녀의 모습을 추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외모라면 살 수 없겠다고 절망하고, 가희의 몸과 바뀌고 나서 은근히 안도한 것에서 현정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외모지상주의에 치우쳐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윤전과 바뀌지 않았더라면 영영 깨닫지 못했을 일이었다.

 

 “맞아요. 근데 이번에 제가 속까지 아름다운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 같아요.”

 “무슨 소리에요. 이렇게 마음도 착하신 분이...”

 

 진우가 따뜻한 눈으로 현정을 보며 말했다. 갑자기 눈물샘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현정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머뭇머뭇하던 진우가 그녀를 감싸 안아주었다. 제삼자가 봤다면 할아버지와 손녀의 다정한 모습으로 보였겠지만, 눈을 감은 두 사람은 영혼으로 교감하고 있었다.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을 담은 포옹은 걱정과 불안의 총량을 줄어들게 하지는 못했지만, 뾰족뾰족했던 신경을 조금은 누그러뜨려주었다.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몸이라는 껍데기 속에 갇힌 진짜 자신을 느끼고 있을 때 인터폰이 울렸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문을 쳐다봤다.

 

 “저예요. 수창이.”

 

 현정이 일어나 현관을 열었다. 집안으로 들어온 수창은 익호의 몸을 하고 있는 진우를 보고 눈이 커졌다. 가희처럼 바이크를 타고 왔는지 수창의 손에는 헬멧이 들려있었다.

 

 “저,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수창이 조심스레 물었다.

 

 “할아버지 아니야, 서진우씨라고 영혼치기를 당했대.”

 “영혼치기요?”

 “응.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누나, 저 영혼치기 잘 알죠. 나쁜 놈들, 악질이에요. 원래는 우리랑 같은 일가였는데...”

 “뭐? 영혼치기가 너희 일가였다고?”

 “네. 똑같은 능력이잖아요. 다른 사람의 몸을 배달할 수 있는. 그걸 우리는 좋은 쪽으로, 그들은 정확히 반대로 사용하고 있는 거 뿐이죠.”

 

 과연 현정이 짐작했던대로였다. 리터너와 영혼치기는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진우씨 몸을 되찾을 수 있도록, 수창이 네가 도와줄 수 있을까?”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고마워요. 서진우입니다.”

 

 진우가 소파에서 일어나 수창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 저는 채수창입니다.”

 “이렇게 선뜻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하는 일인데요, 뭐. 근데 이 몸 주인은 어떤 사람이죠?”

 “김익호 회장이라고, 미르그룹 회장이야. 언론에 노출을 안 해서 일반사람들은 잘 모를 거야.”

 

 옆에 있던 현정이 말했다.

 

 “진우씨, 그럼 영혼치기는 언제 당하신 거예요?”

 “어젯밤... 그러니까 만 하루 정도 된 것 같아요.”

 “아직 충분하진 않지만 시간이 있네요. 아, 사흘 안에 되찾아야 하거든요.”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진우는 구 선생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럼 일단 저랑 몸을 바꾸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저는 상관없지만, 수창씨는 괜찮겠어요? 이 사람들 보통이 아니던데, 너무 위험할 것 같아서요.”

 “진우씨가 무슨 걱정하시는지 알겠는데, 그건 좀 나중으로 미뤄두죠. 일단은 김익호 회장이라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봐야 하잖아요.”

 “김익호 회장이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어요?”

 “네. 제가 그 사람 몸속에 들어가면요.”

 

 현정과 진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봤다. 수창이 씨익 웃더니 말을 이었다.

 

 “가희 누나도 현정 누나 몸 찾아줄 때 그렇게 했을 텐데, 리터너들은 ‘자신의 영혼이 들어간 몸’의 기억을 스캔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김익호 회장의 몸에 들어가면 그 사람이 지금 어디 있을지, 기억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는 말씀이죠. 물론 한 번도 가본 적이 있는 곳에 숨어있다면 모를 수도 있겠지만...”

 “별장...”

 

 진우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병실을 지키던 놈이 별장이라고 했어요. 회장님 별장으로 가면 되겠냐고.”

 “좋아요. 그럼 별장이 어딘지만 알아내면 되겠네요.”

 

 수창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진우씨, 어떻게 해야 바뀌는지는 아시죠?”

 “네.”

 “거기 소파 앞에 서 계세요. 충돌하는 힘 때문에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테이블 위에 헬멧을 내려놓은 수창은 현관 쪽으로 물러났다. 현정은 거실 한 구석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럼 갑니다!”

 

 수창이 그다지 넓지 않은 거실을 한달음에 달려와 진우에게 몸을 부딪쳤다. 진우는 지푸라기처럼 힘없이 소파로 쓰러졌고, 수창은 허리를 굽혀 무릎에 손을 올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니, 그때 이미 수창은 수창이 아니었다. 수창의 몸 안에 들어간 건 진우의 영혼이었다.

 

 “이거, 바이크 타기 힘들겠는데요.”

 

 익호의 몸에 들어간 수창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디, 가게요?”

 

 신기한 듯 자신의 팔과 손을 내려다보던 진우가 물었다.

 

 “제, 작업실에 가야 되요. 기억을 스캔하려면 빛이 통하지 않는 장소에 가야 하거든요.”

 “내가 태워다줄게.”

 

 거실 구석에서 지켜보던 현정이 나섰다.

 

 “저 택시 타고 갈게요. 누나는 얼른 병원에 가 봐요.”

 “그래요, 현정씨. 수창씨는 제가 바이크로 데려다... 아니, 그 몸으로 바이크에 타는 건 무리겠네요.”

 

 

 진우는 헬멧을 집어 들다 멈칫했다.

 

 “거 봐요. 수창이는 제가 태워다 줄게요. 진우씨는 일단 여기서 기다리면서 별장에 가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고 계세요.”

 “아니에요. 같이 가요. 저도 병원에 같이 가겠습니다.”

 “알았어요. 어쨌든 빨리 가죠.”

 

 자리에서 일어난 수창이 절뚝거리며 현관을 나섰다. 현정과 진우도 급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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