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장왕곤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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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하산(下山)(3).
작성일 : 16-04-11     조회 : 725     추천 : 0     분량 : 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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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하산(下山)(3).

 

 

 북리곤 일행은 관도를 따라 편하게 여행을 시작한 지 열흘째 되었을 때 목적지인 남령(南寧)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해가 지려면 반 시진 정도 남아 있는 시각이었다.

 막 성안으로 들어서던 북리곤은 성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소년이 여러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얻어맞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략 열 살가량이나 되었을까?

 얻어맞고 있는 아이는 비쩍 마른 데다 차림새도 허름해 언뜻 보기에도 떠돌이 거지 소년으로 보였다.

 소년은 가슴에 작은 보따리를 안고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얻어맞으면서도 그 보따리를 지키려는 듯 웅크린 자세였다.

 "야, 임마! 너 그거 어디서 났어? 훔친 거지?"

 "훔친 게 분명해. 이런 거지같은 놈이 저런 물건을 갖고 있을 리 없잖아!"

 아이들은 둘러선 채 한 명씩 발로 걷어차거나 주먹으로 소년을 때렸다. 모두들 얻어맞고 있는 소년보다 체구가 컸고 옷차림도 깨끗했다.

 "훔친 거 아냐!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산 거야."

 소년은 반항하지 못한 채 얻어맞으면서도 기가 죽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노려보는 눈빛에 독기가 어려 있었다.

 "네 까짓 놈이 뭘 해서 돈을 벌어?"

 "그게 뭐야? 이리 내보라니까!"

 이미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얼굴도 여기저기 부어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킬킬거리며 계속 소년을 때렸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지나가는 어른들 역시 관심 없다는 듯 스쳐 갈 뿐이었다.

 팍!

 잠시 후, 장난 삼아 소년을 괴롭히던 아이들 중 한 명이 별안간 보따리를 잡아챘다.

 소년은 보따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감싸 안은 채 몸을 더욱 웅크렸지만 그 순간 다른 아이가 옆구리를 걷어차는 바람에 손을 놓고 말았다.

 보따리가 풀리며 십여 개의 만두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이들의 눈에 실망의 빛이 스쳐 갔다. 소년이 워낙 소중하게 보따리를 감싸고 있어 뭔가 값비싼 물건이 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겨우 십여 개의 만두에 불과했다.

 "뭐야! 보여 달라고 할 때 진작 보여주지, 이까짓 만두를 그렇게 기를 쓰고 감추려 한 거야?"

 "그러니까 거지새끼지."

 아이들이 킬킬거리며 땅에 떨어진 만두를 짓밟았다.

 소년은 아이들이 밟지 못하게 허겁지겁 땅에 떨어진 만두들을 집으려 했지만 아이들은 마치 재미있는 놀이를 하듯 소년을 때리며 한편으로는 만두를 밟았다.

 "그만두지 못해!"

 그 광경을 지켜보던 북리곤이 방향을 바꿔 아이들을 향해 걸어갔다.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

 "와! 튀자!"

 "저 자식은 뭔데 참견이야!"

 아이들은 북리곤이 다가오자 흠칫 바라보다가 일제히 도망쳐 버렸다.

 소년은 북리곤이 다가오는 것은 물론 도망친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땅에 떨어져 있는 만두를 집기에 여념이 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년이 집어 든 만두는 서너 개에 불과했다. 다른 만두들은 이미 아이들의 발에 짓밟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소년이 집어 든 서너 개의 만두도 흙투성이라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여기저기 짓밟혀 있는 만두들을 내려다보는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넌 그 아이들에게 얻어맞을 때도 울지 않더니 지금은 왜 울어?"

 북리곤이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할아버지와 동생들이 먹을 만두였어요."

 소년은 눈물을 참으려는 듯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하지만 눈물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동생들이 먹을 만두였다고? 자신 몫은 생각도 하지 않았구나.'

 소년의 대답에 북리곤의 마음이 움직였다.

 "내가 만두를 사줄까?"

