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개선점을 발견하다>
30살.
본격 청춘 종료의 때이자, 기성세대로 돌입하는 단계.
때로는 인생의 절정이자 황금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회초년생의 어리숙함은 어느 정도 극복했고,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성숙해져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생을 태양으로 비유하자면.
20대가 떠오르는 태양이자 새벽.
30대는 해가 만천하에 발하는 아침이자 오후였다.
그런 시기에 나는 군입대를 위해 국방부 소속 서울 지부 훈련소에 와있었다.
훈련소 입대 전, 나는 벤치에 앉아서 주변을 관망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지배 너도 결국 가긴 가는구나.”
“누나, 갔다 온 사람으로서 조언 하나 해줘요.”
“조언은 무슨, 헌터 생활보다 그때가 훨씬 편했다. 보내준다면 한 번 더 가고 싶네.”
“진짜… 저 인간 누가 데리고 왔어.”
곳곳에서 가족, 친구, 혹은 연인들의 작별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헤어짐의 슬픔을 농담과 장난으로 숨겨보려 하는 이들.
그렇지만 곧 터져 나오는 입대자의 눈물에 묻혀 그들도 덩달아 눈물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평소에는 하지도 않을 사랑해니 고마워니, 그런 낯 간지러운 말을 입에 담았다.
나에게는 하도 먼 이야기였다.
29년간 공부만 해오면서 살았고 누군가와 만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내가 초등학생 때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였고, 대화라곤 그 빌어먹을 지도교수에게 보고할 때나 발표할 때 정도밖에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버틸 수 있었고 버티다보니 나름 익숙해지기도 했으니까.
물론, 결과를 내서 인생이 편해지고 나면 이제는 그동안 못해봤던 여러 가지를 즐겨보면서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박사졸업은 물 건너갔고, 학계에서는 사실상 제명되다시피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지금 보는 것처럼 입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군대라는 게 그렇게 나쁜 곳만은 아니지.’
말 그대로, 특히 헌터로서의 삶을 목표로 한다면 입대라는 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딱히 다른 나라와의 전쟁이 아니더라도, 능력자들이 난무하고 몬스터가 들끓는 이 세계에서 전투법을 배워놓는다는 건 아주 큰 이득이었다.
게다가 1년이라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다.
군대의 경험을 살려 몬스터와 손쉽게 싸울 수 있게 되면 길드에서 수주 받는 퀘스트로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었다.
몬스터를 잡는 건 목숨을 걸어야 했기에 그 포상이 알바 같은 것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높다는 건 당연한 수순.
‘그러나 2성 F급인 나와는 멀고도 먼 이야기였지.’
물론 헌터로서의 삶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군대의 경험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다.
게다가 세계의 70% 이상이 2성 능력자이고, 그들이 헌터의 길을 걸어봤자 적당히 입에 풀칠을 하고 사는 게 전부.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다니, 바보나 하는 짓이다.
“오늘 입대할 능력자들 연병장으로 모이십니다!”
“이제 진짜 가야겠다.”
“안 돼 세나야! 가지마!”
“얘가 무슨… 내가 울어야지 너가 울면 어떡해.”
군복을 입은 부사관이 이쪽으로 모이라고 하자 또 주변이 울음바다가 됐다.
물론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기에, 나는 가장 먼저 벤치를 떠나 연병장으로 집합하는 사람이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내 뒤를 따라 연병장으로 집합했다.
곧 입소식 연사가 시작됐고 그렇게 내 1년의 군생활이 시작되었다.
x x x
입대하고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역시나 신체검사였다.
이미 받은 신체검사를 다시 한 번 더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그간 능력등급이 바뀌었을 지도 모르며 가끔씩 성(星) 자체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성(星)끼리 한 막사에 배치되는 특성상 이 과정은 필수였다.
안 그래도 같은 성 내에서도 등급에 따라 힘의 차이가 확연한데, 아예 성이 달라지는 건 거의 인간이 바뀌는 수준이라 한 곳에 뭉쳐놓는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성 훈련병들 사이에 4성 능력자가 끼어버렸다고 가정해보자.
보통 2성 능력자들의 훈련은 3성이 맡게 되는데 훈련병이 부사관보다 등급이 높다니, 말이 되겠는가.
안 그래도 힘이 지배하는 게 이 사회인데,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지는 뻔했다.
[69번 훈련병 김공대, 현재능력: 2성 F등급, 잠재능력: 2성 F등급.]
내가 신체검사 후 검사관에게 들었던 내용이다.
19살 때 받았던 신체검사 기록과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2성 F등급이면 특수능력도 못 쓰고 할 수 있는 거라곤 간단한 기(氣)강화가 전부.
신체에 기를 활성화시켜서 힘, 민첩성, 인식능력 등, 신체 활동과 관련된 모든 능력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것.
그것이 기(氣)강화의 정의였는데 보통 그 세기는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강력해지곤 했다.
예로 3성급에 이르게 되면 검의 날 부분을 부분강화를 통해 주먹으로 쳐낼 수도 있게 된다.
2성 F등급인 나에게는 꿈도 못 꿀 이야기였다.
