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녀와의 대화(1)
구름에 가려진 햇빛, 창틈 사이로 들어오는 쌀쌀한 바람, 닭의 울음소리가 나의 깊은 잠을 깨우기 시작했다.
어제저녁 야근을 한 탓일까? 깊이 자도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매우 버거웠다.
난 무거운 몸을 일으켜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몸을 씻은 후 창문을 열어 밖을 보면서 머리를 말기 시작했다.
머리를 다 말린 후 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침대 맞은편에 걸려 있는 낡은 시계를 보았다.
(8:30)
시간을 본 나는 서둘러 옷장에서 셔츠와 정장을 꺼내 입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나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지긋지긋한 신 과장 때문이다.
내 상사인 신 과장은 회사 안에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별거 아닌 이유로 꼬투리를 잡는 것과 베짱이 마냥 자기 일을 미루기로 유명한 신 과장은 내 마음속 블랙리스트 1순위였다.
(회사)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직 출근한 사람들이 없었다. 내가 너무 일찍 출근한 것일까?
텅 빈 회사 안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의자에 기대어 쉬고 있던 순간 둔탁한 목소리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신 과장이다.
”김 대리! 회사 왔으면 바로 일을 해야지. 누가 의자에 기대서 쉬고 있나!“
“아…. 죄송합니다.”
난 기대고 있던 의자에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자네 옷이 그게 뭔가? 넥타이는 삐뚤어져 있고, 머리는 까졌고, 회사 안에서 단정하게 해야지! 사람이 왜 이렇게 단정하지 못해?”
신 과장은 나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정정하겠습니다!”
난 곧장 화장실로 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달려오는 바람에 머리는 이마가 보일 정도로 까져 있었고, 일직선으로 바르게 되어있어야 하는 넥타이가 꽈배기처럼 비틀어져 있었다.
‘하…….괜히 서둘렀나?’
한숨을 쉬며 머리와 넥타이를 단정하게 한 후 다시 사무실로 갔다.
“김 대리! 책상 위에 있는 결재서류 있지? 그거 오늘 저녁때까지 정리해서 내 메일로 보내줘.”
신 과장은 의자에 기대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상태로 말했다.
“네!”
“대리님 힘드시겠어요……. 괜찮으세요?
직장동료 연지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아 네…. 괜찮아요. 늘 있는 일인데요…“
난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힘내세요!“
그녀는 내게 커피를 주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
”하~아 다 했네!!”
기지개를 피고 난 후 왠지 모를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과장님 정리해서 메일로 보냈습니다.”
“어 그래? 수고했어.”
여전히 신 과장은 의자에 기대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건성건성 대답했다.
정신없이 업무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나는 시계를 보았다.
(5:00)
“어, 뭐야…. 벌써 5시야? 하…곧 퇴근이네.“
업무를 끝냈다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잠시 의자에 기대고 있던 신 과장은 어느 순간 내 앞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응? 뭐라고? 김 대리 퇴근하고 싶어?”
신 과장은 얄미운 표정을 하고선 내게 물었다.
“네…? 아…. 음……”
과장의 말을 듣고 당황한 난 말을 더듬어버렸다.
“김 대리! 일 더 하고 싶은가 보네. 내일 회의 있으니까 이것 좀 정리해서 오늘 10전까지 보내도록 해”
“아…. 과장님 그게 아니라. 저 오늘 집에 좀 일찍 가야 할 일 있는데….”
신 과장은 내 말을 무시한 채 직원들에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여러분 이제 슬슬 퇴근합시다!”
자리에 앉아있던 직원들은 일어나 짐을 싸 퇴근준비를 하였다.
“김 대리님. 힘내세요! 그리고 이거….”
직장동료 연지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수줍은 표정을 하고선 내게 쪽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아…네”
야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텅 빈 난 그녀의 말에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김 대리! 수고해”
신 과장은 입가에 미소가 퍼진 채로 말했다.
‘하…. 진짜 늘 그렇지 뭐….’
나는 한숨을 쉬며 업무를 시작했다.
상사가 부탁한 업무를 정리한 후 메일 보낸 뒤 연지 씨 나에게 준 쪽지가 생각났다.
책상 위를 뒤지다 보니 노란색을 되어있는 쪽지가 보였고 난 쪽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김 대리님! 저번부터 계속 친해지고 싶어서 말을 걸어보려고 했었는데…. 계속 업무 중이시고 바빠 보이셔서 이렇게 쪽지를 남기게 되었어요!
혹시 주말에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같이 한강 가실래요?
괜찮으시면 이 번호로 연락해주세요!
010-XXXX-XXXX
부담되시면 연락 안 드려도 돼요….]
