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부-
김진성이 휴대폰을 받아서 민재수교수의 이름을 여러 번 말해도 아무런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진성아 나야 재수”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민재수교수의 목소리는 술을 많이 마신 목소리였다.
“어! 그래”
“진성아 나 너에게 미안해서 전화했다. 나도 그 동안 힘들었다.”
“재수야 무슨 잘 못을 했는데 넌 잘 못 한 것 없어.”
“내가 모른다고 했어. 그때 경찰서에서 거짓말을 했어. 아니 당당하게 우리 같은 학생편이라고 말하지 못 했어.”
“그래.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너도 그 동안 나 만나면서 눈치로 알고 있었겠지만 다 알고 있었어. 그런데 재수야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나도 너처럼 결정했을 거야. 그러니까 너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때 내가 잘 못 했다. 진성아!”
“괜찮아. 재수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시간이 많이 흘렸잖아.”
“시간이 흐르니까 더욱 힘이 든다.”
“나도 한 때는 너희들을 미워했지만 한번이겠지 하고 생각하고 넘어 갔다. 그런데 그 일이 다시 나에게 족쇄가 될 줄은 몰랐다. 그게 지금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그 이유는 재수 너가 싫어서가 아니야.
그리고 그때 너의 뒤에는 이수성의원의 모략이 있었잖아. 너의 부모님께서도 너를 지금처럼 유학도 보내주고 교수까지 만들어 준다는데 인정하시는 것은 당연한 거야. 지금처럼 교수로 살기를 원하셨을 거야.
결국 이 모든 것은 이수성의원이 만든 거야. 너는 크게 잘 못 없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재수야.”
“그래도 미안하다.”
“재수야 그러면 부탁이 있다.”
“부탁! 그게 뭔데 부탁이라는 것이”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민재수교수! 난 지금 이 선거판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판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미소구에서도 재개발지역 주민들만 바라봤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을 바라본다.
첫 번째 계획이 TV토론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물어 본다. 거짓 없이 대답해줘. 토론회를 뒤에서 이수성의원이 조정하고 있지. 재수야!
내 생각보다 너의 생각이 중요하다. 이수성의원에게 지시나 시나리오 받은 것 있지? 중요하다. 거짓 없이 대답해줘.”
“사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난 너가 지금 이 순간 나에 대한 미안함과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올바른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된다. 오늘 같은 마음이라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 됐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너 내일 술 먹어서 실수했다고 딴소리 하지마라.”
민재수교수는 아무 말도 없이 있다가 순간 손에 힘이 빠져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다시 휴대폰을 들고 김진성에게 말을 했다.
“내가 지금하고 싶은 말을 너가 다 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그런데 너가 바라는 대로 하기에는 나 혼자 힘으로 어려운 것 알고 있지.”
“그래! 재수야 너가 지금 최선을 다해 이수성의원의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면 아마 그 인간은 재수 너의 가족들을 괴롭게 할 거야.”
“그래 진성아 내가 진심으로 말한다. 내가 널 지켜준다고 딱 잘라서 약속은 못 해. 그래도 망하게 하지도 않을 거야. 약속한다. 그럼 늦은 시간에 미안하다. 잘 들어가라.”
김진성은 전화를 끊고‘민재수교수도 그 동안 정말 많이 힘이 들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가 아니야, 재개발지역 주민들, 이소라기자, 민재수교수 그리고 아내 신미진까지 포기하면 실망할 사람이 너무 많이 있어. 그래! 이렇게 역으로 생각하니 포기 못 할 이유가 더 많아지네.’
김진성은 자신도 모르게 용기가 생기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이젠 책임이 더 많이 생겼다. 지금 선거에 출마한 것은 재개발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출마한 것이다. 나의 일이라고 다짐을 하면서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가슴을 울렸다.
기분 좋은 밤바람을 맞으며 가로등이 있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졌다. 길고양인가 하고 의심 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다시 그림자가 보였다.
‘또 미행을 하고 있구나.’
김진성은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민재수교수와 전화한 것이 생각이 났다. 만약 민재수교수에게도 미행이 따라다니고 있다면 심장이 급하게 뛰기 시작하였다.
‘재수가 위험하다.’
그럼 분명 전화 통화를 들었을 것이다. 김진성은 바로 이소라기자에게 전화를 하였다.
“여보세요! 이소라기자님”
“네! 이 밤에 무슨 일이세요?”
“급해요! 제가 금방 민재수교수랑 전화 통화를 했는데 미행이 붙은 것 같아요. 전화 통화를 들었으면 민재수교수가 위험해요! 도와줘요.”
“그래요! 제가 전화할게요. 집에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소라기자는 민재수교수에게 바로 전화를 하였다. 전화벨이 한참 울려도 받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다시 걸어도 역시 마찬가지로 받지 않았다.
