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들려오는 닭의 울음소리 때문에 난 이른 새벽에 잠이 깬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일까? 생각하기도 잠시 남들보다 잠귀가 밝아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내가 메아리처럼 울리는 닭의 울음소리를 못 들을 리가 없었다.
난 다급히 창문을 열어 밖을 내려보았다.
할아버지는 화물차 뒤 칸에 닭들을 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좀 전 꿨던 꿈 때문일까? 난 사소한 거 하나하나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창문을 닫은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회사로 향할 준비를 했다.
몸을 씻고 머리를 말린 후 옷장에서 셔츠, 정장을 꺼내 입어 가방을 들고선 집을 나섰다.
난 회사 승강기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해 힘겹게 의자에 앉았다.
사무실 문이 열리며 연지 씨와 신 과장이 들어섰고 기운이 없었던 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리님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그녀는 내게 천천히 다가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연지 씨 저 괜찮아요.”
“오늘 회식 있으니까 다들 퇴근하고 술 한잔하자고!”
신 과장은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과장의 말을 들은 난 한숨을 쉬며 업무에 집중했다.
늘 반복되는 회사 생활이 지겹다 못해 지쳐있었고 언제부터가 내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덧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신 과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슬슬 퇴근하고 회식하러 가보자!”
“네.”
직원들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 과장을 따라 나가 밝은 조명이 비추고 안에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는 술집에 도착했다.
보통 늘 회식을 할 때 술집은 낡고 허름한 계단을 내려가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며 사람들은 없고 주방에는 나이 드신 아줌마, 아저씨가 운영하는 술집을 자주 갔기 때문에 신 과장이 이런 술집을 가자고 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술집을 들어가 신 과장의 대화를 피하고자 시선이 쏠리지 않은 곳에 앉았다.
신 과장은 직원들과 대화를 할 때쯤 연지 씨가 술잔을 들고서 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대리님 왜 혼자 술 마셔요? 다 같이 얘기하면서 마셔요.”
“아…. 괜찮아요.”
난 연지 씨 빼고 딱히 회사 직원들이랑도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내 대답을 들은 그녀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고 내 옆에 앉아 나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술을 어느 정도 마시다 보니 직원들은 거의 취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단 나와 연지 씨 빼고 말이다.
“연지 씨 오늘 2차 갈 거지?”
신 과장은 그녀에게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아 오늘 저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해요.”
“연지 씨 집이 이 근방이 아니라고 했던가? 그러면 알겠어. 시간 되면 나한테 말하고 가.”
“네.”
“연지 씨 집 이 근방 아니에요?”
신 과장의 말을 들은 난 곧바로 그녀에게 물었다.
“네? 아 그냥 택시 타고 가면 가까워요.”
그녀는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알겠어요….”
“대리님 잠시만 제 짐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어디 가시려고요?”
“화장실 좀 가려고요.”
“네 갔다 오세요. 짐 봐 드리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내게 짐을 맡겨놓은 후 화장실을 갔다. 난 주변을 둘러본 뒤 그녀의 물건 중 지갑을 꺼내 열어보았다.
지갑 안에는 카드, 현금, 주민등록증이 있었고, 난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았다.
하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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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씨의 집 주소를 본 난 충격을 받았다. 택시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에 사는 그녀가 내게 가깝다고 한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1시간 정도 거리는 가까운 걸까? 아니면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주민등록증을 다시 집어넣으려던 순간 또 하나의 주민등록증이 보였다.
하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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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에 이름은 연지 씨와 다른 이름의 것이었고 난 그저 그녀가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소가 쓰여 있던 그곳은 부모님이 운영하던 보육원의 집 주소였고 이 주민등록증은 누구 거면 왜 그녀의 지갑에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했다.
맞은편에 있는 거울로 그녀가 내게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았고 난 급히 지갑을 원래 자리에 놓은 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앉아 술을 마셨다.
그녀와 술을 먹다 보니 어느새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평소 만취 상태 전까지는 술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난 술잔을 내려놓고 짐을 챙겨 집으로 갈려던 순간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요.”
“네.”
취기가 올라온 난 그녀의 말에 덥석 물 듯이 대답했다.
“연지 씨 제가 얼마나 힘들게 산 줄 아세요? 부모님은 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요. 착한 일 하는 목사였는데…. 돌아가셨어요. 그 뒤로 저는 계속 혼자 살았어요.”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흐려지며 술에 잔뜩 취한 난 그녀에게 말실수하고 말았고 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