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가, 가라고!
“벌써 왔네.....”
요코가 나 돌을 미안한 표정으로 보았다. 앞 차에서 건장한 사내 둘이 내렸다. 차에서 내린 사내 둘은 뒤차로 뛰어가 뒷문을 열고, 허리를 굽혔다. 운전석에서는 사각형 얼굴의 건장한 사내가 내리고, 뒷문에서는 하얀 양복에 흰 구두가 어울리는 삼십 대 남성이 내렸다.
“요코!”
남성은 요코에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남성은 흰 피부에 갸름한 얼굴이었다. 적당한 입술에 옆으로 늘어진 눈은 매서웠다. 우뚝하고 옆으로 살짝 퍼진 코는 안정감을 주었다. 키가 늘씬하게 커서 양복이 잘 어울렸다.
“학생?”
“응, 나 돌이라고 우리 학교 학생이야, 인사드려!”
“나 돌입니다.”
나 돌이라는 이름에는 할아버지의 자존심이 담겼다. 나 돌은 주눅이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견뎠다. 남성은 요코와 나 돌을 번갈아 보았다.
“일이 일찍 끝나서 왔더니, 요코의 손님이 있네, 우리끼리 할 말 있는데 비켜줘야겠다.”
남성은 나 돌을 무시하고 요코에게 말했다. 나 돌은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쫌전에 왔는데, 시게이는 한국식 예의를 잘 몰라서 그러니 이해해.”
요코가 나 돌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시게이는 요코의 상냥함이 거슬렸다.
“예의? 나, 시게이다, 악수!”
시게이가 내민 손은 두툼하고 엄청 컸다. 나 돌은 손을 내밀어 시게이의 손을 잡았다. 한 손으로 잡으면 건방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왼손이 나가는 걸 참았다.
“어려보이네, 교수님 말씀 잘 들어라!”
시게이는 나 돌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 아~ 예!”
나 돌은 손이 으스러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손을 빼려 했지만, 시게이는 잡은 손을 위 아래로 흔들었다.
“놔, 뭐하세요?”
요코가 놀라서 시게이에게 외쳤다. 시게이가 손을 놓고, 나 돌을 내려 보았다. 나 돌은 손바닥이 얼얼한 고통을 들어내려고, 흔들었다. 요코에게 간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들어가자, 학생은 가라!”
시게이는 요코 때문에 나 돌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시게이 뒤로는 건장한 사내 셋이 옆으로 서 있었다. 검정 양복의 사내 셋과 흰 양복의 시게이는 어울리는 패거리였다.
“들어가 있어요, 나 돌과 쫌 더 있다 들어갈게요.”
“뭐, 같이 간다.”
시게이는 요코에게 같이 간다고 했다. 요코는 시게이와 눈을 마주하고, 말하려다 참았다.
“미안, 어쩌지... 할 얘기가 많은데..... 기다릴 수 있어?”
나 돌은 시게이에게 오기가 발동했다.
“기다릴게요, 교수님이 원하시면요.”
“고마워, 금방 이야기하고 올게, 그럴 거지?”
요코의 검정 눈동자가 더 커졌다. 시게이는 손으로 턱을 쓸어 만지며, 나 돌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던졌다. 나 돌은 시게이의 시선을 피해 얼굴은 돌렸다. 시선을 돌린 곳에는 세 사내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나 돌은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 지 몰라서, 고개를 숙였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금방 나올게, 기다려!”
요코는 나 돌의 어깨를 가볍게 손으로 흔들고, 집 안으로 향했다. 어깨를 잡은 요코의 손에서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요코의 향기는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시게이는 요코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 돌을 옆 눈으로 째려보았다.
“가!”
시게이는 나 돌만 들리게 ‘가!’라고 한 뒤, 째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차렷 자세로 서 있던 세 사내는 시게이가 없어지자, 편한 자세로 고쳐 섰다.
셋 중 가운데 서 있는 사내는 까만 얼굴에 입이 앞으로 많이 튀어 나왔다. 앞니가 심한 뻐드렁니라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나 돌은 세 사내와 맞은편에 서 있기도 애매해서 머뭇거렸다. 뻐드렁니가 나 돌을 째려보다, 손가락을 세워 밖으로 튕겼다.
“가!”
뻐드렁니를 벌리고, 시게이를 흉내 내며 가라고 했다. 뻐드렁니의 손등에 칼자국 흉터가 눈에 띄었다. 나 돌도 나가고 싶었다. 그러면 다시는 요코를 보지 못 볼 것 같았다. 큰 탁자에 딸린 나무의자에 앉아서, 시선을 세 사내에게서 다른 곳으로 돌렸다.
“가라는 말 몰라?”
뻐드렁니가 비아냥거렸다. 뻐드렁니 옆에 벌렁코는 셋 중에 키가 제일 컸다. 벌렁코가 앉아 있는 나 돌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러고 잡아 당겼다. 나 돌이 끌려 일어났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덤비지도 못하고, 도망치기도 애매했다.
“하지 마세요.....”
나 돌은 벌렁코가 잡고 있는 손을 떼어내려고 밀쳤다. 벌렁코는 손바닥으로 나 돌의 따귀를 때렸다. 연달아 벌렁코의 손바닥이 나 돌의 볼을 강하게 때렸다. 나 돌의 고개가 돌아갔다.
“가!”
뻐드렁니가 가라며 발로 엉덩이를 찼다. 나 돌은 본능적으로 뻐드렁니의 발을 잡으려고 내밀었지만, 뻐드렁니의 발은 막지 못했다. 아파서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찼다. 나 돌은 휘청이며 맞았다. 벌렁코가 나 돌의 두 발을 후렸다. 나 돌은 바닥에 무릎을 구부리며 쓰러졌다.
