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아이어른
작가 : 세느아
작품등록일 : 201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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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어린 그(1)
작성일 : 18-11-25     조회 : 311     추천 : 1     분량 :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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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냐 그건."

 나는 비교적 예의 바른 편이었다. 눈치도 어느 정도 있고, 사회생활도 요령 있게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수진의 옆에 껌딱지마냥 붙어서 이쪽을 노려보는 한 꼬맹이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정확히 그렇게 말했다. 우습게도 내 말투와 그것을 내뱉었을 때의 여파를 정확히 인지한 상태였다. 매너나 사회생활의 요령 따위를 운운하기에 부적절한 말이었고 그 말에 그녀는 난감하게 웃었으며 꼬맹이는 나에 대한 경계 강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보였다.

 변명을 하자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할 의도는 없었다. 모처럼 주말에 일찍 일어났기에 집 앞 근처의 천변을 한 시간정도 달리고 온 나는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주말의 시작을 알렸다. 샤워를 하고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는데 수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성실한 그녀는 문자의 제목에 안부 인사를 묻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치 편지를 쓰듯 장문의 글로 자신의 용건을 전달했다. 아니, 전달 중인 듯 했다. 긴 문자로 잘린 내용이 역력히 보이는데 중간까지 이것저것 보태어 붙인 말들뿐이어서, 마지막에 쓰인 '이런 주말에 연락을 드린 건 다름이 아'에서 끊겨 있었다.

 나는 '아'라는 글자를 3초 정도 바라보다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정확히 3번이 울렸을 때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로 흘러들어왔다.

 "여보세요."

 여, 와 보, 자 사이에 조금 당황한 듯한 목소리의 떨림이 감지되었다. 문자를 쓰던 도중이라면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을 텐데도 '여보세요'라는 말로 전화를 받는 그녀. 내가 말했다.

 "그냥 전화로 하지 뭐하러 그렇게 구구절절 써요. 그리고 수진씨 문자는 너무 딱,"

 말을 잠시 멈췄다. 딱딱하다는 말은 왠지 하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그녀는 딱딱하고 어려운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최훈과 같이 있는 그녀의 모습. 맑게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존대와 반말을 재치있게 섞여 쓰는 그녀의 말투. 무척 격식 있고 친절하고 어찌 보면 사무적인 모습은, 그렇게 만드는 건 왠지 나인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이 안 좋아졌다.

 "평소처럼 편하게 해요."

 '평소'라는 말은 어패가 없었지만 '편하게'는 모순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녀가 곡해듣지 않기를 바라며. 기왕이면 나를 편히 느끼길 바라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같이 일하면서 느낀 점으로 그녀는 도통 가까워지기 어려워 보였다. 싹싹하고 일 잘하고 대화를 주고받는데 맞장구까지 잘 치는 점으로 봐서는 내 의견이 묵살될 위험이 높았으나 나는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친함에 일정 간격의 등급을 매기는 정도라고 해야 될까? 계산해서 재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여러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녀가 마찬가지로 그 여러 사람을 다 좋아하지 않는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좀 더 친해진다면, 그녀에게 지금 보이는 것과 다른 이면이 있을 거라고 멋대로 상상하는 중이었다. 이따금씩 편할 때 나오는 헤실거리는 웃음이나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데 아직은 너와 내가 조금 멀다는 듯한 시선이나. 그런 것들이 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예감은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수진은 최훈과 친했다. 나랑은 친하지 않았다. 우리 셋은 항상 같은 시간을, 아니 어쩌면 나와 같이 있는 시간이 더 길었는데. 그런 경계가 생겨버렸는데 그게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자료 하나를 내게 부탁했다. 어제저녁에 하다만 내용이 있어서 내가 집으로 들고 온 자료였다. 봐야겠다고 생각해 책상 위에 펼쳐놓은 터라 그녀가 말하는 순간 바로 알았다.

 "저..불편하면 그냥 제가 회사에서 인쇄해서 볼게요."

 나도 아직 볼 게 남은 터라 잠깐 고민하는 침묵이 거절로 여겨진 모양이었다.

 "아니요 지금 갈게요. 어디예요?"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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