‘지금 어디예요! 몸을 피하세요!’
문자를 보냈다.
이소라기자는 일단 급한 마음에 서울지방경찰청에 전화를 해서 핸드폰 위치 추적을 부탁하였다. 급한 마음에 옷을 제대로 입지도 않고 차에 가서 시동을 걸었다. 경찰청에서 전화가 왔다.
“서울지방경찰청입니다. 이소라기자님 이런 부탁은 곤란합니다. 이수성의원님 때문에 하긴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네! 너무 급해서요. 어디 신호 잡히는 곳 있나요?”
“마포대교인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을 것입니다.”
이소라기자는 차를 돌려 바로 마포대교로 향했다. 마포대교에 올라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좌우를 살피는데 한강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고 있는 민재수교수가 보였다.
이소라기자는 우선 차안에서 한강수상경찰대에 연락을 하고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민재수교수 쪽으로 다가갔다.
“민재수교수님! 지금 뭐하고 있어요?”
민재수교수가 힘없이 이소라기자를 쳐다보았다.
“우리 이야기 좀 해요! 민재수교수님 이 방법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예요.”
이소라기자는 급한 마음에 아무 말이나 하며 천천히 민재수교수 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
“우리 같이 생각해봐요! 내가 도와줄게요! 이제 우리 같은 편이잖아요.”
민재수교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더 불안해진 이소라기자는 다시 말을 걸었다.
“민재수교수님도 잘 아시잖아요. 저는 우리 집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제가 생각하는 것과 민재수교수님 생각과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우리 힘을 합쳐서 조금씩만이라도 변화시켜 봐요.
이소라기자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강한 어조로 이야기 하였다.
이소라기자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강한 어조로 이야기 하였다.
민재수교수님 강의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하는 강의잖아요!”
강의이야기에 드디어 민재수교수의 얼굴에 힘이 느껴졌다. 이윽고 민재수교수 입에서 대답을 하였다.
“그래요! 우리 이야기 좀 하죠”
“네! 우리 많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네요. 생각도 비슷하고 김진성후보에 대해 같이 해 봅시다.”
“네! 그렇게 해요. 기다려요 제가 그 쪽으로 가겠습니다.”
“이소라기자님 사실 조금 전까지 저는 무서웠어요. 나를 어떻게 하는 것 보다 그 쪽 가족들이 우리 가족을 괴롭힐까 해서요. 그리고 진성이에게 과거에 상처를 준 것도 부족해서 이 선거에서 그가 몰락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나 해서요! 그러나 이젠 알았어요. 그렇게 되는 것이 앞으로 내 인생을 더 괴롭히고 무섭게 만든다는 것을요.”
“좋아요! 그럼 저를 믿어요, 아니 우리 같이 서로를 믿어 봐요.”
“그래요.”
“오늘은 술도 많이 마셨으니 제 차로 가시죠.”
이소라기자는 민재수교수를 차에 태웠다. 그리고 비상연락을 했던 경찰에 연락해 괜찮다고 아무 일 없다고 해프닝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민재수교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김진성후보가 전화를 했어요!”
“진성이가요?”
“네! 자기한테 미행이 붙였는데 민재수교수가 위험할 것 같다고 급하다고 도와달라고 해서 제가 이렇게 찾아 온 것입니다.”
“그 놈은 바보인가 봐요. 그냥 모르는 척하면 자기에게 더 이득일 수도 있는데 진성이가 그런 놈이에요.”
“아니요. 지금은 우리 한 명 한 명이 모두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조심해야 해요. 민재수교수님도 물론입니다.”
“아버님이 무섭지 않으세요?”
“아버지요. 저도 한 때는 존경했습니다.
그 열정과 정확한 계산법. 대인과계 등 배울 점이 너무나 많아요. 그런데 요즘은 아버지에게서 정의감이 사라지는 것 같고 다른 꿈을 꾸시는 것 같아요.
본인이 정치에 입문하게 된 6월 항쟁을 이야기 할 때는 눈에 정의감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변하셨어요. 그런 정의감이 사라졌고 자기 세상을 만들려고 하세요. 왜 그렇게 욕심을 내시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부정이 난무한 세상을 만들려고 하세요.
주위에 권력가나 재력가들만 편하게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하세요. 그렇게 해서 그 힘이 본인에게 집중되는 세상을 꿈꾸시는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런 세상이 되지 않게 꼭 막아야 해요.
우리 아버지의 그 막강한 권력과 재력가들을 이기려면 한 명 한 명이 중요해요. 우리 아버지는 주위의 모든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서 우리를 막으려 할 거예요. 그러나 저는 이미 저의 길을 정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꿈은 허황된 것이고 잘 못 된 것이라고 설득하기로 다짐하였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것입니다.”