나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그래…….뭐 내일 할 것도 없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연락해야지.’
가방을 챙겨 회사 밖을 나가자 주변은 어두웠고 가로등 불빛마저 켜져 있지 않은 사람이 없는 어두운 밤거리가 무서웠던 난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플래시를 켜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저녁
“(똑똑) 총각 일어나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 뭐야 누구야…?’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문 앞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어 총각, 나 집주인인데 내가 떡을 좀 많이 해서 나눠주려고 가지고 왔어.”
“저기…. 괜찮아요.”
“아유~ 총각. 문 좀 열어봐! 그래도 갖고 온 성의가 있지!”
“ 아…. 알겠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여기 총각. 주말인데 종일 잠만 자지 말고 좀 나가고 그러지 왜 집에만 있어!”
아주머니는 내게 떡을 건네주며 말하였다.
“아 안 그래도 오늘 저녁 약속 있어요. 떡은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그려~ 맛있게 먹어.”
“네.”
난 인사를 드리며 문을 닫았다.
식탁 위에 떡을 놔두고 연지 씨에게 연락하기 위해 침대에서 휴대전화를 찾기 시작했다.
그저 늘 집에만 있기에는 외로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를 찾아 쪽지에 적혀져 있는 번호를 누르며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연지 씨 저 김 대리예요. 쪽지 보고 전화 드렸는데 지금 만날래요?”
“네 좋아요.”
그녀는 내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해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네 그러면 어디서 만날까요?”
“ 음…. 그러면 마포대교에서 만나요”
“네 알겠어요. 이따 봬요.”
“네”
전화를 끊은 후 옷장에서 셔츠와 슬랙스를 꺼내 나갈 채비를 했다.
집에서 마포대교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10분 정도의 거리였기 때문에 난 천천히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오늘따라 사람이 많네. 주말이라서 그런가?’
역 안은 사람들로 인해 복잡했었다.
‘잠시 후 마천행 열차가 들어옵니다.’
‘잠시만 비켜주세요!’
나는 많은 사람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간신히 열차를 탔다.
‘어…. 사람들 진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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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 마포역에서 내렸다. 차로 5분 정도의 거리였기 때문에 나는 택시를 타고 마포대교로 갔다.
“기사님 마포대교로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3000원 나왔습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택시는 마포대교에 도착해있었다.
“네 여기요. 감사합니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택시에 내려 그녀에게 갔다.
안개가 낀 어두운 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가로등 불빛이 조금씩 켜지며 우울한 표정을 한 채로 다리난간에 기대고 있는 그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난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연지 씨!”
“아 김 대리님 언제 오셨어요?”
“아 저 방금 왔어요. 근데 연지 씨 어디 안 좋으세요?”
“아니요. 괜찮아요! 김 대리님 일단 같이 걸으실래요?
그녀와 인사를 나눈 뒤 천천히 마포대교를 걷기 시작했다.
“대리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네?”
“뭐 하나만 부탁드려도 돼요?”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내게 말했다.
“네. 뭔데요?”
“요즘 회사 다니는 게 너무 힘든데 주변에 말하고 싶어도 말할 사람은 없고….”
그녀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저한테 말하면 되죠!”
난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요?”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날 향해 웃으며 말했다.
“네 힘드신 거 있을 때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난 해맑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한참 동안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한강에 도착했다.
“연지 씨 저희 좀 많이 걸은 것 같은데 저기 앉아서 쉬실래요?”
“네!”
주변에 벤치 하나가 보였고 우리는 잠시 앉아 쉬기로 하였다.
“대리님은 힘드신 거 없으세요?”
그녀는 나에게 불쑥 다가와 물었다.
“아…. 저는 딱히 뭐 없는 것 같아요”
“아…. 부럽네요.”
“뭐가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아니에요.”
그녀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연지 씨 저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았다.
(11:00)
“아…. 지하철 시간 때문에 그래요?”
“네….”
그녀는 소매를 걷어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기 시작했다.
(11:00)
“벌써 11시네요.…”
“네…. 연지 씨는 몇 시에 가시려고요?”
“저 어차피 가까워서 김 대리님 가시는 거 보고 갈려고요”
“아…. 연지 씨 그럼 저 이만 가볼게요!”
“네. 회사에서 봬요!”
벤치에서 일어난 후 택시를 불러 마천행으로 향했다.
그녀는 내가 택시 타는 모습을 본 후 어디론가 천천히 걸어갔다.
집에 도착한 난 곧바로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를 다시 떠올리며 잠에 들었다.
그녀와 같이 걸었던 마포대교, 벤치에 앉아 대화하던 한강. 그리고 그녀의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