물론 어제까지의 ‘평범한’ 나였다면 말이다.
“여기 혹시 특수능력을 쓸 수 있다 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검사관이 그렇게 말하자 한두 명씩 사람들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사관이 앞으로 나와 달라 하자 검사관 옆에 줄줄이 섰다.
분명 그들 대부분이 3성 이상의 능력자일 것이다.
3성 능력자의 정식명칭은 ‘특수능력자’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특수능력이 3성이 되면서 개화되기 때문이다.
몸에 기를 흘려보내 신체를 강화하는 게 다인 2성 능력자들과는 달리, 3성 특수능력자들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능력을 쓸 수가 있다.
불을 내뿜고, 바람을 다루고, 전기를 생성해내는 것과 같은 단순한 공격계 능력에서부터, 보조계 그리고 복합계 능력까지 능력은 아주 다양했다.
그러나 그 원리에 대해서 제대로 밝혀져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고, 동시에 내가 평생을 바쳐 연구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당신은 분명…”
나도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가려하자 내게 검사관이 내게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냈다.
“2성 F등급 능력자가 아닙니까? 장난치는 거면 그만둬요.”
검사관이 내 얼굴을 기억하는 듯했다. 그럴 만했다.
2성 능력자는 흔했지만 잠재능력까지 2성 F등급인 능력자는 아주 드물었으니까.
‘그렇다고 공익을 주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은 약한 능력자가 살아가기엔 별로 좋은 나라가 아니다.
과거부터 징병제가 있어왔던 나라의 특성상 능력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징병제를 폐지할 건덕지도 없었고, 오히려 능력자제재기관이라는 걸 설립해서 국방부와 통합해버렸다.
물론 강한 능력자에게는 오히려 징병제를 받들어 찬성할 만큼 훌륭한 혜택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약한 능력자의 입장에서는 해야 할 의무만 늘었다 뿐이지 목숨을 걸기에는 그 값이 너무 쌌다.
한 번쯤 들고 일어설 법도 했으나 정작 들고 일어나서 바꿔야할 부분엔 원래 그런 거라며 노예근성으로 넘기는 부분이 어찌 보면 대한민국답기는 했다.
“장난 아닙니다. 특수 능력, 쓸 수 있어요.”
나는 무덤덤한 말투로 나지막이 검사관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반 이상이 수군대며 의심 많은 시선을 보낸다.
몇몇은 정말?, 하며 설마의 기대를 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이 나를 비웃기 일쑤였다.
그렇다.
지금 바로 이 상황이 2성 F등급이 가지는 사회적 위치였다.
“무슨 능력을 쓸 수 있는데요.”
검사관이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는 듯 조소가 담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혹은 빨리 일정을 끝내고 쉬고 싶은데 또 귀찮게 관심병사 하나 걸렸다는 눈치였다.
“무슨 능력을 보고 싶습니까.”
“뭐요…?”
검사관이 내 답을 전혀 예상치 못한 내 답변에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지었던 확신의 표정은 이 정신병자는 또 뭐야, 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주변이 더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누구는 내 귀에 들리도록 저 관심병사 그냥 퇴소시켜버려, 저 새끼랑은 절대로 같은 생활관 되고 싶지는 않다 등, 나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자, 자. 지금 사람들 당신 때문에 다 기다리니까 빨리 자리 가서 앉아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검사관이 이내 질렸다는 목소리로 나를 다시 들여보내려 했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빳빳이 선 채 다시 한 번 더 꿋꿋이 말했다.
“무슨 능력이 보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검사관이 고집부리는 나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체념한 듯 말을 이었다.
“불이나 쏴보든가. 화염능력, 파이로키네시스 알지? 나 참 왜 이런 또라이가 걸려가지고…”
검사관이 짜증난다며 이제는 존댓말까지 없애버린 채 반말로 나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뭐 대수냐 싶어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욕을 먹거나 별종취급 당하며 무시 받는 건 익숙하다.
30년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그럴 때면 나는 마음을 닫은 채 바닥을 기며 비굴한 웃음을 지어댔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지도교수에게 내 29년의 인생이 전부 부정당하고 쓰레기 다루듯 버려졌으며, 이후 1년 동안 이루 말하지 못할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바로 근처에 있던 특수 능력을 시험하는 장소에 왔다.
앞서 그곳에 와있던 다른 특수능력자들과 검사관들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들도 이야기를 엿들었는지, 대부분이 나를 비웃음의 눈초리로 쳐다봤고, 아주 가끔씩 몇 명만 설마 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내가 비어있는 라인 한 칸에 서자, 10m 가량 앞에 과녁 하나가 보였다.
그 속에는 충격흡수 능력이 깃들어있는 기석(氣石)이 담겨있었고, 그 뒤에 달려있던 계측기가 다양한 수치를 표시해주고 있었다.
이제는 반격에 나서야할 때이다.
약자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시대는 끝이다.
태어날 때부터 미래가 결정되어 있는 이 빌어먹을 세상에 한 대 먹여줘야 한다.
나를 내려다보고 비웃던 자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
“후……”
나는 심호흡을 하며 그간 1년 동안 해왔던 모든 것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상전이(Phase transition)라는 것이 있다.