“저는 아버님이 점점 무섭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막으려면 김진성후보와 민재수교수님이 꼭 필요해요. 물론 우리 오빠가 정신 차리면 좋겠지만 24시간 컨트롤 당하고 있어 다른 생각을 못 할 것예요. 그리고 아버지의 눈에 들려고 오직 그 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걱정이에요!
본인도 답답하겠지만 본인의 길은 아버지가 정한 길로 가야 한다고 신앙처럼 믿고 살고 있는 것이 문제예요. 아버지의 목각인형인 것이죠.”
“민구도 다 가진 것 같지만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닌 것 같군요.”
“네. 그렇습니다. 가끔 오빠가 불쌍해 보일 때가 있어요.”
“세상 누구도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것 같군요.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판단하고 살아가는 옳고 그름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소라기자는 민재수교수와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고 서로 힘이 되자고 하였다.
특히, 민재수교수는 이수성의원의 권력 앞에서 이제 그만 비굴해지자고 스스로 굳게 다짐하였다. 이소라기자는 민재수교수를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김진성에게 전화를 하였다.
“여보세요! 이소라기자입니다.”
“네! 민재수교수는요?”
“네! 잠시 마음이 복잡했었나 봐요. 집에 잘 데려다 주고 왔습니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소라기자님 이렇게 저와 민재수교수를 도와줘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괜찮습니다. 전 이미 집에서 포기했으니까요.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이라도 어느 돈 많은 재력가 졸부에게 시집보내려고 난리를 치시겠죠. 제 걱정은 마시고 후보님 걱정이나 하세요?”
“네! 그럼 조심해서 집에 들어가세요?”
이소라가 집에 들어오니 이수성의원이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눈짓으로 앉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소라야. 요즘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힘들지 않느냐?”
“아니요! 기자가 무슨 정해진 근무시간이 있나요? 참 대통령 연설문은 괜찮았어요?”
“그럼. 누가 써 준 글인데. 아주 완벽했다.”
이소라기자는 이야기의 요점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이야기를 꺼냈다.
“에너지 개발은 정말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이번에 배웠습니다. 한 3부작으로 다큐 제작 편성해 보려고 하는데 괜찮으시죠. 그리고 볼리비아도 가서 취재도 하고 왔으면 합니다.”
“그래! 너도 알게 되었구나. 대체에너지 개발은 중요하다. 다큐 재작은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볼리비아 건은 아직 계약 단계니까 갈 필요까지야 있겠냐? 다른 선진국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와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내용을 편성해서 방송해 보자구나. 그러면 국민들이 광물자원과 대체에너지에 대해 더 공감을 갖게 될 것이다.”
이소라기자의 선공에 이수성의원이 속으로 당황하였다. 항상 단답식으로 대답만 이소라기자가 말을 끌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수성의원은 다시 정신은 바로 잡고 말을 이어갔다.
“소라야 본업에 충실해야 할 때야. 선거기간이다. 우리 집 누구도 구설수에 오르면 안 된다. 알긋나. 그리고 아무나 만나지 말고 이곳저곳에서 말이 많다. 쓸데없이 사람 만난다고 이 아버지에게 자꾸 말이 들어와서 곤란하구나.”
“네! 아버지.”
이소라기자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바라 본 이수성의원과 눈이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눈을 피하고 고개를 숙였다. 역시 대단한 힘이 느껴진다. 차마 그 눈빛과 정면으로 대결하기에는 아직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무슨 말인지 알았으면 그만 올라가서 자라.”
이소라기자가 2층으로 올라가자 이수성의원은 아내를 서재로 불렸다.
“소라 제 어떻게 하면 좋겠노?”
“네! 그게 무슨 말이세요?”
“어디 다 시집을 보내거나 이민을 보내 버릴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나이가 마흔인데 어디에 시집을 보내요.”
“으그! 나 참! 어디 나이 먹었어도 돈 많은 놈이라도 구해봐”
이수성의원은 아내에게 대신 화를 내었다.
“그리고 자금이 필요해. 모임 아줌마들에게 돈 좀 거둬. 보상은 충분히 해 준다고.”
“얼마나요?”
“유통되는 현금 전부 다 받아와. 내가 여직까지 벌어 준 돈이 얼마인데. 다들 준비들 하라해. 현금으로.”
“네! 말은 해 볼게요.”
아내가 서재에서 나간 뒤 이수성의원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다.‘아무래도 더 빨리 진행 해야겠어’하고는 새벽에 최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산자부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산자부 차관 사모에게 선물을 보내라고 했다. 현금으로 말고 좋은 핸드백 하나 보내라고 했다. 차관님께서 일을 잘 도와줘서 드리는 거라며 절대 부담주지 말고 주고 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