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아이어른
작가 : 세느아
작품등록일 : 201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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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와 나(3)
작성일 : 18-11-18     조회 : 302     추천 : 1     분량 : 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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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 앞에 차 한대가 세워져있었다. 차양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한 남자가 우리를 보더니 아는 체를 했다. 형식적인 인사를 하며 남자는 과장되게 우리를 환영했다. 그의 비실비실한 웃음에서 첫 번째 계약이 파기되고 우리가 두 번째 업체라는 말이 생각났다. 너무 친절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쉴 새 없이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졌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던 말던 남자는 내 옆에 있는 강대리와 짝을 이루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말을 끊지 않고 이어갔다. 주로 별 것 아닌 이야기였지만 정적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기세여서 나도 잠자코 있었다.

 "내부 설계는 어느 정도 되어있어서 마무리만 잘 진행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만.."

 그럴듯하게 말하는 직원을 지나쳐 내부로 들어갔다. 헐벗은 상태의 건물은 황량하고 들어가는 동안 한 단계 어두워졌다. 발소리가 동굴처럼 울리고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인지 건물 내부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살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눅눅하고 습했다. 진한 시멘트냄새가 발아래부터 올라왔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내가 말했다.

 "사진보다는 괜찮은데요?"

 내 말에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죠? 이게 구조랑 디자인이 합쳐지면서 주는 감각이라는 게..사진이랑은 비교가 안 되거든요. 약간 틀어졌을 뿐이지 디자인도 업계에서 꽤 유명한 분과 상의해서 진행한 거라.."

  천장이 높아 반 2층으로 계획하는 1층과 지하 1, 2층을 쓴다는 DM 11호점(예정 건물)의 기본적인 디자인이 굴곡을 테마로 삼았다. 여러 출입문과 공간사이의 경계를 나누는 부분이 둥그스름하게 또는 의도한 방식으로 약간씩 찌그러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게 헐벗은 기운을 채 덮지 못한 삭막한 내부를 부드럽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높은 천장이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또한 그 때문인 듯 했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라면 한 번에 시야에 들어차지 않는 내부 구조였다. 어림짐작으로 전기선을 따라 CCTV를 달아보아도, 또 그 숫자를 가장 늘려보아도 사각지대가 너무 많았다. 말할까? 의도한 건가? 내가 과하게 생각한 건가? 일단 가장 먼저 든 의문부터 풀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쩌다.."

 나는 반쯤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담당자를 쳐다보았다. 못들은 척 넘어가도 별 수 없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도리어 과장스럽게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마치 이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투였다.

 "아..이건 선생님께만-누구보고 선생이라는 건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저희 상무님이 좀..흠, 성정이 독특하셔서.. 예술계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약간 자신들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좀 맞춰주면 좋으련만. 섭외하는데도 우리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틀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이거였어요."

 그는 손가락을 들어 입구모양의 굴곡진 경계선을 가리켰다.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 있는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대체 무슨 감정을 그리도 담았나 싶었다. 나와 강대리가 이해 못한 얼굴로 쳐다보니 설명을 덧붙인다.

 "이거요 이거. 이 미묘한 틀어짐이 예술이라고 주장했고 상무님은...찌그러진 공이라고 표현했죠."

 "그래서 틀어졌나요 겨우 그걸로?"

 어느새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있던 강대리가 끼어들었다. 담당자는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어차피 둘 다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사실 쌓였던 게 좀 있었던 거죠. 상무님이 디자인 시안을 보고 진행하는 중에도 한 번씩 툭툭 던졌거든요. 말이라도 안통하시면 저희가 좀 걸러서 전달했을 텐데, 프랑스 유학파라.. 실상 미세한 스파크가 둘 사이에 있구나하는 정도는 알았지만 업무와 협의라는 굴레 안에서 잘 끊을 줄 알았죠...저기 먼저 사과드릴게요."

 "네?"

 되물을 필요도 없이 그가 허리를 숙였다. 강대리가 당황해서 그를 말렸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저희 상무님이 한마디로 괴짜세요. 얘기하고 있으면 속이 터지거나 이거 뭔가 싶으실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 진짜 오픈해야하거든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염치 불구하고 미리 말씀드려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나는 하얀 두피가 보이기 시작하는 그의 정수리를 바라보다 깨달았다. 방금 전 힘을 준 손가락 끝의 감정이 욕이었구나.

 그리고 내가 그에게 빌미를 주었다는 것도. 과장된 행동거지. 미리 한다는 사과의 말로 포장된 강요. 몰릴 대로 몰린 사람의 뻔뻔함에는 강력한 뭔가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또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그 말은 녹음기를 의식한 것이기도 했다. 여기서 질질 끌어봤자 서로 매달리기 밖에 더 있나. 이미 하기로 했으면 그쪽도 이쪽도 어느 정도는 눈 감고 가야하는 법. DM쪽에서 대놓고 이상한 사람 성질 봐 달라 했으니 우리는 대외적으로나마 그들을 잘 참아가며 오픈 일까지 잘 진행해야 하는 위치에 섰다.

 DM담당자의 표정이 풀렸다. 알겠다는 말만으로도 용기를 얻은 모양이었다.

 "사실 상무님이 여기로 오시기로 해서요. 저랑 같이 올 예정이었는데 회의가 길어져서.."

 "네에?"

 말만 들어도 싫은지 내 옆에 있던 강대리는 얼굴을 구겼다. 남에게 맞춰주는 데에도 힘이 더 드는 사람과 덜 드는 사람, 되려 보답받는 사람이 있다. 이야기 흐름상 상무라는 사람은 단연 전자였다.

 그때였다.

 탁. 턱.

 구둣발이 대리석 입구에서 물과 함께 살짝 빗겨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우산을 접고 터는 일련의 소리. 뒤돌아 봤을 때 상대방은 입구를 등지고 우산을 접고 있었다. 저게 상무인가. 제법 길게 느껴지는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의 등은 살짝 굽어있다. 그다지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느낌인데도 중절모를 쓴 게 눈에 띄었다. 물론 모자 밑으로 나온 머리카락도 새까맣다. 단지 조금 윤기가 없어 보일 뿐.

 남자가 돌아섰다. 낮이지만 바깥은 어두웠고, 건물 안에는 최소한의 불빛만 있어서 밝다는 느낌이 부족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죽은 자 같은 모습이 내 눈에 박혔다.

 어떻게 저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세월의 여파 속에, 이미 지워진 천진난만한 그 얼굴을 찾아냈다. 그게 가능했던 건 단 하나의 감정 때문이었다.

 혹시 네가 죽었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남자가 놀랐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었다. 중절모에 가려진 눈은 나를 본 건지 모르겠지만 머뭇거리는 기색은 없었다. 느긋하게 걸어온 그가 악수를 청했다. 마주잡은 손바닥에서 맥박이 팔딱팔딱 뛰었다. 뜨거운 손바닥의 온기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피와 열기를 뺏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행여 괴롭거나 처절해 보이는 표정을 짓지 않으려 노력하며 눈앞의 이를 보았다.

 최훈이 그런 나를 보고 웃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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