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님”
뿌옇게 칠해진 시야 속 누군가 내 얼굴을 툭툭 치며 날 불렀다.
나른해진 내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난 힘겹게 떨리는 눈을 떴다.
연지 씨다. 내 얼굴을 툭툭 치며 날 여러 번 부르고 있었다.
“대리님 괜찮으세요?”
“아.”
술을 너무 과하게 마신 걸까? 도저히 그녀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리님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그녀는 날 부츠기며 택시를 잡았다.
“ XXXX를 가주세요.”
희미하게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내 집 근처를 말하고 있었다.
“대리님 집 도착했어요.”
“네? 연지 씨가 우리 집 어떻게 아세요? ”
술이 조금씩 깨던 난 그녀에게 물었다.
“아~ 대리님 취하셔서 제가 아까 과장님한테 물어봤어요.”
“음…네.”
“그럼 대리님 저 이만 가볼게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연지 씨가 간 후 곧바로 집에 들어갔다. 얼마나 과음을 한 걸까? 난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검게 칠해진 주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광경은 내 꿈속이다.
“안녕.”
누군가 내 뒤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아 뭐야.”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난 꿈속의 나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말을 걸려던 꿈속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뭔가 어디선 많이 본 듯한 낯익은 얼굴...그리고 그 녀석은 내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놀랐어? 너의 모습이 아니라서?”
“누구야?”
“섭섭해 네가 나 죽여놓고 모른척하기야?”
꿈속의 녀석은 입이 귓가에 걸릴 정도로 웃고 있었다.
“내가 널 죽였다고? 뭔 소리야?”
“아쉽네. 기억 안 나? 그럼 보여줄게.”
꿈속의 녀석은 내 손을 잡으며 어디론가 향했다.
“자 여기 잘 봐.”
그곳에는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있었고 녀석은 칼을 들고선 여자 남자 번갈아 가면서 찌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그 광경이 너무 당황스럽고 공포감이 조여왔던 난 녀석의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 치려던 순간…. 울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고 내 머릿속에 이상한 말들이 맴돌았다.
왜 그랬어? 내가 뭘 잘못했어?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넌 안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친구잖아. 근데 왜 죽였어?
“자 어때? 이제 좀 알겠어?”
“그냥 사실대로 말해줘!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하…. 네가 날 죽였어. 네가 날 죽였다고!”
녀석은 칼을 들고선 내 쪽으로 와 내 가슴에 칼을 꽂았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네…. 여기 어디죠?”
“응급실입니다.”
“네? 제가 왜 응급실에 있는 거죠?”
난 분명 집에 도착했고 침대에 누워 괴상한 꿈을 꾸고 있었는데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응급실이라는 말을 들은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연지 씨가 날 데려다준 것은 뭘까? 왜 내가 응급실에 있는 거지?
“어. 환자분이 길 한복판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저희가 구급차 통해서 엎고 온 거예요.”
“전 분명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요?”
“저번에도 한 번 쓰러지셔서 오신 거 기억하시죠?”
“네….”
“오늘도 쓰러지셔서 저희가 데리고 왔는데 술 냄새가 나서 취하셔서 쓰러진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병원 와서 몇 가지 검사를 통해 확인해보니…. 기억상실증이 조금 있으신 것 같아요.”
“제가 기억상실증이요?”
“네…. 일단 진정하고 들어보세요.”
“네.”
“보통 기억상실증은 기억을 잃었다가 나중에 돌아오는 것이 원칙이면 환자분 같은 경우는 기억을 자기 스스로 없애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통해 새로운 기억이 만들어지는 형식이에요.
과거 안 좋은 기억이 있으면 본인 스스로 그 기억을 없애고요.
새로운 기억을 만들 때는 누군가를 통해 자기 스스로 마음이 안정되는 기억을 만들어요.”
“그러면 제가 집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제가 만들어낸 기억인 거에요?”
“네…. 그렇다고 봐야죠.”
“그러면 제가 길에 쓰러져 있는 걸 신고한 사람은 누구예요?”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신고를 받고 가보니….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신고자 번호로 전화를 걸려고 했으나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서 찾을 방법이 없더라고요.”
“하….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최근 몸 상태가 안 좋아지셨어요. 혹시 직장 다니시나요?”
“네.”
“지금 봤을 땐 아마 회사를 잠깐 쉬거나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그 정도로 심각한가요?”
“심각한 정도는 아닌데 환자분이 기억상실증에다가 몸 상태도 안 좋고 아마 회사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요.”
“아…. 일단 알겠습니다.”
“오늘은 뭐 주사 맞은 것도 없으니 그냥 가셔도 돼요.”
“네.”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며 특유의 이상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고 난 그 냄새를 맡으며 병원을 나섰다.
난 의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상실증이라는 말과 연지 씨가 날 데려다주고 집에 도착해 잠을 자던 내 모습이 정말 내가 만들어낸 기억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난 의사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 휴대전화를 꺼내 연지 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연지 씨 저 김 대리입니다. 혹시 잠시 회사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나와주실 수 있나요?]
[네. 지금 바로 가면 되나요?]
그녀는 내가 보낸 문자의 바로 대답하였다.
[네.]
난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 후 택시를 타고 회사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한 난 주변을 둘러보았고 혼자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이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그녀가 보였다.
“연지 씨.”
“어 대리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여기서 보자고 하셨어요?”
“연지 씨 제가 좀 진지하게 할 얘기가 있어서요.”
“무슨 얘기인데요?”
“오늘 회식 자리에서 제가 취해서 연지 씨가 저 집 데려다준 거 기억하세요?”
“아…. 네 기억나긴 하는데 대리님 데려다준 기억은 없는 것 같아요.”
“네? 분명 연지 씨가 과장님한테 우리 집 주소 물어보시고 저 택시 태워서 집까지 데려다주지 않았어요?”
“대리님 아니에요. 과장님한테 물어본 적도 없고 대리님 집까지 데려다준 적도 없어요.”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닌데….”
“대리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사실 최근 안 좋은 꿈을 꾼 후로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어서요.”
“네? 무슨 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