 "난 거지가 아니에요."

 가만히 내려다보던 북리곤이 불쑥 입을 열자 소년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어 터덜터덜 힘없이 성문을 빠져나갔다.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북리곤의 눈에 언뜻 감탄의 빛이 스쳐 갔다.

 "어디 가?"

 "곤 오빠!"

 쌍둥이 자매는 그때까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중이었다. 한데 북리곤이 소년의 뒤를 따라 다시 성문 밖으로 나서자 의아해하며 소리쳤다.

 북리곤은 쌍둥이 자매가 부르든 말든 소년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쌍둥이 자매는 할 수 없이 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성문을 벗어난 후 십 장 정도 소년의 뒤를 따라가던 북리곤은 별안간 걸음을 빨리해 오히려 소년을 앞질러 버렸다.

 "어이쿠!

 한데 십여 걸음 정도 소년의 앞에서 걷던 북리곤이 돌부리에 걸린 듯 갑자기 쓰러지지 않는가!

 앞으로 넘어진 북리곤은 다친 듯 일어서지 못했다.

 소년은 풀이 죽어 땅만 보고 걷고 있다가 북리곤이 바로 앞에서 넘어지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았다.

 "다쳤어요?"

 거의 반사적인 행동, 소년은 쓰러진 북리곤을 부축해 일으키며 질문을 던졌다.

 짐짓 소년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 북리곤이 환하게 미소했다.

 "고마워. 신세를 졌구나."

 "그까짓 걸 갖고 신세는 무슨···."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북리곤이 쓰러진 지면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발이 걸릴 만한 돌부리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신세를 졌으면 갚아야지. 너 아까 보니까 그놈들에게 오지게 맞던데 안 아프냐? 아파서 걷기 힘들면 내 지게에 올라타. 내가 데려다 줄게."

 마치 원래부터 잘 알고 있는 듯 친숙한 태도.

 소년은 흠칫 놀라며 북리곤을 올려다보았다.

 북리곤의 행색은 다소 괴이쩍다고 할 수 있었다.

 큰 키에 흰 피부. 깨끗한 흑삼을 걸치고 있어 어떻게 보면 명문가의 귀공자로 보인다. 하지만 짊어지고 있는 지게 위에 대장장이의 연장들이 올려 져 있어 극심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과 마주친 북리곤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져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진심은 통하는 법.

 소년은 북리곤의 행색이 다소 기이하기는 했지만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정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절대로 가식은 아니었고 동정 또한 아니었다. 그저 원래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인 양 마음 편하게 대해주는 태도였다.

 "그 지게에… 사람이 올라타도 되는 거예요? 무겁지 않아요?"

 역시 아직은 어린아이였다.

 소년은 북리곤이 지고 있는 지게를 보며 어린아이답게 호기심과 타고 싶어 하는 열망을 드러냈다.

 "원래는 짐을 지는 것이지만 지금은 짐이 별로 없으니 타도 돼. 그리고 난 힘이 세니까 너 정도는 무겁지 않아."

 "정말이에요? 나… 올라타도 돼요?"

 "지게에 타고 싶으면 빨리 타, 맘 바뀌기 전에."

 북리곤은 등을 보인 채 소년 앞에 쪼그려 앉았다.

 "헤, 그럼!"

 소년은 신이 나서 지게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어느새 완전히 맘을 연 태도였다.

 "자, 그럼 가볼까. 집이 어디지?"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소년은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만두가 먹을 수 없게 된 조금 전의 상황 따위는 이미 깨끗이 잊은 듯 밝은 표정을 머금었다.

 십여 걸음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쌍둥이 자매들이 소곤거렸다. 소년이 들을까 두려워하는 낮은 목소리였다.

 "일부러 넘어진 게 분명해."

 "나도 알아. 저 꼬마와 친해지려고 일부러 그런 거야."

 "한데 무엇 때문에 일부러 넘어지면서까지 꼬마와 친해지려는 것일까?"

 "도와주고 싶긴 한데 꼬마의 자존심은 건드리기 싫고… 뭐, 그런 거겠지."

