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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어른
작가 : 세느아
작품등록일 : 201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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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녀와 나
작성일 : 18-11-17     조회 : 323     추천 : 1     분량 : 2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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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 나는 같은 회사 동료였다.

 군대 제대후 쓸데없는 헛바람이 들어 허송세월을 보내느라 졸업이 늦어진 나는 그녀의 두 기수 아래로, 나이는 내가 더 많았지만 그녀는 내게 있어 하늘같은 선배님이었다.

 나와는 달리 그녀는 착실하게 학교를 다니고 제법 우수한 성적으로 매끄럽게 입사한 케이스였다. 이것도 어찌 보면 그냥 들었던 이야기여서 내가 진정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녀에 대한 그런 뜬구름 잡는 식의 두루뭉술한 인상이 내게 유달리 멋져보였던 걸 보면 아마 입사 당시까지도 나는 철이 좀 덜 들었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얼굴과 이름정도는 알고 있지만 상대방은 나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사이. 그녀에 대한 인식은 겨우 그 정도였다. 오다가다 인사만 몇 번 나누고, 필요한 자료를 가끔 건네받던 그녀와 같은 부서로 발령이 났을 때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난감한 기분이 되었다. 그럴만한 이유도 없을 뿐더러 명확하지 않은 불편함이 뭉글 뭉글 솟아올랐는데 스스로도 그 의도와 목적이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것이 몇 기수 차이나지 않는 그녀와 나의 평판이라던가,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비교당할만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라고 결론지었다. 실제로 인사발령이 난 그 날 나는 몇몇 전화를 받았고, 내가 회사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연락할만한 존재라는 것에 대해 놀라워했으며, 그들의 말투에 알게 모를 질투와 네가 대체 왜? 라는 감추지 못할 불신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에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불이 붙나 싶던 관심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고생 한번 하고 오는 거지. 내팽개치듯 던져놓은 누군가의 마지막 말이 내 귓가를 맴돌 뿐이었다. 겨우 그정도 가십거리였다. 그런 척박한 세계 속에서 나는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발령 난 곳은 그다지 주목 받고 있는 부서는 아니었다. 사실 그런 부서가 있는지도 몰랐다. 입사한지 오래되지 않았기도 했지만 ‘제약기록내외입출입관리부’라는 한번 들어서는 대체 무슨 업무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 부서명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만한 인상을 주는 게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자리에 있던 몇안되는 사무용품과 개인 소지품을 챙겨 터덜터덜 복도를 따라 걸어 나가면서 나는 지독한 외로움의 응어리 같은 것을 느꼈다. 나름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뎠다는 충만감과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왔건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아마도 세월이라고 부를만한- 그런 외로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많이 젊었던 나는 그게 또 이상해서 괜스레 짜증이 났고, 일부러 발소리를 탁탁 내가며 계단을 내려갔다. 하필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고장 날 것은 뭐이며 하필 옮기게 된 사무실은 원래 있던 곳보다 아래층인건지. 힘은 덜 들었지만 좌천당하는 느낌이었다.

 소모적인 감정에너지까지 써가며 새로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겨우 이정도의 운동량으로 땀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던 걸로 기억한다. 항상은 아니었지만 운동은 싫어하는 편이 아니었고 종종 연락이 오면 축구나 배드민턴 같은 스포츠 활동도 임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입사 이후로 운동이라고 부를 만한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남의 일처럼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제 반응에 황당한 기분이 되었다.

 그때 옆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무심코 바라보았다. 그곳엔 나보다 좀 더 많은 짐을 상자에 넣고서 그걸 힘겹게 들어 올린 모양새로 서있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앞머리가 흘러내린 땀 때문에 이마에 들러붙어 있었지만 그녀에겐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보였다. 심하게 헥헥거리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방금 전까지 운동량 부족으로 살짝이나마 고민에 빠질 뻔한 내가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가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밌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었다. 이미 여기는 사무실이었다. 도착지였다는 소리다. 그리고 내가 말했다.

 "저기..그 상자 내려놓으시면 좀 덜 힘드실 것 같은데.."

 "네? 아.."

 그 날, 그 시간을 기점으로 나와 그녀는 같은 부서 동료가 되었고, 약 3년을 같이 일했다. 물론 훗날의 일은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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