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아이어른
작가 : 세느아
작품등록일 : 201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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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와 그녀(1)
작성일 : 18-11-18     조회 : 304     추천 : 1     분량 :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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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뿔테 밑에서 수진과 일한지 3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최훈은 여전히 커다란 뿔테를 코끝에 걸고 다녔으며 수진은 그런 최훈을 졸졸 따라다녔다. 나는 그런 수진의 발끝을 바라보며 따라가는 게 주된 일과였다.

 그녀는 언제나 조금 신난 것처럼 발끝을 가볍게 통통거리며 걸었다. 저러다 허공에 붕 뜬다고 해도 믿을만큼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그녀의 뒷모습은 내겐 아주 익숙한 실루엣이었는데 하얀 가운 자락이 갈라지는 마지막 부분. 앉아있는 시간이 길었는데도 구김살 하나 없어 나는 매번 신기하게 여기곤 했다. 고개만 빽 돌려 내 가운만 봐도 옷의 주름살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아침에 다림질을 하고 와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한 업무라고 생각 했던 건 역시나 오산이었고 나는 세세히 파고들자면 어떤 일도 귀찮음의 끝판왕이 될 수 있으며 누구의 골머리도 썩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록부에 와서 비교해보니 회사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같은 회사 직원으로 묶여있는 관계에서는 정도란 것이 있었다. 소속감과 친밀감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업체는 냉소하고 노골적으로 우리를 싫어했다. 갑의 입장이던 을의 입장이던 공통된 사항이었다. 우리는 회사가 아닌데도 그랬다.

 일주일이면 익숙해질 거라 생각한 루틴 업무를 3개월째 수진과 함께 물어보며 배워가다 보니 우리 셋은 기차처럼 붙어 다녔다. 나란히 걷자니 키가 제일 큰 내가 쌩뚱해보였고 두 번째로 걷자니..그건 그냥 싫었다. 게다가 내가 가려버리면 그녀는 최훈한테 질문조차 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런 어중간한 상태에 머무르다보니 쓰리콤보로 걸어가는 모양이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수진은 최훈의 사선에서 언제나처럼 발을 통통거리며 걸어갔고, 쉴 새 없이 물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진의 하얀 가운 자락을 무심히 쳐다보며 걸었다. 무거운 내 발걸음이 그녀를 튕겨 버릴까 보폭을 조금 넓게 걷다보니 그 또한 습관이 되었다.

 최훈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모든 질문에 아주 구체적으로 빠르게 대답했는데, 듣는 이에 대한 배려는 완전히 배제한 말이었다. 저걸 어떻게 알아듣나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아 그렇군요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렇군요. 어쩐지 입을 삐죽이며 입모양으로만 흉내 냈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직원 한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럴 때면 나는 눈알을 또르르 굴려 다시 그 가벼운 발끝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변방 건물에서 일하는 날이 많았다. 한 달의 3분의 2는 그곳에서 보내는 것 같았다. 자연스레 본건물 5층의 제록부에 있는 내 책상엔 먼지가 쌓였다. 지하의 사무실은 어떠냐고? 거기도 매한가지였다.

 요즘엔 워낙 전산이 잘 되어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물리적인 접촉을 원했다. 똑같은 내용의 글귀라도 메일보단 종이로, 그 종이를 쥐었을 때 드는 무게감이라도 원했다.

 그래서 우리 셋은 여기저기 나다니는 게 일이었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고 오후 느지막이 사무실에 들어오면 한 것도 없는데 기운이 빠졌다. 사무실에서 하는 일은 단순노동에 가까운 반복작업이었다. 처음엔 이거저거 섞여서 헷갈렸지만 석 달쯤 지나니 익숙해졌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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