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장왕곤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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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싫다는데 왜 자꾸 이러십니까(2).
작성일 : 16-04-10     조회 : 603     추천 : 0     분량 : 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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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싫다는데 왜 자꾸 이러십니까(2).

 

 

 무수한 공방들을 지나 외원 구석으로 간 북리곤은 곧바로 닫혀 있는 한 공방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방원 이 장(丈) 정도.

 다른 공방들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화로와 모루, 겸자와 망치 등 쇠를 다루는 연장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공방이었다.

 북리곤은 크고 작은 철편(鐵片)들이 널려 있는 공방 안을 둘러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손에 익은 친숙한 물건들이었다. 바로 그 자신만의 공방이었던 것이다.

 화로 안에는 북리곤이 조금 전까지 작업을 하다가 불려 나간 것을 증명하듯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손을 뻗어 화로의 열기를 점검한 북리곤은 옆에 놓여 있는 집게로 화로 안에서 뻘겋게 달아올라 있는 철괴(鐵塊) 하나를 집어 꺼냈다.

 땅땅땅!

 북리곤은 이내 철괴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는 작은 망치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밖은 어느새 어둠에 잠겨 있었다.

 북리곤은 그동안 내내 철괴가 식으면 화로 속에 집어넣어 달군 후 꺼내어 두들기며 검의 형태를 만드는 작업을 반복했다.

 얼마나 열중했는지 시간 가는 것은 둘째 치고 망치를 쥐고 있는 오른손 손바닥이 터져 피가 묻어나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하나의 철괴(鐵塊)를 일단 검 형태로 만드는 것만 해도 한두 시진 안에 끝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한데 북리곤은 일단 손에 잡은 이상 끝장을 보겠다는 듯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땅땅! 땅!

 다시 시간이 흘러 공방의 창을 통해 움터오는 여명이 보였다.

 망치를 쥐고 있는 북리곤의 오른손 손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심지어 겸자를 쥐고 있는 왼손 손바닥에도 물집이 잡혀 있었다. 놀랍게도 북리곤은 점심 무렵에 작업을 시작해 저녁도 거른 채 하룻밤을 꼬박 새운 것이다.

 만약 누군가 보았다면 기겁하며 말렸을 만한 상황.

 한 덩어리의 철괴는 그사이에 길이가 삼 척 사 촌가량 되는 기다란 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확연히 검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철편을 내려다보는 북리곤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는 왠지 불만 어린 기색만이 떠올라 있었다.

 "에잇!"

 쨍강···!

 북리곤은 손에 들고 있던 철편을 잠시 살피다가 바닥에 팽개쳤다. 이어 잔뜩 불만에 싸인 얼굴로 씩씩거리다가 공방 한구석의 검가(劍架)에 걸려 있는 한 자루의 검을 끄집어 내렸다.

 번쩍―!

 검신이 검집에서 빠져나오자 별안간 청량한 기운이 방에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다.

 삼 척 사 촌 길이의 검신은 마치 아름다운 미인이 옷을 벗은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북리곤은 황홀한 듯 검신을 이리저리 비추어보며 감상하기 시작했다.

 검의 손잡이와 검신이 연결되는 부위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작은 글씨로 미완(未完)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북리곤은 새삼 그 글씨를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이 과연 검의 이름일까? 이 정도로 완벽한 명검을 만들고도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의 미완(未完)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겸손이 지나치면 오히려 교만이 되는 법.

 하지만 북리곤이 생각하기에 미완을 남긴 장인은 후인에게 궁극에 이를 때까지 결코 자만하지 말라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 그런 검명(劍名)을 붙인 듯했다.

 잠시 후, 북리곤은 미완을 제자리에 걸어놓고 불길이 이글거리는 화로 앞에 쪼그려 앉았다.

 "휴우."

 북리곤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가 미완을 발견한 것은 이 년 전이었다.

 부친 북리대정은 철로 만든 물건 가운데 명품이라고 불리는 물건이 있으면 천금을 들여서라도 구입한 후 그 비법을 캐내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봐야 만족을 느끼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가 지니고 있는 물건 가운데는 명품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 명품들 중 하나가 바로 미완이라는 검이었다.

 북리곤은 어린 시절부터 부친에게 장예를 물려받아 상당한 실력을 쌓았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미완을 처음 보았을 때 충격을 받았다. 도전해서 뛰어넘고 싶은 목표를 찾아낸 기쁨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음날부터 북리곤은 미완과 똑같은 검을 만들기 위해 도전했다.