물이 차가워지면 얼음이 되고, 물이 뜨거워지면 수증기가 된다.
모든 물질에는 그러한 성질이 있다.
기(氣)를 매개하는 기입자(Chakra particle)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입자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담겨있다.
그야말로 기적의 입자.
그리고 그 기적이 어떠한 형대로 발현될지, 그 가능성의 분기점이야말로 바로 기입자의 상전이(The phase transition of the Chakra particle)이다.
지금까지 모든 능력자들은 상전이 과정을 그저 능력이 개화되면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등한시해왔다.
뭐, 이해할 수는 있다.
어차피 원리가 어떻게 됐든 간에 자신이 그 능력을 쓸 수 있고 그걸 발전시키기만 하면 됐던 데다가.
기물리학을 전공하는 다른 학자들도 처음에만 좀 근원에 대해서 팠을 뿐, 나중엔 전부 기술 쪽과 연계해서 연구비를 타내기 일쑤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생각을 달리했다.
만약 상전이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고 이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면?
2성 F등급이라고 단정 지어진 나였기에.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계속 바랐던 나였기에.
거기서부터 끓어 나온 끊임없는 갈망과 노력이 나를 여기까지 다다르게 해줬다.
나는 가슴 앞에 오른손을 들어 몸에 기(氣)를 활성화시켰다.
F급에 알맞은 미약한 노란빛이 내 온몸을 두른다.
쓸데없이 다른 곳을 강화시킬 필요는 없다.
아직 ‘강화’라는 결과로써 결정되어질 필요도 없다.
아무런 능력도 갖추고 있지 않은 오로지 순수한 형태만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정수로써 그대로 남겨둔다.
그렇게 순수한 기입자 하나하나를 내 오른손 안에 집중시켰다.
그러면 그럴수록 2성 F등급이 결코 낼 수 없는 찬란한 하얀빛이 내 오른손에서 발했다.
그 빛은 갈수록 밝아지면서 그동안 나를 무시하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저게 뭐야.”
“오른손에 기 모으는 거 아니야?”
“기는 노란색이잖아! 흰색 기라니, 들어본 적도 없어.”
“빛 계열 능력인가…?”
“그렇지만 분명 아까 화염능력이 어쩌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내 능력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
애초에 2성 F등급이기에 낼 수 있는 출력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마치 여자들이 속옷을 입을 때 영혼까지 짜내듯,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기를 온몸에서 끌어 모았다.
그리고 임계점에 다다른 가능성의 정수를 앞으로 힘차게 던졌다.
새하얀 구체가 과녁을 향해 똑바로 날아간다.
임계점에 다다른 순수한 기입자들은 약간의 충격에도 모종의 능력으로 결정되어질 것이다.
스핀 코드(Spin code).
유전자가 ATCG염기서열을 통해 정보를 저장하듯, 순수한 기입자 역시 스핀코드를 통해 미래의 자기 자신을 저장해 놓는다.
그리고 내가 던지기 직전에 미리 입력해놓았던 코드는 바로 ‘화염의 코드’.
파앙―!
내가 던진 새하얀 구체는 과녁에 닿자마자 순간 점으로 압축되는 동시에 새파란 불꽃이 된다.
청백염(淸白炎).
화학적인 불꽃이 아닌 이상, 섭씨 3만도를 넘어가야지만 낼 수 있는 색.
일반 화염능력자들이 내던 색깔은 우리가 흔히 보는 불꽃색인 빨강, 주황, 혹은 노랑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거진 5천도 내외의 온도였다.
“푸른 불꽃!?”
“저건 분명 4성 이상의 화염능력자가 쓰는 기술…”
“방금 전엔 2성 F등급이라며!”
주변의 소란스러움과는 상관없이 곧이어 계측기의 수치가 띠리릭 하고 떴다.
『기력량: 2성 A등급
기압축도: 4성 F등급
온도: 2만 5천도~3만 7천도
………
위력 등급: 3성 D등급』
기력량이 아직 2성 A등급이라…
가능한데까지 온몸의 기를 끌어 모았는데 결국 2성에서 그쳤다.
역시 태생적인 기의 량은 한계가 있다는 건가.
적어도 F등급이 아니라 B등급, 아니 C등급만 되었어도…
나는 분해서 손을 꽉 하고 쥐었다.
아직 이 정도로는 뭣도 안 된다.
능력 한 번 쓰는데 몇 십초 넘게 걸리는 것도 그렇고, 애초에 기본이 되는 기의 총량이 이렇게 작아서는 연속으로 쓸 수도 없다.
그 사실이 그대로 내 몸에 영향을 끼쳤는지.
“허억… 헉…”
결국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어버리고 말았다.
“젠장…”
나는 분한 듯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무릎을 딛고 똑바로 섰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 나를 보던 주변의 시선은 아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특히 나를 대놓고 무시했던 검사관은 넋을 잃은 채 입을 떡하니 벌리고만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게 뭘 대수라는 듯 원래 자리에 돌아가서 앉았다.
‘다른 능력을 연구하기 전에, 우선 이 처참한 기력량부터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