“죽어, 죽엇!”
나 돌은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며 외쳤다. 뻐드렁니의 발이 나 돌의 얼굴을 연달아 때렸다. 나 들은 맞으면서, 죽어도 할 수 없다는 오기를 발동시켰다. 하지만, 맞는 것으로 버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나 돌의 ‘죽어, 죽어....’라는 비명인지 반항인지 구별 못 할 외침만 울려 퍼졌다.
“가! 갓! 가라고!”
뻐드렁니가 발로 연달아 차면서,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벌렁코가 소리를 못 지르게 나 돌의 입을 막았다. 나 돌이 이빨로 벌렁코의 손가락을 물었다. 벌렁코가 손으로 나 돌을 떼어내려고 얼굴과 몸통을 가격했다.
“헉!”
나 돌의 가슴에 주먹이 박히자, 숨이 멎을 것 같아 이로 문 것을 놓았다.
“상처 나면 골 아파, 살살해!”
뻐드렁니가 벌렁코에게 주의를 주었다. 나 돌의 입 안에서 피가 흘렀다.
“죽어!”
벌렁코가 주춤하는 사이 나 돌이 이빨로 허벅지를 물었다. 악! 벌렁코가 비명을 질렀다.
벌렁코는 주먹으로 나 돌의 머리를 가격 했다. 나 돌이 바닥에 쓰러졌다. 두 팔을 벌리고 다리를 벌려 늘어트리고, 눈이 감겼다. 세 사내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야, 뭐해?”
“일어나....”
뻐드렁니가 나 돌이 뻗어버리자, 벌렁코를 째렸다. 벌렁코는 두 팔 벌리고 누워있는 나 돌의 목과 손목과 발목을 순식간에 눌렀다. 나 돌이 몸을 꿈틀거리며 두 발을 모았다. 벌렁코가 나 돌의 볼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일어나서, 가!”
벌렁코가 낮은 목소리로 나 돌의 귀에 속삭였다. 집 대문이 열리면서 요코가 나왔다. 뒤에 시게이가 따라 왔다. 쓰러진 나 돌 옆에 요코가 앉았다.
“돌, 나 돌, 일어나, 돌!”
요코가 나 돌의 얼굴을 살피면서 몸을 흔들었다. 나 돌이 눈을 떴다.
“죽여 버린다!”
눈을 뜨고 요코 뒤에 서 있는 세 사내를 향해 외쳤다. 일어나려고 상체를 움직이다 아, 신음을 토하며 다시 누웠다. 요코가 나 돌이 정신을 차린 것을 확인하고 일어섰다.
“미쳤어!”
뻐드렁니와 벌렁코 그리고 얼굴이 유달리 사각형으로 넓은 사내의 면상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세 사내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나 돌은 누워서 요코가 하는 걸 보면서 걱정이 올라왔다. 시게이가 요코를 구박하면 막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요코는 시게이는 개의치 않았다. 요코가 뻐드렁니의 얼굴을 다시 치려는데, 시게이가 손목을 잡았다. 요코가 고개를 돌려, 시게이를 노려보았다.
“놔, 미쳤어?”
“네가 처치할게, 비켜!”
시게이가 뻐드렁니 앞에 서더니 주먹으로 배를 가격했다. 뻐드렁니가 앞으로 쓰러졌다. 벌렁코는 발로 얼굴을 찼다. 벌렁코의 몸이 옆으로 직각으로 쓰러졌다. 사각형 사내를 주먹으로 가격하려는데, 사각형이 외쳤다.
“저는 안 했습니다,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게이가 사각형의 말이 끝나자, 몸을 훽, 돌려 팔꿈치로 가슴을 때렸다. 사각형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쓰러진 세 사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 돌은 누워서 시게이가 하는 걸 무심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시게이가 요코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미안, 미안해.....”
시게이가 고개를 들어 요코를 향해 용서를 빌었다. 요코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가, 가라고.....”
“나를 벌하기 전에는 안 가, 갈 수 없어.”
“가, 할 말 없어.... 꺼지라고!”
요코가 시게이를 째리면서, 외쳤다. 시게이는 고개를 숙였다. 요코가 나 돌의 옆에 앉았다. 나 돌의 몸을 뒤로 눕혔다. 웃옷을 거두고, 허리를 두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나 돌의 입에서 아~ 신음이 쏟아졌다. 누워서 신음을 쏟던 나 돌과 요코가 눈이 마주쳤다.
나 돌이 눈으로 웃었다.
“날 지배하려 하지 마, 그런 생각이 아니라며 일어나서 가!”
“벌을 내려, 그러기 전에는 못가, 안 간다.”
나 돌이 일어나 식탁의자에 앉고, 요코가 무릎 꿇고 있는 시게이에게 명령했다. 시게이의 부하 셋은 일어나서, 시게이 뒤에 같은 자세로 앉았다. 집 안에서 검정 양복의 사내 셋이 나왔다. 요코의 뒤에 거리를 두고 병풍처럼 섰다. 나 돌은 새로 온 사내들이 요코의 부하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벌? 가는 게 벌이다!”
요코는 시게이에게 가라고 하고, 뒤에 있는 사내들에게 눈짓을 했다. 사내 셋이 일제히 시게이 뒤에 앉아있는 사내들 앞으로 가서 섰다. 요코가 시게이의 얼굴을 발로 찼다.
“윽!”
시게이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나 돌이 깜짝 놀라서 눈이 커졌다.
10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