 이미 부친 북리대정이 소장하고 있는 명품들을 똑같이 만들어 부친조차 진위를 구별하지 못하게 만든 실력을 지니고 있던 북리곤이었다.

 하지만 북리곤은 미완과 똑같은 명검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미숙하고 불완전한 것인지 여실히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이 년 동안 그가 만든 검은 모두 십여 자루, 그나마도 완성된 것이 십여 자루이지 실패한 것까지 따지면 거의 매일을 공방에서 생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어느 것도 똑같기는커녕 비슷한 것도 없었다. 아니, 비슷하다는 말을 사용하기에도 낯 뜨거울 정도였다. 북리곤보다는 적어도 서너 단계 위의 실력을 지닌 장인이 만든 것이 분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잠도 자지 못하는 게 바로 북리곤의 성격이었다. 때문에 똑같은 검을 만들기 전까지는 부친이 아무리 강요해도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문득, 북리곤은 품속에서 매미 날개처럼 얇은 한 장의 양피지를 꺼냈다. 미완을 분해했을 때 손잡이 속에 감춰져 있던 양피지였다.

 

 <연검록(練劍錄).>

 

 연검록이라 했으니 검을 제련하는 방법에 대해 적혀 있을 게 확실했다. 하지만 깨알 같은 글씨로 양피지에 가득 적혀 있는 연검록에는 검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단지 임맥(任脈)이 어쩌고저쩌고, 독맥(督脈)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만 잔뜩 쓰여 있을 뿐이었다.

 북리곤은 검속에 감춰져 있던 양피지를 찾아낸 뒤 지금까지 수십 번도 더 읽어 이제는 보지 않고도 외울 정도였지만 끝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친 북리대정에게 연검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미완과 똑같은 명검을 만들려는 치기 어린 자존심 때문이었다.

 화르르르륵!

 북리곤은 연검록의 구결이 적혀 있는 양피지를 손에 쥔 채 멍청히 화로 안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구결을 해독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방심(放心)한 채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멍하니 앉아 있다고 할까.

 뒤쪽의 공방 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는 그의 그림자는 불꽃이 일렁거릴 때마다 마치 춤이라도 추듯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곳과 화로와는 불과 두 자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화로의 열기 때문에 일각도 버티기 힘든 자리였다. 하지만 마치 불꽃에 혼이라도 빼앗긴 듯 북리곤은 하염없이 그렇게 불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사실 북리곤은 어렸을 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불을 좋아했다. 불꽃이 허공에 자신의 몸을 사르며 갖가지 모양으로 변하는 모습을 몇 시진이고 꼼짝도 하지 않고 바라볼 정도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북리곤은 문득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양피지의 뒷면에 희미한 그림이 떠올라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열기에 노출된 양피지의 중앙에 기이한 문양이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북리곤은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양피지를 화로에 더욱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자 양피지 뒷면의 문양이 더욱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기이한 문양은 바로 어느 지형을 나타내는 지도였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양피지의 어디에도 그 지도가 어느 곳의 지형인지, 또 무엇을 뜻하는 지도인지 적혀 있지 않았다.

 "대체 뭘 나타내는 지도지? 수많은 봉우리들 중 중앙에 있는 봉우리 하나만 유독 붉게 칠해져 있는 것을 보면 이 봉우리가 가장 중요한 곳인 듯한데 어느 곳을 나타내는지 알 수가 없잖아. 대체 뭘 숨겨놨기에···?"

 북리곤은 단 한순간도 양피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장점이면서도 또한 단점이기도 한 성격. 궁금증이 생기면 그 궁금함이 풀릴 때까지 미친 듯이 그 일에만 빠져드는 것이 바로 북리곤의 성격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양피지에 나타나 있는 지형이 어느 곳인지, 또 붉은색으로 채색이 되어 있는 봉우리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 것이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화아! 궁금해서 미치겠구나. 내일부터라도 당장 이 지형과 일치되는 곳이 어디인지 찾아봐야겠다."

 은밀한 방법으로 지도를 숨겨놓은 것을 보면 엄청난 비밀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달리 생각을 해보면 괜한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자신보다 몇 단계 위의 장예를 지닌 사람이 남겨놓은 것이니 분명히 평범한 게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파고들어야 할 또 하나의 목표에 부딪친 북리곤의 눈 깊은 곳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는 고집이 번뜩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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