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아이어른
작가 : 세느아
작품등록일 : 201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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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와 나(1)
작성일 : 18-11-17     조회 : 319     추천 : 1     분량 : 3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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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로 나는 그와 몇 번 더 만났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내가 치호에게 건네준 정보보다 그가 내게 가져다 준 정보가 어느 면에서든 나았다. 제법 두툼하고 핵심에 가까운 정보였다. DM이라는 기업을 파악하는 데에는 치호의 이야기가 큰 지분을 차지했다.

 도명제약으로 출범한 ㈜도명그룹은 실상 그 뿌리를 기반으로 완전히 사라진 그룹에서 ㈜DM그룹으로 새로 시장에 진입했다. 자산 10조, 순이익 250억원으로 꽤나 잘나가고 있는 모양이었고, 처음부터 작정한 듯 클럽사업에 주력했다. 왜 클럽사업이었을까. 제약회사에서 주류업으로 바꾼다는건 얼핏 연결고리가 없어보였다. 도명을 지우고 나오고 싶었다면 그룹명도 아예 달리했어야 했다.

 “대외적인 것만 봐서는 안 돼.”

 내 물음에 치호는 대답했다. 표면적인 정보만 본다면 DM은 클럽사업 하나를 주력으로 삼아 뚝심으로 일어서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유흥과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네트워크와 사업수완은 겨우 1, 2년 안에 뿌리를 내리기 힘들다. 그게 폐쇄적이고 노골적인 사업일수록 더욱 그랬다. DM은 크게 클럽산업. 국내 서점유통 체인 중 하나인 지학유통 그리고 말할 것 없이 제약회사라인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체인이고 김도명은 다른 산업체가 무시할 수 없을 꽤나 높은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까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다 업체 인테리어 기획안을 넘겨받은 나보다 치호의 정보가 낫다는 사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가 미심쩍은 표정을 풀지 않고 그에게 물었을 때 그는 아는 기자가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지만 영 부족했다. 기자가 그렇게 아는 것이 많을까? 하지만 그 말이 거짓이라면 치호는 대체 어디서 정보를 찾아온다는 말인가.

 그 기자가 내 정보까지 다 알려줬다는 거냐고, 반쯤은 비아냥거리며 내가 물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 다만 그렇게 말했다.

 내가 한 소리기는 했지만 나 같은 사람, 이라는 뉘앙스가 들어간 말에 기분이 나빠진 건 도리어 나였다. 치호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바람에 내가 아주 유치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다음부터는 어쩐지 정보의 출처에 대해 말하기가 껄끄러워졌다. 대신 나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해보기로 했다.

 그 후로 별다른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었지만 나는 치호가 말한 '중심'이라는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중심을 생각하고 있자면 여지없이 과녁과 정중앙의 빨간 구가 떠올랐다. 그곳에 화살이 꽂히면서 원을 꿰뚫는 장면. 그럴 때마다 마치 내 심장에 대신 맞은 듯 눈썹을 찌푸리게 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멈추기 어려웠다. 떠올려버린 이미지는 중독성이 있었다. 보통 사람이 말하는 눈썰미가 좋다 눈치가 빠르다 관찰력이 좋다. 이 세 가지를 웃도는 개념이 중심이 아닐까 싶었다. 즉, 고유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거나? 고등학생이 캐내오기엔 어려울 법한 정보들이 쌓여갈수록 심증은 확증으로 굳어갔다.

 "그 밖에 뭘 할 수 있어?"

 앞 뒤 생략에 툭툭 던지는 말투를 구사하는 치호 덕에 내 실력도 나름 늘었다. 당해봐라 라고 소심한 복수를 겸해 던져보았는데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의아하다는 표정도 없었다. 대신 잠시 고민을 했다. 이걸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그 밖에 특별히.. 얼음을 깰 수 있어."

 나는 말 그대로 얼음처럼 굳었다. 잘못 들었나?

 "진짜야. 그냥 딱딱하게 얼은 얼음웅덩이 같은데서, 한번만 내리치면 깨뜨릴 수 있어."

 "뭐?"

 진지하게 말하는 치호의 얼굴도 서서히 굳어졌다. 말하는 모습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막상 이런 걸 말로 해본 적이 없고 말로 옮기다보니 쓸데없이 웃기고 어이없는 말이란 걸 제 스스로 자각 한 모양이었다. 어이없어 되물었지만 웃음이 비질비질 새어 나오는 걸 끝내 막지 못했다.

 한동안 그걸로 치호를 꽤나 놀려먹기는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겨울이 오면 꼭 시켜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작은 생각이 나의 지금 상황을 좀 더 평화롭게 느껴지도록 했다.

 

 내가 김도명이란 이름을 검색했을 때 그다지 개성이 있지 않은 만큼 여러 동명이인이 나왔다. 대략 다섯 번째쯤 내가 찾으려 했던 '김도명'이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아마 메인화면에 뜨지 않았을까. 떠오르는 사업의 흥한 기운만큼이나 그도 유명세를 타던 시기였으니... 어쨌든 어디서 가져온 증명사진 같은 네모난 프레임 속에 무표정한 김도명이 있었다. 여느 회장님들이 그러하듯 한일자로 굳어진 입매. 축 쳐졌어도 어딘지 부리부리한 눈. 심지가 굳은 건 알겠다만 삶이 피곤해 보이는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얼굴. 조금 늙었으려나 싶었지만 최근 사진이 아닐 수도 있었다.

 치호는 유령 같다, 는 표현을 썼다.

 "왜?"

 "예측이 불가능하달까. 의도가 안 보인달까. 제약회사를 하다가 사업 성격을 싹 바꿔서 온 것도 좀 이상하고."

 "그게 유령 같은 거야?"

 "사람이라면 본질적인 특성이 있고,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자신의 그런 성질을 남에게 전파하고 영향을 주고자 하는 법인데 그러질 않으니까 묘하다는거야."

 "사업가를 잘 아네."

 "우리 아버지가 사업가라고 내가 말 안했나?"

 치호가 입꼬리를 늘이며 웃었다. 이런 게 그 특유의 농담이란 걸 모를 때는 내가 여린 마음에 상처를 준 건 아닌지 고민했었다.

  DM은 초반부터 와인과 클럽의 만남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서 주류산업에 발을 내딛었다. 클럽의 고급화. 그리고 브랜드화. 포부는 대단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두 자리 수 매장을 개점하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 자금이나 경쟁력이나 여러모로 어려운 사업이었다. 이 년 전 7호점을 오픈하면서 김도명회장은 비공개 인터뷰에서 DM클럽의 분점을 늘리는 의도를 물었을 때 말했다고 한다. 노는 거 좋잖아요. 전 사람들이 좀 더 당당하게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후론 어떠한 인터뷰도, 입장도 밝힌 적이 없었다.

 글로 접하긴 했지만 그 말투도, 그 말이 주는 느낌조차도 내가 검색한 '김도명' 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도명제약에 다닐 땐 대표이사장의 존재를 인지해본 적이 없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얀 건물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김도명이 대표란 걸 알게 되었을 때, 설핏이나마 어떠한 이미지를 불러왔다. 편견일지도 몰랐다. 몰랐지만 김도명과 DM은 알아도 잘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유령 같다는 치호의 말에 나도 어느 정도는 공감했을지도.

 왜 그랬을까. 김도명씨. 그 사람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를 리 없었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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