 "흠···!"

 사실 이미 남령에 도착했으니 서로 갈 길을 가기 위해 북리곤과 헤어져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쌍둥이 자매는 계속 북리곤의 뒤를 따라갔다. 어쩐지 이대로 헤어지기 싫은 마음도 있고, 또 북리곤이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남령의 성문을 나서 오 리 정도 가자 한 야산의 산자락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략 이십여 채의 움막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마을은 차마 마을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구차스러운 옹색한 모습이었다. 한눈에 기근을 피해 고향을 떠나 떠돌다가 정착한 유민촌(流民村)임을 알 수 있었다.

 "나… 내려줘요."

 유민촌이 보이자 소년의 표정이 다시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북리곤은 아무 말 없이 소년을 내려준 후 어느 집으로 들어가는지 지켜보았다.

 소년은 허름한 움막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힐끔 북리곤을 쳐다본 후 힘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안으로 들어갔다.

 뒤의 흙벽에 의지한 채 몇 개의 막대기를 땅에 꽂아 거적으로 벽을 만든 허름한 움막은 바람만 세게 불어도 무너질 듯했다.

 북리곤은 그 움막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했다. 도저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곳으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옹색했던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세계를 목격한 느낌.

 북리곤은 집을 나온 후 십만대산으로 여행하면서 적지 않은 경험을 하고 어려움을 겪어보기도 했지만 실상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대하기는 처음이었다.

 "안에 있니?"

 잠시 후 북리곤은 소년이 들어간 움막 앞에서 헛기침을 했다. 이어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기 전에 문 대신 쳐져 있는 거적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놀랍게도 비좁은 움막에서 세 사람이 기거하고 있었다.

 구석에는 육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노인이 누워 있었는데 병이 심한지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도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그 앞으로 여덟 살가량의 여자 아이와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힘없이 앉아 있었다.

 소년은 북리곤이 거침없이 움막 안까지 들어오자 놀란 빛이었다.

 북리곤은 짐짓 뒷머리를 긁으며 궁색한 표정이 되어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걸어왔더니 배가 고파서 말이야. 혹시 먹을 게 없니?"

 "우, 우린… 먹을 게 없어요."

 소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그야말로 거지에게 오히려 음식을 동냥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북리곤은 태연했다.

 "그래? 먹을 게 없다면 내가 직접 만들어 먹으면 되지.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그릇은 있니?"

 "그릇은 있긴 하지만 작은 그릇들뿐이고… 곡식은 한 톨도 없어요."

 소년은 북리곤에게 대접하지 못하는 게 미안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럼 우리 가까운 산에 가서 산짐승을 잡아서 끓여 먹을까?"

 북리곤이 짐짓 신이 난 표정이 되어 입을 열었다.

 소년은 다소 밝은 표정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잡아먹을 만한 산짐승은 모두 잡아먹어서 근처의 산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산짐승을 잡으려면 적어도 백 리 정도는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 해요."

 당연한 일이었다.

 유민촌 근처의 산에 잡아먹을 만한 산짐승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산짐승뿐만 아니라 먹을 만한 풀뿌리도 이미 바닥이 난 지 오래였다.

 "알았어. 내가 몇 마리 잡아올 테니 넌 이웃집에 가서 큰솥을 빌려 와. 고기를 준다고 하면 곡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조금은 내놓을 거야."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는데 어디 가서 산짐승들을 잡아요?"

 "그건 걱정하지 말고. 참, 너 이름이 뭐지?"

 "호(浩)예요. 성은 양(梁)이고요."

 "양호? 좋은 이름이구나. 양호, 한 시진 안에 짐승들을 잡아올 테니 큰솥을 빌려 물을 끓여놓고 있어."

 북리곤의 호언장담에 양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북리곤의 말을 믿는 기색은 아니었다.

 쿵쿵쿵쿵!

 북리곤은 움막을 나서기 무섭게 저 멀리 보이는 산 쪽으로 방향을 잡은 채 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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